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인간은 육입니다. 육에서 나오는 그 어떤 것도 육을 영으로 바꾸어주지 못합니다.
■ⓑ필히 말씀의 완성인 성경 속을 경유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물 길으러 온 사마리아 여인을 예수님께서 개인적으로 만나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인의 입장에서는 물 길으러는 것이 조금도 거짓이라는 생각을 하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과거사를 거론합니다.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요 15:16-18)
■ⓒ이처럼 예수님에 의해서 여인의 과거사가 들추어지면서 그, 여인은 진짜 예수님께 속한 인물이 됩니다. 이게 거짓이 아닌 진실입니다.
설교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3:13-15)
성경 속에만 예수님의 믿음이 들어있고, 성경 속에서만 그것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된다 성경 말씀에 들어오려면 바로 우리가 남들을 속이고 그리고 거짓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을 하고 성경 속에 들어와야 돼요, 우리 자신이.
십자가 사건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외에는 다른 영생이 없다
■㉮ 로마서 3장 4절에 이렇게 되어 있어요.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모든 인간은 거짓된 거예요. 엉터리다 이 말이에요. 인간은 자체가 엉터리고 속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 복과 저주가 뒤바뀌어 있습니다.인간들이 생각하는 그 복이라는 것은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복이라고 여기거든요.하나님과 인간 쪽의 복과 저주가 완전히 바뀌어 있기 때문에내가 되고 싶은 것을 해주지 않는 게 복이고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바로 저주가 되는 겁니다. 안 아파야 되고, 부자 돼야 되고, 가정이 화목해야 되고, 일체 사고 나면 안 되고 사기당하는 일 없는 것, 이게 바로 저주받은 마음 자세입니다.
■㉰ 우리 자체가 이걸 바꿀 수가 없어요.
빌립보서 3장 20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우리의 호적이 하늘나라 호적이 되어 있지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우리 자신이 거짓되고, 거짓된 자체가 ‘육’이기 때문에 어떤 조치를 해도 육적으로만 조치를 할 뿐이에요.
■㉱ 인간은 말을 하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본인이 모르게 되어 있어요. 인간 자체가 거짓이기 때문에 인간이 말을 한다는 것은 자기의 거짓임을 그대로 드러내는 겁니다. 자기의 거짓임을.
왜 인간은 거짓말을 하느냐?
■인간은 참말을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래요. 거짓을 싫어하고 참말, 진짜 바른 말만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 그 바른 말은 어디서 나오는가? 인간사회의 경험에서 나온 겁니다. 경험이란 이 세상 권세 잡은 자의 권세 아래에서의 경험입니다. 권세 잡은자! 사탄입니다. 악마입니다. 악마는 참말 외에는 할 줄을 몰라요. 거짓말을 할 줄 모릅니다. 어디에서? 인간세계에서. 인간세계에서 참 말하는 것은 악마밖에 없어요.
■그러면 반대는 뭐냐? 인간 세계에서 거짓말만 하는 것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어요? 우리가 가짜 예수를 제조해서 가짜 예수를 믿고 있는 겁니까? 사탄으로 안에 내용물이 꽉 차 있는 가짜 예수를 믿고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 자체가 거짓인데. 우리 자체가 거짓이에요. 육적인 인간의 특징은 뭐냐? 인간은 어릴 때부터 어떤 타인에 대해서 호감을 느낄 때는 그 사람이 내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내가 채택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에요. 내게 기분 좋게 하는, 내가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가진 자에게만 내가 손을 내밀게 되어 있어요, 인간은.
예수를 믿든 하나님을 믿든 내 맘에 드는 하나님, 예수를 믿게 되어 있어요. 예수 믿는다는 것만큼 거짓말이 없어요.
그러니까 성경에 들어올 때는 예수 안 믿고 들어와야 된다니까요.
■내가 믿는 예수를 버리고 성경 속에 들어와야 돼요. 그러면 성경 속에 모든 것이 “네가 거짓되다.” 할 때 “오케이, 거짓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돼요. 자꾸 신자라고 사칭하지 마시고요.
욥에게 하나님께서 친구들을 붙여준 것은 거짓과 참은 견주어 봐야 알기 때문이에요. 겨뤄 봐야, 견주고 같이 옆에 대조해봐야 알아요. 우리의 거짓됨은요, 예수님이 우리 속에 개인 교습해가지고 예수님과 우리가 견주어 봐야 내가 거짓인 걸 알아요. 성경 자체가 예수님의 말씀이 완성되는 거거든요.
