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세계, ‘앞으로 잘 될 거야’하는 세계가 뭐로 포위되어 있다고요? 부정성으로 포위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 긍정에서 빠져나와야 되는데 우리가 손 놓고 있어요. 아무것도 못해요. 할 수가 없습니다.
할 수가 없는데 요한복음이라는 것이 말씀이잖아요. 말씀이 주어졌다는 것은 앞으로 말씀대로 그대로 우리에게 코스 잡아서 적용되는 거예요, 말씀대로. 그 말씀이 요한복음 1장에 보게 되면 ①예수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간다, ②성령이 임한다, ③성령으로 완성하신 분이 자기에게 주어진 성령을 우리에게 그대로 세례 주는 거예요.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처럼 너희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성령 오지 않으면 죽는다. 제대로 죽는다, 가 되는 거예요. 죽음과 삶을,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님이 기준점으로 정해놨다는 이것이 요지부동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요한복음을 끝내면서 다른 것도 알아야 되지만, ‘확정되었네, 진리가.’ 이것만 알고 있으면 돼요. 모든 것이 확정되었다는 거예요. 난 이제 예수 버리겠어. 버리든 말든 마음대로 해요. 네가 버려도 마지막 때 다 불러낼 거요. 진리는 뭐냐? 이미 다 이루었어요. 확정되었어요.
그게 통보 들어오면 구원받고 그게 통보가 안 오면 가시던 지옥 길로 그냥 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통보가 오게 되면 점차 내 몸이 안개가 되고 흙이 되고 자꾸 내게 의미 있던 것, 내가 중요시했던 가치, 나는 누구의 남편이다, 누구의 아내다, 나는 집사다, 이게 점점 더 희미하게 delete, 지워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우리 애는 1등 해야 돼, 이게 별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커서 벤츠 타야지, 벤츠를 타든 뭘 타든 그게 별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국가라는 타자, 이 타자 안에서 국가로 형성된 그 질서로부터 내 자리를 배정받아야 비로소 나는 산다고 여기는 것, 예수님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현재 눈에 보이는 국가로 인하여 나의 어떤 특정 자리를 확보해야 비로소 나는 제대로 산다, 행복하다, 내 미래가 열렸다, 라는 식의 이러한 인간성, 이게 바로 본래 우리 모습이에요.
종교도 국가 밑에 있으니까요. 교회 다닌다고 하다가 예비군 훈련 나오라 하면 나가야 되죠. 누가 힘이 센데요? 국가가 힘세지, 교회가 힘셉니까? 교회 까불다가는 푸틴이 와서 밀어버리는데요. 크리스마스 때 푸틴이 미사일 쏘고 이러는데요. 국가가 더 세지, 종교는 나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국가가 나를 영원히 보호하는 타자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성령을 받게 되면 성령은 “다 이루었다. 내가 이제 너의 자리를 지워줄게.” 너의 자리를 지워주게 되면 나도 희미해지지만 이 타자의 자리도 희미해져요. 복음 없는 친구, 복음 없는 일가친척, 이거 별 의미 없습니다. 저건 뭐 어둠에 속하는데… 이런 식으로 의미 없어요. 국가가 지시하면 “예, 예.”하고 따라가기는 하지만, 가만히 있는 성령께서 자신을 주께서 이끄시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