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강의

성전확장

아빠와 함께 2024. 7. 9. 09:27

20240705a 울산강의-역대기하(5강) 7장 1절 : 성전확장
(강의:이근호 목사)


역대하 6장,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완공했는데 역대하 5장 13절, 14절에 보면 특히 14절 같은 경우에 보면 하나님의 전에 구름이 가득하다, 하나님의 전에 영광이 가득하다, 이렇게 돼 있어요. 성전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 장소에 오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엄청 신기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성전은 모형입니다. 장난감이에요. 인간이 신을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지어드린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이 말이죠.

그게 역대하 6장에 보면 초반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둘 만한 어떤 건축물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둘 만한 건축물을 지을 수 없다는 이 말은 성전은 인간 용도로 모형을 만든 거예요. 모형을 만들었는데 하나님이 거기에 임했다.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여기에 임재했잖아요. 하나님이 여기에 기공식에 직접 참여했다고요.

하나님의 참석, 귀빈으로 참석을 했다는 말은 성전 사이, 이게 틈이거든요. 틈 사이 이게 뭐냐 하면 모든 백성, 왕+모든 백성, 이게 인간입니다. 인간 전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뭐가 되느냐 하면 모형으로 다루겠다는 겁니다. 인간 자체가 모형이라면 어떤 결론에 도달되느냐 하면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증거할 수 없다’가 돼요. 인간을 스스로 자기를 증거할 가치나 권한이 없다가 돼요.

나. 이런 사람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어떤 권한도 인간에겐 없습니다. 왜? 인간은 모형이기 때문에. 모형이란 말은 모형 자체를 증거하기 위해서 모형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성전에 찾아오지 아니하시고 인간에게 찾아오지 아니하면 인간은 어떤 결론에 도달하느냐 하면, 이건 좀 어려운 이야기인데 어려운 이야기도 해야지요. 여러분 감당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세상에 가짜는 없다.’ 이 세상에 가짜는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모형이 아니고 나는 진짜기 때문에. 나는 진짜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인간은. 왜냐? 진짜기 때문에. 나는 나이기 때문에 진짜기 때문에 진짜를 진짜라고 하는데 이게 뭐가 문제 되느냐 이 말이죠. 내가 누구의 모형이라는 것은 자존심이 상해서 우린 못 받아들여요. 우리는 내 인생을 살기 위해서 내가 있는 것이지, 나 말고 다른 분에 대한 모형, 또는 다른 말로 할까요? 더 여러분이 알기 쉬운 것, 인형. 누구의 인형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처녀 때 처음에 남편과 결혼해서 남편이 엄청 애교를 부리잖아요. “당신은 나한테 인형 같아.” 그럼 여자가 뭐라 합니까? “계속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인형 해줘?” 이래 돼야 제대로 대화된 거예요. 만약에 남자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당신은 인형 같아.” 그러면 여자가 주먹을 쥐고, “나는 인형 아니야. 진짜야” 하면 그 사랑의 말귀를 못 알아들은 거예요. “내가 왜 인형이야. 진짜야.”

인간들에게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본인이 가짜기 없어요. 전부 다 진짜에요. 진짠데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찾아오게 되면 졸지에 뭐로 되느냐? 하나님이 갖고 노는 인형, 모형이 되는 겁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워요.

인형의 특징은 뭐냐 하면 그 자체로 의미 없음이에요. 의미 없음, 가짜란 뜻이에요. 누가 나를 갖고 놀아야 돼요. 나를 예뻐해야 돼요. 그게 인형의 존재가치입니다. 나의 존재가치는 내가 스스로 정하는 게 아니에요. 스스로 굳히는 게 아닙니다. 누가 나를 갖고 놀 때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가짜가 없고 자기가 진짜라고 여기기 때문에 인간들의 삶은 뭐냐 하면 (이런 건 적어놓으면 좋은데) ‘인간의 삶은 스스로 자기 가치를 증명하는 일’ 이게 인간의 삶입니다. 스스로 자기 가치를 증명해요. 남한테 꿀리지 않으려고, 남한테 기죽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성전에 찾아온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어요. 이 세상에 가짜는 없다, 인간세계는 그렇게 주장하지요. 이왕 어려운 것 더 어렵게 가겠습니다. ‘이 세상에 가짜는 없다. 나는 진짜다’라고 스스로 우기지요. 이게 인간이 스스로 자기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에요. 그런데 주님께선 어떻게 이걸 이용하시느냐? 이렇게 이용합니다.

가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나는 가짜가 아니고 진짜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하나님은, ‘가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말이 둘 다 똑같은 말로 여겨지지요. 똑같은 말이 아니에요. ‘가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너를 공격하겠다. 공격해서 이스라엘 다 없애버리겠다.’ ‘나는 진짜다’를 다 없애버려요.

그럼 남는 건 뭡니까? 진짜만 남아요. 어떤 진짜? 스스로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 없이 되는 진짜, 내가 굳이 내가 잘났다는 것을, 내가 살만한 가치 있다는 것을 내가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그 구조를 주께서 성전을 통해서 만드시려고 하는 겁니다.

오늘 강의가 굉장히 어려워요. 왜 어려우냐 하면 여기 역대하 6장, 7장, 8장에서 솔로몬은 엄청 하나님을 높이잖아요. 그런데 그 솔로몬이 가짜에요. 열왕기상 11장에 나오는 솔로몬은 다른 이방나라 여자들, 공주들과 결혼해서 우상 섬기는데 열중을 다하고 마지막 인생을 거기다 열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성전 지어드렸는데 하나님이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등장하지 않으면 귀빈으로 오지 않았으면 솔로몬은 처음과 하나같이 지 기분에 살았다, 이게 딱 정리가 될 수 있잖아요. ‘내 성전 지을 때부터 알아봤어. 괜히 사람들의 종교성을 부흥해주는 왕이라고 티내려고…’ 왕 자체가 스스로 왕다움을 증명하는 것에 쉬지 않는 거예요. 그래야 나라꼴이 되거든요. 나라가 왕 중심으로 결집을 할 수 있다 이 말이죠.

여러분들이 사회 생활할 때 각자 자리가 있잖아요. 과장이면 과장, 부장이면 부장 자리가 있다 이 말이죠. 그럼 부장 자리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에요. 부장이면 부장다움, 사장이면 사장다움의 티를 내줘야 월급 그 이상의 다른 요소가 붙어요. 그걸 상징적 권위라 합니다. 상징적 권위란 일종에 자리가 갖는 권력이에요. 자리가 갖는 권력이 있어야 이게 지시가 아래 사람한테 먹힙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학교에 자기 아버지나 엄마가 오잖아요. 올 때 애들은 학교에 온 순간 아버지, 엄마 권위보다 선생님의 권위를 우선 내세우게 돼 있어요. “아빠, 우리 선생님 이야기할 때 입 다물어야 돼. 우리 선생님이 다 알아서 잘해주니까 아빠, 엄마는 입 좀 다물고 있어. 우리 집처럼 나대면 안 돼.” 이러거든요. 그곳이 어디기 때문에? 학교 나와바리거든요. 선생님 자기 영역이잖아요. 개도 자기 오줌 싸는데 자기 영역 표시하는데, 자기 영역인 거예요.

그러면 왕은 하는 일이 뭐냐 하면 국가의 영토와 백성들의 안녕과 생명을 지키는 의무가 있는 게 왕이에요. 따라서 백성들이 여호와를 섬기니까 왕이 당연히 여호와를 섬겨서 하나님이 계신 곳, 성전 지어드렸다. ‘나 잘했지. 그러니까 나한테 대들 생각하지 말고 왕으로 잘 섬겨라’ 이 말씀입니다, 라고 충분히 큰소리칠 수 있지요.

이게 성전에 하나님이 안 올 경우엔 그래요. 그런데 성전에 하나님이 떴다 이 말이죠. 와버린 거예요. 그러면 솔로몬은 뭐가 돼야 돼요? 솔로몬은 진짜 이스라엘 왕이 돼야 됩니까, 가짜여야 합니까? 첫 번째 문제 나갑니다. 솔로몬은 가짜 왕이 돼야 됩니까, 진짜 왕이어야 됩니까? 큰소리로 해보세요. 둘 중에 하난데 어느 쪽입니까? 가짜 돼야 돼야죠, 가짜. 이게 성전을 짓게 된 이유에요.