성경 속에 들어온다는 것은 이미 우리는 거짓된 자로 소환된 겁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 들어오지 않고 성경을 외부에서 관찰하고 관람하고 있어요. 신학적으로 분석하고 내용이 어떻다 저쨌다 이야기하고. 우리의 속 경험이 얼마나 거짓되냐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육적이라는 사실은 성경 안에 들어와 성경 안에서 새로운 체험이 있어야 됩니다.
■민수기 2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으로 개인 교습을 시킵니다. 무엇과 더불어? 불뱀과 더불어서. ‘불 뱀이 딱이야. 딱이야, 불뱀이 딱이야. 너희들에겐 불뱀이 딱이야.’ 불뱀과 더불어서 네 속에 있는 거짓됨을 바깥 현실화시키는 중인 거예요, 우리의 거짓됨을 감출 생각을 못 하고 그걸 드러내서 바깥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특별히 이스라엘에게만 사적으로 교습해주는 거예요. 개인 교습 해주는 겁니다. 실제 생활 속에서 매일같이 농사지으면서, 사업하면서, 직장 다니면서, 우리가 얼마나 거짓된 존재인가를, 우리가 얼마나 악마가 말한 것을 진실로 여기면서 살아온 그런 속마음을 지녔는지요.
■부자고, 안 아프고, 그리고 무언가 가정이 화평할 때 그때서야 하나님께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는 이것을 보고 악마가 우리를 얼마나 놀려댔겠습니까. “이 가짜야, 이 가짜야.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이 인간들아. 그러니까 네가 내 소유지. 그래서 나와 함께 지옥 가는 거야, 너희들은. 딱이야. 지옥 가는 모습이 딱 그 모습이야.”
■우리는 주님 앞에 적치물이에요. 치워버려야 돼. 방해물, 교통방해물,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방해 놓은 방해물로 악마가 딱 주님 십자가 앞에 십자가 가리는 용도로 설치해놓은 존재가 우리 존재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그걸 치워버리는 거예요. 이 거짓된 거 치워버려요.
성경말씀은 줄줄 외운다고 말씀이 아니고 그게 현실로 경험돼야 되는 겁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욥의 자리에다가 메시아를 꽂아주려고 하는 거예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비난을 당하는 분으로써 장차 우리의 구원자가 옵니다. 그러면 거기에 들끓는 예수님 주변에 있는 오늘날 우리까지 포함한 모든 인간들은 욥의 친구들이죠.
■요한복음 21장 15절에 베드로가 대하는 태도가 나옵니다. 주님이 물었거든요. “시몬아,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문제를 던졌어요. 그러면 이 거짓된 인간이 주님 앞에서 어떤 태도와 자세를 가지고 살면 됩니까, 에 대한 답변을 베드로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건 주께서 아시잖아요.” ‘우리가 얼마나 거짓된 걸 이미 주께서 꿰뚫고 있다는 것을 제가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라는 뜻이에요.
‘따라서 거짓된 것이 거짓된 나의 인생의 주도권을 쥐면 안 된다는 사실을 제가 알게 되었습니다. 이 바통을 넘겨드리겠습니다. 주께서 아십니다. 주께서 하고 싶은 대로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라고 지시만 내리세요.’ 거짓된 게 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주님의 지시 따르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 지시 따랐다고 해서 우리가 진실 된 것은 아니에요.그 지시에 따름으로서 미처, 마저 몰랐던 거짓됨이 죽을 때까지, 육신이 살아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바깥으로 경험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되고, 감사해야 돼요. 왜? 우리 호적 정리가 됐기 때문에.
우리 호적 정리가 동사무소가 아니고, 주민 센터가 아니라, ‘예수 안’에 이미 호적이 정리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성도에 있어서 모든 인생에 모든 문제는 근원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제거되었습니다. 빰빠라밤 빠밤~! 축하드립니다! 모든 문제는 해결됐어요. 암에 걸리든 갑상선 암이든 사기를 당하든 보이스피싱을 당하든 그게 아무 문제가 아니에요. 끝났어요. 끝났습니다. 호적 정리가 됐어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이미 꽂혀버렸습니다. ‘너는 죽었고 너의 생명은 하늘에 있는지라.’
