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구원자 231126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당나귀 타고 오신 예수님. 옛날부터 이스라엘 나라는 왕이 등장해가지고 자기들을 자기들의 소원을 다 들어주기를 원했던 그런 마음들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지켜주고 우리나라 다 잘 살게 해주고 우리나라 건강하게 해 주시고, 모든 적들을 이길 수 있는 그런 대단한 나라로 만들 어떤 분이 오신다. 그게 바로 이제 구원자가 오셔가지고 우리나라 크게 해 줄 것이다, 라고 그걸 믿었어요.
믿었는데 안 와. 오지를 않아. 믿기는 믿는데 안 오니까 더 간절하게 믿어요. 믿습니다. 믿습니다. 간절히 믿어도 안 와요. 이게 어떤 가정에 아버지가 배 타고 고기 잡는 일을 하셨는데, 아버지가 배 타기 전에 애들 둘 딱 놔두고, “얘들아. 축복하여 가로되 얘들아. 내가 아버지가 돈 많이 벌어 와가지고 사주는 거 다 사줄게. 꽈배기, 꽈배기 사줄게. 하여튼 뭐 먹고 싶은 거 빵하고 뭐 다 고기하고 니 옷 사줄게. 뭐 또 컴퓨터? 컴퓨터 사줄게. 휴대폰? 다 사줄게. 돈 많이 벌어올 테니까 너희 둘은 걱정하지 말고 아버지가 다시 온다.” 그러니깐 아들이 하는 말이 “아버지. 지금 가면 언제 오는데? 하룻밤 자고 오는 거야?” “아버지 곧 올게.” “곧 오는데 언제 오는데?” “하여튼 아버지 빨리 올게. 니가 기다리니까 안 올 수 없지.” 근데 아버지가 먼 나라에 갔어요. 갔는데 안 와. 아버지가 오지를 않아. 분명히 온다 했는데 가고 난 뒤에는 두 번 다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어요.
어느덧 애들이 커가지고 어른이 돼도 아버지? 안와. 근데 큰애는 아버지 죽었다고 결혼했어. 아버지 죽었다. 아버지 배 타고 죽었다. 근데 동생은 아버지 안 죽었어. 아버지 오실 거야. 죽었다는 쪽과 아버지 오신다는 쪽이 나누어졌어요. 아버지 돈 많이 벌어서 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누나는 저리 가. 누나 저리 가. 아버지 안 온다니까 저리 가. 나 아버지 기다릴 거야.” 기다렸어요.
드디어 아버지가 왔어요. 왔는데 아버지 기다리던 애가 “아버지. 아버지 맞아요? 아버지 돈 어딨어요? 아버지 돈 많이 벌어준다 해놓고 아버지 돈 어디 있어요? 아버지 분명히 좋은 차 타고 오는데?” 아버지가 “아버지도 타고 왔다.” “뭐 타고 왔는데?” “자전거 타고 왔다.” “아버지. 아버지는 자전거 타면 안 돼요. 아버지는 돈이 많아서 큰 좋은 차를 타고 와야 돼요. 아버지 당신 아버지 아니지? 우리 가짜지? 우리 속이려고 했지?” 그런데 큰 애는 아버지 돈 많이 번다고 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어린아이들은 돈 없어도 우리 아버지 맞다 이런 쪽이 있었고 아니야 아버지는 나를 행복하게 내가 부자 되게 해주고 내 잘 되게 해줘야 아버지지. 그거하고 이제 두 패로 나누어져서 일부러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옴으로써 나라 둘을 두 패로 나눴어요.