모든 인간은 주님 앞에 가짜에요. 왜? 주님만 진짜만 되지 굳이 내가 진짜로 나설 이유가 없어요. 내가 진짜인 것처럼 나서게 되면 그다음부터 어떤 심적인 부담을 갖느냐 하면 내가 신자인 것을, 내가 천국 백성인 것을 내가 스스로 증명해야 되는 부담을 갖게 돼 있습니다. 아아, 그것 마귀가 좋아하는 거죠. 마귀가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고 마귀의 밥이라고 보면 돼요.

마귀가 그것으로 교인들을 계속 평생 윽박지르고 있습니다. “니가 교회 40년 다녔으면 신자답게 행동해야지. 늘 항상 쉬지 말고 감사로 기도하고 그래 해야지.” 마귀가 계속해서 말씀으로 짓궂게 우리의 마음을 공격을 합니다. 마귀가 마음을 공격하는 이유가, 인간은 죽으면 육과 마음에 해리현상이 일어나거든요.

하나님께선 어딜 공격하느냐? 육에 성령이 오시는 게 아니라 마음에 성령이 오시지요. 고린도전서 2장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깊은 마음이 너희들 마음속에 도달하면 너희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비로소 너희들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나한테 준 걸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을 대구강의에서 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것을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것을 일체 안 받는다. 우리가 한 것, 헌금, 전도, 선교, 교육, 하여튼 예배, 찬양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일체 안 받습니다.

하나님이 찾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넣어준 걸 찾지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것을 회수하는 식으로 우리를 구원한다, 이 말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에 감당이 되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넣어준 것은 우리가 감당이 안 돼요. 이게 보관이 안 됩니다. 우리가 붙들 수가 없어요. 이거는 주인이 와서 붙들어야 돼요.

에어컨 설치할 때 실외기 누가 설치합니까? 주인이 에어컨 사서 지가 설치합니까? 아니지요. 뭐 굵은 선이니 복잡해요. 그럼 실외기 고장 났다. 누굴 불러야 돼요? 기술자 불러야 되지요. 방금 제가 기술자라고 이야기했지요. 인간은 스스로 자기 가치를 증명한다. 이게 인간의 삶입니다. 참 힘들지요.

기술자가 성전을 짓고 난 뒤에 성전 누가 지었습니까? 솔로몬과 일꾼들이 지었지요. 그럼 성전에 뭔가 타일이 떨어져나갔다, 무늬가 낡았다. 페인트칠 누가 합니까? 인간이 하잖아요. 성전을 두고 인간 기술자가 늘 거기에 대기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선 뭘 하느냐 하면 이 성전 누가 접수했어요? 주님께서 접수했지요. 접수하고 솔로몬은 여기서 자기 포기가 돼야 됩니다.

성전이란 나를 제거하는 장소, 이게 성전이거든요. 왜냐하면 여기 역대하 6장, 7장, 8장에 보면 지금 솔로몬은 껌벅 반했어요. 누구한데? 직접 찾아올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직접 찾아오신 하나님에게 너무 반해서 본인의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본인은 아무렇게 돼도 괜찮아요. 내가 나를 증명한다고요? 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어떻게 구겨지든지 펴지든지 상관도 없어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성전에 찾아왔다는 그게 중요하지 내가 어떻게 드리고 자시고 할 그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솔로몬이 자기를 증언한다, 이런 것 없습니다.

성전을 하나님이 접수함으로 말미암아 인간 기술자로 운영되는 유지되는 성전을 성전1, 하나님의 기술자로 유지되는 성전2로 드디어 여기서 갈라집니다. 그럼 성전은 모든 하나님의 계획의 저장고, 하나님께서 했던 모든 정보를 거기다 담아 있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성전은 보이지 않는 저장소입니다. 그 저장소에는 뭐도 있느냐 하면 누구는 천국 가고, 누구는 지옥 가는 그 내용이 들어있어요. 보이지 않는 도서관, 들어가고 싶지요? 어떻습니까? 성전은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성전은 스스로 확장하고 팽창하는 겁니다.

일단 솔로몬은 자기 성전에 나타난 하나님 때문에 자기를 치워버리는 데 성공했어요. 왜 솔로몬이 자기를 치워버리느냐? 하나님이 일하는 장소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저장고로 일하는 장소에 내가 끼어들면 나는 그곳에서 내 인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따로 살림을 차려요. 그 안에서.

여러분, 새 아파트에서 바퀴벌레가 살림 차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건설회사에 동영상 찍어 유튜브로 고발한다고, 새 아파트에 바퀴벌레가 뭐냐고 회사 망하게 해봐, 이렇게 나올 거예요. 왜냐하면 새 아파트는 백 프로 건설회사 작품만 남고 우리는 짐만 들고 들어가야 돼요. 그런데 거기에 벌집 생기고 바퀴벌레 있고 거미줄 생기면 이거는 곤란하지요. 못 살지요.

하나님께서 말하는 성전은 인간을 제거하는 장소거든요. 인간은 자신이 가짜가 아니라고 보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진짜로 보기 때문에 누구의 모형이 아니라고 본다는. 나는 누구의 귀염둥이 인형이 아니라고 보는 거예요. 따라서 이 성전을 관리하는 보이지 않는 기술자는 인간의 기술자로 관리되는 성전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걸 없애버리겠지요. 이렇게 정리합시다. 하나님의 성전은 인간으로 하여금 성전 만들도록 유도해놓고 그 성전을 없애는 방식으로 자기 팽창, 자기 성전의 확장에 나서셨다, 그것에 돌입했다 이래 보시면 되지요.

열왕기상 11장에 나오는 대목을 4절부터 보면,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음이라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음 같이 좇지 아니하고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저가 또 이족 후비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저희가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그렇게 돼 있지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이라면 어떤 조치를 내리겠습니까? 첫째, 그냥 놔둔다. 둘째, 성전 다 부순다. 셋째, 꼴 보기 싫다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떠난다. 몇 번이겠습니까? 이 질문 중요한 거예요. 왜? 현재 우리 삶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오늘 역대하 6장에서 솔로몬은 6장, 7장, 8장 쭉 읽어보면 껌벅 죽어요. 솔로몬이 자기가 만든 성전에 내왕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격해서 껌벅 죽는다고요.

역대하 7장 봅시다. 7장 1절,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이게 무슨 이벤트입니까? 한강축제 폭죽보다 더 대단한 거죠. 기도를 마치니까 불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거예요.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거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있는 것을 보고 박석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라고 돼 있어요.

자, 제가 여러분한테 물어봅니다. 하나님이 이 성전을 접수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이 성전의 용도가 뭐냐? 성전에서 도대체 뭘 하겠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접수한 성전에서 무슨 행사를 벌여야 돼요? 그냥 축제나 하고 놀기나 하고 그래야 됩니까? 뭘 해야 됩니까? 그게 그 긴 역대하 6장 오늘 이걸 할 텐데요. 그 내용이 나옵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성전에서 백성들이 해야 될 일은 뭐냐? ‘성전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아까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어떤 인간도 자기가 가짜라고 인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자기가 가짜가 아니지요. 자기가 진짜란 말이죠. 자기가 진짜라면 진짜와 진짜 사이에 여기서 경쟁이나 다툼이나 비교가 발생되겠어요, 발생 안 되겠습니까? 반드시 여기서 경쟁이 비교가 생겨요. 왜? 나만이 진짜여야 하니까.

그러면 인간들이 각자 잘난 맛에 살아가면 자연적으로 사회는 무슨 사회? 평등이 아니고 불평등이죠. 평등은 나에 대한 모욕이에요. 절대로 평등하면 안 돼요. 될 만한 인간은 돼야 되고 못 될 인간은 못 돼야 그게 정의롭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모든 인간은 다 그래요. 왜? 자기가 진짜니까.

