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5강-YouTube강의(누구나 사도행전 2:21)20230919-이 근호 목사
제445강, ‘누구나’. 사도행전 2장 21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여기 ‘누구나’에요. 누구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받은 자라고 한다면 자기 자신에게 어떤 의미나 가치를 부여해서는 안돼요. 나는 아무나였다. 나는 진짜 아무나였다. 내 주장, 내 고집과 내 의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울 수 없는 존재였다. “내 뜻은 이렇습니다.”하면 주님께서 “가져가. 가져가. 네 뜻 안 받는다.”하고 내침밖에 없을 정도로 무가치한 존재가 ‘아무나’에요.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비로소 구원받고 난 뒤에 알게 됩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어떠냐 하면, 세상은 다 망해도 자기만큼은 안 망해야 되는 양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구원받기 전에는 아무나가 아니에요.
누구나가 아니라 ‘하나님, 나는 나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나는 나에게 최종적으로 고귀하고 소중한 사람입니다. 나는 나입니다. 나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나한테 가장 소중하다는 이 점에 대해서 하나님도 좀 편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후원하고 격려하고 동조해줬으면 고맙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교회 나가서 하나님을 찾죠.
그 마음이 가득 담긴 것이 바로 기도라는 거예요. 기도하는 당사자가 ‘정말 내가 가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믿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 저는 아직 못 봤어요. 제가 아마 경험이 없어 그렇겠죠. 아직은 못 봤어요. 안 해도 되는 기도를 굳이 한다는 말은 내가 소중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내가 소중하고 나한테 있는 것들, 내 자식, 내 가정, 내 남편, 내 아내, 내 재산, 내 명예, 체면, 내 교회, 위신, 내가 투자한 회사, 내 것이라고 유산 받은 땅, 건물, 과거에 내가 들었던 괜찮은 인상과 평판, 이걸 그대로 지키기 위해서 기도하는 거예요.
특히 연세 많은 사람은 뭐 때문에 기도합니까? 건강. 나는 건강 안 해도 골골해도 괜찮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니야, 이런 마음으로 절대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주여, 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흔해빠진 아무나 속에 일개 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이것 때문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같은 연배인 팔십 이상 된 연배가 있다 합시다. ‘아이고, 그 노인정 할머니 지난번에 코로나 걸려 돌아가셨대.’ 그러면 그 이야기 듣고, ‘으쌰! 나는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이 나를 귀히 여겨서 코로나 안 걸리게 했구나.’ 무슨 바이러스가 코로나가 사람보고 걸리는 게 어디 있어요. 이거는 다 주님이 조정한 거죠. 코로나가 사람보고 찾아가지 않잖아요. 박테리아보다 더 작은 게 바이러스에요. 그런데 자기는 자기 멀쩡함에서 오는 기쁨, 쾌락 이것이 남들이 나보다 경쟁에 밀렸다, 나보다 못한다 할 때 이게 배가됩니다. 그만큼 우리는, 나는 아무나가 아니라는 것이 철두철미하게 우리 마음속에 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인간들이 구원을 원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그 사실을 바로 구약 성경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 중에 보면 요엘 선지자가 있는데요. 그 요엘 선지자가 예언을 할 때, 이스라엘은 망한다는 점을 기정 사실화해서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계시를 전해버립니다.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합당한 조치다. 너희들은 망할 집단이다. 망할만했다. 마땅히 망해야 될 사람집단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쪽에서는 할 말이 있죠. 그럴 것 같으면 우리에게 이스라엘은 영원하고 내 백성이고 내 아들이라는 말씀을 왜 했습니까? 이렇게 망할 것 같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왜 그렇게 성급했습니까? 너희는 내 백성이라 해놓고는, 너희는 아니라 하면 앞뒤가 맞지 않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이 일관성이 있어야 우리가 믿을 만하지. 헤까닥하고 바뀌어버리면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믿을 만한 분이 못 되는 거죠.
요엘보면 2장의 내용이 사도행전 2장 17절에 나옵니다. 요엘 2장 28절,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되어 있죠. 자, 여기에 너희 자녀는 예언한다, 예언. 너희 젊은이는 환상, 환상입니다.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꾼다. 환상, 꿈, 예언 이 모두 인위적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꾸며낼 수 없는 것들이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성도입니까? 신자입니까? 성령 받은 사람입니까? 그걸 어떻게 확인하느냐? 내가 원하고 내가 노리고 내가 꾸며낸 적도 없는, 내가 노림수를 가지고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없는, 기대가 아닌 전혀 다른 추가적인 것이 우리 속에 작동을 한다면 성도입니다. 그 사람들이 성도에요.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풍선이 있습니다. 보통 풍선은 안에 공기 들었죠. 가볍습니다. 그래서 뭐 “풍선 모여라” 하니까 빨강풍선, 노랑풍선, 파랑풍선 모였단 말이죠. 모였는데 허겁지겁 네 번째 풍선이 막 달려오는 거예요. 모습을 보니까 풍선인데 같은 풍선인데 뭔가 출렁출렁 출렁거리면서 오는 거예요. “네 안에 뭐 들었나?” “내 안에 물 들었다.” 이렇게 되죠. 그러니까 다른 풍선이 뭐라 하겠습니까? “어? 우리한테는 없는데 왜 이질적인 것이 네 안에 들어있지?” 이러잖아요. 그 이질적인 것이 성령입니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 같은 사회 직장생활하면서 같이 입사해 일하면서, 한 사람은 그냥 풍선인데 다른 어떤 사람은 자기 안에 성령이 들었어요. 성령이 들은 채 삼성그룹에 입사한 거죠. 성령이 들은 채 엘지그룹에 입사한 거고. 성령이 들은 채 어떤 사람은 학생이 됐고.
다른 사람은 그냥 흔하고 흔한 상식적인 이야기만 주고받으면서 보편적으로 똑같은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성령 받은 당사자는 예언을 이야기하고 환상을 이야기하고 꿈을 이야기하니까 다른 친구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아이, 그 꿈 좀 깨라. 그건 환상이야. 네 주제가 뭔데 네가 예언을 해?”하고 얼마나 욕을 많이 얻어먹겠습니까? 너는 우리하고 왜 안 똑같아? 왕따 시켜버릴라. 막 이렇게 나온단 말이죠.
그럴 때 그런 욕을 얻어먹고 핍박을 받고 쑥떡쑥떡 비난받을 때 비로소 예수님의 구원이라는 것을 감지하게 돼요. 왜냐하면 예언의 내용과 환상의 내용과 꿈의 내용이 딱 하나로 모든 것이 모아지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아무 구원될 자격도 없는 자들이 누구든지 구원될 권한도 없는 그 무엇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이 시대에 보여준 예언이고 환상이고 꿈의 내용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무시다가 풍선 안에 출렁이는 물처럼 꿈에… 여러분들 그런 꿈 많이 꿨을 거예요.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데 내가 다른 챙길 거 뭐 있노?’ 기뻐하고 있는데 꿈이라. 늙은이는 꿈을 꾸죠. 젊은이한테는 그게 환상이 되고. 너희 자녀들에게는 이것이, “엄마, 꿈인데 이게 무슨 꿈이야?” “그게 바로 예언의 성취였단다.”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는 그런 희한한 이야기. 여러분 뱃속에 똥배나 차지 마시고 이질적인 것, 이질적인 것이 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