강남강의

오순절

아빠와 함께 2024. 12. 3. 10:22

강남-사도행전 2장 1절 (오순절) 241119a-이근호 목사


오늘은 사도행전 2장 1절에 나오는 오순절 이야기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렇게 되어있지요. 성령께서 불로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방언을 따라서 복음을 전할 수 없는 걸까요? 복음을 각각 15개국에 있는, 구절에 보면 15개국이 나오는데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난 후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고향 찾아 온 겁니다. 오순절 되어서. 그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을 그들에게 할당하고 그들로 각기 15개국 그 나라의 고향으로 돌아와서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을 전파하고 전파하고 전파하는 이런 식으로 전 세계 이방나라까지 확산을 시키는 겁니다. 확산을 시키게 되면 예루살렘에 십자가 있었던 예수님을 인하여 유대나라 예루살렘 망하지요. 망합니다. 서기 76년에 로마에 완전히 박살나죠. 망하죠. 이제 다 망할 것은 예루살렘에 일어났던 일을 전 세계에 확대되었으니까 이제는 전 세계가 유다 나라 망하듯이 이제 망합니다.


이것은 다니엘 때에 예루살렘이 불타고 유대인들이 자기 약속의 땅에서 포로 잡혀서 바벨론에 포로 잡혀갔을 때에 바벨론 쪽에서는 이스라엘이 우리한테 패배당해서 망했다 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몰랐던 것은 뭐냐? 이제 누가 망할 차례냐 하면은 이제 바벨론이 망할 차례입니다. 바벨론이. 하여튼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곳은 족족 다 망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 받은 이스라엘 망했잖아요. 그다음에 바벨론 망하지요. 그 바벨론 망할 때 바사 나라까지 다니엘이 살아있었단 말이죠. 다니엘이 계시를 받았다는 말은 다니엘이 거주하는 그 나라는 족족 다 망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디까지 망하는가? 이 말은 다니엘이 어느 시대까지 계시 받았는가와 같은 뜻이거든요. 다니엘이 어디까지 계시 받았느냐 하면은 로마까지 계시 받았어요. 로마가 마지막 제국입니다. 로마 이후의 모든 세계 나라는 로마식의 방식의 국가 경영에 파급 또는 확산에 불과합니다. 로마 그 이후의 나라는 로마식의 나라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벗어난 적이 없어요. 로마식 국가 경영은 공화적입니다. 이 공화적은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은 그리스의 민주주의에서 나왔지요. 민주주의는 어떻게 구성되느냐 하면은 여론위주로 국가가 경영되는 겁니다. 여론. 어떤 여론? 시민에 해당되는 시민권을 가진 자의 토론과 여론. 아고라라는 광장에서 여론을 통해서 민주주의가 이뤄졌단 말이죠.


이건 뭐냐 하면은 대표자를 그들이 여론이 지중하는 사람으로 한시적으로 대표자를 뽑고 그다음에 또 맘에 안 들면 교체하는 것, 오늘날 민주주의와 똑같지요. 이걸 그대로 받아들인 거예요. 이게 바로 공화적. 전 세계가 바로 민주공화국이죠. 북한도 민주공화국이거든요. 조선인민주의민주공화국이죠. 중국도 민주공화국이고 한국도 마찬가지고. 공화적 제도를 누가 예언했다고요? 다니엘이 예언했습니다. 그러면 민주공화국이 우리 인간 보기에 가장 이상적인 완벽하진 않지만 가장 이상적인 정치제도라면 이게 뭐가 문제냐? 민주주의가 뭐가 문제냐? 민주주의가 뭐가 문제겠어요? 민주주의 문제는 민주주의와 반대가 되는 나라는 왕입니다. 민주주의 제도의 특징은 왕이 없어요. 그래서 망해야 돼요.


그러면 이 땅에 이상적인 완전한 왕국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그런 왕이 있으면 그 나라 채택하면 되잖아. 완벽한 왕이 있으면. 그 왕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그리스도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 그리스도라는 말은 앞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기름부음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왕이시다. 다른 말로 하면 나에게 뭐가 있다? 왕이 있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왕의 말만 들으면 만사오케이다. 그러니까 성도는 이미 하나의 국가의 백성으로 등록이 된 거예요. 국가의 백성으로. 통치자가 누구에요? 통치자는 예수님이에요. 통치자는 예수님이고 그 왕의 말을 듣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은 어떤 절차를 품고 있는데 그 절차가 죽었다가 아버지로 인하여 버림받아서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되신 분이죠. 이게 절차죠. 십자가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버림받고 죽었다가 부활하죠. 이게 왕 안에 있는 절차죠. 절차 또는 경로, 과정. 이렇게 절차, 과정이 있다면 예수님을 가지고 첫 열매라고 해요. 첫 열매라면 열매 안에 들어있는 요소가 백성에게 그대로 복제가 되는 거예요. 마치 모든 인간이 최초의 조상 아담의 복제적인 성격이 지금의 인구가 82억이에요. 많이 불었어요. 82억 인구에 전부 다 복제가 되어있지요.


그런데 그거는 너희 나라고 우리나라는 예수님의 요소를 복제가 된 예수님이 첫 열매고 그 다음 열매는 성도가 되겠지요. 복제가 되었기 때문에 여기에 아무나 임의로 딱 추출해가지고 성도 아무나 예를 들어서 최강수라는 성도 있다고 합시다. 최강수 이 사람 있으면 이 사람 잡아놓고 쪼개버리죠. 최강수 성도 쪼개버리면 뭐가 들어있어요? 그 사람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죠. 뭡니까? 왕 따라 그대로 복제되는 백성. 그 왕의 그 백성. 그 안에 뭐가 들어 있습니까? 이 땅에 와서 버림받아 죽어야 되고 그리고 부활되어야 될 팔자. 그 운명이 그 안에 그대로 들어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의 할 일은 뭡니까? 학교에서 우리의 소원은 뭐죠? 통일이죠. 그러면 성도의 소원은 뭡니까? 버림받아 죽는 것. 신나 신났어. 버림받아 죽는 것이 왜 신나느냐 하면은 주님에 비교해서 우리는 죄인이고 죄인이라는 말은 우리가 가짜라는 말이에요. 가짜의 특징은 공포가 없어요. 인간이 사는데 무서움과 두려움을 갖는 이유가 본인이 진짜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내가 가짜 인간인 것을 알면 따라서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잘 알아서 너는 내가 꼭 버려줄게 이렇게 우리를 가짜 인간으로 쳐준다면 그게 우리한테는 그게 굉장히 기뻐야 돼요.


왜 그러느냐 하면은 소크라테스가 평생 해도 해답 못 얻고 죽었잖아요. 소크라테스가 자기도 모르고 남도 몰라서 던진 질문이 뭡니까? “너 자신을 알라” 뭐 이런 이야기했지요. ‘너 자신을 알라’ 아무리 생각해도 해와 달 별 다 알겠는데 그렇게 바라보는 나는 누군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계시가 오니까 나는 뭐야? 나는 가짜지. 참 쉽죠? 나는 가짜에요. 그러니까 뭐가 기쁘다고 했어요? 내가 누군지를 알아서 기쁜 거예요. 내가. 내가 엉터리고 가짜라는 것을 아는 거예요. 이것을 정말 가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진짜 내가 가짜인 척 하는지 꿍꿍이를 갖고 진짜 내가 가짜로 인정을 하는지 하나의 팁을 하나 드리겠어요. 방법을. 오늘 집에 가셔서 공포영화 5개를 보는 거예요. 공포영화 5개 정도 봐가지고 목 확확 돌아가는 거 있잖아요. 귀신 나타나는 거. 그거 보고 무서우면 아직도 말 다르고 실제 달라요. 이건 아직도 자기를 지키려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공포영화에서 모가지 휙휙 돌아가고 귀신 나와도 너 잡아먹자 해도 뭐 가짜인데. 귀신보고 너 대상 잘못 골랐어. 쓰레기를 골라가지고 지금 무슨 볼 일 있다고. 너 전혀 나한테 위협이 안돼. 귀신이 하나도 위협이 안 된다고. 내가 가짜인 것을 내가 먼저 알아버렸는데 네가 협박 공갈, 너 이러다가 인생 꼬인다 막장이야 그게 가짜한테 통할 말입니까? 그게. 통할 말이에요? 안 통하잖아요.


