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그 날 속의 그 날

아빠와 함께 2024. 4. 18. 08:34

그 날 속의 그날 

2024년 4월 17일                  본문 말씀: 스가랴 14:6-8

(14:6)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자들이 떠날 것이라
(14:7)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14: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세상에 모든 빛이 꺼질 때에 성도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살게 됩니다. 그곳이 어딨느냐를 알아도 소용없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그 날에 대해서 모든 인간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공간에 갇혀 있는 것보다 먼저 시간에 갇혀 있습니다. 인간 환경을 둘러싼 시간은 인간 위주가 아닙니다.

율법 위주입니다. 율법이 완성하는 그 날을 달성하려면 인간들이 실제로 모든 율법을 다 이루어야 합니다. 인간들은 이미 범죄하고 난 뒤에 자기 몸부터 챙기는 것이 급급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 경우, 비록 율법을 주셨지만 그들은 율법을 버리고 율법이 없는 이방 민족의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즉 자연과 자기 몸을 직접 연결시켜 자기 몸 살 궁리에 주력하게 되었습니다. 선지자는 바로 이스라엘 속에서 등장해서 율법을 차버린 것에 대해서 사정없이 지적합니다. 실제로 대자연은 율법과 연관을 가집니다. 각자 율법의 속성을 지니고 각자의 위치에서 운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율법이 오면서 비로소 대자연의 본질이 알려지게 됩니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5-9)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챙기는 일을 우선적으로 여기기에 이러한 율법적 연관성을 알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대자연이 율법적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면 인간들이 말할 것도 없이 율법과 관련성을 지닙니다. 우상 섬기는 자들은 바로 이런 율법 연관성을 빼고서 자연을 다룰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대자연도 무너지지만 당연히 인간도 무너집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자체적으로 그 완성의 상태를 향하여 질주합니다. 그 완성된 상황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29-30)

즉 이런 상황은 율법의 모든 내용이 오로지 예수님의 육신 안으로 응집되어 있기에 나타난 결과입니다. 인간은 결코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의 연관성을 나타내기 위해 모든 인간들이 세상에 나타난 겁니다. 인간 존재의 바탕과 연관은 예수님이십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6) 예수님과의 연관성을 알지 못하면 인간은 생명 대신 저주가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홀로 이 땅에 오시면 율법의 모든 일은 다 마무리 된 걸까요? 마태복음 24:36에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율법에서 말씀하시는 모든 ‘그날’이 일단 예수님에게 주어지게 되면 이로 인해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에 성립된 ‘그날’ 달성이 같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그날은 그날 온 우주가 대 파탄에 빠지는 날입니다.

하지만 이 파멸의 날이 예수님을 인수받아 율법을 완수하게 되면 예수님이 따로 허실 일이 나타나게 됩니다. 사도행전 1:15-17에 보면,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그날을 모르시지만 그 안에 성령이 언제 오시는 것인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기 백성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일은 예수님 자신이 하셔야 될 일입니다. 율법으로 가득 찬 예수님께서 빛과 어두움 모두를 관장하고 신자 및 불신자를 구분하시고 정하시는 일까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됩니다.

세상이 온통 다 무너지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꼭 되어야 될 자들에게 누락없이 성령을 세례주십니다. 그것은 세상 모든 것이 다 무너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행 2:18-21) 즉 예수님 본인이 하시는 일도 율법에서 보면, 바로 그날, 즉 율법이 완성이 되었기에 현상입니다. 모든 것이 망하기 전(前)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받은 자들은 모든 모습으로 살게 될까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왔기에 마음 안이 예수님처럼 ‘율법 완성’의 모습을 보입니다. 반면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지 못한 ‘어두운 나라’에 있는 자들은 의도 없고 평강도 없고 희락도 없습니다.

