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분명히 예수님께서 위에서 났다 해도 그 말 안 믿었어요. 왜냐 하면 바리새인들이 위에는 여호와 계시는데 니가 왜 그 위에 있었느냐, 이리 된다 말이지요. 그러니까
㉮위에 있는 것도 땅에 와버리면 같이 땅이 되되 이게 안 맞는 겁니다. 이질적인 거예요. 이질적이면서 거기서 뭐가 발생되느냐 하면
㉯죽음이 발생되는 겁니다. 죽음이. 죽음이 발생되는데 성경은 이 죽음을
㉰사도바울의 복음이나 야고보나 사도들의 역할은 뭐냐, 이 죽음을 뭐로 바꾸느냐 하면 이걸로 바꾸는 거예요. 실화. 실제 있었다. 이걸로 바꿔요. 실화로. 실제로 이게 실화로 되어버리면, 중요한 겁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실화가 되어버리면 내가 나를 생각하는 이것은 뭐가 되느냐 하면 망상이 돼요. 망상입니다. 꿈을 꾸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착각 속에 있는 겁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예수님이 죽음을 통해서 어디서 빠져 나왔는가, 이 세상에서 빠져나왔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뭐냐 하면 이 세상의 일부잖아요.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 몬 이 세상은, 이 세상 사람들은 본인이 살아있는 걸 실화로 봤어요. 내가 지금 숨 쉬고 있는 것을 실화로 봤는데, 실제로 있는 이야기로 봤는데, 성경은 사도는
㉳예수님의 죽음을 실화로 봄으로 말미암아 “니가 얼마나 망상에 빠졌으면 진짜로 죽이지 않아야 될 분을 죽여 버렸다. 이 인간들아! 이 하늘의 복수가 이제 시작된 거야!”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얼마나 니가 착각에 빠졌으면 죽어야 될 분과 죽지 않아야 될 분을 구분도 못하고 있었다 말이지요.
㉴그러면 나는 여기 살아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야! 아야! 나는 이거 꿈꾸는 거 아니야. 살아있다.” 해도 이게 망상이 되는 거예요. 뭐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내 몸은 살아있다. 주사 더 나아주세요. 더 살고 싶어요. 호스 꼽아라. 나는 100살 더 살란다. 이 모든 짓거리가 이게 거짓이 되는 거예요. 거짓이라는 것은 없는 게 아니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추방시키는 그러한 범주 안에서 못 벗어나는 게 거짓이 되는 겁니다. 그저 우리 애만 잘되면 되고, 우리나라만 잘되면 되고. 이게 전부 다 왜 거짓이 되느냐 하면 실화와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실화가 연결이 안 되는 동네에 일방적 주장이기 때문에 이게 망상이 되고 허상이 되는 겁니다. 자, 허상의 특징은 뭐냐 하면 되게 오래간다고 여기지만 잠간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이 임시적이고 일시적입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게. 여기서 누가 돌아가시면 이 아무개 돌아가면 이 임시, 박 임시, 임시적 조치였다는 거예요. 그것보다 더 노골적인 것은 박 마네킹, 최 마네킹, 하나의 작은 인형입니다. 그 인형 속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시한폭탄이 들어가 있어요. 우리 속에. 하늘이 주신 시한폭탄이 들어와 가지고 지금도 착칵! 착칵! 착칵! 심장고동소리가 시한폭탄이에요. 고거 멈추면 끝나는 겁니다. 고거 멈추면 모든 게 다 죽습니다. 왜? 죽음만이 실화기 때문에. 그 실화가
㉵우리 속에 들어있는 유일한 실화는 내가 죽는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