자,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오순절은 뭐냐? 오순절은 이스라엘의 7대 절기 속에서도 3대 절기 속에 속하는 건데 절기는 뭐냐 하면은 제단 앞에서 어떤 행사를 벌리는 게 절기예요. 그럼 제단은 뭐냐? 제단은 세상을 살해하는 압축된 구조 또는 구조의 압축판. 이게 바로 제단입니다. 제단의 특징은 ‘가지고 오너라 내가 다 죽여줄게’ 이게 제단입니다. 다 죽여 버려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걸 슬퍼하거나 노하면 안돼요. 왜? 가짜를 진짜로 바꿔주는데 얼마나 이게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까. 어느 인간이 자기가 스스로 자살한다고 진짜 될 수 있어요? 자살한다고 진짜 안돼요. 그러니까 나의 살해를 나한테 맡기지 말고 제단 앞에 가져오는 거예요. 그럼 제단이 고마운 제단이 우리를 살해해서 진짜를 만들어 주는 겁니다. 왜 우리 인간을 가지고 이렇게 존엄성을 갖고 있는 인간을 가지고 실례적인 발언을 하느냐. 아무리 봐도 우리가 진짜인데 왜 자꾸 가짜라고 윽박지르듯이 강요하듯이 그렇게 주장하느냐. 그 근거는 뭐냐?


그 근거는 이렇습니다. 씨앗이 죽으면 거기서 생명이 나올 때 그 씨앗은 진짜 씨앗이에요. 씨앗이 죽을 때. 이게 요한복음 12장 24절. “한 알의 밀알이 죽으면” 거기서 뭐 나옵니까? 열매가 맺히지요. 그런데 각자 씨앗이 되어버리면 이게 생명이 안 나와요. 아무것도 안 나와요. 그냥 죄만 나와요. 썩었음 그것만 나온다고요. 어떤 인간도 자기가 행함을 하던지 봉사를 하던지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도 거기서 일체 생명은 안 나옵니다. 조상부터 가짜였기 때문에. 아담부터 이미 악마와 한 통속이 되어서 이미 변질되었기 때문에 변질된 것한테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생명이 나오질 않습니다. 생명도 안 나오면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면서 얼추 사람다운 사람인걸로 그 행세 꽤나 한 거예요.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가 그럴싸해 보이면 그게 진짜 인간인줄 알고 큰 소리 치면서 살아왔던 겁니다. 사랑이 어떠니 정의가 어떠니 하나님의 뜻을 이루자느니 성도라면 성도에 합당한 행위를 보이라느니 가짜도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런걸 왜 강요해요. 그 말한다로 나올 리가 없거든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나올 리가 없는데 교회가면 심심하니까 뭐라도 해야 되니까 행함을 이야기하고 듣는 교인들도 심심하니까 하는 척이라도 해서 둘 다 목사나 교인이나 죽이 잘 맞는 거예요. 둘 다 가짜면서. 뭐 성도가 되가지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된다. 가짜한테 무슨 빛과 소금이 나옵니까. 사회의 불의를 못 봐 가지고 신부가 돼서 사회 정의로움에 참여하는 그 신부는 무슨 사제? 열혈사제. 시청률15.8% 본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사회정의를 부르짖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봉사, 헌금, 찬양 뭐 선교, 예배참석, 성경공부 하면 할수록 갈수록 점점 더 공포가 짙어져요. 하나님 이만큼 하면 됩니까? 이것보다 더 해야 되요? 기도할 때 꿇어앉아서 할까요? 손을 이렇게 모아서 할까요? 이게 결국은 무섭다는 이야기예요 결국. 나 하나 못 추스르겠다는 거예요. 나 하나. 그래놓고 그 중에 하나가 뭐냐. 오순절을 연구하고 공부하고 그것도 포함되는 거예요. 벌벌 떨면서 가짜 주제에 자기를 포기하면 될 텐데 자기를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도행전 2장 오순절을 연구하자. 연구해서 뭐 할 건데? 그걸 연구했던 사람이 주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 볼 때마다 내가 가짜이기 때문에 다른 건 안 무서운데요 이게 무서워요.


사자성어 쓰겠습니다. ‘신의 자녀’. 뭐 이런 게 있습니까? 중국 경찰서 경찰들 동원해서 이거 한번 조사해봐야 돼요. 가짜 인간 주제에 신의 자녀라는 게 성립이 돼요? 있으면 구경하고 싶어요. 어느 경지 쯤 돼야 어느 수준이 돼야 신의 자녀. 사자성어 아닙니까 네 자. 신의 자녀. 어느 정도 돼야 신의 자녀가 돼요? 아 이건 뭐 겁도 없이 이런 단어가 함부로 남발되고 있어요. 신의 자녀라고 하는 사람을 한번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가지고 cctv 한 15개 달고 드론 가지고 그 사람의 하루 일과, 신의 자녀의 하루 스케줄이 어떻게 되며 평소에 하는 그 사람의 행동 태도 말 도대체 그게 신의 자녀가 아닌 자와 신의 자녀라고 우기는 자의 그 차이점이 과연 있는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맡겨가지고 조사를 해봐야 돼요. 신의 자녀가 성립되는지. 사람들은 말합니다. 성령 받으면 신의 자녀 된다고. 성령 받으면 신의 자녀가 된다. 성령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사기 안 치면 살 맛이 안 나거든요. 오순절 날 성령 받았으니까 우리도 성령 받을 수 있다 이 논리가, 가짜가 보는 성경해석에서는 과연 그것이 용납이 되느냐?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걸 지금부터 설명해 드릴께요. 성경에 있다고 해서 곧 내 것이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에요. 오순절 성령 받은 사람이 있더라.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 신의 자녀다. 그래서? 있었지. 그런데 당신이 왜 그걸 거론하느냐? 나도 신의 자녀가 되고 싶어서. 이러거든요. 그러니까 당신은 벌써 글러먹은 거예요. 왜냐하면 오순절 날 불이 올 것을 120명 어느 누구도 예상 못했습니다. 예상 못했어요. 그 이유가 성령은 속이 비어있기 때문에. 물이 있는데 물을 줄 때는 컵 먹으라는 소리 아니잖아요. 딱딱해서 못 먹잖아요. 안에 물이 들었잖아요. 물 먹으라고 준 것이지 컵 이빨로 부숴 먹으라는 뜻은 아니잖아요. 내용이 있을 때 아 목마르다 물 마시자 이래서 줘요. 그런데 성령은 성령 안에 뭐가 들어있습니까? 성령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사람들은 성령 안에 나 구원이 들어있기를 기대하고 성령을 거론합니다. 내가 죽어서 좋은데 천국 가기를 기대해서 성령을 거론해요. 벌써 이것부터가 가짜예요. 왜냐 하면은 아담에 속한 자를 다시 말해서 가짜 인간들은 가짜만 소망해요. 가짜만. 그래야 죄인 값을 해요.


인간 속에 죄가 장악하고 그들이 소망하는 것 기대하는 것 스케줄 짜는 것 하루하루 계획 짜는 것 이게 모조리 죄만 나와 줘야 그 사람이 가짜인 것이 규정이 되잖아요. 그런데 성경은 선한 것이 있단 말이죠. 어떻게 악한 데서 선한 것이 나옵니까? 나만 이상한 건가요? 어떻게 악한 데서 선한 것이 나옵니까.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나옵니까. 잘못 심었겠지 뭐. 씨를 뿌렸는데 인간에 속해있는 이 밭 자체가 열매가 없게 만든 밭이에요. 마귀가 설쳐대고 환란이 임하고 세상 유혹이 임해가지고 이 밭 자체가 열매를 못 맺는 밭이란 말이죠. 그 밭에 씨를 뿌린 거예요. 60배 30배 100배 그건 특이한 밭이에요. 그건 예수님에게 해당된 밭이지 인간에게 해당이 안돼요. 마태복음 13장에 씨 뿌리는 이야기 나왔다고 전부 다 자기한테 얼마나 해당되는가. 본인한테 해당되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주님께서 그 말씀하는 것은 자꾸 가짜인데도 불구하고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진짜 인간으로 자꾸 자기를 위장하니까 주님께서 답답해서 하는 이야기에요.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 씨 뿌리는 이야기를 들어라 그런데 말이야 너희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해.


그 말을 왜 추가할까요? 너는 마음씨가 나빠서 게을러서 못 알아듣는 게 아니고 바탕이 존재 바탕이 열매를 못 맺는 바탕으로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성령은 안에 아무것도 없어요. 비어있습니다. 성령이 왔다는 게 뭐냐? 성령 안에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러면 성령 받은 사람은 뭐냐? 구원받고자 하는 것을 다 끄집어내는 기능을 해요. 성령에 아무 것도 없는데 너도 같이 아무 것이 없어야 돼요. 성령의 일은 우리를 아무 것도 아닌 걸로 만드는 거예요. 아무 것도 아닌 걸로. 아무 의미도 없는 것. 썩을 성질만 있는 것. 저주 받아 합당한 것만 들어있다는 것을 성령이 와서 알게 했기 때문에 교회 와서 예수 믿고 구원받겠다 하는 그 탐욕이 마귀가 집어 넣어준 악마의 탐욕이라는 것, 그걸 발견케 하지요.