이들은 여전히 자기 목숨과 몸을 챙기면서 자기 행복에 집착하는 면을 보입니다. 이것은 극도의 불안도 두려움과 공포를 갖게 됩니다. 따라서 이 지구상은 각가지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어쩔 줄을 모르게 됩니다. 지진과 기근과 대자연 현상들이 무질서하게 다가오면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에 대한 위협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들은 인간의 운명이 예수님 손에 달린 것도 모릅니다. 예수님에게 생명이 물이 넘치게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죽을 때까지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끙끙댑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근본을 모르는 자의 비극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다시는 어두움이 없이 예수님 몸에서 나오는 광채와 빛으로 사는 삶을 기쁘게 고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40강-스가랴 14장 6-8절(그날 속의 그날) 240417- 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스가랴 14장 6절에서 8절까지입니다.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자들이 떠날 것이라,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아멘.

스가랴 선지자, 이스라엘에서 나온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나온 선지자라는 뜻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이 주어졌고 선지자는 그 율법이 어떤 식으로 착실하게 성취를 보고 완성이 되느냐 그것을 미리 앞당겨서 이야기해 주는 사람들이 선지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6절에 “그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자들이 떠날 것이라” 이렇게 되어있어요.

그다음에 7절에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 이렇게 되어있는데 여기 6절과 7절에서 중요한 3가지 요소를 끄집어 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 날, 율법이 완성되는 그날이 온다는 겁니다. 그날. 첫째는 그날이 오고요. 그다음에 그날에는 현재 이스라엘 사람이나 인간들이 보고 있는 빛, 그 빛. 그것이 더 이상 무용지물이 되는, 소용없는 때가 그날이란거죠. 더 이상 태양이라든지 달빛 이런것도 필요없는 그날이 오고 그리고 태양, 달 이런 게 없으니까 낮도 밤도 구분이 필요치 않는 날. 그날이 바로 여호와께서 아시는 날이 돼요.

그러니까 이 말을 듣고 있는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는거에요. 기존에 있는 해와 달 없애고 그거 없어도 빛이 비취는 그 때가 온다면 그러면 이스라엘 입장에서 그들이 해야될 것은, 준비할 것은 무엇이냐? 그런 것을 생각 할 수 있잖아요. 근데 그날은 바로 그것 조차 인간이 뭘 준비하는 것 조차 필요치 않는 날이 그날이에요.

8절에보면, 예루살렘이 있는데, 예루살렘은 그당시에 사람들이 다 알죠. 유대 나라의 수도고 성전이 있는 그 예루살렘. 그 예루살렘에서 샘이 솟아나가지고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것이라. 샘이란 것은 한번 솟아나고 그만이 아니고 계속해서 솟아나는 곳이 되는거에요. 샘이 솟아나야 만물이 소생을 하니까요. 살 수 있는 공간이 되죠. 그래서 그날이 되면, 율법이 완성이 되는 날이 되게되면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그 예루살렘 주민들은 넉넉하게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날이 온다.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겁니다.

이런 날이 올 때 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뭘 준비하라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일을 시키는 이유는 그동안 인간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버려먹었어요. 율법에 대해서 오해했고 지키지도 못했고 율법에 대해서 뜻이 뭔지 정신이 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그냥 자기의 본성대로 산겁니다. 어떻게 그동안 살았는지 그거는 이스라엘 역사가 말해주는데,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망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이 말씀 하시거든요.

이 망하는 이유가 해와 달이 있는 그 대자연과 자기 자신을 율법을 중간에 넣고 이렇게 관계지으면서 대자연을 생각해야 될 텐데 율법 빼고 직접적으로 자연에 있는 것들을 자기가 취득하고 얻고자 그렇게 노력을 해왔어요. 그게 뭐냐하면 율법을 빼고 자연이라든지 이 세상에 대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 그걸 가지고 우상숭배라고 이야기하는겁니다. 우상숭배.

