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1장17절에 나옵니다. “내가 볼때에 그 발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이게 뭐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죽은 자 같이 되었다’는 거예요. 사도 요한은 분명히 자기가 사도에요. 사도인데 주님께서 그 사도성은 남기고 사도라고 여기는 사도 요한의 자아를 없애버린 거예요. 죽은 자 같이 된 거예요. 그래서 그다음부터 나오는 요한계시록 내용은 뭐냐? 창조했던 그 역순입니다. 창조를 7일만에 창조했잖아요.
그것을 부수는데, 그걸 해체하고 붕괴하는데 일곱인, 일곱나팔, 일곱 대접, 7 의 숫자로 거꾸로 뒤집어서 펌프질 해서 다 뭉개버려요. 마지막 남은 것은 바로 혼돈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의 그 혼돈, 어두움이 있는 그 혼돈, 그걸로 되돌려 버려요. 모든 것이 와르르 다 무너지는 거예요. 와르르 다 무너지는 겁니다. 그 방 구석구석에 그들의 추억들이 담겨 있어요. 그런 것들이 다 무너지는 거예요. 나의 추억이, 사정없이. 왜? 그것은 허락받지 않은 창조의 바탕위에 인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려고, 스스로 인생에 책임지려고 애썼던 모든 흔적이기 때문에. 그런 인간은 안 받습니다.
마귀 있는 자리에서 나온 게 뭐냐?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 입니다. 주님께서는 유월절의 능력으로 그 책임지는 그것을 빈자리로 만들어 거덜내지요. “책임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너는 죽어 마땅한 게 더 살려고 책임져? 죽어 마땅해!” 그 빈자리를 만들고 거기다가 예수님, 아기 예수를 거기다 담아버려요. 안나와 시므온처럼 고백하듯이 아기 예수를 담아버려요.
왜 성인 예수가 아니냐? 아기 예수로 해야 아기 예수가 저절로 커가면서 우리가 하지 못한 것 다 하시기 때문에 아기 예수는 이미 시작된 것으로 종결났어요. 십자가까지 다 지실거니까요. 아기 예수가 있으면 하늘나라에서 이번에 뭘 찾는가? 우리 속에 아기 예수 있는가 찾습니다. 인물이 얼마나 좋으냐, 교회 몇 년 봉사했느냐, 그거 찾지 않아요.
네가 평소에 이 땅에 살면서, 지옥 같은 세상에 살면서 아기 예수 때문에 함께 감사하고 기뻐했는가를 찾아요. 그러면 그 아기 예수의 구조, 특히 아기 예수가 나중에 십자가 지시잖아요, 그 십자가를 찾는 거예요. 복음은 십자가니까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게 있는가를 찾는겁니다.
'내 생각 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앙의 실패 (0) | 2023.01.16 |
---|---|
때가 단축하여진고로 (1) | 2023.01.16 |
하나님에 의해서 주도되는 실패의 여정 (1) | 2023.01.16 |
영생을 취하라 (0) | 2023.01.11 |
복음이란 우리가 믿음없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 (0) | 2023.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