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자

시각들5(정석훈목사와김성수목사)

아빠와 함께 2013. 1. 23. 17:07

Re: 십자가마을에 있는 글을 요기다 옮겨왔습니다.| ♡―··········· 자유게시판
cris | 조회 338 |추천 0 | 2011.06.29. 13:53 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RkzJ/18272

-----------------------------------
김성수 목사의 답변(미국 서머나 교회)  이름 : 이근호 

----------------------------------- 
제(정석훈 목사님) 질문과 김성수 목사의 답변입니다.

먼저 제 질문입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지금까지 한국교회에서는 들을 수 없는 설교입니다.
특히 십자가, 예수님을 앞장세우는 것, 개혁주의 성화론을 박살내는 것,
이런 것들은 쉽지 않는데 제대로 공격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무능성, 즉 전적 타락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은 성경이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신 주님 중심인지 아니면
그 피로 용서 받은 사람중심인지 설교를 통해서 분간이 안됩니다.

물론 저에겐 분명히 구분됩니다.
목사님의 관심은 십자가의 피 은혜를 아는 인간에 모든 관심치 가 있습니다.
제 생각은 목사님이 서머나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시작하신 이유에서 찾아 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 마음속에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예수님으로 끝나버리는 인생을 소망으로 삼지않고
땅에서 다른 소망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성도든 성도 아니든 모두가 다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전하는 도구들입니다.
목사님께서 성도들의 삶을 사사기를 설교하시면서 언급하셨는데
그 모든 것은 주님이 누구신가 바로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신 분이
주님이심을 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철저하게 첫째 아담 안에 있는 죄인으로 남아야 합니다.
이것은 이미 목사님께서 구약 이스라엘 전체를 언급하시면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언급하셨다면
설교의 중심이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신 주님되신 예수님께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의 삶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님이심을 전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서신서들은 성도들의 삶,
그 삶이 어떻게 꼬이든 십자가의 피만 증거하도록 되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물론 십자가의 피만을 앞장세우기 때문에 이들은 고난속으로 내 몰립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이 주님이심이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 인간의 가능성을 완전 제로에 두셨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통해 보면 십자가를 붙드는 삶이야 말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성도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과연 누가 십자가를 붙들 수 있습니까?
십자가를 붙들 수 있는 인간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이 주님이 되셔서 성령을 보내 주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붙든다는 것으로 설교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잡을 수, 고정할 수도 없는 주님의 일하심이 설교의 중심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목사님이 주님의 영을 받은 주님의 증인임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즉 , 십자가의 피가 설교의 중심을 이루어야 합니다.
중간중간에 하나님에 대한 언급(구약설교)은 유대교도 하는 말들입니다.
그 하나님이 , 그 여호와가 우상임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완전히 밝혀 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것은 반드시 십자가의 피에 귀속될때 제대로된 복음이 됩니다.
 
제가 너무 안타까워서 이렇게 메일을 보냅니다.
 
제 설교 블로그는
http://blog.daum.net/1188-10  입니다. 저는 지금 중국에 나와 있습니다.
10년이 넘었습니다.
말씀의 교제가 있었으면 합니다.
제 궁금증에 대해 답변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김성수목사님의 답변
 
목사님의 말씀이 백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제가 골수 개혁주의에서 넘어온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아직 개혁주의 잔재가 뼈속 깊숙히 남아 있어
자주 그런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가 '십자가를 붙들자'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가 십자가를 붙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이니 그렇게 하자는 목표지점으로서의 제안이 아니라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자이므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가실 테니 그러한 일이 일어날 때
당황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개혁주의 설교자로서의 지난 수년간의 습관에 버무려져서
아무래도 인간의 도리처럼 들리는 것 같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배우고 공부해서 실수를 줄여 나가고, 올바른 것을 전하도록 노력해야지요.
감사 드립니다.
김성수 드림
 

답글

이근호 gblayer('gblayer2', 'lgjd', '이근호', 'knowcross@hanmail.net', '', '1', './program');