그러니 이 우상숭배는 이방나라 신인데 이방나라 신의 특징은 율법이란게 없어요. 율법을 안 거치고 그냥 하늘과 땅에 대해서 뭐 빌고 신을 만들어서 달라고 요청하고 하는겁니다. 그거는 누구 좋아라고 하느냐 하면 율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대자연은 내가 좋고 나한테 필요해서 이 대자연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겁니다. “나만 잘 살고 나만 행복하면 그거는 뭐 오케이다.” 그런 정신 가지고 이방인들은 율법 관계없이 대자연을 바라보면서 적응하면서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근데 나중에 이스라엘도 그렇게 변했어요. 변질되었어요. “율법 이것 치우고 그냥 풍족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었습니다. 자기만 잘되면 된다는 거에요. 어떻습니까? 오늘날 우리의 사는 모습이 어때요? 늘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신경을 씁니까? 아니면 ‘내 편하고 내 안자빠지고, 건강하고 뭐 그정도만 하면 충분하다.’ 뭐 그런 생각으로 그 걱정, 내가 잘될까 못될까 내걱정만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하느냐 거기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잖아요. 그당시 이스라엘이나 오늘날 인간들이나 별반 다를게 없죠.

옛날에 아주 오래된 옛날 1970년도의 영화에 알랑드롱이라는 프랑스의 유명한 미남 배우가 나왔던, 그당시 세계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라. 그렇게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하고 믿고 했던 남자가 했던 영화가 있는데요. 그 영화가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데 완전 범죄를 하고 속으로 미소를 띄면서 웃으면서 바닷가에서 축배를 드는 그 순간 자기가 처리했던 시체가 눈앞에 떠오르는 장면이 거기서 나와요. 그 영화 제목은 “태양은 가득히”

그 영화를 한번 생각 해보면, 그 축배를 들면서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는 것은 율법을 생각해서 미소를 띄운게 아니에요. 내 한몸 내 뜻대로 내 원대로 잘되었으니까 자기가 자기 성취감에 만끽해서 그렇게 한겁니다. “태양은 가득히” 알랑드롱 뿐만이 아니겠죠? 모든 인간들이 사는 이유 사는 목적이 자기하나 잘되기 위해서 살아가는 거죠. 마태복음 16장 26절에 보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되어있어요. 이 말씀이 무슨 뜻이냐하면, 사람이 온 천하를 다 얻는다 할찌라도 내 목숨이 예속되어있고 내 목숨이 나왔던 그 원천을 놓쳐버리면, 온 우주의 귀한 것 다 가져도 그거는 소용없다고 하는거에요.

인간의 목숨은 율법에서 나온거에요. 율법에서. 인간이 범죄하고 난 뒤에 내 생각하는게 나부터 출발해가지고 내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그걸 잊어버려요. 잊어버리고 나만 잘되면 되고 나만 행복하고 나만 오래살면 되지 라고 하는데, 그것을 이방 민족은 그럴 수 있어요. 왜? 율법을 모르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해서는 안돼요. 이스라엘은 인간의 모든 생명은 율법이 이루어지는 차원에서 율법이 진행되는 차원에서 비로소 이스라엘의 민족들은 그들이 목숨을 부지하는겁니다.

그들에게 율법이 살아있다는 조건 하에 그들에게 말씀이 있다는 조건 하에 그들은 살아있는 거에요.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시킨다면 우리의 목숨이라 하는 것은 복음이 살아있는 조건 하에 우리의 생명과 목숨은 살아있는 겁니다. 우리의 목숨 우선이 아니라 복음이 우선이고 복음은 율법의 완성을 가지고 복음이라고 해요.

정말 이런 인식은 그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법을 줄 때 하나님께서 그걸 요구했었어요. 뭐 수백번 이야기 했어요. “너희들은 너희 위주가 아니고 너희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언약, 율법을 잊지마라. 율법 위주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상하게, 이상한게 아니고 당연하지만 이상하게 인간의 육신은 자기의 몸 위주로 전환되어서 결국은 이스라엘은 망하고 맙니다. 지금 스가랴가 망한 상태에서 지금 예언하는겁니다.

그렇다면 아까 제가 처음에 말씀 드렸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날, 율법이 완성하는 그날을 인간은 실패했지만 하나님만은 율법을 포기하지를 않았던 거에요. “그러면 여기서 궁금한게 율법이 완성하는 그날에 무슨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이미 율법을 배려놓고 내 위주니까 안되지만 그러면 그날에 율법이 이루어지는 그날은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할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신약 성경이 가득하게 신약성경에 나와있습니다.