우리 뿌리가 하늘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걸 골로새서 3장 5절에서는 탐심이라고 하고 우상숭배라고 했어요.
■“쓸데없이 아직도 네가 참될 수있는 가능성을 내다 보냐? 아직도? 아직도? 그렇게 너는 너를 몰라?” 욥이 13장 1절에 또, 계속해서 친구들이 거머리같이 달라붙어서 “네가 죄지었기 때문에 벌 받았잖아.” 뭐 이렇게 달라붙는 거예요.
욥은 다른 하나님으로 교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감 잡게 되지요.
■하나님을 교체했다는 말은 내가 교체됐다는 거예요.전에는 진실 된 내가, 보다 진실 됨을 더 추구하게 되면 진실 된 천국 간다는 그런 사고방식만 있었는데 이제는 방향이 그쪽 방향이 아니고 반대로 바뀐 거예요. 매일 같이 나로 하여금 거짓된 모든 것을 거짓되게 토해내게 만드는 그런 하나님, 어디 없습니까? 그런 분 없습니까? 왜 없겠어요? 어디 있는가? 성경 속에 있죠.
■시편 14편 1절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이렇게 되어 있죠. 시편 5편 6절에 보면 거짓말하는 자는 주께서 멸하신다, 했거든요. 여기에 대해서 성도가 아닌 자들은 ‘하나님께서 거짓말하는 거 싫어한다, 그렇다면 난 바른 소리, 참말을 해야 되겠네.’ 이거는 백 프로 지옥 가는 불신자입니다.
○그러면 성도라면 어떻게 하느냐? 아까 제가 말씀드린 베드로의 처신처럼 그렇게 처신하는 거예요. 5장 11절에 보면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께 피하는 거예요. 주님께 피하는 겁니다. 주님께 피한다면 주께서 준비한 것이 뭐냐? 시편 19편 3절과 4절에, 2절부터 보면,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한다고 돼 있잖아요.
○이미 인간 빼고 나머지 모든 피조물들은 진짜 하나님에 대해서 이미 소식을 자기들끼리 전하고 있었어요. 인간들만 선악과 따먹고 악마 편이 돼 타락해서 몰랐던 거예요. 그런데 이 모르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리는 소리를 집대성해서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제공된 것이 뭐냐? 이게 율법입니다. 흩어져 있는 소리를 하나로 집약시킨 것이 율법이에요.
■시편 19장 계속 나오는 이야기가 그 이야기인 거예요. 율법이고, 그 율법의 핵심, 율법 중앙에 제단이 있어요. 성전이 있어요. 성소가 있어요. 그 제단이 건축물인데 이 건축물이 인물로 바뀝니다. 시편 22편 1절에 나와요.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 세상은 다 거짓된 것입니다. 거짓됐는데 이 자연 세계는 거짓되지 않은 하나님의 소리를 자기들끼리 소통하고 있었어요. 자기들끼리 소통하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이스라엘만큼은 특별히, 특별히 율법이라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일으켜 시내산까지 오게 해 율법으로 주었습니다.
그 율법, 십계명 안에 들어있는 내용 중에 네가 거짓 증거 하지 말라고 되어 있어요. 거짓말 하지 마라, 이거예요. 이미 속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인간들이 속고 있다는 뜻이에요. 지키라는 게 아니라 그 율법이 너희가 평소에 하는 짓거리가 속는, 거짓말하는, 십계명을 위반하고 있는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주께서는 율법을 주신 거예요.
그 율법의 핵심이 뭐냐? 제사법이에요. 제단이니까. 제단!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세례 요한이 뭐라고 하냐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고 했어요.’ 어떤 양이 가는데 그 양이 뭐를 짊어지고 있는 거예요. 그게 보이는 거예요. 누구에게? 세례 요한에게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거예요. 세상은 죄 밖에 없으니까, 그 죄를 예수님이 지고 가고 있는 거예요.
이게 성경 속의 내용이에요. 성경 속의 내용에 가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 예수님의 성경의 핵심이고 그분이 흘린 피가 전부에요. 성경 내용의 전부입니다. 세상 죄 때문에 돌아가신, 거짓된 우리 때문에 피 흘리신 그분의 내용이 성경 내용이 전부에요.
