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이는 바다 230806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더불어서 바다에 갔어요. 바다. 바다에 갔습니다. 근데 이 바다는 굉장히 위험한 곳이에요. 헤엄 좀 친다 해도 바다에 빠지면 죽어요. 바다에 간다는 것은 바로 곁에 죽을 수밖에 없는 거, 죽을 수 있는 그 바로 옆에 죽을 수 있는 그 환경이고 접해 있어요. 바다에 간다는 것은.
그러니까 그들은 바다에 감으로써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바다에 감으로써 우리끼리 우리끼리 꽁꽁 뭉치자. 바다에 빠지면 죽어. 우리끼리 사는 거야. 이 배 안에 있어야 우리가 사는 거야. 하고 그걸 아주 절실하게 경험하는 것이 이제 바다에다가 배를 띄우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갔습니다.
갔는데 제자들은 생각했어요. 예수님과 함께 있으니까 비록 푸른 바다가 있더라도 그 바다가 호수 바다지만 하여튼 넓어요. 있더라도 주님과 함께 있으면 우리는 안 죽어. 그래. 안 죽는 거야. 주께서 살려줄 거야. 그래. 주님과 함께 있으니까. 근데 그때 예수님은 뭐냐 하면 나 좀 잠 좀 잔다 하고 주께서 주무셨어요.
주무시니까 제자들도 생각하겠죠. 봐라. 주님께서 편안하게 주무시는 거 봐. 그 정도로 봐라. 예수님이 봐라. 딱 가니까 이 바다도 예수님이 함께 있으니까 편안하니까 주무시잖아. 우리도 이제 걱정하지 말자. 신나게 노래 부르면서 주무시는 예수님이 깨우지 말고 우리끼리 바다나 건너가자 하고 있는데 갑자기 풍랑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어요. 배 옆에 잔잔하게 있어야 돼. 잔잔해. 잔잔 잔잔 조용해. 조용하게 잔잔. 가만히 있어야 될 그 물결이 갑자기 울렁 울렁 울렁 하더니만 물길이 파도가 치면서 너희 내가 잡아먹자 하는 식으로 파도가 찌익 끄트머리가 꼬이더니만 물결이 꼬이더니만 철썩 해가지고 배 위에 막 덮치는 거예요.
사진에다가 누구 사진에다가 귀때기 때리는 것처럼 이렇게 귀싸대기를 때리는 것처럼 이제는 너희 죽었어. 너희는 이제는 꼼짝 마라. 이게 파도가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지? 내가 먹고 말거야. 치토스 하는 것처럼. 파도가 싹 올라와 물결이 올라와가지고 거기에 있는 배에 타고 있는 걸 웩 하고 내려다보면서 철썩하고 배를 치니까 제자들 열두 제자들이 무서워가지고 무서워요. 무서워요. 물 뜨고 있는 걸 보고 기분 좋다. 더 치자.
파도가 물결 해가지고 하는데 배가 이리로 가니까 우루루 빠지겠다 하면 이쪽으로, 난리도 아니에요. 난리. 배가 막 양쪽으로 흔들리면서 이 바다에 빠트려 죽여 버려야 되겠어. 하면 배가 막 하고 하니까 그럴 때 제자들이 “야 야 야 힘 합쳐. 힘 합쳐. 이건 이겨내야 되는 기라. 안 그러면 우리는 다 죽는 거야. 여기서 다 죽어. 바케스 있지? 바케스로 물 퍼내.” 물 퍼내가지고 휙! 물 막 퍼내니까 파도가 “물 퍼낸다고 되겠어? 야 물 더 갖다 부어.” 또 파도가 쳐가지고 물 양쪽으로 막 펄떡 보니까 물에 이제 잠기게 되는 거예요. 막 잠길 판이에요. 나중에는 “더 세게 쳐. 안 되겠어. 야들 항복 안 하면 더 세게 쳐.” 물 파도가 더 세게 쳐가지고 제자들이 모여가지고 “우리 죽겠다. 여기서 끝나는구나. 여기서 인생 끝나는구나. 이거 죽으면 어떡해?” 했는데 근데 참 우리가 잊어버린 게 있는데 예수님이 뭐 하는 가 한번 가보자.
예수님 보니까 예수님 지금 주무시고 계시는 거예요. 파도치는데 잠은 잘 주무셔. “깨워. 깨워!
예수님 깨워! 우리가 죽었다.” 예수님이 깨서 “야. 내가 잠자고 있는데 왜 깨웠어?” “우리가 지금 죽겠나이다.” “왜?” “지금 파도가 쳐서 지금 배가 기울어진 게 안 보이십니까? 지금 하늘이 시커먼 하늘이 파도가 쳐서 우리가 죽겠습니다.” 지금 이 그림이에요. 지금 죽겠습니다. 이렇게 돼 있거든요.