어째서 그런가? 그걸 좀 보충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차원. 차원이란 규정하는 배경에 조건 또는 요소가 차원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럼 여기다가 1차원은 직선상의 선 하나만 있어도 여기서 0, 2, 6, -5, -7 여기 있는 점들 사물들 어떤 대상들을 선 하나만 있어도 규정할 수 있는 몇 차원? 1차원. 곡선. 몇 차원입니까? 1차원. 직선뿐만 아니고 다른 거 없어도 선 위에 있다는 것만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게 1차원이에요. 그럼 인간은 어떻게 됩니까? 인간은 땅에서 태어나서 땅으로 돌아가지요. 인간은 몇 차원이에요? 1차원이죠. 이 땅에 인간들은 뭐가 흐른다? 시간이 흐른다. 인간에 시간에 매어있는 인간은 1차원적입니다.


그러면 2차원 보겠습니다. 1차원은 선. 곡선 직선 다 포함 돼요. 2차원은 평면. 네모난 평면. p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x와y 두 개의 요소가 있어야 돼요. q라는 점. p, q를 비교할 때 직선 한 개만 있으면 1차원 되는데 이래가지고는 다른 위치를 잘 모르니까 하나의 평면을 해보면 한 직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평면상에 있구나. 너하고 나하고 다르구나 할 때 요소가 몇 개 필요해요? 두 개가 필요하면 옆에 붙어있다고 같은 차원에 있는 게 아니지요. 교회 나와서 바로 옆에 앉아있는 집사라고 해서 그 집사차원하고 나하고 같을 리가 없어요. 이게 차원이에요. 환경에서 새로운 요소가 개입되었다 하면 지금 내가 전에 있던 차원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벗어난 관점을 부여받는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추가된 요소에 대해서 내가 새로 규정받는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1차원에 있는 우리가 성령 차원이 몇 차원인줄 모르고 그냥 성령 받아서 천국 가려고 해 봤자 그 의식과 사고방식은 몇 차원입니까? 1차원이에요. 네가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줄 모르고 감히 1차원에 있는 인간이 어떻게 천국을 논하느냐 말이에요 천국을. 부자가 세상에 살 때 1차원이었어요. 그런데 지옥 가니까 몇 차원 됐어요? 부자 맞은 편에 거지 나사로가 있었잖아요. 바로 옆에 있으니까 같은 1차원에서 너는 거지 나는 부자 신난다 이렇게 되거든요. 그런데 죽으니까 어떻게 되었어요? 부자는 지옥 가고 거지 나사로는 어디 갔습니까? 천국 낙원 갔는데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아브라함 품에” 라고 나와요. 아브라함 품이라고 하는 새로운 차원이 덧붙여진 거예요. 아브라함 품. 요즘 같으면 뭡니까? 예수 안. 예수 안에 있는 거지 나사로. 부자는 혼자 있고. 부자는 혼자 있는 거예요. 지옥 가서도 1차원이에요. 지옥 가서 아는 거죠. 아 내 앞집에 있고 개들이 핥는다고 내가 덩달아 같이 우습게 볼 대상이 아니었구나. 옆에 붙어있다고 같은 차원이 아니구나.


그래서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거지 나사로가 죽을 때 혼자 옵니까? 누가 와서 데려갑니까? 천사가 와서 vvvvvip대접을 해가면서 모셔가는 거예요. 어떻게 모셔갑니까? 나사로 그동안 거지역할 한다고 애 많이 썼지. 역할. 그동안 못 먹고 못 입고 몸 아파서 벌벌 떨고 하여튼 연기 하나는 끝내줘요. 어디서 연기 배웠어?! 인생이라는 이름의 연기. 하나님이 지정한 연출. 잘했어! 잘했어! 그래서 성도의 특징은 맡긴 역할대로 그냥 사세요. 맡긴 역할. 역할이 새롭게 부여된 차원입니다. 교회 와서 요령 부려서 천당 갈 생각 마시고요. 복 받을 생각하지 말고 맡긴 역할대로 마태복음 8장 말씀대로 “주께서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나이다” 어차피 가짜인데요. 어차피 가짜인데 가짜 역할을 하는 거예요. 가짜 역할. 그렇다면 이게 그동안 가짜 역할 한 것을 모형이라고 하거든요. 모형. 오순절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 때부터 있었습니다.


다 같이 레위기 23장을 한번 봅시다. 7대 절기가 다 나오는데요. 7대 절기, 1차원적인 시간에 하나님의 율법이 꽂히죠. 수직적으로 꽂혀요. 율법의 세계는 시간이 흐릅니까? 안 흐릅니까?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시간이 멈춰있어요. 인간의 지상에는 시간이 흘러가요. 시간이 흘러가는데 율법이 꽂힙니다. 7대 절기는 2차원적으로 되어있습니다. 하나는 뭐냐 하면은 시간 흐름 차원, 또 하나는 인간의 노동. 이 두 개를 통해서 두 개의 의미가 나옵니다. 그러면 7대 절기 모두의 의미가 몇 개에요? 두 개죠. 하나는 농사 짓는데 필요한 절기도 되고 또 하나는 여기에 담겨있는 농사짓고 밥 빌어먹고 살겠다는 것을 절단시키는 그게 인간 너의 역할이 아니야. 농사짓고 가족끼리 행복하게 사는 게 역할이 아니라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는 율법적 기능, 율법적 기능의 의미가 더 추가되어가지고 두 개가 추가가 됩니다. 두 개 어떻게 추가 되는지 제가 한번 적어 보겠습니다.


1월15일 유월절. 1월16일-21일까지 무교절기간. 1월 17일 초실절, 보리가 첫 수확되는 그 절기. 그리고 무교절부터 계산해서 50일이 이후에 있는 안식일을 7번한다. 7x7하고+1하면 50되죠. 이걸 가지고 오순절 또는 칠칠절 또는 맥추절. 맥은 보리가 아니고 밀입니다. 밀 수확하는 것. 보리수확에서 밀 수확으로 가는 것 이 절기가 바로 오순절 칠칠절 맥추절입니다. 7월1일 나팔 부는 나팔절. 7월 10일 하루 동안 대속죄일. 이거는 1년에 한 번 씩 대제사장이 백성을 대표해서 소나 염소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언약궤에 가서 뚜껑에다가 피 바르는 거예요. 뚜껑 밑은 인간이 하나님에게 대들었다 인간의 가짜 속성이 있고 그 속성을 뭐로 막느냐? 뚜껑으로 막는 거예요. 언약궤 뚜껑으로 막고 그 뚜껑 위에 피를 이 어리석은 백성을 대신해서 희생 피가 흘렸습니다. 그 피를 뿌리면 일년 치 의식하고 하거나 의식하지 않고 짓는 모든 죄 일년치가 탕감이 됩니다. 탕감 되면서 7월달 이게 설날이에요. 유대인 설날. 우리 올해는 잘해보자! 신년이에요. 7월 1일이. 신년 그 달의 제일 중요한 행사가 바로 대속죄일입니다. 털어내고 같이 가자. 과거 털어내고 같이 가자. 1차원적인 시간 차원이 다른 추가되는 2차원 하나님의 율법차원에서 1차원이 무효가 되어버린 거예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는데 나는 날마다 죽을 지경이야. 사도 바울이 맨날 잔업합니까? 맨날 잔업해요? 나 힘들어 죽겠어 그런 뜻이에요? 그런 게 아니고 나는 날마다 죽음을 실어나르는 삶을 산다. 삶을 사는데 삶이 어떤 삶이냐? 그 내용이 뭡니까? 내가 죽었다는 그 내용을 담고 나는 날마다 산다. 내가 죽었다는 것은 진짜 내용이고 내 껍데기는 뭐냐? 남들 보기에 그럴싸하게 사는 게 그냥 그거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 삶은 산단 말이에요. 1년마다 바뀌는 게 아니고 사도 바울은 매일 바뀌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면 어떻게 되느냐? 그게 시간 루틴이죠. 영화에 나오는 거 있잖아요. 한바탕해서 죽었는데 아침에 또 깨어났어. 깨어나고 직장 가니까 어제 죽었던 그 날이 똑같이 반복되는 거예요. 이번에는 안 죽으려고 애 썼는데 이번엔 다른 걸로 또 죽네. 또 스토리가 이어져가고. 주님께서 어제 나를 죽이는 것 말고 다른 새로운 삶을 주셔가지고 오늘치의 역할, 내가 왜 반드시 이 땅을 떠나야 하는가 그 역할을 실어서 또 살게 하시는 거예요. 시간의 흐름은 껍데기고 진짜 알맹이는 2차원적으로 추가된 차원이 본질 내용이 되는 겁니다.