10-08-21 17:41 
정석훈 목사님께서는 김성수 목사의 4년 전 설교들과 요즈음 설교 10개를 비교하면서 김성수 목사에게 질의한 것입니다. 4년 전에 설교는 개혁주의에 푹 빠져 있었던 설교라면 최근의 설교는 '개혁주의는 이단이다.', '오직 예수님의 피 뿐이다!'쪽으로 선회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정석훈 목사님의 견해로는, 여전히 개혁주의적 버릇을 갖고 있어 설교에서 '교인들을 가르치려는 경향'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용어 자체가 개혁주의 용어들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저(이근호)의 의견은 이러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피 복음을 독점할 수 있는 자격자는 없다고 봅니다. 만약에 과거에 그 어떤 이단주장을 했더라도 (모든 이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오직 예수님의 피의 능력 속으로 빨려들어가서 피만이 증거하는 것은 인간의 모든 능력을 벗어난 성령님의 강권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누구나, 그 어떤 단체도 예수님의 피를 선점하거나 독점할 수 없기에! 한 영혼으로 예수님의 피 속으로 어서 돌아오기를 원할 따름입니다.
강구만 gblayer('gblayer4', 'andelsen', '강구만', 'andelsena@daum.net', '', '1', './program'); 10-08-21 22:18 
"제가 골수 개혁주의에서 넘어온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아직 개혁주의 잔재가 뼈속 깊숙히 남아 있어 자주 그런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개혁주의 설교자로서의 지난 수년간의 습관에 버무려져서 아무래도 인간의 도리처럼 들리는 것 같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답변이라 무척 당황스럽고 한편으론 감사하기까지 합니다.
이 목사님 말씀대로 '독점할 수 없는 복음'이기에 이 음란한 세대에 '지식'이 아닌 성령과 능력으로 '피'만을 전하는 설교자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료출처 http://www.crossvillage.org/board/index.php?doc=program/board.php&bo_table=board01&page=26&page=26&wr_id=5659

 
 
두 증인 11.06.29. 14:07
김성수 목사님 처럼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목회자가 우리 한국교회에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십자가마을의 정석훈 목사의 '의도'된 질문에 신학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앞에 선 자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복음잘아는' 십자가마을은 부끄러워 할줄 알아야 합니다.
 
cris 11.06.29. 14:11
다시 글을 잘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김성수 목사는 십자가마을로 가고 있습니다. 개혁신학에서 십자가 마을로..
 
바로미 11.06.29. 15:23
복음 잘 아는 십자가 마을????

이근호가 복음을 잘 안다고 말씀하시면 그야말로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인데....
십자가의 기초(체험도 못하신 분)도 모르는 분에게 복음을 잘 안다는 말은 가당치도 않습니다만..
성경을 포함 교회 역사상 십자가를 체험하고 그 삶을 이근호가 주장하는 것 처럼 살은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즉 이근호는 십자가 체험을 한 사람들과 정 반대로 나가고 있는데.. 어째 복음을 잘 안다고 하시는지요? 두 증인님?
 
두 증인 11.06.29. 15:47
제가 말하는 복음 '잘아는'이란 뜻은 마치 자신들 만의 복음인양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삶은 없는 십자가마을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바로미 11.06.29. 16:11
아~ 그런 의미로군요...

제가 말한 것은 그들의 복음은 성경의 복음은 아니라는 뜻인데... 그들이 자신들만의 복음이라 아는 그 복음은 성경의 복음이 아니라는....
 
 
두 증인 11.06.29. 14:54
어디서 어디로 간다는 식의 편가르기는 십자가마을의 이근호 신학을 배운사람들의 특징이지요. 목사의 신학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을려는 사람들 속에 오래 있으면 이런 망언이 나옵니다. 개혁주의에서 이근호 마을로...
김성수 목사님이 목양교회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질타하고, 이근호신학을 복음맛을 모르는 극단주의자로 평가한다면? 그래도 이런말을 할건가요?
 
cris 11.06.29. 14:31
아~ 그가 그런말을 했나요? 그렇다면 그중 다행이군요.. 뭐 제가 여기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님이 좋으시면 그냥 설교를 계속 들으세요..
 