율법이 완성하는 날에 무슨 일이 있는가? 그날에 무슨일이 있는가? 마태복음 24장 29절부터 30절까지 보게되면,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렇게 되어있어요. 질문을 다시 던지고 요걸 답변으로 여러분들이 한번 연결시켜보세요.

“율법이 완성되는 그 때에 그날에 무슨일이 있겠습니까?”라는 질문. 여기에 대한 답변은 인자가 예수님께서 구름타고 오는 그날에 율법은 완성됩니다. 이 말은 무슨뜻이냐 하면, 율법에 있는 모든 그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도 못지켜요. 인간은 못지켜요. 못지키는데 하나님이 율법은 주셨고 율법은 완성의 때를 봐야되겠고, 그런데 그 율법을 누가 캐치해서 누가 가져가서, 인터셉트해서 누가 홀로 완성을 하느냐? 바로 예수님께서 홀로 완성을 해서 나타난 그 날이 율법이 완성되는 날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구름타고, “얘들아 나 율법 완성했다.” 이러면 될텐데, 여기 마태복음 24장 29절에 보면,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왜 멀쩡한 해와 달과 별은 왜 하늘에서 떨어지느냐? 그냥 인자가 구름타고 짠하고 내려오시면 되지, 해와 달과 별은 왜 그렇게 우두둑 다 떨어지는가? 그것은 그동안 해와 달과 별에 대해서 인간들이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내 몸 하나 살기 위해서 대자연을 율법 빼고 직접 그들은 다이렉트로 안정적인 자연의 질서를 통해서 자기의 먹을거리 생존거리를 찾았던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보시면 돼요. 사람들이 “나쁜짓하자.” 칼들고 설친다고 나쁜짓이 아니고, “나 내 몸 좀 사려야 되겠다.” 이 자체가 나쁜짓이에요. 율법에는요 너 살아라는게 없어요. 율법을 살리라고 있는것이지 너 살아라고 있는게 율법이 아닙니다. “내가 율법줘도 그거 신경쓰지 말고 너만 잘 살고 너만 행복하면 그만이야.” 이런 이야기를 하나님이 해주신적이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보시면 돼요. 이 자연의 변화가, 그날이니까, 자연의 변화가 어디에 응집이 되느냐? 한곳에 다 모이게 되느냐 하면 모든 자연의 변화가 율법으로 인하여,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의 한 몸에, 한 신체 안에 전부다 응집이 돼요. 그리고 그 응집된 예수님의 몸이 인자가 하늘에서 구름타고 내려오게 되면 그때는 해와 달과 별을 배치를 하고 배정을 했던 그 모든 고리 고리에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서 하늘에 별과 달과 그것들이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영광스러운 예수님이 오는 마당에 그들의 그 광명체는 더는 필요가 없다 이말입니다.

없고 어린양의 광명, 예수님의 광명으로 충분하다 이말이죠. 해와 달과 별로 낮과 밤이 이루어졌던 그 시간들이 이제는 율법이 완성되게 되면 더 이상 그거는 다 지나가고 예수님의 몸에서나온 그 영광으로 이제는 영원히 밝은, 대낮같이 밝은 영광스러운 때가 도래하는거에요. 오는거에요. 뭐 어떻게 기분이 괜찮아졌습니까? 이게 기분이 괜찮아 질려면요. 내가 힘들어, 내 육체하나 목숨하나 건사하기 위해서 산다는 이것을 이것이 바로 죄 그 자체였음을 인식하는 자에게 이 때가 기쁘고 즐거워요.

“주님이 알아서 하고 나는 내 할 도리 다 하면 된다.” 이래가지고는 전혀 안기뻐요. 바꿔치기 해야돼요. 바꿔치기. 자식키우면서 힘들어서 하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이게 허사고 아무짝도 쓸모없는 그렇게 애쓴다고 해서, 그래서 온 천하를 다 가졌다고 해서 그게 내 목숨과 관련된게 아닙니다. 다시말씀 드립니다. 내 목숨은 율법 완성과 관련되어야 생명이 되는거에요. 율법 완성과. 뭐 숨쉰다고 목숨이아닙니다.

