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설교

주님과 주님

아빠와 함께 2022. 8. 9. 17:09

주님과 주님

2009년 5월 10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12:35-37

(막 12:35, 개정)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막 12:36, 개정)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막 12:37, 개정)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예수님의 질문은, 우리들이 과연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살 사람인지 그렇지 않는 사람인지를 가름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우리가 제대로 답변을 해야하는데 사람들은 이 질문의 취지조차 모릅니다. 이는 마치 민수기 21장에 나오는 놋뱀의 경우와 같습니다. 모세는 놋뱀을 높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누구든지 이 놋뱀을 쳐다보는 자는 살고 안 쳐다보는 자는 죽는다” 이 제안은 참으로 인간 자체를 모독하고 무시하는 발언입니다. 즉 사람이 살고 죽고 하는 것이 자신들의 애씀과 노동의 결실로 인하여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운명을 영뚱하게도 외부에서 주어진 기준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늘 나라에 무식해서 문제가 될 거라고 짐작합니다. 실은 무식해서가 아니라 죄 때문에 주어진 하나님의 뜻도 거부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죄에서 못 벗어나는 운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즉 인간은 항상 자신을 떠나서 생각할 줄을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천국에서 원하는 믿음은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백부장이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주께서 가라하시면 가고 오라 하시면 오겠습니다” 이 믿음을 예수님을 보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소위 자칭 천국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모든 아브라함 자손들은 지옥에 가서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후회할 것이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은, 우리 인간들 스스로 만들어내지를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시고, 그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면서, 성령을 부어주시면서 발생되는 그 믿음이 아니면 천국 갈 믿음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소위 인간 사회에서 서로 의지한다면서 내뱉는 말은, “너 날 믿냐? 나도 널 믿는다”라는 식의 믿음은 구원될 수 없는 믿음입니다.

참된 믿음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온갖 시련과 자존심 상할 만한 사태를 부러 일으키십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의해서 주어진 예수님의 믿음이라면 그 어떤 사태와 수모를 당해도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잊기는커녕, 더욱더 고귀한 선물임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인간 세상에서 나름대로 통용되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을 관리하고 살리기 위해 스스로 최면걸어서 만들어낸 가짜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8:21-24에 보면,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그가 말하기를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그가 자결하려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 세계에서 예수님의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 인물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이 궁금합니다. 미리 알려드리면 이러합니다. 로마서 1:3-4입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질문은 이것입니다. 다윗의 낳으신 주께서 어떻게 다윗의 자식이 되겠느냐 하는 겁니다. 세상적인 표현으로 하자만, 제 자식이 어떻게 제 할아버지가 되겠느냐, 혹은 제가 어떻게 나를 낳으신 아버지를 낳느냐 하는 겁니다. 더나아가서 이러한 족보의 역전이 어떻게 우리를 이 세상에서 탈출 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되느냐 하는 겁니다.

그 해답의 내용은 쉬운 예를 들면 이러합니다. 전쟁 영화를 한참 상영 중인 영화관에 늦게 들어갔다고 칩시다. 아직 영화관 내부까지 못들어가고 문만 살짝 열었는데 그 어두운 영화관 내부에서 분주하고 전쟁 소음이 마구 들려온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영화관에 군인들이 가득 들어있다는 겁니까? 아니지요.

막상 문들고 들어가보니 한쪽 벽을 하얗게 만들어놓고서 한참 영화상영 중이었습니다. 즉 이미지가 벽만 부딪치면서 그 영상을 따라 소리가 흘러나온 것입니다. 실제로 그 영화 스크린을 파고 또 파보면 벽돌만 나올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다윗이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하늘의 뜻이 다윗이란 몸체에 영상으로 비쳤다는 말입니다.

비록 남들 보기에는 극히 평범하고 다른 사람들도 다를 바가 없다할지라도 다윗은 지금 자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한참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도 여러분들이 모두 이처럼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는 사람들이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일들은 다들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움직이는 일들입니다. 

옷 가게에 들어서는 것은 옷이라는 실체가 있기 때문이요, 신발 가게에 들어서는 것은 신발이라는 실체가 있기 때문이요, 놀이동산에 돈 내고 들어가는 것은 즐겁다는 실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뭘 얻기 위해서 오는 곳입니까?

실은 뭘 얻기 위함이 아니라 있는 것조차 하나님에게 다 드리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진작 다 드려야 하고, 벌써 다 드렸어야 했음을 통감하는 자리가 교회 모임입니다. 왜 그런가요? 그것은 주께서 주님 사이의 경우가 그러했던 것입니다. 주되시는 하나님께서 또 주 되시는 예수님에게 당부했습니다.

이 인간 세계에 내려가서 다윗의 가문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사람들에게 버림받아야 하고, 그래서 천국 와야 될 자의 죄를 대신 처리하기 위해 십자가 죽겠느냐라는 지시를 예수님은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 혼자만의 순종으로 인하여 성령으로 부활, 승천하셔서 자기 백성에게 구원 유효한 믿음을 제공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 주와 주 사이의 작업에 일체 인간은 끼어들지 못합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이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공로의 덕분에 구원받음을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땅에 있기에 땅의 일 밖에 모르는 죄인임을 성령님이 주신 믿음으로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전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추어진 것과 숨은 것  (0) 2022.08.10
하나님 나라와 어린아이  (0) 2022.08.09
복음이 나타나다  (0) 2022.08.07
씨 뿌리는 비유  (0) 2022.08.06
안식일의 주인  (0) 2022.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