초라하게 봐도 우리의 우리를 해방할 수 있는 구원자이냐, 초라하게 오는 것은 구름 타고 와야지 초라하게 오면 그건 하나님 구원자 아니다, 하고 나라 둘로 쪼개졌습니다. 이쪽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아무래도 예수님이 가짜 같아 하는 쪽은 메시아는 그렇게 오는 게 아니야. 메시아는 화려하게 오고 큰 힘을 가져오고 우리나라를 적들에게 이기고 우리에게 부자 만들어낸 게 그런 메시아지. 저런 예수같이 저렇게 자기 몸도 간수 못하고 머리 둘 것도 없는 전세 방 전셋집도 없는 저런 저게 어떻게 우리의 하나님이고 우리 구원자냐? 아니 내가 100% 장담한다. 100% 아니야. 100% 가짜야. 하는 쪽도 있었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 어려운 사람 도와주고 귀신 쫓아내고 주의 말씀 들어보니까 말씀을 딱 들어보니까 이건 진짜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는 말을 하기 때문에 그 말은 맞다 하는 쪽도 있고 두 패로 나누어졌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메시아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뭘 탔느냐? 거창한 말을 타는 게 아니고 노새, 그것도 노새라도 노새 새끼 작은 노새 어른 앉으면 이렇게 주저앉을 것 같은 노새, 노새가 힘들어서 끼윽끼윽 걷는 그 노새. 그런 노새가 또 돈키호테 같이 오듯이 그렇게 노새 타고 온 거예요. 노새 타고 오니까 변변치 않은 사람들 못난 사람들은 “야! 메시아다. 드디어 구원을 이루었다.” 하고 잘난 사람들은 “우우우 엉터리 엉터리 가짜다. 가짜다. 부자되어가지고 와야지 왜 가난하게 오느냐? 그거는 앞뒤가 안 맞다. 분명히 우리를 구원해야지. 저렇게 초라해가지고 뭘 우리를 구원한단 말인가?” 하고 두 패가 생겼어요.
주님은 양쪽 다한테 버림받았어요. 양쪽 다. 메시아가 아니다 하는 쪽으로부터도 버림받았고, 예수님 메시아 맞다 하는 쪽도 버림받았고, 어느 누구한테도 그 환영이 계속되지 않았어요. 예수님은. 예수님은 십자가 질 때 아무도 못 오는 갈 수 없는 길을 갔어요. 아무도 자기를 못 알아보는 길로 갔어요. 그게 바로 뭐냐? 맥없이 잡혀서 아무 소리 못하고 그냥 사형 당했어요. 죽음으로 끝. 모든 것은 주인공이 죽고 말았어요. 주인공이. 드라마 재미 하나도 없어요. 주인공이 죽고 말았어요. 끝났어요. 끝났어요.
나를 살려줄 수 있는 구원자는 예수님은 아니었다. 이게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살려주는 게 아니다. 제자들도 예수님 3년 동안 다니는 거 헛수고 했다. 야 각자 우리 집으로 고기 잡으러 가자. 다 흩어지고 말았어요. 주님께서는 죽어 다 끝났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 반전이 있을 줄이야. 다 끝났을 때 어느 누구도 예수님 알아보지 못했을 때 주님께서는 뭐 똑똑똑 노크도 안 했어요. 그냥 문 열고 들어왔어요. “어떻게 잘 있었냐?” 그러니까 사람들이 “허걱 허걱 죽었잖아요?” “내가 산다 했어 안 했어?” “죽었는데” “산다 했어 안 했어? 니 죽으면 끝이지?” “우리는 죽으면 끝인 줄 알았어요.” “죽음이 시작이야. 죽어야 돼. 내가 죽을 때 너의 생각도 죽은 생각이었어. 니 생각이 안 죽어 있으니까 나를 못 믿은 거야.”
그렇게 해서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성령 받아라 하고 성령 통해서 다시 우리에게 찾아왔습니다. 할 때 그때 주님께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마귀한테 속고 있으니까 속고 있는 인간을 속이기 위해서 주께서 속는 방법으로 이 땅에 오신 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십자가가 영광스럽고 십자가가 자랑되는 거예요. 아예 이제 주무시는구먼. 품에 안겨서. 어제 오신다니까. 아버지. 아버지 부자 만드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가 가게 하신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 우리가 갈 수가 없지만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가 세상이 모르는 그 유일한 길, 좁은 길 그 생명의 길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금도 말씀으로 이끄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오해했습니다. 잘못 생각한 건 수정해 주시고 우리 자신을 위한 예수님이 아니고 예수님을 위해서 우리가 쓰여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그 길이 생명의 길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