이거는 뭐 시한폭탄같아서 째각째각하다가 나중에 시계 힘빠지면 죽어버리죠. 이렇게 이야기하면 굉장히 쉬울꺼에요. 예수님의 재림되는 그 순간, 그 날을. 보통 연극이 끝나면요, 연극이 끝나면 조명도 꺼지잖아요. 그다음에 뭐도 철거되느냐 하면, 세트도 철거되어요. 연극이 끝난 후에. 연극이 끝났다는 말은 한마당 놀았던 모든 것들이 다 철거가 돼요. 다 없이 되는겁니다. 그날이 율법이 완성되는 날이에요.

예수님께서 지금 마태복음 24장에서 분명히 그런 언급을 했거든요. 그런 언급을 했는데, 율법에 대해서도 모르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모르도 그저 지 몸하나 사는것만 정신이 팔려있는 그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해도 무슨 말인지를 못 알아들어요. 제자들은 이 말씀을 해도 못알아듣는다는 그 증거가 어디에 나와있느냐 하면 바로 사도행전 1장 6절에 나옵니다. 예수님께 묻습니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렇게 되어있어요. 참 질문하나 엉망이에요. 지금 예수님이 오시면요, 시간과 공간 모두다 예수님 몸안에 응축이 되는거에요. 몸안에.

시간도 마찬가지고 공간도 마찬가지에요. 공간같은 경우에 오늘 스가랴 본문을 보게 되면, 오늘 본문 스가랴 14장이잖아요. 거기보면 뭐냐하면,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이렇게 되어있다고요. 이 예루살렘이 뭐냐하면 성전이 있는곳이에요. 그런데 율법에 의하면 하나님의 예언에 의하면 에스겔 47장 1절과 2절에 보면,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해서 물이 계속 나오고 처음에는 물이 얕게 나오다가 더 발목까지 오르다가 무릎까지 오르고 나중에 허리까지 오르고 나중에 강이 넘치도록 물이 흐른다는거에요.

예루살렘에서 왠 물이 이렇게 흐르냐. 그것은 창세기 2장에 에덴동산에, 에덴동산이요 처음에 인간이 사는 세상 만들 때 에덴동산이 중앙이고, 에덴동산이 중앙이고 그 주변에서 많은 동식물이 사는데 살려면 에덴동산에서 무엇이 흘러나와야 하냐면 물이 흘러나와야 돼요. 그 물이 네 개의 강으로 흘러나온 거에요. 그 물이 흘러나오는 원천이 뭐냐? 선악과와 생명나무  있는 에덴 중앙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겁니다.

물먹고 살아라 이말이에요. 뭐 인체의 70%이상이 물로 되어있으니까요. 이건 뭐 동식물도 마찬가지고 식물도 동물도 물없이는 못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처음에 만들었던 동식물과 인간이 물없이 못사는 그들이, 창조의 바탕이 율법에서 나왔다는 것을 모르는거에요. 선악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할 때 아담과 하와가 그게 무슨뜻인지 몰라요. “그냥 뭐 살면되지”

사는게 공짜가 아니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조건하에 그들은 생수와 맛있는 과일과 동물들과 함께 살았던 겁니다. 그냥 살게 해준게 아니에요. 인간 속에 동식물 속에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이 스며드는 조건하에 그들은 살았던 겁니다. 그런데 인간이 다스리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선악과 따먹고 배려버렸으니까 인간만 무너진게 아니고 온 피조 세계가 전부다 피곤하고 다 썩어가고 있는거에요. 로마서 8장에 보면.

그래서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소원한겁니다. 바탕, 원천. 지금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고 오늘날 인간들이 바탕과 원천을 이상하게, 마귀가 그렇게했겠죠. 이걸 생각을 안해요. 예수님께서 정말 자주 이야기했어요. 말씀이 없으면 못 산다. 사람은 떡으로 사는게 아니다. 말씀으로 산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이야기 했지만, 마귀는 자신만만했습니다. 마귀는 알아요.