그다음에 7월15일부터 21일까지 초막절. 그때 밀 수확을 저장한다 해서 수장절. 사람들은 그때 광야시절 해서 장막절. 퇴락한 장막을 다시 세우겠다. 이것이 시간적으로 나타나는 의미라면 아까 의미가 몇 개라고 했습니까? 두 개라고 했죠. 또 하나는 뭐냐? 이때 이때마다 제사를 드려요. 제사를 드릴 때 제사 제물의 다양성. 제사 드리는 방식의 다양성과 같은 말인데요 제사의 다양성. 소제, 식물로 빻아서 드리는 소제 그다음에 번제, 다 태우는 것. 속제 하나님에 대한 죄, 이웃에 대한 죄 속건제 그리고 화목제. 이 다섯 가지 색깔을 가지고 번갈아가면서 유월절 따로 맥추절 따로 이렇게 수장절 따로 오순절 따로 전부 다 투입되는 제사 방식을 다양하게 가져가요. 레위기 23장에 쭉 나와 있거든요. 이걸 다 보게 되면 여러분 잠이 와서 강의를 못 들어요. 그래서 제가 핵심 되는 부분만 제가 고르겠습니다. 두 가지 의미에요. 오순절은 3월 6일이에요. 그다음에 나팔절은 7월1일. 삼대절기에서 마지막 절기가 초막절이죠. 초막절과 오순절 사이에 4개월 이상 기간이 있잖아요. 그 기간은 농부들이 농사짓는 기간이에요. 4월 달까지는 봄 절기고 7월 달부터는 가을 절기인데 가을 절기일 때 비가 와줘야 돼요. 왜? 그게 이른 비 와야 되고 1월달 되면 늦은 비 와야 돼요. 쉽게 말해서 이거는 약속의 땅이라는 땅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노동, 농사 짓는 것을 통해서 약속의 땅에서 내 백성이 사는 모습 하나의 민족과 국가를 이루는 그냥 1차원적인 인간의 전형적인 다른 민족과 살아가는 똑같은 방식의 의미, 이게 절기가 보여주는 농사의 달력에 맞춘 의미라면 그 의미 말고 수직적으로 다가오는 또 다른 차원의 의미는 바로 제사의 다양성의 투입으로 바뀌어집니다.


이 제사의 다양성의 투입이라는 것은 이렇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이죠. 아까 레위기 23장에도 16절에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이게 바로 칠칠절 그 당시 오순절이거든요. 사람들의 시간의 1차원에서는 옛날 구약의 오순절 다음에 신약에 오순절 온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신약의 오순절의 완료된 의미를 가지고 구약 때 오순절의 제사를 재해석하는 방식을 채택해야 됩니다. 그러면 구약의 오순절 가지고 신약의 오순절을 맞추는 것은 누가 누락되지 않고 그냥 버티고 있느냐 하면은 내가 버티고 있는 거예요. 나. 성경 믿고 성경 지켜서 구원받겠다는 ‘나’가 버티고 있는 반면에 신약에 오순절 의미로서 구약의 오순절을 해석해버리면 신약의 오순절은 누가 빠졌다고 했습니까? 인간은 관여 못해요. 오고 안 오고는 주님 마음이지 인간이 와주세요 한다고 오는 게 아니에요.


인간은 오순절을 기다릴 이유도 모르고 기다렸어요 그들은. 내가 몇 날이 못 되어서 올 것이다. 몇 날이 10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고 40일 동안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 돌아가신 게 유월절이잖아요. 유월절 언저리 아닙니까. 그렇다면 오순절이 언제에요? 오순절 1월 16일 계산해가지고 50일이니까 예수님 십자가 돌아가시고 얼추 50일 만에 오순절 왔다 이렇게 되잖아요. 예수님 돌아가신 게 유월절이니까요. 그동안 그러면 40일 동안 예수님이 얼쩡거렸죠 이 땅에서. 그러면 그들이 빡쎄게 기도한 날이 몇이에요? 50-40하면 얼마입니까? 10일 동안 바짝 기도한 거예요. 10일 동안. 그런데 10일 동안 온다? 오순절 날 온다는 보장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없었어요. 아무도 몰라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철저하게 인간을 배제한다는 겁니다. 인간을 배제했는데 그들이 성령 받았다. 무슨 뜻입니까? 그들은 천국 가는 티켓을 얻은 거예요. 공짜로. 난데없이. 천국 가는 티켓을 얻었으면 게임 끝났어요. 가짜도 좋고 진짜도 좋고 그게 아무 문제가 안돼요. 한 달 수입이 10만원 되든 추워서 얼어 죽든 굶어서 죽든 티켓, 그것도 편도 티켓 남한테 빼앗길 수 없는 티켓 얻었으면 다 얻은 거예요. 어떤 수모를 당하고 어떤 욕설을 당해도 이 기쁨을 뺏어가지를 못합니다.


1959년도 닐 세다카가 부른 팝송 노래가 있어요. one way ticket. 우리말로 번역하면 편도 차표에요. 티켓을 어떻게 가지냐고 묻지 마세요. 이거는 달라고 해서 주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냥 주어졌어요. 왜? 하나님의 자기 약속 때문에. 우리가 달라고 불쌍해서 주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자기 약속 때문에 주님이 홀로 몽땅 주님 혼자 했습니다라는 그걸 증거 할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아무 내력도 없고 근거도 없고 이유도 없고 줄 이유도 없는 가운데 그냥 왔어요. 뭐라고요? one way ticket. 딱 표 한 장. 이건 남편도 자식도 못 뺏어갑니다. 그 one way ticket이 어디서 왔는가? 10분 쉬고 합시다.

 

 

강남-사도행전 2장 1절 (오순절) 241119b-이근호 목사


모든 인간은, 천국 갈 티켓도 없고요. 저것을 달라고 하는 권한도 없고요. 그걸 요구할 자격도 못 됩니다. 왜냐하면, 1차원이기 때문에. 그러면 여기서 질문 나갑니다. 성령은 3차원일까요? 몇 차원일까요? 성령은 0차원이에요. 그래서 0차원이기 때문에 이게 없는 분이에요. 성령이 나타나는 것은 없는 분이 안 나타도 될 분이 나타난 거예요. 성령이 안 나타도 될 분이 옴으로써 성경에 나오는 모든 단어 개념이 원래부터 인간은 뭘 모르는 개념이었다가 비로소 밝혀지는 겁니다. 1차원에 속한 인간들 1차원에 속한 인간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성경의 단어 하나 또 문장 하나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태초에 창세기 1장에 뭐라 되어 있습니까? 한번 적어볼게요.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요 문장이죠. 인간들은 "태초" 모르고요. "하나님은" 더구나 모르고요. "천지" 모르고요. "창조" 뭔 뜻인지 모르고요. "하시니라" 모릅니다. 특히 인간아 "하시니라"가 안 되는 이유가 하나님 모르는 이유가 인간들의 입장은요, 내가 오늘 또 ~한다가 되잖아요. 내가 ~한다가 되거든요. 근데 하나님 보시기 정답은 뭐냐 "너는 오늘 또 뭔가 움직였다"는 거예요. 다르지요 여기 내가 한다고 하는 주체가 누굽니까? 나잖아요. 성경에서 뭐가 되겠어요. 너는 내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였다가 돼요. 움직였다. 내가 나를 움직일 수가 없어요. 왜? 숨 쉬는 것도 주님의 허락이 떨어져야 숨을 쉬기 때문에 숨쉬는 것도. "하아~" 다음 숨 쉴까요? 말까요? 이렇게 살 사람은 없어요. 왜 이렇게 그걸 안 묻느냐 하면은 자기 스케줄이 바빠요 지금 끝나고 난 뒤에 애들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자기를 위한 스케줄이 꽉 차 있기 때문에 누가 지시 따르고 말고 할 그 관심조차 없습니다.


오늘은 내 인생을 사는 거예요. 내 인생을. 매일같이 버티고 버티고 하는데 솔직히 했잖아요. 그때 3번 이야기했는가. 인간은 인생은 뭐냐? 그냥 버티는 거예요. 누가 누굴 버틴다 내가 나를 버티기 위해 들어가는 게 인생이에요. 그걸 뭐 하나님은 그냥 도움 요청하고 좀 봐주소 이쪽이지. 주도적으로 하나님이 나를 이끄신다 이런 것은 인간은 그런 발상이 안 나오게 돼 있어요. 못 살겠습니다. 도와주세요. 아픕니다. 그거 아껴 주세요. 가능합니다. 돈 주세요. 맨날 자기 출발점은 스타트점이 자기예요. 내가 행하는 데 불편하니까 도와달라는 겁니다. 빡시게 기도할 테니까. 그런 게 생긴 게 뭡니까? 종교단체 아닙니까 본인도 가짜 가짜들 모인 것도 가짜 그래서 단원 구조도 종교도 가짜 모든 게 짜가.