바로미 11.06.29. 15:27
이근호신학을 배운 사람들의 특징은 <신학>이 무엇인지 모르고 <성경>으로 신앙이 나오고 <신학>에서 철학 따로 나온다는 망언을 하더군요.
바울의 신학(구약신학)이 고스란히 바울서신에 기록되어 있음에도 성경과 신학을 분리시키는 것이야 말로 이근호 사고의 뿌리지요...
두 증인님은 이근호씨의 십자가의 내용만 틀리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아직 이근호의 신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근호 신학개념은 이근호 신학개념이지.. 일반 신학 개념도 성경적 신학개념도 아닙니다.
 
두 증인 11.06.29. 15:57
이근호신학의 두축은 '여호와의 이름'사상과 (여기에서 이근호의 '선택'이 나옵니다) 비역사적 해석으로 십자가라고 봅니다. 시간이 되면 천천히 얘기할 기회가 있지 않겠습니까?
 
바로미 11.06.29. 16:03
일단은 그렇겠지요.. 이근호 목사 십자가야.. 이미 과거에 충분히 카페에서 논의가 되었고, 그 자료들도 있으니.. 그런데 일단은 김성수 목사가 말한 <골수 개혁주의>가 무엇인지.... 그것에서 넘아왔다는 그 분의 말에 대해서 십자가 마을측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십자가로 넘어왔다는 듯이 평하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김성수 목사의 과거 설교가 골수 개혁주의 설교였다는 뜻 아닌가요?
김성수 목사 답변 내용을 보니.. 골수 개혁주의 설교는 2010년 이전으로 추측됩니다만...
 
 
두 증인 11.06.29. 14:53
어떻게 이근호에게 배운사람들은 하나같이 복제품들인지...목양교회에 김성수목사님 인터뷰를 올려놓으니까 이젠 김성수목사님까지 이간질해서 매도할려고 하니...참 ....
 
malkut 11.06.29. 15:04
저는 아이디를 쓴다면 두 증인이라는 아이디 안쓰겠습니다.
김성수 목사님 설교 분별해서 들어야합니다.
저같으면 분별할 시간이 아까워 안듣겠습니다.
 
바로미 11.06.29. 15:58
이간질이 아니라.. 위 글만으로도 충분히 회원들이 그러한 생각을 할 수 있겠는데요? 두 증인님?
김성수 목사는 아실련가..
 
 
두 증인 11.06.29. 15:10
아이디까지 간섭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두 증인 11.06.29. 15:39
김목사님은 개혁주의를 표방한 기복주의,신비주의,번영신학등과 수년간 외국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권총ㅇㄹ 들고 찾아온 사람도 있지요. 그리고 기존 개혁주의 교회의 문제점들이 가장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곳이 그 곳이라고 합니다. 제가 알기론 개척당시나 지금이나 십자가복음만 외쳐온 분입니다. 어느 목사님이나 그 당시 상황에 따라 강조하는 부분이 다를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의 메일을 마치 자기가 김성수목사를 한수 가르친 듯이 공개하는 사람부터 부끄러워 할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holyjoy 11.06.29. 15:48
ㅎㅎ 너무 흥분들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김성수목사가 말하는 "골수 개혁주의"가 과연 뭣인지 궁금하군요. 저도 사실, 때로는 소위 "개혁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편협한 행태때문에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가 간혹 있습니다. "골수 개혁주의".....어떤 의미로 김성수목사가 "골수개혁주의"라는 말을 사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개혁주의가 신조만 외운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바로미 11.06.29. 16:08
홀리조이님.. 김성수목사에게 정목사가 질문한 내용을 보니...

<제(정석훈 목사님) 질문과 김성수 목사의 답변입니다.
먼저 제 질문입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지금까지 한국교회에서는 들을 수 없는 설교입니다.
특히 십자가, 예수님을 앞장세우는 것, 개혁주의 성화론을 박살내는 것, 이런 것들은 쉽지 않는데 제대로 공격을 하셨습니다.>

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김성수 목사의 답변글에는 이에 대해서 거부하는 혹 해명하는 글은 아예 없는 것 같습니다?
김성수 목사가 개혁주의 성화론에 대해서 전에 어떻게 알고 있었기에... 율법폐기와 같은 김성수 목사의 설교와 연관이 있는 듯 하기도 하고...
 