욥을 시험했던 마귀는 알아요. 뭐냐? 인간은 말씀이 우선이 아니고 떡이 우선이다. 돈이 전부라는 것. 마귀는 확실하게 압니다. 자기의 원천, 말씀, 율법에 완성, 이런것도 다버려놓고, 맨날 머릿속에 마음속에는 뭐냐? “왜 내인생은 이렇게 굳이 힘들게 살아야 되는가? 나 이렇게 사는 것이 왜 남들은 평화롭게 사는데 나는 왜 구질구질하게 조용할 날이 없고 순탄할 날이 없네. 왜 나는 힘들어?” 이러고 있다 이말이죠.

하나님의 말씀 완성으로 나오는 그절차 방법은, 허구를 통해야 진리에 도달된다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자신이 허구에요. 진실을 뭐냐? ‘말씀에 입각한 것만 받아들인다.’ 이건 진실입니다. 그럼 허구는 뭐냐? ‘말씀이고 뭐고 내 몸뚱아리 하나 행복하고 편하게 살고 잘 살면 된다.’ 이게 허구입니다. 말씀이 허구를 관통하고 꿰뚫어버리죠. 사랑하기 때문에 내위주의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만두지 않고 그걸 방해해요. 고마운줄 아셔야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사도행전 다시 돌아가서요, “예수님께서 언제 이 공간이 멋진 공간이 되겠습니까?” 공간 시간 아직도 제자들은 자기 몸뚱아리 하나 둘만한 공간을 챙기고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렇게 이야기해요. 아까 질문이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이렇게 되어있어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두가지를 한번 생각해봐야 돼요. 첫째는요, 마태복음 24장 35절, 36절에,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여기서 우리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오직 아버지만 안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때는 나는 몰라, 아버지도 몰라, 되어 봐야 알아.” 이렇게 말씀하셔도 되는데 천사도 모르고 나도 모르지만 아버지는 아신다는거에요. 그럼 이말은 무슨뜻이냐하면, 아버지만 아시는 그날, 그 날에 대해서 예수님이 그날을 알려고 하는 일이 예수님의 자신의 일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할 일은, 아버지만 아시는 그 날 그것 빨리 챙기는게 예수님 일이 아니고, 그 날, 아버지만 아는 그 날 이전에 예수님만이 하는일이 따로있어요.

예수님이 때에대해서 모른다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때에 대해서 알아요. 그게 사도행전 1장 7절에 뭐냐? 여기 다시 사도행전 1장 5절에 가게되면,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렇게 되어있어요. 이거는 어떻게 알죠 예수님이? 이거는 어떻게 아냐 이말이죠. 마지막 때는 아들도 본인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면서, 전혀 아는게 없는게 아니에요. 그날은 아버지만 알지만 그 이전에 예수님이 해야될 그 날에 대해서는 너희는 모르지만 예수님 본인은 안다는 말이에요. 그 날이 뭐냐?

몇날이 지나면 성령이 임한다는거에요. 그러면 이 말을 한번 정리해봅시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요. 이 정리에대해서 제가 정리하는것보다 사도행전 2장 19절에서 20절 나오는 그 말씀으로 정리하는게 제일 편할 것 같습니다.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라고 되어있어요.

주님이 오시는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이르기 전에, 그 전에. 마지막 인자가 오기 전에 할 일이 예수님에게 할 일이 있는거에요. 그 일이 뭐냐? 자기 백성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일을 하시는겁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게되면, 그럼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는 말은 이게 무슨 일이냐 하면, 지금부터가 오늘 설교에 포인트에 이제 드디어 여러분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세상에 자연 세계에는 율법과 연관되어있는 자연세계인데 그걸 인간이 모르고 선악고 따먹어서 모조리 다 피폐하게 되었어요. 그러면 율법이 와가지고 이 자연세계와 율법과 율법에 의해서 자연세계가 적절한 배치를 할당받는, 자기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보자는겁니다. 예를들면, 시편 136편 같은 경우에 “해를 지으신 이를 감사하라, 달을 지으신 이를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해와 달과 별 안에 뭐가 들어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인자하심, 인자하심이 거기에 들어있다는거에요. 들어있으니까 그 해와 달을 보고 기뻐하면 된다는 거에요. “아, 고맙습니다.” 하면 된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게 이스라엘은 안돼요. 그게 될것같으면 우상숭배를 안했죠. 인간은 지금 자기 몸하나, 몸뚱아리 하나 목숨하나 지금 건사하는게 지금 급선무에요. 뭐 해와 달보고 하나님 인자하심 찾는게 그들의 할 일이 아니에요 지금.