그런데 이런 생각이 인간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이게 부담으로 작용해요. 압박감이 된다고요. ‘나는 진짠데 다른 사람이 나를 우습게보면 나 어떻게 살지?’ 나는 내가 진짠데 남들 보기에 ‘니가 진짜에서 좀 빠진다. 내가 보기에 너는 70% 인간밖에 안 돼. 네 옆에는 맛이 더 갔네. 40%.’ 40%에서 더 내려간 사람은 요양병원에 가 있어요. 치매란 병명으로 요양병원에 다 가 있습니다. 요양병원에 가면 40 안 되는 30, 20 수두룩해요.

그런데 그것이 나이 들면 들수록 90 넘으면 10 단계로 떨어져요. 자기 아들도 못 알아보니까 어떻게 그걸 점수를 줍니까? “할머니, 이름 뭡니까?” “몰라.” 25점. “할머니, 자식이 몇 명 있습니까?” “몰라.” 16점. 다 한 때 100점이라고 자부했던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이. 치매 걸려서 저렇게 요양병원에 가니까 자식도 안 찾아오지요. 찾아가도 못 알아보니까 찾아갈 맛이 안 나지요. 나중에 장례식이나 찾아가고.

성전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게 어떻게 차이가 없는지를 성경을 보면서 봅시다. 역대하 6장 솔로몬이 이야기합니다. 솔로몬이 여호와한테 뻑 갔어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곳에 와서 기도하면 주께서 응답해주세요, 하고 자기 자신을 치워버려요. 기도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치울 때나 가능해요. 자기 의식하면 기도가 안 됩니다. 자기가 자기와 대화하는 거예요. 그걸 뭐라 하느냐 하면 중언부언, 또는 중얼중얼. 그걸 네 자로 하면 ‘정신병자’ 자기가 자기 보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나 솔로몬은 지금 자기를 치워버렸다고요. 하나님이 계신 곳에 이걸 뭐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겠지, 이런 것도 없어요. 그냥 내가 어떻고 그런 것도 치워버리고 주께서 하시는 원칙대로 그냥 밀어주시면 그걸로 족합니다, 그런 마음자세로 기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주기도문만 제대로 해도 엄청 은혜 돼요. 왜냐하면 내가 할 게 거기에 끼어들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을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주기도문 외울 때도 은혜롭게 하면 이렇게 돼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뒤에 추임새를 넣으세요. ‘나는 죽어도 좋습니다.’ “이름을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는 죽어도 좋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나는 죽어도 좋습니다.’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거건 없어도 괜찮아요.’ 그게 추임새로 들어가야 돼요. 판소리 할 때 ‘얼쑤’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저는 안 줘도 괜찮아요.’ 모든 것을 주께서 알아서 해주는 게 주기도문이에요. 우리가 낄 자리가 없어요, 거기는. 그러니까 자꾸 기도를 오래 하려고 하지 마세요. 기도 오래 하면 백 프로 장담합니다. 잠 옵니다. 본인이 본인한테 주문 거는데 잠 안 올 리가 있어요?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하는데 잠 오지요. 소용없는 짓이에요, 그것.

“저를 치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하실 일은 주께서 하면 됩니다. 저는 인형이니까요. 저는 주님의 모형이니까. 저한테 신경 쓰지 말고 주께서 하고 싶은 대로 저한테 퍼부어주시면 돼요.” 이런 자신감, 이런 자유함.

그렇게 해놓고 22절 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범죄하므로 맹세시킴을 받고 저가 와서 이 전에 있는 주의 단 앞에서 맹세하거든”라고 돼 있지요. 어떤 사람이 범죄, 죄를 지었습니다. 이게 인간세계에선 어떻게 됩니까? 죄 지은 사람과 죄 안 지은 사람 중 어느 쪽이 우수한 사람이에요? 어느 쪽이 질적으로 우수한 사람입니까? 죄 안 지은 쪽이죠. 죄 지은 쪽은 죄 안 지은 사람보다 못하지요.

그럼 여기서 뭐가 생겨요? 불평등이 생기겠지요. 그런데 성전에서는 모든 게 평등하지요. 뭐냐 하면 모든 인간을 가짜로 규정해서 자신이 가짜임을 아는 자는 성전 앞에서 평등해요. 그러니까 죄 지은 사람은 땡 잡은 거예요. 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뭘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성전의 의미, 성전의 평등성 앞에 자기의 몸을 바칠 수가 있기 때문에.

성전은 죄 지은 사람이나, 그 뒤에 나옵니다. 죄 지은 사람이나, 전쟁에 패배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이나, 가뭄이 들었거나, 농사가 안 되었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28절에 메뚜기에 농사가 싹쓸이 당하더라도 성전 앞에 나오면 평등해요. 왜? 주님이 갖고 노시는 인형이 되니까. 인형 하나 소개시켜 드릴 게요. 선지서에 나오는 인형.

하박국 3장 17절,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아하 뭐 이런 인형이 다 있어요. 대단한 인형이에요.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다시 말해서 인형에다 태엽 감아주잖아요. 주께서 나에게 태엽을 감아주시는 분이라는. 그 태엽 안에 뭐가 들어있겠어요? 성전 자체가 보이지 않는 도서관이니까, 저장고니까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 인간이 했던 모든 일, 지옥 갈 자가 하는 모든 일, 천국 갈 자가 하는 모든 일이 성전이 확장되면서 그 안에 차곡차곡 도서관처럼 모든 내용이 차이게 돼 있어요. 그런 도서관 한 번 키워보시지요. 집에 하나 들여 보시지요.

왜 용서가 되고 왜 사함이 되는가? 인간이 범죄 할 때는 변수가 있을 게 아닙니까? 집안에 남편과 아내가 부부싸움을 하는데 남편이 염색하고 난 뒤에 좀 마르고 난 뒤에 씻어야 되는데 염색한 채로 마침 점심시간 돼서 뭘 먹을까 하다가 싱크대에 염색약이 묻었어요. 그것 보는 순간, “내가 차려준다고 할 때 가만있지 뭔데 니가 차린다고 부엌 들락거리다가 염색약을 묻혔는가?”

퀴즈입니다. 염색약은 지워질까요, 안 지워질까요? 염색약은 안 지워져요. 메틸알코올로도 안 지워지고, 여자들 매니큐어 지우는 아세톤으로도 안 지워요.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안 지워져요. 그걸 보고 화내겠어요, 안 내겠어요? 그러면 점심은 왜 먹고자 했을까요? 이 육신은 먹어야 살지 않습니까.

그러면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런 이야기에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을 뻔했다. 결국 모든 이야기가 당신 같은 남자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돼. 안 태어났으면 내가 너한테 염색할 일도 없고 점심한다고 싱크대에 염색약 묻힐 일도 없을 것 아니겠어요. 차라리 안 태어났으면 너와 결혼도 안 했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태어났잖아요. 결국 무슨 이야기입니까? 결국 그 책임을 누구한테 돌리는 거예요? 하나님께 돌리는 거예요. “하나님, 왜 저 인간 태어나게 했습니까?” 이것과 똑같은 거예요. 싱크대에 염색약 묻은 것이 발전해서 뭐냐 하면 ‘하나님, 저 인간 왜 태어났습니까’와 변수가 연결돼 있어요. 이게 변수에요.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실수했다고요? 그것 실수가 아닙니다. 왜 실수가 아니냐?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난 자체가 실수에요. 안 태어났으면 그런 일이 없을 거예요. 그럼 주님께서 조치를 어떻게 합니까? 죽여 버리는 거죠. 제가 설교시간에 그런 이야기했지요. 이 세상에 제일 좋은 치료가 뭐라 합니까? 죽여 버리는 것.

주님의 주특기가 뭐냐? 죽여 버리는 거예요. 어디서? 성전 안에서. 성전 안에서 제물이 죽잖아요. 그 죽음이 누구 죽음이냐 하면 모든 인간을 평등한 인간으로 새롭게 만들기 위한 조치가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지금 대신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범죄 한 자를 죽여야 범죄 한 자는 성전 앞에서 평등한 사람이 되어서 이건 뭐가 되느냐 하면 의인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핑계든 어떤 구실이든 좋으니까 항상 그 기준점을 되는 성전 앞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라는 것이 우리 주님께서 솔로몬 성전을 찾아온 취지입니다. 그런데 아까 봤지요. 솔로몬부터 시작해서 모든 인간이 성전에게 고맙습니다, 하고 난 뒤에 다시 어디로 갑니까? 자기가 자기를 증명하는 삶으로 돌아가 버리죠. 나는 가짜가 아니야. 진짜야, 하는 그 짓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아이디어를 동원하면 성전을 확장시킨다는 말은 곧 무엇을 의미하겠어요? 인간이 범죄를 하든지 전쟁에 지든지 태풍이나 깜부기나 메뚜기가 쳐들어오는 재앙과 환란을 퍼부어주는 방식으로 뭐가 확장되겠어요? 성전이 확장되는 거예요. ‘너 같은 인간은 살 가치도 없어.’ 왜? 가짜거든. 가짜가 죽어야 주님의 인형이 되니까, 모형이 되니까.