 
소용돌이 11.06.29. 16:11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말씀은 그리스도 안의 형제간의 사랑관계를 설명하는 것이겠지요.무작정 누군가의 주장이 맘에 들어서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세워주는 관계로 오직 위에서 은혜로 내려 주시는 것으로 서로에게 위로하고 책망하며 바르게 함이겠지요. 전 그런면에서 누가 문제가 있다 잘못되었다는 말은 조심하고 오히려 이러이러한 주장은 성경말씀과는 다르다. 오직은혜, 오직믿음, 오직성경과는 다르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럴려면 먼저 수고 스럽지만 잘못된사람이라는 판단전에 그분의 글을 모두는 아니라도 10%이상 읽어봄이 옳겠지요^^
 
바로미 11.06.29. 16:22
저기.. 소용돌이님..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니고요..

김성수 목사 자신이 직접 십자가마을의 어떤 분에게 쓰신
자신은 지금 어떤 상태이고.. 어떻게 하고 있다고 당사자께서 쓰신 글 때문에
지금 이렇게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그분의 설교 내용이 아니고...
그분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쓰신 말 때문에... 분위기가 긴장된 상태입니다.

그만큼 김성수 목사의 인지도가 꽤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더욱 이 일은 좀 중요하게 신중히 다루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소용돌이 11.06.29. 17:47
그렇군요.하지만 정석훈목사의 의도된 편지에 대한 김성수목사의 단한번 답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아직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과 부활로 세상의심판주와 왕되심을 전파하고 그것으로 함께 성령안에서 하나됨"이 가장 중요하기에 다른비판들(개혁주의신학을 포함)은 개선의 여지가 있기에 심각할지 안을수도있고, 또 단한번도 면식도없는 자칭목사라고 하는 사람에게서 받은 편지에 대한 답이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왜냐하면 아무쪼록 복음을 전파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감수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럴 것이라 여깁니다.^^
 
 
강릉예명 11.06.29. 16:21
성령으로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닌 것인가요? '성령좀비'가 십자가 신앙의 목표인가요?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바라보고 계시는가요? 예수님 말씀처럼 저는 그냥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함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아, 머리아퍼.
 
 
두 증인 11.06.29. 16:24
정석훈목사의 일방적인 주장입니다. 김성수목사님이 전에 이런식으로 답을 정해놓고 시비거는 사람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의 책을 보면 성화론에 대해 잘 나와있습니다.
제가 자꾸 이 분을 변호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는데 직접 서머나교회에 들어가시면 지난 8년간의 설교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복음과 삶에 대해 아주 훌륭하게 균형을 가진 분이라고 봅니다.
 
강릉예명 11.06.29. 19:24
그럼 십일조에 대한 이번 설교는 어쩌다 치우친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달리 생각하십니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시느냐는 것입니다.
 
 
두 증인 11.06.29. 20:07
김성수목사는 구약의 십일조는 그리스도안에서 완성되었기에 십자가의 은혜로 새창조를 입은 성도는 십일조 정도가 아니라 그 자신을 드림이 마땅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헌금편 참조
 
강릉예명 11.06.29. 20:26
저는 유형교회에서 드리는 외적 헌금으로서 십일조가 악한 것이며 정죄받아야할 율법주의적 악인가 하는 그의 이번 설교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영적 헌금만이 유일하고 옳은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헌금의 한 준거로서 신약교회는 십일조의 정신을 유형적으로 계승하면 안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의 설교에서처럼 십일조를 계속 지속함이 구속사에 반하는 율법주의를 가리키는 태도인가 하는 것입니다. 일단 십일조를 안하는 것이 헌신인가 거기서부터 신약교회의 헌신이 시작된다는 것입니까?
 