참 답답지요. 교회와서 성경 이렇게 봐도 저기 유리문 있잖아요. 유리문만 나오면 다잊어버려요. 연관성을 못지어요. 모든 일이 율법과 연관성있고 복음과 연관성있는데 연관성을 짓지못하는 거에요. “예배 드렸으니까 내 책임량은 됐고 이제부터 내인생 내가 산다. 내 목숨 산다.”그러고 나간다고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어떻게하냐? 이 율법을 인간이 아무도 못지키니까 그 자연세계의 모든 율법이 예수님 몸안에 응집을 했다고 했죠?

응집을 한게 뭐냐?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거에요. 세례를 받으면서, 그 안에 해와 달, 뿐만 아니고 밤되면 어둡잖아요. 예수님은 그냥 낮을 주관하시는 분이 아니고 낮과 밤을 주관하시고 빛만 주관하시는 분이 아니고 빛과 어둠을 주관하시고 이걸 예수님의 행위를 통해서 어디까지 이 의미가 확장되는가 하면은, 나는 신자만 챙기는 자가 아니라 불신자까지 챙기는 권한을 가진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불신자까지 챙기는.

지옥가는거 지마음대로 못가요. 예수님께서 분류해서 “가라”해야 지옥가는겁니다. 천국도 물론이고요. 따라서 사도행전 2장에서 예수님이 완성한 그 성령이 이번에 어디에오느냐하면, 이스라엘에게는 율법, 율법에서 예수님안으로 들어오는거에요. 예수님이 율법에 들어와서 예수님이 자기백성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줘버려요. 세례를 주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되느냐 하면, 사도행전 2장처럼, 해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불이 나고 이세상에 지진이 일어나더라도, 성령받은 사람은 도리어 그것을 기뻐하는거에요.

왜그러냐 하면, 해가 떨어지고 별이 덜어지고 세상에 지진이 일어나고 코로나가 퍼지는것도 이게 누가일으키냐 하면, 하나님의 율법대로 일으켰다면, 그 율법대로 이 세상을 파괴시키기 위해서 일한 일과 똑같은 일로 그 일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건지시는 일이나 그것을 이 지구를 파괴하는 일이나 똑같이 예수님에게 나온 일이에요. 따라서 예수님에게서 나온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세상이 뒤죽박죽이 되고 뭐 하마스 전쟁하고 이란과 미사일 쏘고 난리 해도 박수칠 일이에요.

“맞구나 이게. 세상이 예수님 마음대로 되는게 맞구나.” 주께서 다, 겐또, 일본말이죠, 다 세상 짐작해가지고 이 세상 와장창 무너지기 전에 내 백성 빈틈없이 찾아내기 위해서 성령을 줘버린거에요.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둡기 전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이 복음은 성령이 와야 이게 알아먹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한 그 상태 그 자체가 그대로 우리속에 밀려오는거거든요.

율법이 그대로 예수님 몸 안에 이제는 율법의 완성 그대로 우리의 성도 몸안에 들어와 버려요. 자 그렇게 되면 성도는 어떤 경우가 되느냐? “성도가 뭐 세상의 경제가 어렵고 하면 성도가 힘들잖아요. 힘드는데 뭐 성령 받은건 고마운데 힘들게 사는것도 괴롭습니다.” 이럴수 있다 이말이죠. 빛의 나라의 반대말이 어둠의 나라고 어둠의 나라의 반대말이 하나님나라죠. 빛의 나라 하나님 나라.

로마서 14장 17절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렇게 되어있어요. 다시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안에서요,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되어있어요. 제가 아까 짧게 이야기했는데, 다시 이야기 하면, 진실에 이르는 것은 반드시 허구를 통해서 뚫고서 진실에 이르는거에요. 우리는 우리의 육신은 어두움이에요.

