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강의

분류 작업

아빠와 함께 2023. 10. 11. 07:27

447강-YouTube강의(분류 작업 요한복음 16:8)20231010-이 근호 목사


제447강, ‘분류 작업’. 성경에, 하나님은 분류하러 오셨습니다. 내 백성과 네 백성, 창세 전에 택한 백성과 창세 전부터 택하지 않은 백성. 분류하러 오셨죠. 그러면 분류를 인간 본인에게 맡기지 않았다는 뜻이잖아요. 분류 작업을 하시는 분이 사람이 아니고 주님이시니까 주님이 일방적인 기준을 내세워서 분류 작업을 하죠.

이것은 인간들이 ‘나 천국 갈 사람이다, 지옥 갈 사람이다’ 나름대로 분류를 하는데 어떤 분류 기준도 하나님께서는 접수 안합니다. 거절합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인간의 분류 방법은 꼭 반드시 자기 자신을 구원받은 자로 전제하고 분류를 하기 때문에 이것은 반칙이죠. 그것은 철저한 자기사랑이기 때문에 그 분류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음 말고 이 세상에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 지옥의 기준은 다 엉터리입니다. 하나님의 아이디어, 하나님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고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거거든요. 그럼 기독교는 어떤가? 기독교도 마찬가지죠. ‘우리 교회 전체가 지옥으로 분류된다 할지라도 그렇게 분류시킨 주를 찬양합니다.’ 이런 교회 봤어요? 그런 교회 별로 없어요. ‘우리 전체를 지옥에 깔끔하게 보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뭐 그렇게 찬양하는 찬양팀 봤습니까? 못 봤죠.

그러니까 찬양하는 나를 천국의 분류에 들어갔다 치고 찬양하는 거예요. 철야 기도하는 우리를 지옥 보내소서, 하는 그런 사람 없죠. 그럼 철야 기도할 때는 기도 시작할 때 철야 기도하고 있는 나는 반드시 천국 가는 사람으로 기정사실화시키고 철야 기도하죠. 헌금도 마찬가지고 전도, 선교도 마찬가지,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이러한 실수를 누가 해왔느냐 하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해왔어요. 우리 중에 누가 높습니까? 자기들은 이미 구원받았고 구원받은 중에서 본선에 올라간 열두 명, 그중에서 누가 탑이 되겠느냐? 금메달 따겠느냐? 그것 때문에 이야기할 때,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너희들이 내 쓴잔을 마실 수 있느냐?”

너희들이 지금 하는 행세는, 세상 정치 권력자들이 하는 행세를 너희가 똑같이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들은 최고가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너희들은 예수님 모시고 천국가면서 또 이중에서 너희들이 최고가 되고 싶다는 그 마음을 너희는 숨기지 않고 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들의 과오를 지적하기 위해서 내세운 인물이 있죠. 그냥 어린아이에요. 그런 어른들의 권력 지향성과 대비해서 어린아이는, 권력이 뭐에요? 일등이 뭐에요? 전혀 모르죠. 심지어 어린아이는 그것도 몰라요. 꼴찌가 뭐에요? 몰라요. 그런데 어른 세계에서 꼴찌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워요. 막 죽고 싶어. 더 살기 싫어, 꼴찌하면. 일등하면? 대단한 만족을 누리는 겁니다. 일등도 모르고 꼴찌도 모르는 어린아이하고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자, 방금 얘기한 마태복음 18장 그 대목에서 예수님의 분류 기준은 방금 뭐라고 제시했습니까? 바로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이게 분류 기준이죠.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예수님이 분명히 그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3절에,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하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인간들은 어떤 시합에 나서느냐 하면, 누가 더 어린아이냐는 시합에 나설 거죠. 누가 더 어린아이처럼 살 것이냐. 전에는 뭐 ‘랍비여’ 하고 어른답게 하다가도 갑자기 ‘랍삐여’ 애들처럼, 혀 짧은 소리해가면서 애들처럼 순진한 척, as if ~인 것처럼.

