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정리

아빠와 함께 2023. 7. 19. 08:11

주님께 온다는 것은,

 

■자기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그대로 있어야 돼요.  

 어떤 짐도 우리 스스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오늘 마태복음 11장 28절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온 거예요.  짐을 진 우리와 예수님 자신과 일대일로 만나서 문제를 해결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돼요.
주님께서 저주를 받아야 되는 겁니다. 대신 짊어진다고 되어 있어요.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인간들은 이루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만 그 말씀을 이룰 수가 있어요.  마태복음 8장 17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내 문제가 해결돼서 쉬는 게 아니고 내게 있던 짐마저도 내 일이 아니고 주님의 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편히 쉬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쉬게 해주겠는데 조건은 뭐냐 하면 그 쉬게 할 때 네 짐만 없어지는 게 아니고 너 자신도 예수님 앞에서 마치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새로 시작하는 인생이 새로운 피조물이에요. 매일같이 새로 시작하는 겁니다. ‘나 얼마 벌었어’가 아니라 ‘주께서 얼마 주셨어’가 되는 거예요. ‘나 몸이 여기저기 아파’가 아니라 ‘주께서 여기저기 아프게 하셨어’. 항상 주도권을 주님 쪽에서 쥐고 있을 때 그 관계, 그 관계가 바로 아버지와 아들 관계 노선에 같이 합류하게 되는 그런 공간입니다.
아버지와 예수님과 그 사람이 함께 사는 조건 하에 편히 쉬게 해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환난 많은 빌립보 교회에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네가 환난을 당하나 항상 기뻐하라.  
■왜냐하면 나는 그동안 수고하고 무거운 짐 때문에 주님도 몰랐죠. 하나님도 몰랐죠. 심지어 나도 몰라요. ‘그저 이 문제만 해결한다면 나는 어떤 신이든 믿겠습니다’는 식으로 자기중심으로 살았는데, 주께서 우리의 짐을 다 해결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애초부터 내 짐은 따로 없었고 주께서 나를 자기 사람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거예요.
나에게 이런 인생의 힘들고 무겁고 어려움을 준 것은, ‘우리 새로 시작하자. 네가 아는 너 말고 내가 오늘 새롭게 만든 나로 새로 시작하자. 그래서 우리 함께 살자.’ 그러한 취지로 주께서 편히 쉬게 해주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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