그렇게 해서 시편 22편에 왕이 됐는데 그 왕이 어떤 왕이냐? 고난받는 왕입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래서 제가 처음에 이야기했던 속임이 뭐냐? 예수님의 고통을 모르는 게 ‘속임’이에요. 예수님의 고통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 악마는 인간을 인간의 사적인 고통에 매료되게 만들었어요. 예민하게 살도록 만들었어요. 뭐 “바람 불어서 과일 다 떨어지고 이게 뭐야?” 그런데 신경 되게 쓰게 만드는 거예요. “애 과외해도 성적 자꾸 떨어지고.” 이런데.
시편 30편 3절에 보면, 세상 죄를 진 어린양으로 오신 그 분이 우리에게 해주는 것이 나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예수님에게 있었던 일만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 몽땅 거짓말입니다.
짜장밥을 가지고 짜장밥이다, 이게 거짓말이에요. 그러면 짜장밥을 보고 뭐라고 해야 거짓말이 안 되는가? ‘짜장밥을 먹으면서 짜장밥이라고 이야기하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여기는 나는 죽어 마땅하다.’ 이렇게 돼야 이게 진실이에요. ‘3 빼기 2는 1이라는 것이 맞는 답이라고 여기고 있는 나는 죽어 마땅합니다, 주여.’ 이렇게 돼야 되는 거예요.
이걸 가지고 오늘 본문에서는 속이는 자들은 속고 속이지만 반드시 뭘 경유해야 된다?성경을 경유해야 진실이에요. 성경이 율법이잖아요. 율법을 통해서 우리의 거짓됨을 알고 그 성경 안에서 우리 때문에 애매하게 억울하게 피 흘려 죽었던, 세상 죄를 지고 가서 죽었던, 그냥 죽는 것이 아니고 세상 죄를 지고 죽었던 그분을 만나는 거예요. 그분을 만나면서우리의 속에 있는 거짓된 것이 예수님을 어떻게 아프게 하고 죽게 만들었는지 그 경험을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혹독하게 접해야 하는 거예요. 이것만이 진실이에요. 이게 진리입니다. 행동 행동 하나 하나를 통해서 자기 속에 있는 과거사가 경험되는 거예요.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 속의 거짓됨을 주님이 자기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그 십자가 사건 앞에 소환시켜 경험시킬 때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거예요. 너 때문에 내가 죽었다는 그 경험요, 그 경험! “너는 아직도 주도권을 네가 쥘래? 네 인생의 주도권을?” 그걸 우리에게 묻는 겁니다.
“심 봤다.” 물 길러 왔다가 물동이 버려두고. 물 길러 와서 물동이를 버려두면 어떡해요. 물동이를 버려두고 “나는 메시아를 만났다!” 하죠. 그게 억지였습니까, 기쁨이었습니까? 기쁨이었어요. 감격이었어요. 자기 호적 정리가 된 겁니다. 내가 주도권을 쥐는 그것이 이제는 내 속에 예수님이 샘물이 되어서 예수님의 성령이 나오는 그러한 장소로 주께서 나를 거기다, 주님이 내 안에 꽂아주신 거예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 죽고 난 뒤에 무덤에 갑니다. 무덤에 왜 갑니까? 육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내가 분명히 죽은 지 사흘만에 살아난다고 했지? 이게 진실이라고 했지?” 안 믿습니다. 육은 눈으로 확인해야 해요. 확인해도 몰라요. “아, 시체 누가 가져갔구나.” 이래요. 이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주님의 피 앞에서 개인 교습을 받아야 사람이 새사람이 되는 것이지 성경 백 독, 천 독 한다고 해서, 인생 오래 산다고 해서 새사람 되는 것이 아니에요. 주님의 십자가 앞에 우리는 꿇어앉아야 해요. 안 꿇어 않고 평범하게 앉아도 괜찮아요.
십자가 앞에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 무슨 의미인지, 누구 때문에 흘린 피인지 알 때, 그 관계가 속임이 아니고 그게 바로 진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 안에 담겨 있었고 그래서 성경이 구원의 능력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자기 자신을 배워온 것이 그럴싸하게 꾸미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음을 자인하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존재든 상관없이 이미 십자가 피 흘리시고, 세상 죄를 해결하시고, 근원적으로 모든 문제를 영생으로 바꿔주시고 그리고 난 뒤에 우리를 소환시켜주시니 그 주님 십자가 앞에서 십자가만 자랑하고, 십자가만 보이는 생활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