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에 예일 대학에서 밀그램(Stanley Milgram)이라는 교수가 실험을 했는데요. 실험을 이렇게 했어요. 신문광고내서 심리 실험하는데 돈 줄 테니까 오라. 실험할 때 여러분들이 신청하면서 두 종류 중 하나, 학생이 되고 싶은 사람, 교수가 되고 싶은 사람 혹은 교수 조수가 되고 싶은 사람 정해놓고 할 때 학생들 대부분이 교수나 교수 조수가 되고 싶어해요. 실험하는데 학생부분하고 교수와 교수 조수부분하고 나누어서 한다고요.
그러면 이 밀그램 실험자체가 피험자를 속이는 거니까 어떻게 했느냐 하면, 하나는 교수 역할, 하나는 교수 조수 역할을 해요. 그리고 학생 역할이 있다고 쳐놓고 둘이 해가지고 학생이 단어 시험 치면서 단어가 틀릴 때마다 전압의 강도를 높이는 거예요. 처음에 하나 틀리면 처음에는 약한 전류가 흐르게 해서 15V에서 점점 높여 120V로 한단 말이죠. 그렇게 할 때 교수가 말하는 거예요. “내가 다 책임질테니까 더 올려. 올려.” 그럼 둘다 실험하는 사람이지만 조수는 교수역할 하는 사람을 보면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이 언제 죽느냐 하면 450V 넘어가면 죽어요. 그러니까 처음 단어 틀릴 때 약한 전기충격에는 아무 소리 없어요, 약하니까. 그런데 180, 200 넘어가니까 칸막이해놓은 너머로 학생들이 “짜릿짜릿해요.” 이런 소리가 들려요. 그러니까 조수가 자꾸 눈치 보는 거예요. 그러면 교수 역할 하는 실험자는 “더 해. 더 해. 내가 책임질테니까 더 해.” 이렇게 되는 거예요. 교수 역할도 진짜 교수 밀그램 눈치보고. “더 해. 더 해.” 시키는 대로 더 하는 거죠. 나중에 400 넘어가면 학생은 죽겠다고 비명을 지르고 하다가 600 넘어가니까 조용했어요. “아, 죽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해.” “괜찮아. 내가 지시했으니까 내가 책임져.” 나중에 보니까 학생은 없고 녹음기 틀어놓은 거였어요.
그것은 뭘 의미하는가? 인간은 사람이 죽든 말든 책임자가 따로 있으면 자기에게 책임이 전가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인간은 어떤 짓도 할 수 있다는 걸 실험한 거예요, 어떤 짓도 (밀그램의 복종실험).
■이 실험은 왜 그렇게 했느냐 하면 아이히만(Adolf Eichmann)이라고 독일의 중령인데 육백만 유대인을 죽인 수용소로 이송하는 책임을 진 최고 실무자에요. 그 사람이 전쟁 끝나고 아르헨티나로 도망가다가 이스라엘 정보부에 걸려서 잡혀왔는데 이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라는 여자 철학가가 취재하면서 논문을 쓴 게 있어요.
그 논문에서 주장한 것이 유명한 말인데 이거에요. ‘악의 평범성’. 악한 사람은 인상이 사나운 게 아니고 아주 평범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아이히만에게 “네가 왜 그런 짓을 했는가? 육백만이 죽는 걸 알면서도 왜 그런 짓을 했느냐?” 물었을 때, 나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했다는 거예요.
자기는 루터교 신자로서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겁니다. 양심껏 살았고 네 이웃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얼마나 착한 사람인지. 이웃들이 증명해 줄 거라는 거예요. 진짜 이웃들이 증명해주고 부모한테 효도하고 이웃들에게 친절하고 해요. 그러나 자기 임무가 공무원이잖아요. 시키는 대로 하라 하면 하는 거예요.
여기서 한나 아렌트가 무엇을 정리했느냐 하면 ‘악이란 시스템(system)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걸로 규정한 거예요. 악이라는 것은 현재 자기를 둘러싼 환경 시스템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시스템을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왜 그 시스템이 나쁘다, 옳다를 왜 그렇게 구분 못하느냐? 이게 분업화, 세밀한 분업화의 세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네가 하는 일, 내가 하는 일을 서로가 몰라요. 알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업무가 쪼개져서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그 업무에 충실한 사람은 다른 업무와의 연관성을 다 알지 못해요. 그러니까 내가 한 행동이 결과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는가에 대해서 일하는 사람은 그걸 모릅니다. 알 수가 없죠.
김 정은 사무실에 계단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만약 미국 폭격기가 김 정은 사무실을 폭격한다면 그 아주머니는 왜 죽은 거죠? 그 아주머니가 미국 폭격기의 폭격에 대해서 뭐 압니까? 그냥 계단 청소했을 뿐이죠, 계단 청소.
한번 적어볼게요. ‘과도한 분업체제가 책임 소재를 애매하게 만든다. 즉 조직이 커질수록 양심이나 자책, 심의가 작동하기 어렵다.’ 이게 오늘날 현대 조직사회입니다. 왜 인간 개개인은 착하기를 원하고 선하고 바르게 살기를 원하고 내가 나쁜 죄인이라는 소리는 듣기 싫으면서 왜 사회에 나가면 갑자기 개인의 선함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없는가? 왜 없는 거예요?
첫째 강의와 연관해서 보면 과도한 분업체제로 인해 효율성, 조직의 효율성, 능률성이 증가하잖아요. 조직이 더 커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죠. 조직이 커진다, 이건 뭐냐 하면 힘을 더욱 비축할 수 있다 이 말이잖아요. 결국 여기 나온 단어가 뭡니까? 힘이죠. 인간의 모든 시간과 공간 개념은 무엇과 관련되어 있다? 힘을 키우는 것과 관련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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