어둠을 뚫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찾아오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우리 마음은 이미 하늘나라에요.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스라엘 전쟁 하든 말든 물가가 오르든 말든 마음에 희락이 된다 이말이죠. 마태복음 10장 17절도 같은말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지금 예수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혹독한 핍박과 억압과 박해를 받고있는 지경에서 주께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넘겨줄 때에 내가 무슨말을 해야 이 난관 내 목숨하나 건질까? 내 몸 하나 유지 될까?”이렇게 염려하지 말라는 거에요. 20절은 뭐냐?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허구를 허구라고 비로소 눈 뜬 사람이 성령세례 받은 사람이에요. 뭐도 허구냐? 내 목숨 부지하려는 내 몸이 허구라는 사실, 내 몸은 흙이고 진흙이며 이거는 없어져도 상관없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 죽으시고 부활했던 그 부활의 능력이, 성령의 능력이 성령세례로 우리에게 오게되면, 우리 주변에서 난리에 난리가, 지진나는 일본, 어디 필리핀 지진, 대만의 지진, 난리 피우더라도 우리는 쾌재를 불러야 되는 겁니다.

“그럴줄 알았지롱. 그럴 줄 알았어.” 사람들은, “우짜노, 못산다. 이래서는 못산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가만있어봐 주께서 재림하는 날짜를 계산하자.” 날짜계산 666 어떻고 7년 대환란 뭐 한때 두때 반때 그거 계산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뭐냐하면 하늘나라가 평강과 의와 희락이라면, 성령세례받지 못 하는사람의 세계는 뭐냐? 그 마음 속은 어두움이에요. 두려움이요, 공포고 불안이에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조마조마하고 조급하고 어쩔줄을 모르고 불안불안하고 염려와 걱정과 그걸 또 메꾸기 위해서 탐육과 호색에 빠지고.

여기 로마서 13장에 나와요.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게뭐냐하면 이게 14장에 성령을 받게 되면 억지로 이걸 윤리 도덕으로 지킨다는 말이 아니고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으면, 세상에 일어나는 그 멋진 뭐 시덥지않은 일들이에요.

누가 주식해서 대박났다. 누구아들은 빽 잘 써가지고 안기부에 들어갔다.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누구는 장가 잘 갔더라. 이런 것. 그게 탐욕이거든요. “아이고 부러워라. 내꼬라지는 뭐고” “니 꼬라지는 원래 그런데.” 다 무너져야될 허구. 이 허구를 우리는 이걸 못놓고있는거에요. 이게 최우선적으로 못놓고 있다는 말이죠. 주께서 다 이루었다 했는데.

바로 예수님께서는, 이제 끝으로 고린도전서 그 말씀이 나옵니다. 15장 25절에,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모든 영광을 아버지께 돌리는거에요.

그러면 날이 두 개의 날이 돼요. 이스라엘 율법에서 보게되면 이스라엘 율법에서 여호와 하나님까지의 그 긴 간격이 날이라면 그 날을 세분화시켜서 예수님부터 해서 아버지까지의 날이 그 율법이 낸 긴 날이 율법이 완성이 되게 되면 예수님이 그 모든 날을 독점하고 있고, 그 날은 그냥 온다고 오는 것이 아니고 성령세례 받은자에게만 재림의 날에 의미가 있는거에요. 연극이 끝날 때, 끝나는것에, 연극이 끝나서 세트 조명 다 꺼질 때 “한평생 잘 놀다갑니다 주님.” “헛되고 헛된 인생. 잘 놀다갑니다.”

주님의 성령세례 주님의 십자가 용서 없으면 정말 나 이세상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내 몸둥아리가 전부인줄 알았는데, 예수님의 몸이, 그 몸에서 나온 영광이 앞으로 우리 같이 사는 주님의 조명빨이 되는거에요. 끝으로 요한계시록 22장에 바로 그 말씀이 나와있습니다. 5절에 보면,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들을 때 그냥 그런가 듣지 말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숨어있는 현실인 것을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눈에 보이는 세상에 살면서 이것도 걱정 저것도 걱정, 이것도 염려 저것도 염려 두려움 속에 살지 않게 해주시고, 이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알아서 어떤 일이라도 평강과 희락으로 주님이 하신 공로를 감사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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