 
두 증인 11.06.29. 20:54
십일조의 정신이 아닌 율법적인 강제력을 가진 십일조라면 저도 반대합니다. 그리스도로 완성되는 점진적 계시로서의 율법(십일조)이 그의 책에 열페이지에 걸쳐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있습니다. 율법중에서 유독 십일조만 강조하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강릉예명 11.06.29. 21:02
안식일도 강조합니다. 왜 유형적 안식의 날로서 주일은 폐지됐다고, 일단 걷어치우라고 말하지 않는가요? 자유의 율법에 따라 안식일도 완성됐으니 일단 관습을 따라 모이는 주일제도도 타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역설적으로 십일조만 유독 폐지됐니 어쩌니 하는 것이 더 숨겨진 율법적 의식 아닐까요? 어느 개혁교회에서 십일조만 유독 율법적인 강제라고 강조하나요. 장로교단 헌법에 오히려 자유로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요. 오히려 주일이 의무로 더 강조가 되어 있지요. 십일조에 예민한 게 감춰진 물신숭배정신에 편향하는 반응이라 보는 게 더 맞지 않을까요?
 
강릉예명 11.06.29. 21:07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성수목사님 특유의 강조어법으로 또박또박 증거한 어제 그 설교가 정말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일까요? 저는 대번에 그것이 십일조의 정신을 강화하거나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장려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교인상호간의 문제에 초점을 더 두었다고 느꼈는데요. 저는 어제 설교에 초점을 두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두 증인 11.06.29. 21:44
맞습니다, 유독 십일조나 주일만을 강조하는 한국교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그의 설교에 자주 나타납니다. 그리고 자유하는 율법에 따라 한국교회가 정말 헌법에 정한대로 자유로운 헌금을 하고 있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겠지요. 제 생각도 율법의 어느 한가지라도 짐을 지운다면 그사람은 온 율법을 다 지켜야 할 것으로 봅니다. 어제 설교는 제가 듣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강릉예명 11.06.30. 07:22
구더기 무서워 장못담그겠습니까? 유형교회가 타락했으니까? 그럼 유형교회와 그 제도와 질서 자체를 폐기해야합니까? 그리스도가 그 속죄로 말미암아 완성하신 것이 비단 그 문자에 속한 율법뿐입니까? 구약 제도로서의 교회를 그리스도의 보편적 교회, 영적 교회로 완성하신 것이 아닙니까? 조금만 더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세속적, 이원론적 영성 추구를 미화시키는 그런 독단을 걷어치우는 것이 오히려 참된 개혁이 아닙니까?
 
강릉예명 11.06.30. 07:56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 '화 있을찐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찌니라' 이 말씀을 영으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의 생각은 항상 자기 의를 추구하거나 아니면 항상 감추어진 악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나겠지만... 소위 무기명으로만 하자는게 하나님을 향한 순결한 헌신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는 믿음은 대체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입니까? 이원론적 거짓 영성을 느끼지 못하시겠습니까? 사단은 훨씬 지혜롭습니다.
 
강릉예명 11.06.30. 07:27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소위 트렌드처럼 교회 개혁을 말하는 지도자들이여.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우리는 성경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알량한 정신이 추구하는 거짓 의를 만족시키는, 그런 새로운 제도로서의 의를 소리높여 외쳐대는 그런 의의 선생들에 불과하지 않나 자기를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그런 개혁은 결국 바리새운동과 다를 바 없는 것들임을 깨달았으면 생각합니다.
 
 
한우리 11.06.29. 22:08
여하튼 위의 글로 미루어본다면 김성수 목사란 분이 무언가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개혁주의의 잔재가 자신에게 뼈속 깊이 남아 있어 실수를 한다는 답변을 볼 때 ...그 뒤에 나오는 답변들의 내용과 단어들도 십자가 마을로 가고 있는 것 같은 뉘앙스를 보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자신의 표현처럼 정말 개혁주의의 잔재가 뼈속 깊이 남아 있을 정도로 개혁신학에 몸담았다면 과연 지금처럼 이리되었을까요? 참된 개혁신학을 몰랐던 거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좀 성급할지 모르겠지만 참 아쉽네요.....
 
