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존재는 위반해봐야 안다. 위반할 때 드러난다. 법이란 게 거미줄 같은 거예요. 비 오고 난 뒤에 운동할 때 앞에 뭐가 있지요. 돌아보면 거미줄이 비가 오면 초롱초롱 물방울 맺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나이 들어 노안 오면 그냥 거미줄이란 거미줄은 다 헤치고 갑니다. 거미줄 잘 안 보입니다.
이 세상은 경제공동체기 때문에 앞에 누가 오든 내 뒤로 누가 가든 어떤 일을 하던 악수를 하던 그 사람 재산은 얼마나 수입은 얼마나 될까, 신수가 훤하네. 차에 보니까 뒤에 골프채 있네. 좀 사는 모양이다, 이런 것, 사업하는 사람들의 돈 얼마 벌지도 않으면서 아우디를 타요, 아우디. 동그라미 네 개 있는 아우디 타고 완도 가서 죽잖아요. 일가족이. 왜 이런 짓합니까? 허세와 허풍이잖아요. 왜 합니까? 경제공동체기 때문에. 남한테 보일 때 좀 신용도가 높아 보여야 단골이 될 수 있다는 그런 경제적 이득 전략 때문에 이런 짓하거든요.경제선만 보이지 법은,
하나님의 법이란 것은 하늘에서 온 거예요. 모세가 하늘에서 받은 거예요. 하늘의 그물망, 하나님이 이 땅에 걸쳐놓은 그물망은 눈에 안 보입니다. 안 보이는데 언제 보이느냐? 위반할 때 이게 드러나요. 개인은 자기 일을 해요. 자기 일을 하기 때문에 법은 뭐냐? 이건 주님의 일이거든요. 주님의 일을 우리가 언제 느끼느냐? 내가 나의 일만 정신 팔렸다가 그것이 감전되듯이 주의 일과 충돌을 일으킬 때 아아 이 세상은 주의 일이 촘촘하게 완전히 깔려있구나. 깔려있는 거예요.
영화 <미션 임파서블 1> 보면 주인공 톰 크루즈가 비밀 반도체 같은 중요한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그것이 악한에게 넘어갔을 때에 어떻게 들어갑니까? 자외선이 깔려있는 그 공간에 벌건 줄이 깔려있을 때는 그 틈사이로 빠져나간다 이 말이죠. 이거는 경제공동체에서 이렇게 하는 거예요. “저 사람은 부도 맞을 것 같아, 저 사람은 믿지 못해, 저 사람은 믿을 만 해.” 막 쇼를 부르듯이 하지만 이 하나님의 법은 그냥 은혜로 주시는 햇빛, 은혜로 주시는 공기, 그리고 밤에도 뛰고 있는 우리의 심장 주신 하나님의 은혜, 호흡(우리의 생명은 호흡에 있다 했어요) 이런 것은 진짜 숨이 막히고 병원에 입원해봐야 이 두 다리 관절이 내 다리 아니구나, 걷지도 못하고 부목 집어봐야 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구나. 위반해봐야 그 동안 하나님 주신 은혜를 얼마나 개 무시했는지를 병원에 입원해봐서 아는 거예요.
제발 퇴원만 하게 하신다면 빨리 속병 낫고 관절 나으면 내가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 하겠습니다. 병원 7층 병상 704호실에선 잘 이야기하지 밑에 내려다보면서 저 인간은 나보다 못한 인간인데, 하고 멀쩡한 것에 대해서 분노 느끼지요. 막상 퇴원해서 병원 문 나서서 아스팔트 걸어보세요. 다 잊어버립니다. “병원비 너무 나온 것 아닌가. 의료보험과에 전화해봐라. 보험금 맞아? 보험회사 전화하고. 남는 게 없네.” 경제공동체로 다시 돌아선다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 왕을 보내서 왜 사울 왕을 보내느냐? 사울은 왕이거든요. 그 점을 설명해볼게요. 자, 사울 왕이 특수한 죽음이 되느냐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왕이 된 겁니다. 자 여기서 어려운 것은 두 가지입니다. 사울 왕이, ①왕입니까? ②사울 왕은 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어느 게 맞습니까? 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거예요. 사울 왕은 왕의 자리를 차지하면 안 돼요.
죄인은 성도의 자리를 본인 소유화시키면 안 돼요. 성도의 자리, 성도 되게 하는 성령이 임한 자리는 바로 자리 곁에 빈자리로 주의 성령이니까 주님의 자리로 따로 빈자리로 남겨져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