파도는 이만큼 큰데 배는 작아요. “곧 죽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고 크게 나무라면서 “너희들이 왜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 믿음이 왜 믿음이 없어?” 이렇게 하니까 뒤에서 제자들이 수군수군 하는 거예요. 믿음도 뭐 잔잔할 때 믿음이지. 죽게 됐는데 믿음이 무슨 소용있어. 그래 말이야. 우리는 언제 믿음대로 살았나? 본능대로 살았지.
“너희들이 바로 이만큼 믿음이 없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이 어떠한 역경이 오고 어떠한 위험한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그냥 예수와 함께 있으면 됐지. 예수님 믿습니다. 해놓고는 죽겠다고 내가 죽겠다. 내 죽겠다. 내 살려내라 내 살려내라. 그게 믿음 무슨 믿음이야? 그거 믿음 아니야.” 실컷 나무라 놓고 “알았어. 내가 해결해 줄게.” 하니까 여기 또 파도가 이번에는 누구야? 으르렁거리면서 파도가 다 올라가가지고 누구야? 이렇게 하는데 예수님께서 “파도야!” 파도가 “저 불렀어요?” 갑자기 조용해졌어요. “너희 잔잔할 거야, 안 할 거야? 파도야!” 하고 성경에 보면 파도를 꾸짖었다 했어요. 파도를 꾸짖었다는 거예요. 막 나무라는 거예요.
“파도야!” “예” “니가 여기 내가 배 탔잖아. 내가 창조자 여기 배 탔는데 니가 나를 공격할 거야? 조용히 조용히 조용하게 있어야지. 조용하게. 다시 옛날처럼 아무 소리없이 잔잔하게 있어.” 파도와 바다가 “야. 여기 조용해. 조용하자. 우리 주님께서 명령하시는데 조용 조용 조용해. 조용 잠잠해.” 잠잠해졌어요. 그렇게 하니까 제자들이 놀래가지고 “갑자기 그 파도치는 파도가 어디 갔지? 이상하네. 아직도 이상하네. 이상하네.” 이래 이야기 했어요.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 실은 예수님 누구십니까?” 여기서 저분이 누구시기에 파도도 바람도 그분 말 한마디에 왜 잔잔해지느냐고 이야기했어요. 누구십니까라는 말은 뭐냐 하면은 지금까지 내가 알았던 예수님은 우리가 상상한 내가 지어낸 내게 마음에 든다고 내가 내 마음에 도움이 된다고 착각한 이 엉터리 예수였어요. 진짜 예수님은 뭐냐? 죽음에 직면했을 때 파도가 나를 죽인다고 했지만 사실은 파도가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믿는다는 예수님이 매일같이 나를 죽이라고 달려들게 하시는 그 예수님이 나를 죽임으로써 나를 살려내시는 것을 반복하고 되풀이하시는 그 예수님이 진짜 예수님이에요.
그동안 편안한 나, 편안하게 날 잘 이끌어서 평생을 이끌어 주옵소서. 믿습니다. 예수님을 이렇게 생각했던 예수님은 모조리 다 가짜 예수님이에요. 나를 지키는 예수님이 아니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지켜야 제자들이에요. 예수님은 내가 죽어도 상관없으신 분으로서 계셔야 될 분이 예수님이다. 내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누구신가 드러낸다면 그것조차 영광이다. 이렇게 돼야 그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가 될 수 있어요.
예수님은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제자들은 그걸 믿지를 않았어요. 그것도 안 믿으면서도 뭘 믿었는지 몰라. 그렇게 이야기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찬가지로 참 제자들은 바보야. 죽었다가 살아난 걸 왜 안 믿어? 진짜 같이 생활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죽었다가 사는 걸 믿어야지. 그러면 제자들이 베드로가 휙 돌아봅니다. 모가지 막 돌아가요. 니는 그러면 니도 한번 죽어볼래? 그런 마음이 드는가? 뭘 누굴 욕을 해? 우리는 경험 했어. 니 만약에 배 타고 니 그때 풍랑일 때 니도 한번 들어가봐. 니 있었으면 니는 그러면 여러분. 여러분 걱정하지 맙시다. 주께서 잘 되게 하실 겁니다. 뭐 그런 이야기 할 줄 알았지? 집에 한번 부도 한번 나봐요. 집에 가스 불 안 꺼서 불 한번 나보지요. 애가 열이 한번 나도 난리도 아니야. 난리도 아니야.
항상 우리는 언제 죽어도 할 말 없는 사람이고요.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것은 순전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살려주심으로써 살아있는 겁니다. 따라서 살아오면 내 목숨 아니고 주께서 주신 목숨이니까 내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내가 죽어도 살아있다는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오늘도 우리가 열심히 살려주는 대로 살아갑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매일같이 풍랑이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 늘 확인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