솔로몬이 성전 처음 짓고 난 뒤에 주님 찾아올 때 그 관계, 그때 솔로몬은 더 이상 본인이 왕이 아니고 나는 가짜 왕이라는 사실을 알아요. 그러면 진짜 왕은 누구겠습니까? 진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진짜 왕이라는 걸 기꺼이 너무나 부담 없이 너무나 좋아서 어쩔 줄 몰라서 모든 자기의 권한과 그런 걸 양도했지요. 주께서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다 양도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 순간만큼은 솔로몬은 성전의 취지를 아는 사람이에요. 그 앞에 솔로몬이나 백성의 차이는 없습니다.

아까 열왕기상 11장에서 솔로몬이 우상을 만들어줬고 산당을 만들어줬다 했는데 이게 솔로몬이 여호와 섬기지 않고 우상 섬기려고 자기 좋으라고 만든 거예요? 자기 좋으라고 만든 게 아니에요. 자기 부인들 좋으라고 만든 거잖아요. 산당 지었잖아요. 그러니까 자기 부인들, 왕비들 좋게 해야 왕의 모든 사생활이 이렇게 안정적이어야 백성들이 왕 하는 모습에 대해서 아까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그 권위발, 말발이 서지요. 그래야 나라꼴이 되니까. 말발이 서잖아요.

그렇다면 왕비한테 산당을 지어주고 우상 섬기는 것을 장려했다는 말은 지금 솔로몬은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느냐 하면 나는 지금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자기 놀이를 하고 있는 거예요. 누구의 인형이 아니고 누구의 모형이 아니라 본인이 진짜라는 거예요. 그 진짜인 것을 스스로 증명해가는 거예요, 솔로몬이.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솔로몬이 성전 지어놓고 왜 우상숭배하지? 솔로몬이 그만큼 의지가 약하나? 의지가 약한 게 아니고 인간의 자리가 그렇게 만들어요. 자리 내놓으면 되는데 인간은 자리 못 내놔요. 왜? 자리가 자아를 만들기 때문에. 나라는 게 있는 자리가 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 내놓으면 내가 없어지는 데요?

목사가 목사 자리 못 내놓는 이유도 거기 있잖아요. ‘하나님의 계시 받았다’ 하는 그게 있어서 못 내놔요. 그럼 교인들이 목사보고 나가라. 교인은 왜 교인 자리 안 내놔요? 남보고 나가라 하지 말고 자기 교인 되는 걸 왜 안 내놓지요. 꼴에 그것도 권력이라고 안 내놓지요. 이러면 됩니다. 하나, 둘, 셋 하면 둘 다 내놓기. 교인 아니고 목사 아니다.

그걸 누구 앞에서? 성전 앞에서.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그걸 반복하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죄인 되는 거예요.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바로 자리 이야기니까 먼저 보겠습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 누가 크게 읽어보세요.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우리의 시민권은 어디 있다 했습니까? (하늘에) 아하 참 말씀하시는 분이 부럽습니다, 정말. 하늘에 있으니 모자 큰 것 쓰나 작은 쓰나 관계없어요. 하늘에 있는데. 그러니까 우리는 하늘의 시민인 거예요. 그게 누가 마련한 자리냐? 내가 마련한 자리가 아니라서 고마운 거예요. 내가 획득한 게 아니고 내가 얻어 챙긴 게 아니고 그걸 지키려고 애쓴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주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니까. 애쓴 사람에게 더 주고 노력 안 한 사람 덜 주고 그러면 불평등이잖아요. 주님 앞에선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성전 앞에서 다 자기 자신을 치워버려야 될 대상자들이에요. 어떤 인간도 진짜가 아니에요, 주님 앞에. 가짜밖에 없기 때문에 가짜 둘 데리고 너는 착하고 너는 못 됐고 너는 훌륭하고 너는 … 그렇게 평가할 의미 없다니까요.

시체 둘 놓고 너는 세상에 얼굴이 좋네. 둘 다 시첸데 얼굴이 좋은 게 어디 있어요. 둘 다 죽어 있는 상탠데. 둘 다 죄인인데 무슨 둘 사이를 평가를 합니까? 그런 평가는 마귀나라에서나 하라 해. 우리의 시민권은 지옥에 있으니, 이런 사람이면 하라. 지옥에선 지 잘난 맛에 살아가요. 거지 나사로와 부자 비유 보면 나옵니다. 부자는 지옥 가도 부자 되려 하고 참. 불속에 있으면서도 나는 부자다. 살아 있을 때 부자였다. 부자였다고 어쩌란 말입니까? 지금 지옥에 가 있으면서.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차이만 없다면 여러분들이 살기 훨씬 마음이 편했을 거예요. 남이 차이를 주는 게 아니고 내가 차이를 자꾸 의식한다니까. 보다 더 훌륭하게 보다 더 완성스럽게 보다 더 대단하게 보다 더 칭찬 많이 받는 존재로 어떻게 변신해봐? 이걸 숙제, 과제처럼 갖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의 시민권, 하늘의 시민이란 사실을 누가 방해하느냐? 여러분, 우리 자신들이 방해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별로 안 좋아지는 거예요, 자꾸. 하늘나라 시민 같으면 그 자리 누구 관리입니까? 주님 소관이에요. 주님이 관리합니다. 어떻게? “죄 지었잖아. 빨리 와, 빨리 와. 너 깜부기 받았어. 빨리 와. 오늘 최고기온 35도야. 빨리 와, 빨리 와. 너 이 땅에 더워서 못 살아. 앞으로 환경 오염돼 못 살 거야. 내가 그렇게 온도 확 올려놨어.”

우리가 내 뜻대로 살 수 있는 동네에 태어난 게 아니고 날 가짜임을 증명해 줄 세상에 태어났다는 거예요. 거기에 우린 하나님이 없어요. 하나님이 없이 인간들만 가짜들만 있는 동네에 세상에 하나님이 그 성전에 찾아왔다는 사실을 솔로몬은 지금 너무 감격스러워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10분 쉽시다.

 

 

 

 

20240705b 울산강의-역대기하(5강) 7장 1절 : 성전확장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하겠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걸 어떤 취지로 하는지 잘 들어봐야 돼요. 너는 이미 천국에 쑥 들어왔다는 거예요. 신약에서는 이미 들어온 거예요. 들어갈까 말까가 아니라 들어온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신약에서는 어떤 인간도 산 인간이 없다는 것을 시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에스겔 37장에서 분명히 언급했어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내가 주의 말씀을 들어서 안다, 이건 아니고요. 내가 아니라 시체가 말을 못 알아들어요. 죽은 자는 주의 복음이고 뭐고 성경이고 못 알아들어요. 그런데 에스겔 37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인자 되시는 분을, 그때 에스겔이죠. 인자라고 불리는 선지자를 시체, 해골 앞에 데려다놓고 말씀이 먼저 찾아오게 돼요.

그럼 말씀 안에 무슨 능력이 있느냐 하면 죽은 자가 다시 사람이 되는 그 능력이 말씀 안에 들어있어요. 말씀이 말이 아니고요. 우리가 말하는 말의 능력이 아니고 말씀 안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다니까요. 방역차 따라가면 무슨 냄새 나지요? 약품 냄새 나지요. 말씀 안에 약품 냄새가 난다니까요. 그냥 우리가 알아듣는 말이 아니에요. 헬라어, 원어해서 알아듣는 그 말 아니에요.