주님이 기준을 제시하니까 그 기준을 맞추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주께서 내뱉은 모든 말씀은 우리보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가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천국 간 사람은 전부다 어린 아이 같은 사람일까요? 그 말씀은 이 세상에 어른 되어놓고 돌이켜 어린 아이 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에요. 아무도 없는 거예요. 여기 마태복음 18장에 “돌이켜 어린 아이들”이라 할 때, ‘돌이켜’라는 말은 날 때부터 어린 아이 말고, 어른인데 다시 도로 어린 아이 된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도 나오죠. 니고데모가 이미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하늘나라 기준을 이야기해버려요.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천국 못 간다. 저쪽에서는 어린 아이 되지 않으면 천국 못 간다. 요한복음에서는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못 간다.

자, 이 두 말씀의 공통점은 이미 인간은 버렸다는 겁니다. 이건 있을 수 없다는 말이에요. 되돌아가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U턴 안돼요. 너무 지나쳐와버렸습니다. 다시 뒤로 빠꾸해도 소용이 없어요.

아니 그러면, 어린아이는 됐는데 거듭나지 않으면 지옥 갑니까, 천국 갑니까? 예수님의 그 기준을 가지고 볼 때, 이 두 가지 말고 또 다른 기준도 있어요, 있는데 이 두 가지를 볼 때에 두 개 다해야 됩니까, 그 중에서 한 개만 해도 안 되는 겁니까? 라는 또 다른 의문점이 있겠죠.

이걸 일거에 지워버리는 기준을 제시한 대목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8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이 말은 책망하시는 분이 누구냐 하면 성령님이거든요. 성령님이 책망하시는데 기준이 뭐냐 하면 예수님의 말씀에 준해서 책망을 하시는 거예요.

이는 곧 무엇을 뜻하는가? 예수님께서 아까 하신 말씀, 어린 아이 또는 거듭나는 것, 이 모든 말씀은 책망하기 위해서 주신 말씀이에요. 책망하기 위해서. 책망에 대해서 감사하고 고마워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럼 제가 주의 말씀대로 이거 지킬까요 저거 지킬까요? 가 아니라, 책망이나 받아라.

넓은 길로 가지 말고 좁은 길로 가라. 아, 좁은 길로 가면 구원되겠네. 이게 바로 아까 이야기한 또 천국 가는 기준이 돼요. 그러면서 어린 아이까지 되어야 되죠. 거듭나야 되죠. 또 넓은 길 말고 좁은 길로 가야 되죠. 또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돼요. 이거 뭐 한 두 개가 아니에요.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될지. 그걸 한 바구니에 또 다 담을까요? 거기다 교회에서는 한술 더 떠서 추가를 합니다. 삼위일체를 배워야 된대요. 안 그러면 이단 돼서 안 된대요. 지옥 간대요.

정답은 이겁니다. 삼위일체도 다 치우고요. 모든 말씀은 우리를 책망하는데 내 안까지 책망으로 남아있는 자가 구원받습니다. 책망하는 성령이 내 곁에서 물러간 게 아니고 내 속까지 들어왔다는 거예요.

그러면 성도는 어떻게 사는가? 매사에 책망 받을 일만 하기 때문에 그것보다 더 큰 자유는 없죠. 모든 일에 책망 받을 일만 하니까. “이거 할까요?” “너 책망 받을 짓을 하는구나.” “그럼 이거 하지 말까요?” “또 책망 받을 짓을 했구나.” “그럼 이거 안하고 가만있을게요.” “또 책망 받을 짓을 했구나.” “아이고, 몰라. 나 그냥 살게요.” “그래, 그냥 살아. 막 살아. 그래. 바로 그거야.”

막 사는 좋은 점이 뭐냐? 나는 막 사는 인간이기 때문에 더 이상 나를 주시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나에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나에게 희망 걸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직 주님 하신 일만 바라보게 만드는 그 순간 순간. 그것이 바로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책망 받을 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이고, 그 책망을 품게 되고 책망 안에 놓이게 된 사람만 바로 천국 가는 사람입니다.

'유튜브강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남  (1) 2023.10.25
기억  (1) 2023.10.25
안과 너머  (0) 2023.10.11
누구나  (0) 2023.09.20
자살과 치료  (0) 2023.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