성령은 자기를 비웠어요. 왜 원래 자기를 안 비웠는데 비웠어요. 처음에 성령께서 예수님 올 때는 자기를 비우지 않았어요. 비우지 않았습니다. 인간 예수를 하나님은 성령께서는 자기가 관리했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고 부활해서 주가 되고 난 뒤에 이제는 성령은 말끔히 자기 됨을 비우고 그 안에 예수님이 다 행하심만 안에다가 받아들이게 돼 있어요. 다시 말해서 성령이 자기 지시를 자기가 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는 성령이 되신 거죠. 그래서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성령께서는 뭐라고 돼 있냐 하면은 참 고게 중요한 기준인데 사람 잘 놓치지요 "자의로 말하지 않고" 자기의 의사를 의사대로 움직이지 않고 주님이 원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그게 요한복음 16장이거든요. 16장 13절에서 그렇게 돼 있습니다. 0차원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인간도 하나님이 하는 일 하나님의 모든 말씀 기적에 대해서 해석 불가 되는 그런 입장에 인간들이 놓여 있다는 거죠.


그 인간들이 왜 그런 사정에 놓여있는 이유가 뭡니까? 이미 악마하고 한 통속이 되어서 악마의 심성이 인간 속에 들어왔습니다. 인간 속에 들어온 악마의 심성은 어떤 공통점이 있는데, 모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똑같은 공통점을 보여줘요 그 공통점이 뭐겠어요? 마귀의 심보지요. 마귀의 심보가 뭐냐? 마귀의 심보 1 하나님을 대적한다. 2 예수님을 대적한다. 몇 번입니까? 2개밖에 안 줬어요. 수능도 5개 줬는데, 몇 번입니까? 예수님을 대적해요. 그래서 하나님 믿고 어디 가요? 지옥 가는 거예요. 바리새인 사두개인 유대인들이 하나님 믿고. 하나님 믿는 과학자들 어디 갑니까? 지옥 가는 거예요. 하나님 믿는 철학자들 어디 갑니까? 지옥 가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라는 것은 교회 나오나 절에 가나 모든 인간이 공통점으로 갖고 있는 의식이기 때문에 먹히는 거예요. 마귀가 먹혀요 절에 다니는 중도 엎어지면 아이고 하나님 하잖아. 진짜 그런 잘 모르지만은. 그런데 교회 오래 다닌 권사님들 또 집사님들 기도 많이 하는 집사님들 엎어지면 뭐라 합니까? 아버지~ 아버지란 가짜 이건 잘못된 거예요, 뭐라 합니까? 주여~ 우리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이름 기억이 안 나네. 있었어요. 내가 깜짝 놀랬어요. 세상에 얼마나 기도를 열심히 했으면 툭 치면 툭하면 탁한다. 하는 식으로 툭 치니까 주여~ 가 나와버려 주여~


아까 첫 강의 첫 번째 뭐겠습니까? 민주주의와 다른 점은 우리에게 뭐가 있다? 왕이 있다. 그 왕이 누구다 주님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된다면 백성된다는 말은 우리가 왕을 다룰 수 있어요? 없어요? 안 되죠. 백성은 백성다워야 되는데 백성은 뭐냐? 어떤 시츄에이션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 있더라도 그건 누가 적절하게 주신 환경입니까? 왕이 적절하게 니네는 요 사업이 딱 맞아 하고 맞춤 환경을 주신 거예요.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모든 것이 아멘이 되고 아니오가 안 되는 거예요. 모든 것이 예스가 되고 아니오라는 것이 있을 필요가 없는 겁니다. 왜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 인간은 매사에 불평하거나 분노할 자리에서 산다 그러나 성도는 반대로 불평하거나 분노할 입장이 못 된다. 왜냐하면, 자기 계획은 차단 돼 있기 때문에 자기의 계획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요런 말 딱 하니까 갑자기 이게 뭐처럼 들립니까? 강력한 계명으로 들리죠 목사님 저 지켜야 됩니까? 왜 갑자기 이런 생각 안 들어요? 그럼 나 저거 못 지키나? 나 지옥 갔구나 뭐 그렇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다른 가짜인과 동일하게 가짜 삶을 사는 이유가 내가 다른 모습으로 사는 거 이걸 지금 주님 앞에 내세우면 안 돼요. 나는 예전과 달라 지금 술 끊고 담배 끊고 나는 새사람 되었습니다. 이걸 내세운다고 봐주는 게 아니고, 이거 또 노래 한번 불러야 돼요. 원웨이 티켓, 그 티켓을 봐야지 티켓이 일방적으로 주어진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사는 거예요. 차이가 있다면 뭐다? 티켓이죠. 지금 그 티켓을 저는 지금 오순절 성령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성령을 주려면 성령이 제대로 왔는지 아닌지 알려면 해석을 어떻게 해야 돼요? 구약 노선으로부터 해서 신약으로 갈 게 아니고 신약의 오순절로부터 구약의 오순절을 해석해야 돼요. 그렇기 위해서 먼저 레위기 4장을 통해서 이 시간에 구약의 오순절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걸 한번 봅시다.


레위기 23장 15절 "안식일 이튿날 후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7일 안식일 때까지 50일 계수하여 그 소제를 무교절부터 시작한다" 했어요. 너의 처소에서 에바 40리터 짜리 그게 부피통입니다. 에바 10분의1이니까. 40리터에 10분의1, 8리터짜리 그다음에 뭐냐 하면 만든 떡 몇 개? 2개지요 그래서 아까 내가 떡을 여기 앞에 책상에 놨습니다. 떡 2개를 놓는데 "떡 2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제사에서 흔드는 것은 다 제사장 겁니다. 흔든다고 수고했는 모양이라. 흔들 때 위아래로 흔들고 앞뒤로 흔들고 이렇게 제사해요. 2개를 흔드는데 고운 가루의 소제죠. 고운 가루에 그다음에 뭐를 넣습니까? 누룩을 넣어요. 아 이거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기에 레위기 23장에 무교절에는 무교라 하는 것은 이스트가 없다. 교-이스트요 이스트를 전혀 넣지 않아서 딱딱한 빵이란 거예요. 딱딱한 빵이라 하는 것은 그 절기 때 바로 하나님이 너희를 위해서 얼마나 수고하고 아프게 고생했는가를 네가 동참하라 뭐 딱딱함 너희들 양식 폭신폭신한 빵 대전에 성심당 그런 빵 말고 폭신폭신한 빵 말고 "엄마 빵이 왜 딱딱해" 하면 "우리가 이 딱딱한 빵 딱딱하게 고생한 분들 때문에 우리가 살았어" 라는 것을 기념하도록 그 절기를 한 거예요. 무교절 누룩을 넣지 않았다는 말은 이 빵은 출발점이 네가 만든 빵이 아니고 주님에서 주님의 권한을 포함시켜서 너에게 주는 빵인 거예요. 그러면 딱딱한 상처가 주님의 상처가 닿은 빵은 뭐가 되겠어요. 이게 바로 생명이 되겠죠.


그 성도와 성도 아닌 사람 차이점은 성도 안에는 하나님의 딱딱함이 들어있으면 성도고 그냥 자기를 위해서 폭신폭신한 빵 들어 있으면 그거는 지옥 가는 사람이에요. 뭐 맨날 저한테 묻는 게 그거잖아요. 목사님이 예수 믿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삽니까? 어떻게 살기는 당신 안에 속에 있는 그 딱딱함을 경험하며 사는 거죠. 주님의 십자가의 상처와 아픔을 경험하면서 사는 거죠. 내가 얼마나 쪼다고 못 났으면 이 말도 안 되는 인간을 죄 씻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을까? 다시 한번 우리로 하여금 순회하는 것 십자가로 갔다가 부활로 되었다가 다시 십자로 갔다가 부활로 갔다가 이 서클을 매일같이 반복하면서 나는 날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실어나르는 그런 삶으로써 난 이어가고 있다.