안에 뭐가 들어있는가? 죽어도 살 수 있는 능력이 말씀 안에 들어있는 거예요. 죽어도 사는 능력은 인자 되시는 예수님께서 먼저 선취적으로 자기 기준이 확정되었어요. 그리고 산 것이 우리가 산 게 아닙니다. 제가 아까 일부러 어렵기 때문에 시체가 사람이 된다, 이렇게 했잖아요.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되는 게 없어요. 뭐가 되느냐 하면 군대가 돼요.

에스겔 37장, 사람으로선 없습니다. 사람 시절은 끝났어요. 군대입니다. 에스겔 37장 11절에 보면,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10절에,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그다음에 뭡니까? “큰 군대”에요. 군대는 병사는 자율권이 없습니다. 군대는 외국 만화영화에 보면 나와요. 장난감이 살아서 돌아가는 게 있을 거예요. 그거는 장난감 대장이 지시와 명령에 따라서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뭐냐 하면 ‘뇌는 수신기’

보이지 않는 도서관에서 나오는 모든 정보가 죽었다가 살아난 그 군대한테 시그널을 보내요. 보내면 구원받은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그 군대는 가라 하면 가고, 뒤로 돌아가세요. 뒤로 돌아가! 왼쪽으로 가이소. 그 군대는 뇌에 전달되는 그 정보에 따라서 움직이게 돼 있어요. 여기서 우리가 살짝 보이지 않는 저장고 있는 정보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지지요. 많이는 아니고 살짝.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옵니다. 책이 두 권 있습니다. 하나는 행위책, 또 하나는 생명책. 행위책에 있는 사람은 지옥 불에 들어가요. 행위책에 있는 사람이 지옥 불에 들어가는 이유가, 처음부터 인간은 생명나무 없는 곳으로 가게 돼 있어요. 그래서 인간은 죄인들은 지옥 가는 게 아니고 자기 행위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자들이 지옥 가는 겁니다.

여기 생명책은 예수님께서 이 행위를 자기 것으로 접수한 사람은 천국 갑니다. 그 사람의 모든 행위가 예수님에 의해서 조정이 됐던 사람은 천국 가고, 이게 주의 이름이에요. 여기 행위책은 생명책에 주께서 당겨주지 않는 사람은 그냥 행위로 지옥 불에 들어가는 거예요.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이처럼 다 알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제가 아까 뇌는 수신기라 하고 시그널, 신호가 온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못한다는 데 성경에 혹시 그런 사람 있습니까, 물으신다면 있고말고요. 요한복음 1장 15절, 16절, 제가 읽겠습니다.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보이지 않는 도서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계획, 저장고에 있는 그 정보를 받으니 그게 나한테는 뭐냐? 은혜 곱하기 은혜, 은혜 덮치기 은혜. 은혜 다음에 은혜, 계속되는 은혜 그렇게 되는 거예요. 은혜가 충만하다. 로마서 5장에 의하면 하나님의 의가 충만하다. 죄가 더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의가 넘쳐나느니라. 그러니까 내가 행한 게 있어요, 없어요? 내가 행한 게 없지요. 오히려 그 앞에서 내가 행한 것이 치워버려지지요.

그때 성령이 와서 우리를 말씀으로 책망하는 거예요. “네가 행해서 나온 결과도 아닌데 ‘그때 내가 바르게 했으면’ 라는 왜 자꾸 네가 거기서 다리를 끼워 넣느냐” 말이죠. 톱니바퀴에 네 다리 나갈 일 있나? 손바닥 나가, 갈빗대 부셔질래? 거기 니 손에 왜 끼어드느냐는.

구약 때 이런 사람이 바로 야곱입니다. 야곱의 이름이 바뀌지요.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뀝니다. 따라서 야곱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그걸 언약대로 움직인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시그널대로 움직였어요. 따라서 요셉도 마찬가지였어요. 요셉도 꿈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과거에 어떻게 된 것이 모든 정보가 꿈속에 다 들어있어요.

생과자 만들 때나 케이크 만들 때 1층, 2층 카스텔라 만들고 하얀 크림으로 두껍게 해놓고 거기에 생일 같으면 Happy Birthday 쓸 때 베이킹 짤주머니에 액체 초콜릿 넣고 쓰면 글씨 나오지요. 볼펜 끝자리에서 글씨가 나오잖아요. 그리는 어느 부분이냐? 볼펜 안에 있는 공이에요. 움직이는 공이고 그 외에 모든 잉크라는 정보는 우리에게 쏟아지게 돼 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벌써 천국에 들어온 우리의 자리의 기능이에요.

그리니까 이 말씀이 성전 스스로 팽창하는 것, 마지막 세상 끝 날까지 확장하는 것, 이 작업에서 솔로몬은 아직도 구약 사람이기 때문에 몸 아플 때 기도하면 오시겠습니까? 전쟁에 지면 기도하면 이기게 해주시겠습니까? 범죄 하면 주께서는 용서해주시겠습니까? 용서가 안 될 때 들어주시겠습니까? 이렇게 하잖아요. 아직 구약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신약에 오면 이렇습니다. 어떻게 하느냐 하면 ‘그냥 죽어. 내가 살려줄게.’ 그럼 우리는, ‘다른 사람 놔두고 저한테 그런 제안을, 계획을 미리 알리십니까? 제가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서 그렇습니까?’ 물으면, 네가 좋은 게 아니고 성전의 확장 때문에. 성전이 스스로 확장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전이 확장되게 되면 이 성전은 은혜 위에 은혜가 되기 위해서 성전이 인격화돼요. 아까 했지요. 주님의 뜻이 우리 몸에 오는 게 아니는 우리 마음에 온다고요. 성전이 주님의 마음으로 압축이 돼요. 압축이 되면서 성전 건물을 뭐라 했습니까? 모형이라 했지요. 모형이 수명이 다하는 것과 동반해서 인격적인 성전이 준비돼 있어요. 그게 성전의 확장이에요. ‘이제 모형으로 만든 놀이는 그만해라. 이제는 움직이는 성전이 너희들에게 간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 점을 약간 더 순서를 절차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성전의 확장에서 뭐가 필요하냐 하면 Dark Energy, 검은 힘이 필요해요. 검은 권력. 이스라엘에게 성전이 있잖아요. 성전을 하나님께서 없앰으로써 이스라엘을 없애버려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게 아니고 주변의 어두운 에너지가 이스라엘을 침공해서 멸망시키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여기에 뭔가 이유가 있어야 되겠지요.

솔로몬이 나이 많을 때 우상을 섬겼다 했지요. 본인이 섬긴 건 아니지만 온전히 여호와께 돌아서지 않았어요. 마음은 어디 가 있다? 우상에게 가 있었던 거예요. 온전히 여호와께 돌아서지 않았으니까. 솔로몬 이후에 이스라엘이 두 조각납니다. 남쪽 이스라엘과 북쪽 이스라엘로 나눠집니다. 솔로몬이 얼마나 인기가 없었던지 두 지파 빼놓고 나머지 열 지파가 북쪽으로 옮겨갑니다.

대통령은 있는데 국회는 야당이 숫자가 많은 여소야대.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왕 탄핵을 기대하게 되겠지요. 그걸 여로보암이 해내는 거예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우상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에요. 뭐냐 하면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으로서 건축 공사를 너무 많이 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부역 때문에 힘들어 죽을 지경이 된 겁니다. 그걸 여로보암이 어떻게 아는가? 여로보암이 담당자기 때문에 최고 책임자거든요. 현장의 소릴 들은 거예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솔로몬의 잘못은 뭐냐? 솔로몬이 처음에는 누가 왕이에요? 여호와가 왕이었어요. 점차 누가 왕입니까? 자기가 이스라엘 왕이라고 여긴 겁니다. 자기가 이스라엘을 책임지려고 한 거예요.

마치 교인이 처음에 은혜 받을 때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나옵니다, 해서 이제는 사나죽으나 주의 것입니다, 이렇게 나오다가 점차점차 자기를 주께 맡긴 듯했는데 몇 개월 되지 않아서 어떻게 저떻게 하면서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챙겨야 되겠다. 자칫하면 하나님만 믿다가 이거는 바보 되겠다, 해서 정신 차려, 정신 차려. 너는 너를 믿어야 돼. 누굴 믿으면 안 돼. 다시 정신 차려야 돼.’ 개한테 물 부어보세요. 몸 막 털면서 물 털어내지요. 예수, 교회 다 털어내는 거예요. 몸 털면서.

