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숙제가 아니거든요. 요한복음6장39절 유명한 말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를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살리는 이것이라. 했잖아요. 그러면 그 일은 누가합니까? 주님이 하시지요.
이런 것이 뭐냐 하면 내 숙제가 아니지요. 그러면 내가 인생을 살면서 일어나는 일은 필히 일어나야 되는 일이에요. 전부 다. 필히 일어나야 될 일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확정된 일이에요. 내가 몇 월 몇 일날 일어나야 될 일은 필히 확정된 일입니다. 그 확정된 일이 진행할 때에 그것이 고백으로 나온다는 말은 성도에게는 고백이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는 겁니다.
이미 확정된 일이라는 말은 확정된 내용이라면 이게 뭐냐 하면 여기서 의미가 생기는 겁니다. 의미. 말을 할 때 그냥 말을 하는 게 아니고 반드시 뭐를 싣고 있느냐, 내용을 담아서 의미를 담아서 전하거든요. 의미를 담아서. 확정된 내용이 있을 때 의미가 나오는데, 그러면 이렇게 주님께서 확정된 의미가 있다면, 반대가 뭐냐 하면 미확정된 내용을 가지고 말을 하게 되면 여기에 뭐냐 하면 인간들의 자체적인 자기 의미가 나오겠지요. 이 둘 사이가 싸움이 벌어지는 겁니다.
확정된 내용은 아까 “다행이다.” 또는 “기쁨에 얹어서” 주눅 들지 않고 주께서 나를 망가뜨려서 기어이 내가 걱정했던 것 다 도려내고 나를 빈자리로 만들었어요. 빈자리. I am nothing이라는 말이 있지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신나는 거예요.
인간은 말을 한다. 그 말의 내용이 중요하다. 그 말의 내용은 뭐냐 하면 바로 다행이다. 기쁨에 얹어서 하는 그 말. 그 말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신 예수님과 예수님이 주도하는 고백인 반면에 그렇지 않고 말을 하면서 선악에 의해서 타인과의 비교 우열을 늘 염두에 두면서 이런 고백, 이런 기도, 이런 말을 함으로서 남들이 내가 얼마나 믿음 좋다고 칭찬하겠느냐, 그런 식으로 계속 생활해가는 것. 남을 의식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