2차원과 1차원 2차원과 1차원이 결합되는 그러면 그 1차원과 2차원이 결합되는 덕분에 우리는 그걸 계속 이어가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안 되죠. 왜냐하면, 성령은 0차원이기 때문에 1차원 2차전 백날 흉내 내고 비슷하게 해도 성령이 왔다는 것은 우리가 예상 밖에서 오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하고 신앙생활 요렇게 하고 십자가 안고 울고 불고 십자가 피 바르고 십자가 피를 잊지 않으면 구원 받습니까? No. 구원 못 받아요. 구원은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티켓으로 이미 구원이 확정되었어요. 구원을 쥐고 시작하는 삶이에요. 0차원에서 온 낯선 것을 낯선 것 중심으로 삶을 사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0차원 속에 들어갈 수 없는데 그쪽에서 0차원이 먼저 우리한테 들어오면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해낼 수 있는 1차원과 우리가 성경 공부하면서 상상할 수 있는 2차원 몽땅 그것이 구원의 바탕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매일같이 느끼면서 감사하게 되죠. 0차원 때문에 감사하죠. 나처럼 살아라 구원받는다. 여기에 승리가 안 된다. 이 말입니다. 나처럼 돼라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나처럼 해봐라 이렇게 백날 이렇게 해봐야 뭐 소용없는 거예요. 고운 가루를 누룩에 넣어서 구운 것이고. 누룩 다음에 나오는 단어가 뭡니까? 구웠다 구운 것이죠. 구울 때는 뭐로 구웁니까? 1번 가스불 2번 연탄불 어쨌든 간에 불이잖아요 불. 누룩이 있는 빵은 하나님 안 받습니다. 안 받는데 특별히 오순절 날 누룩 있는 빵을 받기는 받되 무엇을 거쳐야 돼요? 바짝 구워야 불을 통과한 빵은 내가 받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사도행전 오순절 할 때 보면 물로 와도 되고 비둘기 와도 되는데 왜 하필이면 불로 오는가? 그것은 창세기 3장 24절 때문에 그렇습니다. 창세기 2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생명나무에서 추방하시고 뭐를 차단했습니까? 두루 도는 불로써 천사이죠. 불로써 차단 시켰어요. 그래서 불은 "차단 기능"입니다. 어떤 인간도 자기의 뜻대로 천국에 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봉쇄하는 기능이 성령입니다. 자 여러분 예수님이 오셨다고 제자들이 믿었습니까? 안 믿었죠. 예수님의 십자가 졌다고 제자들이 알아봤습니까? 몰랐죠. 그러면 성령이 왔다 성령이 오면 뭘 알아봅니까? 내가 그동안 예수님 오셨지만 예수님인 줄을 분간 못했고 예수님께서 활동을 했지만, 말씀을 했지만 뭔 뜻인지 몰랐다라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뭘 기도해서 구원받고 헌금 해서 구원 받고 예배 다녀 구원 받고 전부 다 시작을 스타트를 내 행위로부터 시작한 거예요. 그게 다 성령 오고 나니까 그게 아무 필요 조차가 없어요. 필요치 않은 것을 거기다가 목 매고 거기다가 승부 걸은 거예요. 목숨 걸은 겁니다.


교회 봉사하고 돈 많이 내서 교회에서 칭찬해서 장로 시켜주고 또 어느 날 은혜 받아 가지고 신학교 가서 목사 되고 목사 돼서 배운 게 뭐냐면 신학이란 초등학문 배운 거예요. 교리라는 초등학문 배웠어요. 교리가 구원 시켜줍니까? 신앙이 시켜줍니까? 성경을 100독 하면 구원 됩니까? 아니에요. 성경을 100독 해도 자기 해석이 자기 해석을 도로 받는 것밖에 안 돼요. 내가 존재하는 한 성경 해석은 방해물이에요 나는. 자꾸 상상을 하게 된다니까요. 성경해석 상상을. 그래서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 바울이나 사도들의 특징이 있어요. 이게 뭐냐 하면은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영생 주기로 작정한 자가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주님의 성령께서 지시하는 대로 외치면 듣는 사람이 구원받는 게 아니고 영생 주기로 작정한 자만 어떻게 거기서 골라 골라 쏙쏙 뽑아내듯이 영생주기로 작정한 자만 구원되는 현상을 사도행전 사도들이 사도의 일행들이 체험을 한 겁니다. 영생주기로 작정한다는 이건 여러분 안 찾아봐도 알지요? 넘어갑시다.


그다음에 다시 레위기 들어옵시다. 그렇다면 아까 제가 제단은 뭐다 했습니까? 세상을 살해하는 압축하는 구조판 또는 구조로서 압축하는 판 압축판이라 했습니다. 제단은 쪽쪽 다 죽여버려요 그 0차원이 1차원 2차원을 다 죽여버립니다. 아까 1차원 알고 2차원은 뭐라 했습니까? 1차원은 그냥 농사짓고 사는 게 시간 흐름에 따라 또 씨 뿌리자 또 열매 맺고 추수하고 비 오기를 기도하자 이게 1차원이고, 2차원은 뭐냐? 하나님이 우리끼리 율법을 줬었으니 우리가 율법을 소홀히 하지 말고 경솔히 하지 말고 율법을 지키자 이게 2차원이죠. 그러면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그 율법을 어떤 입장에서 지켰을까요? 어떻게 지켰을까요? 옛날 옛날 유대인 있을 조상들처럼 우리가 율법 지키자 그렇게 했을까요? 아니면 다른 야무진 마음을 가지고 지켰을까요? 어떤 야무진 마음을 가졌을까요? 제가 답변할게요 우리 조상들은 율법을 건성으로 아무 생각 없이 지켰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권한을 주셔 가지고 로마의 압제를 받으니까 우린 율법을 제대로 실천에 옮기고 야무지게 율법을 지키되 항상 염두에 뭘 두느냐 '과거에 우리가 조상들처럼 되지 말고' 이걸 염두에 두고 지키는 거예요. 율법을 지키되 과거 실패를 답습하지 말자 그게 바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서기관들이 율법 지키기였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될 수 있는 대로 일상생활보다도 일상생활은 백성들이 하고 백성들이 주는 성전세와 약간의 헌금을 그들이 정신적으로 받은 유월적인 헌금을 가지고 생활하고 그들은 말씀 연구에 매진해서 왜 말씀이 율법이 생명이니까. 그거 지켜서 율법을 왜 탐구하느냐? 탐구해야 우리뿐만 아니고 일반 백성들이 율법을 지켰다 하는 레벨에 오를 수 있도록 자기들이 봉사하고 서비스하는 환경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사명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명감. 근데 그들이 누굴 죽였죠? 그들이 누굴 죽였습니까? 예수님을 죽였죠 그러면 말린 사람은 누굽니까? 예수님 죽일 때 말린 사람은 누굽니까? 본디오 빌라도가 말렸잖아요. 로마 제국에 그다지 해악도 안 되는 사람을 예 왜 죽이냐 납득이 안 된다. 이게 본디오 빌라도 이야기예요.


본디오 빌라도가 보기에 로마 제국에 해를 끼치는 것은 살인강도 바라바예요. 치안에 문제가 있다고요.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리 들어도, 로마 제국을 격파하겠다 이런 게 아니라니깐요.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해요. 1차원도 아니고 2차원도 아니고 다른 차원의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님 보고 참 얼마나 답답해 했겠습니까? 아저씨 아시다시피 권력을 내가 갖고 있잖아요. 나한테 이렇게 좀 대화가 되면 내 권력으로 로마에게 부인받고 있는 당신 풀어줄 수가 있다. 이렇게 할 때 예수님 그때 뭐라고 이야기했습니까? 그 이야기 듣고 고맙습니다. 뭐 이랬습니까? 어땠습니까? "권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 아버지 허락이 있으면 지금 천사로도 이까짓 거 십자가 이거 슝슝 못 빼는 거 이거 그 밑에 있는 로마 국민들 다 죽이는 거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나라에 속한 게 아니고 내 나라는 따로 있다" 했거든요. 그러니까 "그 딴 나라 좀 설명해 보소 그 딴 나라가 무슨 나라입니까?" 그걸 뭐라고 하냐 하면은 본디오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안 가르쳐주지" 안 가르쳐줘요 그때 예수님 마음속에 누가 있습니까? 성령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이미 소속이 0차원에 속해서 티켓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시민권과 생명은 어디에 있느냐 하늘에 있어요. 우리의 생명은 하늘에 있고 그럼 이 땅은? 그냥 발만 담가 있죠. 발 뺄 때까지 발만 담가 있는 거예요. 이미 우리는 이 땅에서 죽었고 우리의 생명은 하늘에 있는 자 골로새서 3장 4절에 나오는 말씀 아닙니까? 다른 1차원 2차원에서는 뭐냐 하면 “네가 죽도록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했지요 신명기에 나오잖아요. “죽도록”이죠. 근데 신약에 오면 뭡니까? 죽도록 할 것도 없어요. 왜? 또 이때 딱 추임새 좀 줘요 왜 그렇습니까? 이미 죽었으니까. 죽은 인간이 뭘 해요. 티켓만 자랑하면 되지 뭐 있어요. 티켓만 십자가만 자랑하면 되지 뭐 할 게 뭐가 있어요. 주님이 십자가 관련된 사항만 주께서 일방적으로 채워주실 거니까.


