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순

선 넘은 영생

아빠와 함께 2024. 10. 6. 18:49

선 넘은 영생 241006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예수님께서 5천 명에게 떡과 고기를 먹이시는 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식사를 같이 한다.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 너희들이 먹는 거 나도 먹는다는 뜻이에요. 너희들이 먹는 거 나도 먹는다. 이 말은 너희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너희를 만들어준 나도 같이 너희들 고생에 내가 뛰어들게. 이게 식사를 같이 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 가지고 5천 명을 먹이셨지만 그 안에 예수님 자신도 거기에 그들이 먹는 것과 같이 먹으셨다는 이 말입니다. 먹으셨거든요. 먹으시니까 인간 쪽에서 오해가 된 거예요. 예수님은 우리 경제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다. 우리가 가장 기본적인 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대해서 주께서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사람들이, 그 말이 뭐냐? 5천 명이나 그렇게 해줬으니까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할 때 그들은 자기의 본심을 폭로할 수밖에 없었어요. 주님을 우리들이 주님을 따라다니는 이유는 배고픔을 해결하는 데 좀 보탬이 될까 싶어서 예수님을 믿습니다 하고 따라다니는 겁니다. 왜냐하면 산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노동을 자기 근육의 힘을 갉아먹고 대가로 목숨을 부지하기 때문에 그래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갉아먹어야 돼요. 피곤해야 돼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지 아니하면 입에 음식이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거저 주었잖아요. 거저 주었으니까 이런 좋은 임금님이 어딨어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 오병이어를 행할 때에, 보리떡 다섯 개 그 장면입니다. 오병이어를 행할 때에 예수님을 자기의 지도자로 대통령으로 임금으로 삼으려고 잡아야 된다. 잡아야 돼. 우리 놓치면 큰일 나. 놓치면 우리는 그런 혜택 못 받아. 기어이 잡아야지. 기어이 잡으려고 왔던 그들이 기어이 떠났어요. 붙잡아도 떠났어요. 붙잡아도 떠난다니깐요. 알아서 다 가버렸어요.

그걸 통해서 예수님은 오병이어, 그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걸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떠나게 만드는 방식을 사용한 겁니다. 그들이 원하는 메시아 그들이 원하는 하나님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을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 주시는 거죠.

어린아이의 도시락으로 했을 때에 일단 여기 있는 제자들부터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자 중에 하나가 빌립이죠. 하나가 “이것 가지고 뭘 할 수 있습니까?”라고 이야기했죠. 어린애 도시락인데요. 그 말은 뭐냐 하면은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고 봉사할 때 내까짓게 뭘 주의 거창한 주일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 같은 그 위대한 일을 우리가 뭘 할 수 있습니까, 라는 식으로 그런 태도를 갖고 있지요. 예수님은 대단한 분이고 우린 보잘것없으니까 그냥 우리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무시해도 되겠지,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어린아이의 도시락을 가지고, 부자의 밥상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도시락을 가지고 5천 명을 먹여 살렸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 5천 명은 전부 다 하나님 보시기에 어린아이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인데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이게 하나님 예수님과 인간과의 관계예요. 자체적으로 아무 보잘것없는데 내가 사용하면 주의 일이 되고 하나님의 일이 된다는 것을 그 오병이어를 통해서 그렇게 하셨어요.

그리고 이 오병이어의 떡을 먹이는 그것을 나중에는 주님이 뭐라고 해석하느냐 하면 너희에게 말씀을 먹였잖아, 라는 식으로 제자들만 있을 때 따로 그렇게 가르친 대목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거기 16장에 보면 나옵니다. 그래서 오병이어 가지고 이제 떡을 행하는데 문제는 이 떡을 먹고 난 뒤에 그 다음에 그들이 이제 자신의 본색을 드러냅니다.

잡아라. 예수님 놓치면 후회스럽다. 잡아야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5천 명을 떡만 주고 갔는데 그들은 떡을 얻기 위해서 그들은 아주 필사의 노력을 하면서 진짜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서 갈릴리 바다까지 건너 바다 건너서서서 해가지고 예수님까지 끝까지 따라왔어요. 따라왔을 때 예수님께서 대뜸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너희들 왜 따라오지? 왜 따라오느냐?” 이 질문은요, 송곳 같은 질문입니다.