강릉예명 11.06.30. 07:33
골수개혁주의를 버리고 개혁주의의 잔재를 없애는 데 애쓴다는 김성수목사는 그 의미가 과거에는 자기가 참된 개혁주의의 영은 빼놓은 채 껍데기만 가지고 소위 개혁을 운운한 그런 분이었다는 것이라면 <역사적 개혁주의>를 농단하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언사를 써서는 안되겠고(이런 점에서 소위 시대의 개혁자라 하는 많은 이들이 겉멋에 찌든 것을 봅니다) 오히려 자기의 위선적인 과거 행태를 회개하는 모양을 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왜 개혁주의를 조롱합니까? 조롱당해야할 개혁주의의 문제가 개혁주의 자체에 있는 것입니까?
 
강릉예명 11.06.30. 07:58
아니면 개혁주의를 조롱받는 것으로 만든 문제들이 여타 다른 개혁주의자들의 타락에 있다는 것입니까? 자기는 거기서 한 발 빠지고 이제는 개혁주의를 개혁하는 위치에 서기라도 했다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겸손한 회개로 자기를 치는 진정한 태도가 없다면 겉으로 무슨 모양새를 취하더라도 그것은 영적 교만이요. 자기 기만에 불과한 것이 될 뿐입니다. 저는 김성수목사라는 분을 이번에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그분에 대한 어떤 사전 전제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제 lonebot님이 올린 두 편의 설교를 듣고 두 가지 근본적인 유사개혁주의의 병폐를 깨달았습니다.
 
강릉예명 11.06.30. 08:13
그가 강변한 십일조문제에서는 개혁주의의 문제를 교회가 가진 질서와 제도에서 제기하는 통속적 피상적 접근법입니다. 그것은 성경을 근거하고 있지만 문자적입니다. 비역사적입니다. 그것은 역사적이고 영적인 그런 개혁을 오히려 해치는 선정적인 포퓰리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짝퉁 개혁이고 사실은 사람의 마음을 긁어주는... 신앙행위를 함에 있어 사람을 의식하는 습관때문에 그것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시원하게 해주는 그런 개혁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멋드러지게 말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편에서 생각하는 영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람들의 문제를 풀어보려는 목회철학적 고민과 같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강릉예명 11.06.30. 08:06
또 한 가지 지옥에 관해 '딱 한번만'이라고 설교한 그것은 개혁에 있어 개혁의 초점을 흐리게 하기 십상인 느낌을 느꼈습니다. 심지어 그 설교는 그가 말하는 개혁에 집중하지 않는 여타 개혁주의 노선에 대해 공갈하는 모양새를 띠었습니다. 자기는 개혁자이지. 자기 자신이야말로 개혁돼야 할 자라는 개혁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강릉예명 11.06.30. 07:50
김성수목사의 경우 대단히 주의깊게 그 변화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반개혁에 서는 사람들은 사단의 공교한 역사를 실어나르는 데, 그중 하나는 개혁의 외형을 파괴시키는 그런... 미신과 물신숭배를 조장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와 아울러 개혁의 외형을 강조하면서 정작 개혁의 내면을 파괴시키는 파괴적 개혁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또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히려 후자의 모습을 띤 반 개혁운동이 얼마나 근원적 위협이 되는가를 잊지 말아야합니다. 이점에서 저는 무정부주의적인 개혁을 주동하는 분들을 주의깊게 살펴야한다고 늘 생각합니다. 그들은 공적으로 자기를 구속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말입니다.
 
강릉예명 11.06.30. 07:55
진짜 개혁하자는 분들 가운데 트로이의 목마와 같은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영적 거룩보다는 신비적 거룩을 지향하고 성경적 개혁보다는 트렌드적 개혁을 추구하는 인본주의자들입니다. 이번에 김성수목사의 두 개의 설교는 문제를 살펴보는 데 좋은 레퍼런스가 되는 것 같습니다. lonebot님이 올렸다가 삭제한 '십일조에 묶이지 마십시오'라는 설교를 다시 올려주면 좋겠습니다. 보다 객관적인 검증에 유익하지 않겠습니까?
 
등록 등록 취소
12 / 300자
 
 
top
 
   

'남은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각들7(윤용한성도의 글에대해)  (0) 2013.01.23
시각들6(정의호님의 질문)  (0) 2013.01.23
시각들4(두증인과주님의장막)  (0) 2013.01.23
시각들3  (0) 2013.01.23
시각들2  (0) 2013.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