자 레위기 23장 봅시다 18절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1년 된 흠 없는 어린 양 일곱과 젊은 수소 하나 수양 둘을 드리고 그 소제와 그 전제를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를 삼을지니" 여기 번제 나오죠. 번제는 뭐로 드린다? 화제. 불을 동원해 하죠. 여호와께 무슨 향기로운 냄새다. 번제죠. 19절에 수염소 하나로 속죄제 드리죠 그다음에 수양 둘 가지고 무슨 제 드립니까? 화목제 드리죠 원래 속건제는 속죄제하고 같다고 보면 돼요. 그다음에 20절에 "첫 이삭 떡과 함께 흔들어 요제" 그 요제라 하는 것은 흔드는 거고, 거제는 뭡니까? 쳐드는 거고, 하여간 쳐들던 흔들든 다 제사하는 겁니다. "이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고 아무 노동하지 마" 이렇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떡 2개 고운 가루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 같은 거니까 번제 5대 제사가 어디에 집중됩니까? 오순절 날 제사에 집중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양으로 오실 때는 예수님이 뭐 했지요? 제자들 모아놓고 유월절 행사했잖아요. 떡 떼고 "이거는 내 몸이요." 잔을 부으면서 "이거는 내 피다 이걸 먹음으로써 너와 나는 이제 관계 있다. 이제는 다른 언약은 끝났어" 라고 했다. 이 말이죠. 그러면 오순절 날 그들은 뭐했습니까? 기도했습니까? 이 제사 드렸습니까? 기도했지요. 기도한다는 말은 오순절 내용이 몽땅 다 비어있죠. 다 비어있다. 비어있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이거예요. 오순절 제사를 안 드린다는 말은 그리고 자신의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것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거 이건 이 말이에요. "낭비" 주님은 우리 인생을 의도적으로 낭비케 하시는 겁니다. 낭비하는 것, 70을 살았던 10살을 살았던 90을 살았던 우리 인생은 낭비예요. 그 낭비에 동원되는 것이 무교병 유교병들입니다. 이렇게 왕따 시키는 거, 조리 돌릴 때 그렇게 했다. 이거예요. 조리돌림 주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뺑뺑이 돌립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뺑뺑이 돌려요. 미국에서 이민을 가나 여기서 판사를 하나 유럽에 가서 뭐 어떻게 사업을 하나 전부 다 뭐냐면 낭비예요. 헛되고 헛되고 모든 것이 낭비 그 낭비하는 기쁨은 왜 기쁠까요?

원웨이 티켓~ 편도 차표 낭비하는 것, 왜 낭비를 강조해야 되느냐? 낭비 안 하면 자기 행함에 의미를 줘버려요. 의미를 줘버리면 그 의미는 십자가의 원웨이 티켓을 딱 가로막는데 이게 바로 아까 악마가 누구를 대적한다 했어요?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습니다. 악마는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하느님이 시키는 대로 해요. 그러나 누구는 대적해요? 예수님의 행하심에 시기와 질투를 갖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행하심. 왜 그러냐 하면은 이미 모든 인간은 누구 손에 있어요? 악마 손에 있어요. 그래서 악마를 이 세상 신이라 했습니다. 이 세상의 왕이에요. 이미 악마는 모든 인간은 자기의 백성들이에요. 하나라도 이거 왕의 권력에 누수 생기면 안 돼요. 못 빠져 나옵니다. 빠져나올 수가 없어요. 누가 와서 집주인을 묶어놓고 세간살이를 도둑처럼 들고 가야 그래야 빠져나올 수 있어요. 어떤 인간도 악마를 못 벗어난다고요. 그래서 인간은 악마한테 길들여져 있어요. 모든 의미는 자기 의미부터 챙기고 부터 타인의 의미에 나서는 겁니다. 사랑이라는 것도 그렇고 연애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고 출생 때부터 그렇고 모든 인생사가 나 여기 있음에 나한테 어떤 이익이 있느냐 어떤 소실이 있느냐를 고려하면서 모든 행동에 나서게 돼 있어요. 악마는 좋~다. 하지요 왜? 그 행동 하나하나가 악마가 평소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리고 싶은 그 목적에 부합되는 행동들이니까요.


우리 교회 부흥되었다. 우리 교회 지난주 5년 동안 뭐 20명 했는데 5년 뒤 200명 교회 되었다. 예배당 짓자! 이런 거예요. 그럴 때 예배당 짓지 맙시다! 이렇게 나오지 말고 뭐라 하면 됩니까? 그게 뭐라고요? 낭비. 예배당도 낭비. 인간은 "그럼 니는 낭비 안 하나?" 나는 낭비하되 즐거이 낭비. 차이점이 그 차이점이에요. 범사에 감사하면서 낭비. 저쪽엔 찡그리면서 낭비하고. "또 내려갔어 이 주식 또 내려갔어 나 어쩌면 좋아 나 이 재미 없으면 다른 재미 못 사는데" 본인을 낭비할 생각이 없어요. 충실하기를 원해요. 남한테 그럴싸하게 내보일 나 이렇게 살았다. 내 인생이 이렇게 선방했다. 선방한 인생을 자랑삼아 주위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것이 살아가는 보람이 되고 말았어요.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말았고.


1차원적인 의미. 여기 23장 21절 봅시다. "이날에 너희가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그 다음에 뭡니까? "아무 노동도 하지 마라" 바로 이것 때문에 절기라는 율법을 줬지만 서서히 이스라엘은 몰락합니다. 뭣 땜에 몰락합니까? "노동하지 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낭비적 존재로 규정했다는 것에 대해서 인간 속에 있는 악마가 참지 못해서 반발함으로써 하나님께 여호와 하나님께 언약을 주신 하나님께 대드는 거예요. 자 여러분 제가 객관식 문제 낼 테니까. 해보세요. 인간이 하나님께 대드는 방식은 다음 중 어느 것입니까? 1번 헌금 안 하기 2번 전도 안 하기 3번 말씀 안 듣기 4번 일부러 죄 짓기 5번 복음 연구하기 몇 번입니까? 전부 다 이거 막상막하죠? 하나님께 소극적 복수라 하죠. 지금 이게 5개 다 정답이 되는 방식이 되는 이유는 앞에 '헌금 안 하고' 이게 아니고 '하기' 때문에 '듣기' '하기' 이 뭡니까? 이 '하기'의 주체 주인공이 누굽니까? 출발점이 나부터 출발합니다. 이게 대드는 방법이에요. 좋은 일 고아원에 봉사하기 뭐 선교하기 모든 게 '하기'의 주인공은 나의 노동에서 나와요. 나의 노동이 되려면 내가 여기 존재해야 돼요.


지난 시간에 서울 강의 때 벌써 잊어버렸죠? 차이점을 두게 했죠? '살아있기'와 무엇의 차이입니까? 그냥 '있기'의 차이. 내가 살아있는 거 하고 주님 보시기에는 '너는 거기에 있어 그냥 존재하는 거에 있어' 자꾸 내가 '살아'를 집어넣지 마란 말이죠. 너는 죽은 채로 그냥 있는 거예요. 그냥 있는 거예요. 있는데, 주변 환경 따라서 내가 주인공으로 이런 '하기' 하나님께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대드는 방식을 우리로 펄펄 피워내는 방식으로 더 이상 우리 자신에 대해서 일체 기대를 우리 행함에 기대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성령을 받은 사람은 무한한 고마움과 감사를 드립니다. 죄 안 짓는다고 죄가 아니에요. 태어난 것부터 죄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죄고 사는 것 자체가 죄예요. 이것을 알게 된 것을 감사하세요.


따라서 나쁜 짓 안 하기가 아니라 골라잡을 여유가 없어요. 내 존재 자체가 이게 검댕이거든요. 여러분 검댕이 알아요? 검댕이 숯으로 씻어 내면 뭐가 나와요. 손으로 문대면 뭐가 나옵니까 안에 숨어있는 검댕이가 계속 나오잖아요. 인간이 살면 살수록 나한테 이런 성질이 있었나가 다 나와요. 나중에 치매 성질로 다 나옵니다. 가면 갈수록 점점 도가 심해져요 연세 많은 부모님 여러분들이 부모님 여러분 한번 키워보세요. 어릴 때는 부모가 키웠지만 이제 자식이 키워요 한번 보호하고 키워보세요. 저 아버지는 누구 닮았나? 자식 닮았지 뭐. 서로가 서로의 DNA 반을 공유했으니까 닮았죠. 그렇지만 우리가 늙으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그 소릴 자식한테 또 들어요. 뭐 그만큼 연세가 요양병원을 갈 정도로 안 돼도 벌써 20대가 40대 보고 50대 보고, 아 정말 세대차이 나서 대화 못 하겠다. 이야기해요. 그럴 때 이게 긁어먹은 검댕이냐 아니면 생 검댕이냐 구치소 창살은 내 창살이냐 쇠 창살이냐 그것처럼 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양 각종의 검댕이인데 그 검댕이가 캐나다 이민 가나 뉴질랜드 이민 가나 한국에서 그냥 사나 북한으로 탈북하나 뭐 어떤 검댕이나 이건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게 뭔데?" 어떤 의미의 차이가 없어요.