왜 교회 나와? 똑같은 질문이에요. 왜 하나님 믿으려고 해? 수상한데. 대단히 수상해. 왜 믿지? 왜 믿는데? 뭐 어디 얻을 것, 어디 이익이 있어? 너에게 이익이 있단 말인가? 너희에게. 그래서 주께서 “너희가 날 따라오는 것은 너희에게 이익이 있기 때문에. 무슨 이익? 내 육신이 배부른 까닭이라.”고 했어요. 이걸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너희들의 모든 소망의 종착점은 너희들이 따라옴으로써 다 들통 냈다. 내 배만 부르게 하신다면 그것이 내가 당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끝. 그러니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너희들이 그 떡 먹으면 안 돼. 그 떡 말고 다른 떡이 따로 있다.” 하니까 그 사람들이 “우리가 먹는 떡 말고 다른 떡? 그 떡을 우리에게 주옵소서.” 이렇게 된 거예요.

아니 욕심은 또 욕심이 끝도 없어. 떡은 일단 챙기고 제2단계. 떡보다 무슨 떡? 영생의 떡. 영생의 떡. 그러니까 그들이 이제 아는 척하면서 “모세가 만나를 주어도 우리는 그 당시 사람들이 영생을 얻지 못하는데 당신은 모세보다 더 대단하신 분입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영생의 떡을 주실 수 있는 분입니까?” “그래 내가 바로 생명의 떡이다.”는 말이 거기서 나와요. 내가 생명의 떡이다. 하늘에서 온 떡이 된다. 그 떡 먹고 우리가 떡이 되고 있었습니다. 정말 그 떡을 주옵소서, 라고 이제 이야기가 나왔어요.

했을 때 “그래. 너희한테 줄게. 내 살과 내 피를 마셔라. 그러면 너희들이 영생을 얻을 것이다. 내 살과 내 피를 마셔라. 영생을 얻을 것이다.” 딱 그 이야기 듣고 난 뒤에 이 많은 5천 명들, 다 갔습니다. 다 갔습니다. 뭐냐 하면은 예수님의 살과 떡을 먹는다는 것은 율법적으로 인간의 율법적으로도 짐승의 피나 사람의 피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게 레위기 17장에 나오지만 그걸 생각하지 않고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 선을 주께서 선을 만들어놓고 그 선 너머로 와버린 거예요. 예수님께서.

그러니까 그들은 주님 따라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펜스 장벽이 생긴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거 내가 못하는 것을 요구하시네. 가자. 가자. 가자. 가자.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우리가 하는 거 우리가 못하는 거 이야기한대. 요구한대.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안녕히 계세요. 그동안 고마웠었습니다. 아주 인사 깍듯하게 인사하고 고맙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여기가 예수님 관계가 여기가 끝인가 봅니다. 앞으로 잘 먹고 잘 사세요. 가자. 집에 가자. 하고 그들은 다 가버렸어요.

그들이 가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요한복음 6장에 그 중간에 나옵니다. 뭐냐? 우리는 모세 같은 사람을 원했던 거예요. 모세 같은 사람. 모세는 그에게 만나를 준다는 것으로, 모세 같은 선지자가 오게 되면 우리의 모든 경제적 문제, 정치적 문제 해결 다 해주는 진짜 민족의 지도자 모세 같은 분을 기다렸는데 저분은 아니야. 아니야. 영 아니야. 우리는 모세는 따를 준비돼 있지만 저분은 우리는 따를 필요가 없어. 하고 가버렸어요.

이렇게 떡을 많이 먹고서도 그들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 이것은 인간은 못해요. 인간은 못한다는 뜻에서 더 나아가서 인간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유발하는 요인으로서만 작용해요. 인간이 없으면 예수님 피를 흘릴 수도 없고 사람을 찢길 수도 없어요. 인간이 저지른 범죄 하나님에 대한 범죄를 주님께서 그 죄 지은 것을 용서와 더불어서 그들에게 되돌려주는 거예요. 용서 뒤편에 보니까 뭔가 보니까 바로 니가 나를 죽였잖아, 라는 것이 딱 붙어서 우리에게 되돌려주는 방식 그것이 바로 영생의 조건입니다. 그게 영생의 조건이에요.

인간이 할 수 없는 그 넘어서 사람은 못하고 예수님 홀로 하셔서 홀로 하신 그것을 무상으로 우리에게 선물로 주는 그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따라갈 수 있는 한도를 깨닫게 해주시고 한도 너머에 주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귀하고 고마운지를 깨닫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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