복음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하거든요. 그럼 내가 약간 장난꾸러기 같은 생각을 해요. 속으로만 합니다. “복음이 이렇게 좋아요.” “그거 안 들으면 안 돼요?” 속으로. “그것 돈도 안 되는 걸 왜 믿어요. 성경 돈도 안 되는 것 안 보면 되잖아, 안 보면.” 그럴 때 정답이 뭐냐? “내가 미쳤는가 보오. 글쎄요, 이게 내 뜻이 아닙니다.” 이러면 성도가 진짜 있기는 있구나, 이렇게 되는데 그래도 열심히 믿어야 구원받지요, 그렇게 나오면 또 가짜 생겼어. 백 프로 가짜입니다.

‘내가 미친 모양이다. 이걸 왜 믿지?’ 이렇게 웃고 지나가면 될 문제를, ‘앞으로 더욱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해야 될 문제입니까, 천국이? 이게 내 뜻이 아니잖아요. 지금까지 온 게. 그걸 제가 물어본 거예요. 지금까지 교회 나온 것이 여러분 구원받기 위해서 수작부린 겁니까, 아니면 발을 못 빼게 만든 다른 분이 계신지 그걸 물어본 거예요.

아니니야와 삽비라 있지요. 그 사람들 복 받은 사람들이에요. 헌금 반 숨겼다가 부부가 사이도 좋아. 하루에 다 죽었잖아요. 제가 어떤 강의하면서 그런 이야기했는데 그다음 그 교회 헌금 우습게 한 사람들 다 죽었습니까? 안 그래요. 하나님이 어떤 계기를 통해서 주님의 살아있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를 죽인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걸 고맙게 여겨야 돼요. 그것도 한 날 한 시에 죽을지라도. 아이고, 이런 시범을.

아까 제가 빌립보서 3장에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지요. 여러분, 하늘에 있는 시민이 다 똑같은 시민이 아니거든요. 저는 이걸 뭐로 비유하느냐 하면 이걸 해물칼국수라 봅니다. 전체는 해물칼국수인데 전부 다 문어 쪼가리는 아니고, 전부 다 전복은 아니에요. 다 오징어나 콩나물이 아니라니까요. 전부 다가 칼국수가 아니잖아요. 어울려야 해물칼국수가 되는 거예요.

해물칼국수 잡사봤습니까? 해물에 칼국수에 해물만 얹힌다고 맛있는 게 아니고 육수 다 맛있어야 돼요. 육수가 우러나야 되잖아요. 전복은 그냥 얹히기만 하면 되지 육수 우려내는 담당은 또 다른 담당이라고. 같은 하늘의 시민이라도 다 달라요. 괜히 이야기해서 입맛 당기게 하네. 아까 먹었어요.

교회에 어떤 상담이라든지 이야기하다보면 결국 이런 이야기하는 사람 있어요. “목사님 그렇게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데 목사님이 나의 사정 알아요? 얼마나 알아요?” 이런 태도 갖고 있는 사람 있는데 그것 보면 내 기가 차요. 왜냐하면 요새 기차 객차 안에서 전화 못하게 돼 있거든요. 전화는 복도에 나가서 하게 돼 있단 말이죠. 어떤 사람이 객차 안에서 전화하게 되면 바깥에 나가 통화 좀 하시죠, 승무원이나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면, ‘당신이 내 사정 알아요?’

지금 그 사람은 생각을 엉뚱하게 하고 있어요. 당신이 내 사정 알아요? 내가 지금 얼마나 급하게 전화하는데. 아니 전화하지 말란 이야기가 아니고 밖에 나가 하라고. 이게 객실의 일관된 원칙입니다. 성전 앞에서 주님 앞에서 인간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인간은 이미 죽은 자란 것이 이게 원칙이에요. 당신이 내 사정 알아요, 내가 얼마나 가슴 아픈지 알아요? 내가 이렇게 힘든지 알아요? 힘든 건 아는데 당신 죽은 자야. 십자가가 그걸 이야기한다고.

그러니까 신학이고 뭐고 성경 내용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십자가에요.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이에요. 고린도전서 1장에. 남들은 어리석다 하지만 십자가만 해석돼야 돼요. 결국 해석은 십자가만 나와야 돼요. 다크 에너지, 어두운 에너지가 함께 동반하면서 성전이 이뤄집니다. 이게 오늘날 성도에도 마찬가지에요.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그 사람에게 구약 이스라엘이 멸망한 역사를 덤터기로 그 사람에게 다 쏟아 붓습니다. 네가 우상숭배자고 네가 바리새인이고 네가 하나님, 하나님 하면서도 다른 여호와 모르는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나는 언제쯤 저렇게 부자 되고 언제 저렇게 행복하냐, 그것 그리워하고 있어. 그러니까 내가 너를 죽이는 것이 참으로 마땅하지 아니하냐. 그걸 계속해서 성령께서 이야기해주는 거예요.

그럼 성령은 어디서 나오는가? 성령이 나오는 곳이 신약에서 성전이라 합니다. 성전,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이 계시는 전, 고린도전서 3장, 6장, 고린도후서 6장, 에베소서 2장 계속 나오지요. 네 몸이 성전이다.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다. 네가 처소가 지어져 가느니라. 뭐로? 다크 에너지, 어두운 세력의 도움으로 너는 성전이 되어간다. 이게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상식은 뭐냐? 깨끗한 예수님께서 더러운 우릴 위해서 죄 씻어주었기 때문에 이제 깨끗한 영이 우리에게 들어왔으니 이제부터 우리는 더러운 것, 죄 짓는 것은 멀리 하고 날마다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서 날마다 거룩해진다. 이걸 보자는 거예요. 이걸 보라는 거예요. 성경이 이 이야기가 나온다니까 그냥 담백하게 그걸 믿으면 될 것 아니냐, 라는 거예요.

저는 이야기합니다. “그 말씀을 누가 하는데?” 하니까 그쪽에서, “내가.” 내가 그걸 한다고? 이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거룩한 걸 니가 한다고? 이미 우리는 십자가 죽을 때 죽었어요. 내가 죽었어요. 나는 죽고 예수님께서 전에 나였던 자리를 주님이 쳐들어와버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뭐냐? 이스라엘 돼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군대가 돼요.

죽었다 살아난 자는 다시 옛날 자아를 회복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서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나이다. 주님의 인형이고 주님이 다루는 기계니까요. 우리의 뇌에 하나님의 모든 정보가 도달되는 수신기 역할 하니까요. 그 수신기로 전달되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만 준다고요?

좋은 것만 주는 게 아니고 나쁜 것을 주고 그 나쁜 것을 우리 힘으로 해결 못하게 만들고 그다음에 주께서 찾아와서 그 나쁜 것에 대해서 원활하게 하늘의 시민권자답게 날마다 그것을 처리해내지요. 그래야 범사에 감사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의 말씀이 우리에게 올 때는 우리를 공격하고 우리를 저주하기 위해서 주의 말씀이 오는 거예요.

그걸 주의 말씀의 율법적 기능이라고 하는 겁니다. 율법적 기능, 여러분 다 아시지요. 율법적 기능이라 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입을 막고 모든 것을 저주 아래 있게 함이라. 왜? 의인은 없나니 단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이거는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로마서 3장 10절의 말씀입니까? 갈수록 점점 수신기가 고장 나서….

로마서 3장 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지요. 그다음에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지요. 깨닫는 자, 하나님을 찾는 자, 이게 새삼스럽게 우리였다는 것이 성령이 와서 발견해요. 로마서 7장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내 안에 내가 성경을 몰라서가 아니라 안다 할지라도 성경말씀을 이루는 것은 내 몫이 아니라는 사실을 성령이 와야 파악이 돼요.

성령이 아니면 이것 몰라요. 성령을 받은 척하지 마세요. 인간은 가짜지요. 가짜기 때문에 진짜인 척할 이유가 없다니까요. 본인만 힘들어요. 가짜가 가짜로 사는 그 가벼움, 존재의 가벼움, 얼마나 신납니까? 악마는 이 신남을 시기질투해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숙제를 주잖아요. 마귀가.