자 이제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거는 이겁니다. 이처럼 '하기' 있잖아요. '하기' 이거는 인간이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오순절을 거기서 구약 사람들은 1차원에서 율법을 지키잖아요. 이게 오순절 가지고 안 놀았었는데 이걸 지켰습니다. 지켰는데 그들은 망했잖아요. 그렇죠? 또 망하니깐 또 예레미야 선지자가 뭐라 했는 줄 알아요. 너희가 마음의 깊은 데서 안 해서 그렇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예수님 따르던 유대인들이 깊은 데서 순수하게 순진한 마음으로 인간이 쓸 수 있는 모든 형용사 다 동원해 가지고 그 수정같이 맑은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그 수정같이 맑은 자들이 예수님 죽였잖아요. 긁어봐야 껍데기만 나온다니까요. 되질 않아요. 안 됩니다. 이미 그것을 유대인을 역사를 통해 시험해 봤는데 실패로 끝났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이 오순절 율법을 누가 가져가는가? 우리한테 물어보지 않고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가져가요 오순절. 오순절만 가져갈까요? 대속죄를 가져가죠 초막절 가져가죠, 유월절 가져가죠 무교절 가져가죠. 다 가져가죠. 그래서 갈라디아서 4장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날과 절기 지키는 것은 그거는 십자가 복음을 헛되이 할까 내가 두려워한다" 골로새서 2장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날과 절기를 지키지 마라" 유월절 맥추절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그거 크리스마스도 즐기세요. 지키지 마세요. 집에 트리 꽂고 다 좋은데 산타클로스 온다 해 가지고 아버지가 밤에 잘 때 오다가 넘어져서 또 걸리고 해도 좋은데 다 재미나잖아요. 하는데 지키지 마세요. 왜? 낭비적인 인간이 지켜봐야 그것도 낭비예요. 지키지 말고 시킨 대로 하세요.


"주님 헌금하고 싶은데.." "니 재산 얼마고?" "한 30억 됩니다. 이거 모아서 펀드까지 해서" "15억 해라" 그러면 15억 해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주의 지시니까 해야 되겠죠. 그게 싫어서 5천 원 내는 거예요. 진짜 물었다가 된통으로 목돈 나갈까 싶어서 그게 겁나 가지고 알아서 점심값 5천원 내는 거예요. 교회 와서 점심 주니까 또 그냥 빈 손으로 가기도 뭐하고 5천원 내는 거예요. 뭐 더 복수하려면 5천원도 안 내도 돼요. "나 안 낸다 봤지 하나님 나 5천원도 안 낸다 신난다 나 구원 받았으니까" 이런 식으로 저 까불락대는 사람들 있어요.


이 말은 헌금을 얼마 할까요 부터 해서 '헌금하기'가 뭐 이미 검댕이가 시작했어요. 검댕이가 시작하니까 원웨이 티켓으로 기뻐해야 될 그 사람이 헌금시간에 공포의, 얼굴이 파래요. 이거 얼마를 해야 이번 달 나갈 돈이 많은데 왜 또 부조가 많아 가지고 요새 부조 20만 원씩 해야 돼요. 서울 같은 경우에 밥값이 10만 원 가까이 나오니 그러니 겁이 나는 거예요. 겁이 나서 그래서 주님의 지시 올 때까지 안 한다. 이런 식으로 될 수도 있고. 그럼 그렇다고 마음 편합니까? 인간은 마음 편한 적이 없어요. 언제 마음 편하냐? 원웨이 티켓 할 때. 아 하나 안 하나 또 반 냈다가 또 우리 부부도 하루 아침에 죽는 게 아닌가 이런 염려 같은 것은 바로 원웨이 티켓에서 그 티켓에서 눈 돌릴 때 일어난 현상들이에요. 성령께서 어떻게 합니까? "너가 뭘 할까를 비워버려라." 오늘도 어김없이 그 시간이 왔습니다. 그 빈센트라는 노래가 4분이 넘어요. 너무 길기 때문에 제가 끝부분만 틀겠어요. 음악 듣기 전에 가사부터 한번 봅시다 내가 뽑아낸 가사예요.


For they could not love you

But still, your love was true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바로 그것이 진실인 것을 뭔 뜻인지 아시겠죠. 인간은 인간으로부터 누구로부터 사랑받지 않는 그것이 진실이에요. 내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그것이 진리예요.

This world was never meant

이 세상과 전혀 공통점이 없어요. 어울리지 않아요.

for one as beautiful as you
당신처럼 아름다운 이에게 당신이 만난 어떤 이방인 같네요. 이 말은 뭐냐 자기의 본 백성 버리고 엉뚱한 이방인이라 하는 건 엉뚱하다는 말이죠. 생각도 하지 않은 자에게 원웨이 티켓 성령이 와버린 거예요. 사도행전에서.

갔네요. Now I think I know

이제 알 것 같아요.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당신이 내게 하던 말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많은 영혼을 가지러 얼마나 당신이 고통스러웠는지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그들을 얼마나 자유롭게 하려고 애를 썼었는지

They would not listen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죠

they did not know how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어떻게 듣는 줄도 몰랐어요.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ening still

세상을 바라보며 잊혀지지 않는 것

perhaps

아마도 아무도 언제까지 주님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Like the strangers that you've met
stranger 나오죠. 이방인.

The ragged men in ragged clothes

못에 걸려 있는 어떤 초상화 이야기

Now I think I know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ening still

Perhaps they never will


맥클린이 불렀던 노래죠 이게 빈센트. 고흐가 목사 아닙니까 목사는 아니고 성직자잖아요. 그만 두고 병 때문에 그만 두고 화가 된 사람이잖아요. 그 당시에 기독교 교계 사업 벌린 거 보고 너무 짜증나서 내 거기에 굳이 참여할 이유가 없다. 자 근데 빈센트 고흐는 이걸 보고 이렇게 사회 보고 우울증 걸리고 공황장애 걸렸는데 우리 성도는 이런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짜증내야 돼요? 감사해야 돼요? 고마움까지 할 필요 없어요. 세상아 고맙다 이럴 필요는 없는데 감사해야 되죠. 왜 그 썩어빠진 세상의 일부가 누굽니까? 바로 본인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 제목을 '낭비' 오순절은 하늘에 있는 0차원의 제단에 불이 거꾸로 솟구쳐서 각 사람 머리 위에 갖다 붓는 거예요. 너는 꽝이야 하고 그냥 너는 제물이야 하고 우리를 썩은 누룩 죄 있는 누룩을 주께서 불로 찢어버리고 구워 버리는 거예요. 십자가가 모든 5대 제사의 완성이라면 그 십자가 지신 그분에 의해서 그분의 영에 의해서 '에라 이 완성된 제사 받아라' 그래서 너희는 죄인에서 뭐가 된다? 의인 되는 거예요. 죄 사함을 받는 겁니다. 더러운 인간이 거룩한 인간이 되는 겁니다. 어디 안에서 성령 안에서 성령을 받는 게 아니고 성령 안에서.


따라서 성도는 이제부터 그 티켓 우리는 이방인이니까. 특히 이방인이니까. 난데없이 떨어진 그 티켓과 관련된 그러한 조합 조립이 된 관련성 있는 사항들이 우리에게 주께서 주어졌을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평소대로 이 소위 뭐 불신자 신자 할 것도 없이 모든 인간의 모든 주인공 누굽니까? 내가 주인공이죠. 하나님은 생각 아예 하지도 않고 남들 보기에 내가 얼마나 괜찮게 보이느냐 거기에 온통 신경을 쓰면서 평생을 남한테 안 지려고 살고 있잖아요. 그 살고 있는 그 상황을 누가 컨트롤하느냐 그 티켓이 컨트롤 하는 거예요. 그러니깐 십자가만이잖아. 그러니까 너는 인생 자랑하지 말고 뭐만 자랑하라? 십자가를 자랑하란 말이다 이런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걸 모르고 그냥 십자만 자랑하는 사람 있는데 뭐를 경유해야 돼요? 매일같이 낭비하는 나를 경유해서 십자가를 증거하는 거 이것이 바로 성령 받은 성도의 참모습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순절 날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주께서 일방적으로 일으킨 그 일로 인하여 저희들이 일방적으로 다 한 기쁨이 되게 해 주시고 그걸로 수시로 감사로 이어질 수 있는 저희의 일상은 더러운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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