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께서는 예수님의 일이 다 마감이 될 때 성령이 와요. 뭐 미진하게 아직 남아 있고, 몇 가지는 덜했고, 이런 게 없어요. 온전히 예수님이 홀로 모든 일을 다 완성을 했기 때문에 완성했다는 그 증거로써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 뭐냐? 성령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았다, 하는 것은 우리가 추가해서 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기도, 헌금, 전도, 예배, 어떤 것도 더 추가할 필요가 없어요. 착한 일, 이런 걸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면 이런 것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나는 뭐가 되는가?
나는 바로 주님으로부터 성령을 받게 되면 죄의 종에서부터 자유함을 얻는 자립자가 되는 게 아니고! ‘아니고’가 중요해요, 아니고, 의의 종이 되는 거예요, 의의 종. 전에는 죄의 종이었더니 지금은 의의 종이 된 겁니다. 이러나저러나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자아라는 것은, 그것은 악마의 아이디어기 때문에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에요.
그런데 이미 인간은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만 챙기면 이익이라는 이런 입장, 악마가 그런 식으로 또 귀신을 보내서 우리에게 작동을 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주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를 타자화, 타자, 남, 내가 나를 볼 때 남으로 여기게 만들어줘야 우리가 더는 내가 나에게 주인공행세를 안 하게 되는 겁니다. 내가 나한테 남이에요. 내 일생이 남의 일생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돼요.
내가 타인이 되는 조건 하에, 나마저 나에게 타인이 되는 조건 속에서 우리는 소멸됩니다. 이것을 구약의 갈렙과 여호수아가 잘 보여주고 있어요. 갈렙과 여호수아, 약속의 땅에 가면서 그 두 사람은 알았어요. 이 이스라엘이 우리의 나라가 아니고 주님의 나라인 것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그 나라가 가는 곳은 우리 인간들 입장에서는 알 수 없는 곳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어요. ‘앞에 강대한 나라가 있든, 어떤 대단한 멋있는 나라가 있든 우리가 뚫고 갈 어떤 책임이나 그런 것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알아서 하실 것이다.’ 그게 뭐냐 하면, 갈렙과 여호수아의 믿음이었습니다.
내 나라가 아니거든요. 우리가 들어가려고 소망한 나라도 아니에요. 그냥 주님만 알고 있는 나라에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그냥 그 나라에 그냥 합류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굳이 그 나라에 대해서 알 필요가 없어요. 아니 우리가 나에 대해서 굳이 알 필요가 없어요. 나 자신에 대해서 내가 남이에요. 남이기 때문에 내가 착한 일 한 것도 잊어버리세요. 나쁜 일 한 것도 생각하지 마세요. 왜? 나는 나에게 남이니까.
이게 되지 아니하면 우리는 평생 귀신한테 매달려서 농락당합니다. 목사라는 귀신한테 농락당해요.
사람은 이 땅의 귀신의 앞잡이가 되어서 특징이 뭐냐? 살고자 하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우리 주님은 뭐냐? 죽고자 하라는 거예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눅 14:27) 죽고자 하라는 거예요. 내가 죽으니까 나 따라 죽으라, 하는 것이고 우리 인간의 본성은, 일곱 귀신 들린 본성은 살려고 하는 것이고. 그러니까 이게 안 맞는 거예요. 나를 살려주시는 주 예수를 찾고 있어요. 믿고 있습니다. 나를 살려주는 주 예수, 나를 살려주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찾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너는 우리를 타자화시켜요. “너는 너에서 손 떼라. 너에 신경 쓰지 마. 너는 소실되어야 되고, 소멸되어야 될 그냥 흙이야. 너 그거 몰랐어? 너는 ‘아무나’의 너는 그 자체가 가치 없어.” 그냥 ‘아무나’에 해당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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