방금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한 걸 이렇게 정리합시다. 다크 에너지 할 이야기 많이 있어요. 뭐냐 하면 성전의 구조화가 예수님의 인격화를 이뤘다면 예수님의 인격이 말씀이 되어서 능력을 사는 사람은 뭐가 되느냐? 우리는 성전의 구조화가 되는 겁니다. 성전의 구조화가 예수님 됐고,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성전의 구조화, 구약에 있던 그 모든 것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완성돼 있는가를 그 구조가 어떻게 완성됐는가를 보여주는 거예요.

그 구조가 되기 위해서 성전이 건물에서 인격 되기 위해서 뭐가 필요하다 했습니까? 어두운 힘이 필요해요. 악마가 필요하다고요. 이방민족이 필요하다니까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 악마가 가라, 이러잖아요.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한다, 이러잖아요. 우리한테는 사탄은 사탕 같아. 너무 좋아. 달고나 같아요. 왜 이제 왔어.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런 식이에요. 예수님이 싫다고 극구 밀어내고 복음을 모르는 사람은 좋다고 점심 사줄게, 와서 잡아당기고.

하여튼 월드컵 이런 것에 우리나라 16강 올라가고 하면 남자 중에서 주일날 교회 안 나오는 사람 많아요. 16강 보려고. 왜냐하면 알아, 알아. 예수님 복음으로 구원받는 것 알아. 하지만 내 맴은 내 마음은 반갑다 친구야, 해서 다크 에너지에 대해서 얼마나 우리는 굶주린 자 같아. 허기졌어. 죄 못 지어서 허기졌어요. 굶주린 자 같아요.

여러분들은 그걸 잘 모르는 이유가 아직 그런 다크 에너지를 만날 기회가 없어. 술을 먹나 담배를 피우나 화투를 치나 만날 집에서 성경 보고 드라마도 안 보고 예능 프로도 안 보고 불신자도 안 만나고 오직 복음만 생각하니 그럴 기회가 없는데 다크 에너지 안 만난 것도 자칫하면 교만해질 수 있어요.

조정은 제가 뭔데 제가 하겠어요? 성령님이 알아서 줬다 뺐다, 줬다 뺐다. 그걸 영어로 up & down, 은혜 받았다고 꼴아 박았다가, 올라갔다가 다운됐다가. 나 지옥 갈 것 같아, 하다가 또 설교 듣고 주여 감사합니다, 하다가 몇 분 가지도 않아. 펀드 이윤율 마이너스 20프로 났습니다, 하면 하나님이여 왜 이렇게 날 괴롭혀요. 또 다운되고.

up & down, 올리세요, 내리세요. 누가 그렇게 할까요? 성령께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왜? 우리를 구조화, 해물칼국수 만들기 위해서 전체를 구조화하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어떤 인간도 자기의 행함으로 구원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 믿고 착한 행동으로 구원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다크 에너지, 어두운 세력, 여러분 구약에서 잘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누가 멸망시키십니까? 바벨론이 멸망시켰지요. 북쪽은 누가 멸망시켰어요? 앗수르가 멸망시켰지요. 그러면 그 전의 검은 세력, 그 전에 망하기 전의 북쪽 이스라엘, 남쪽 이스라엘 망하기 전에 이스라엘 내부적으로 망하게 한 건 누굽니까? 왕들이에요, 왕. 이스라엘 왕들이 왜 이스라엘 망하게 합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가 왕이기 때문에. 자기가 왕인 걸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러면 백성들은 어떻게 했느냐? 백성들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이방민족을 왕이 추인한다, 또는 허가한다, 그걸 장려한 거예요. ‘나는 여러분 편입니다. 여러분 원하는 대로 종교 알아서 선택하시면 됩니다. 산당, 산 위에서 집 짓는 것, 기도 많이 하면 좋지요.’ 이런 식으로 한 거예요. 여기에 반대한 사람은 선지자, 사이 존재. 여러분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것 다 아는 이야기니까 이것 빨리 진도 나갑니다.

선지자는 틈, 사이존재. 틈과 사이존재, 무슨? 하나님 속에 속하지 않고, 인간 속에 이스라엘 속에 속하지 않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선지자지요. 선지자가 고집하는 건 뭐다? 이것은 다윗언약이에요. 다윗언약을 고집한다는 것은, 다윗은 시편 51편에 보면 뭡니까? 나는 죄 중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나 같은 인간은 태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건 뭡니까? 이것 숫자로 하면 0이에요. 나는 죄 중에서 태어났다, 이것은 숫자 0이 아니고 마이너스(-)에요. 다윗은 자기를 마이너스로 보는 거예요.

그만큼 마이너스라는 것은 자기가 해야 될 기능이 있다, 없다? 있다는 거예요. 나는 죄를 지을 기능을 위해서 태어났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뭐다? 하나님께서 그 나를 뭐로 바꿨다?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신 거예요. 뭐하라고? 제사장 일하라고. 아라우나 타작마당에서 왕이 책임지고 제사장 됨으로서 칠만 명 죽고 천사가 스톱했지요. 그 저주와 징벌이 스톱할 수 있는 기능이 신기하지요. 그게 장차 다윗언약으로 오실 왕이 해야 될 기능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건 뭐 다 아는 이야기니까.

솔로몬이 성전 지은 장소가 아라우나 타작마당에 지었지요. 솔로몬은 처음에 이 성전 아이디어는 내 아이디어가 아니고 우리 아버지 아이디어입니다. 그래서 솔로몬 언약은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아버지 언약의 덕을 봐서 우리는 이 성전에 하나님이 직접 귀빈으로 참석하여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지켜준다는 약속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솔로몬이었어요.

다윗언약에 눈 돌려버리면 이스라엘이 멸망해야 돼요. 그런데 선지자는 뭐냐? 다윗언약을 이야기합니다. 그걸 다윗의 등불이라 해요. 다윗의 등불은 커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남북으로 갈라질 때 성전 있는 곳은 어딥니까? 북쪽이에요, 남쪽이에요? 남쪽에 있기 때문에 남쪽은 나중에 멸망하고 북쪽은 조기에 멸망합니다. B.C.722년. B.C.586년 몇 년 차이 납니까? 136년 차이 나네. 136년 동안 버티는 겁니다.

버틸 때 선지자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남쪽 유다야, 에스겔 선지자 이야기입니다. 너는 북쪽나라가 망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안 차리고 너희들이 더 심해. 북쪽은 왜 했느냐? 이게 음녀에요. 음녀라 하는 것은 다른 남자에 미쳐있는, 이방신에 미쳐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선지자가 이렇게 고발했는데 왜 남쪽, 북쪽이 자꾸 다른 나라를 곁눈질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게 뭐냐 하면 다크 에너지, 다시 말해서 어두운 힘이 인간이 선악과 따먹은 인간의 깊은 본성과 친하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 내부에.

왜? 인간은 죄 중에 태어나기 때문에. 그 죄에 이방민족의 활기찬 번영과 문화로 그걸 실제화 시켜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내 속에 뭐가 있는지 몰랐는데 바깥에 부러운 것이 등장했을 때 그래 나 저거 갖고 싶어, 라는 마음이 우러나서 하나님이고, 다윗 등불이고 그것 난 모르겠고 나는 내 욕망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어, 라는 고백을 쏟아내게 돼 있어요. 이게 뭐라고요? 남북 이스라엘의 역사지요. 역사를 이미 시민권이 있는 여러분에게 다 되돌려준다니까요. 그러니 여러분 신났지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천국은 가고.

이상하게 우리 마음이 십자가란 복음의 말씀에 안 가요. 퍼센트를 거의 90% 이상이 세상적으로 나침반이 세상적으로 가 있어요. 누가 나를 세상적으로 확 당겨주기를 우리는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 같아요. 전 안 가봤습니다만 나이트클럽에 여자들이 가게 되면 안 당기는 것처럼 당겨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멋있는 키 크고 돈 많고 옷 잘 입고 잘 생긴 직장 괜찮은 남자가 확 당겨주기를, 오늘 이 자리에 당신만 보이네요, 해서 확 당겨주기를 원해요.

