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6:11-12 영생을 취하라
■하나님께서는 일관되게 일하십니다. 창세기 3:24에서,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라는 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확정하셨습니다. 즉‘인간에게는 영생 안 주신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영생을 취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경로로 인간에게는 영생이 허락되는걸까요? 영생이 주어지는 것은 ‘믿음의 선한 싸움’의 결과입니다. 이는 ‘믿음의 선한 싸움’이 없는 자는 그 어떤 경우라도 영생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즉 주어지는 영생의 성격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유발한다는 겁니다. 아담 부부는 선악과실을 그냥 입으로 따먹으면 그만이지만 생명나무는 그냥 입으로 따먹을 열매가 아닌 겁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의 상대는‘육체’입니다. 갈라디아서 6:8에 보면,“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육신, 혹은 육체에서는 성령님의 일에 반대되는 요소가 계속 뿜어져 나옵니다. 그동안 인간들은 자신의 육신에 준해서 ‘자아 중심’으로 생활해 왔습니다. 그런데 ‘자아’가 싸운다는 것은 이미 선악과를 따먹고 획득한 선악에 관한 지식을 지켜내기 위한 싸움입니다. 이는 누구든지 나의 선과 악의 지식에 시비걸고 부정하면 일체 봐주는 것 없이 곧장 싸움에 돌입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말입니다. 인간과 인간들 사이에서는 선악지식으로 충분히 능력만 있다면 의롭게 자기다운 삶을 내세울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특징이 ‘영생이 아닌 것’입니다. 즉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재주는 자꾸만 ‘영생 아닌 것’만 내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익숙해진 방식을 지켜내기 위해서 인간은 이 삶의 방식을 공격하는 모든 견해에 대해서 사정없이 배척해 왔습니다. 바로 거부해야만 했던 쪽이 영생의 주님이십니다.
■이러니 성도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믿음의 선한 싸움터’에 가담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십자가마을 "복음의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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