그런데 그 다크 에너지가 일단 당기게 되면 이러시면 안 되는데, 하고 좋아서 당기잖아요. 당기는데 퍽하고 그 잘난 인간 패버리고 내가 당겨줄게, 하고 피 묻은 십자가가 당긴다면 우린 어떻습니까? ‘어머나 이건 아닌데. 나 이것 하려고 나이트클럽 간 건 아닌데’ 이렇게 되는 거예요.

나이트클럽 가고, 안 가고 여러분 그걸 신경 쓰면 안 돼요. 신경 쓰는 건 마귀의 역사입니다. 주께서 합력하여 오게 하셨다, 이래 생각해보세요. 오늘 참 잘 가르친다. 주께서 합력하여 오게 하셨다. 여기서 주께서 어떤 미팅을 주선하실지, 나만 웃나. 이 이야기 그만 해야 되나. 이게 말이 나이트클럽이지 세상 전체가 나이트클럽이에요. 어제 주일날 은혜 받았으니까 오늘 세상적으로 괜찮은 일 생기겠지, 이게 벌써 누가 당겨달라는 심보 아닙니까.

이스라엘 나라를 의도적으로 망하게 하십니다. 망하게 함으로서 이게 성전이 모형이고 가짜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도 무엇까지 가짜다? 너 자체가 가짜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아, 유대 백성들아 너 자체가 가짜야. 그게 말씀에 입각한 잃어버린 양이 아니에요. 그냥 양이에요. 양의 특징은 지 갈 길을 가요. 그런데 주께서 원하는 것은 잃어버린 양이지 양이 아니에요. 잃어버려져야 돼요. 탕자 되어야 돼요. 그래야 당겨주지요.

그러면 요즘 시대에 다크 에너지가 뭡니까? 확 당기는 거예요. 이건 복음이고 뭐고 백날 성경 봐도 소용없어. 한 순간에 확 당겨주는 것, 그게 뭐냐? 그게 과학과 의학입니다. 과학은 모든 미신을 짓밟았다는 승리감에 도취돼 있습니다. 모든 미신. 과학은 인간의 지혜의 집결성이에요. 인간은 오직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만 믿어라. 그 외에는 미신이다. 이걸 규정한 것이 바로 과학이에요.

과학은 또 어디로 모이느냐 하면 의학으로 집대성되게 돼 있어요. 과학기술 백날 해도 내 몸이 편해야 되고 내 몸이 오래 살고 건강해야 돼요. 과학에서 습득한 기술은 어디에 모아집니까? 의학 쪽으로 모아져요. 요새 의사들이 대통령보다 더 세잖아요. 옛날의 천재들은 사법고시, 법대 갔잖아요. 요새 천재들은 어디 갑니까? 의대 가요, 의대 간다고요.

서울 강남의 초등학생은 7개월 만에 고등학교 과정까지 선행학습을 다 마무리진다 해. 왜? 의대특별반. 울산 촌에서 백날 공부해도 소용없어. 강남 가야 돼, 강남 가야 돼. 한 달에 수백만 원 생활비 대고 강남 가야 돼. 의대특별반 넣어야 돼. 날고 긴다는 애들 다 모인다고요. 이 과학을 잡아당기는 것이 기초학력이 안 돼 있으면 과학을 의학 쪽으로 잡아당길 수가 없어요, 이게. 월급 많이 받는 것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감당할 수 있어야지. 의학을 감당하려면 갈수록 발달하는 데요.

여기 나오는 DNA가 다 의학으로 가고요, 여기 나오는 최첨단 인공지능 기계가 결국 기계가 누굴 위해서 만든 거예요? 오래 살고 몸 건강하기 위해서 기계가 주입되는 거예요. 옛날의 기술발달은 의학 쪽이 아니었습니다. 전쟁 무기로 쓰였어요. 옛날의 기술과 과학은 전쟁 무기화되었어요. 국가 하나 독립해야 되기 때문에.

요즘은 다 얼추 나라가 경계선이 쳐져 있기 때문에 그다음에 모든 과학 경험은 뭐냐? 의학 쪽으로 쏠립니다. 주사 한 달에 한 번만 맞으면 7킬로 빠지는 주사가 지금 허가를 기다리고 있어요. 미국에서 되는데. 약값도 보통 약값이 아니지요.

돈 버는 게 뭡니까? 몸에 좋은 게 돈 벌잖아요. 오래 사는 것. 여름 덥다? 그 집약된 기술이 속옷 하나 집어넣으면 시원하니 에어컨을 집어넣은 것 같은. 실제로 몸, 옷에다 에어컨 집어넣은 그것을 7월 파리 올림픽 우리나라 선수단에 입힙니다. 금메달 따오라고. 이제 의대 보내는 이율 알겠지요. 복음 믿을래, 의대 갈래? 의대 가지요.

세상이 다크 권력이요, 예수님이 시험 당했잖아요. 모든 세상 권력, 이걸 누가 이깁니까? 우리 성도 이겨냅니까? 이겨내는 것 좋아하네. 우리 기다리고 있어, 지금. 이겨내는 게 아니고. ‘우리 애는 천재 아닌가, 맨날 천재도 아닌데 천재 같아.’ 우리는 다크 어두운 힘이 내 손을 잡아주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성령께서 어떻게 합니까? 은혜 위에 은혜로다. 십자가의 은혜로 중간에 눈치코치 없이 끼어들기를 하지요. 그러면 제가 다시 물어보지요. 그 복음 버려도 되잖아요. 복음 뭔지 알지요? 예수님의 피로 십자가, 알면 됐지 굳이 거기다가 신경 써야 되겠습니까? 정답은? 신경 안 써요. 안 쓰는데 가끔은 볼떼기로 십자가 볼래, 안 볼래, 하고 당기는 그 누구, 그 어떤 분 의도적으로 검은 힘 속에 휘둘리게 하면서 그 힘보다 더 센 힘으로 잡아당겨주시는 주님의 은혜 이게 바로 성전의 법칙입니다.

성전의 법칙은 객실 내에서는 통화하지 말고 네 사정이 어떤 사정이든 바깥에서 통화해라. 여기서는 전화 못한다. 마찬가지로 성전의 원칙은 뭡니까? 바로 내가 성전이다. 내 피로 모든 죄를 용서해서 어떤 인간도 의사가 되던 간호사가 되던 어떤 인간도 평등하다는 것, 다들 죄인이었는데 예수님의 피로 흰옷 입고 왔다는 그 평등함으로 성전은 계속 확장해나가고 있습니다. 이 역대하 6장부터 해서 신약까지 계속해서 확장해나가죠.

그런데 ‘토리노 성의’라는 것 알지요. 예수님 십자가 달릴 때 입었던 옷, 그것 가짜거든요. 가짜든 말든 간에 그 수의가 나타났을 때 그게 1987년도에 원래 프랑스의 리레이 성당에 있었는데 이게 14세기에 이탈리아 토리노 성당으로 교황이 입김 세서 옮겼는데 이 수의에 대해서 14세기 때 사람들은 예수님의 피 묻은 옷에 대해서 흑사병, 문둥병 나을 수 있는 효과 있는 옷이라 해서 리레이 성당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 번 생각해보세요. 성전이 있다. 사람들은 뭘 이용하려 합니까? 성전에 와서 빌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 얻고자 하는 게 뭡니까? 그게 다크 에너지에요. 악마의 힘을 원하는 거예요. 왜?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그걸 볼떼기 잡아당겨서 십자가 네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잖아. 말했지? 본인 입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시민이야. 했어, 안 했어?’ 하고 잡아당기는 그 힘은 어떤 힘입니까? 이미 죽었다가 사신 살아 계신 주님의 활동력이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생명책이 있는 천국으로 이미 왔고 왔음을 확인시켜주는 힘이 바로 살아 있는 성전, 성령의 전, 예수님의 능력의 활동인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 우리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복음 알고 천국 알면 합격된 줄 알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사실은 너무나 세속적이고 세상 성공, 출세에 나가 있었지 않았습니까? 다시 한 번 말씀으로 잡아당겨주실 때에 우리가 죄인인 것이 너무나 마땅하고 지옥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깨닫는 그럼으로써 예수님의 인형이고 예수님의 증인될 수 있는 이 영광을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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