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주님의 지시

아빠와 함께 2022. 7. 12. 10:15

사무엘상 29장에 거기에 사울 왕이 엔돌의 신접한 여인과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게 왜 하나님께 범죄가 되는지, 이게 왜 하나님께 묻지 않았던 일이 되는지 그것을 우리가 봅시다. 성경 중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것 중 하나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라. 진짜 이것은 애매하지도 않아요. 모호해요. 흐릿해요. 그리고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이나 무슨 뜻인지 몰라요. 이상하게 정답인 것 같은 느낌은 드는데 이걸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는 게 하나님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를 몰라요. 그때는 아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이건 하나의 요령이니까 잘 보세요. 주님의 지시에 따라라. 이건 마태복음 8장에 백부장이 하는 말이, 주께서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나이다. 예수님께서 이만한 믿음 처음 봤다. 아브라함 백성들 천국에서 다 나오라 해. 네가 들어가라. 대단한 믿음이죠. 네가 천국 차지할 거야. 나머진 다 나가라 해. 그러면 주님이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는데 주께서 언제 저보고 가라 했습니까? 그때 오후 10시 몇 분이었지요? 어디서 가라 했습니까? 주께서 가라 하셨다는 것이 내가 꾸며낸 가라, 거짓말로 내가 심리적으로 조작해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뭐냐? 이건 내가 조작한 게 아니야, 라고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뭐냐? 또 증명할 방법이 있다 해도 그게 먹혀들겠나, 남들한테 납득이 될 이야기냐? 계속 이거는 아주 정립하기가 곤란한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 ■일단은 내가 내 시키는 대로 해보는 거예요. 이거는 우리 아기 참 잘해요. 이거는 뭐 너무 잘해요. 내가 나를 시키는 것, 이것 빼놓고 없잖아요. 오늘 교회 가볼까? 그래 가보자. 내가 나를 시켰잖아요. 내가 나를 시킨 것 아니고 ■이것 빼기 나머지가 주께서 시킨 겁니다. 참 쉽지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평소에 모든 행동이 내가 나한테 명령한 거예요. 내 두뇌가 팔다리에 명령하거든요. 그럼 이걸 빼기 해버리면 주님이 내게 시킨 것은 뭐가 돼요? 몇 퍼센트입니까? 0퍼센트,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다, 이게 있는 겁니다. 제가 말을 절대로 어렵게 한 것 아닙니다. 아주 쉽게 한 거예요. 성경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지요. 모든 기도는 무슨 기도냐 하면, 성도의 기도는 회개의 기도 외에는 다른 기도가 없어요.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의 기도는 무엇과 대조가 되고 비교가 되느냐 하면 지금도 아버지 우편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기도와 대조가 돼요. 죄인의 기도는 나 잘 되기 위해서 달라는 기도밖에 할 수 없어요. 내 형편이 어렵습니다, 몸이 아픕니다, 애가 어떻습니다, 우리 환경이 어떻고, 교회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도와주세요. 국가와 민족과 교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저 사람은 구원해야 되겠습니다. 저 사람 구원되도록 도와주세요. 굉장히 건전해보이고 신앙적으로 보이고 진짜 성경대로 하는 그런 기도하면 뭐합니까? 모든 게 달라는 기도인데요. 자, 달라는 기도가 뭐냐 하면 기도하는 내가 이 지점에 있지요. 그러면 주께서 달라고 했으니까 주님의 응답이 어느 쪽으로 집합돼야 된다? 내 쪽으로 와야 되겠지요. 그러면 기도하는 내용이 응답받아서 내 쪽으로 오게 되면 나는 내가 살아야 됩니까, 죽어야 됩니까? 둘 중에 하나인데. 응답을 내가 실천 주체자가 살아 있어야 돼요, 죽어 있어야 돼요? 살아 있어야 돼요. 살아 있으면 나는 뭐가 되느냐 하면 나를 미워할 수 없고 남은 죽어도 나는 멀쩡해야 돼요. 결국 우리의 기도는 뭐냐? 살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살되 가치 있게 살게 해달라는 기도에요. 그 외에는 우리 기도의 본색이죠. 그러면 이 원리를 그대로 적용시켜보는 겁니다. 주의 지시를 어떻게 따릅니까? 일단은 기도를 해요. 그러면 기도는 뭡니까? 내 이기주의적 기도밖에 안 나오죠. 결국 그 기도는 무슨 기도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무슨 기도? 회개의 기도의 바탕을 마련하게 되지요. 참 쉽지요. 억수로 쉽지요.

자, 여러분 사무엘상 28장에서 사울 왕이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여기서 상상해봅시다. 다음 중 사울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는가? 주관식을 어려워서 안 내요. 객관식만 내요. ①참아야 하느니라. 내가 이스라엘 왕인데 비율법적 행동, 비신앙적 행동은 안 돼. 참자. 그래서 참았다. ②참다, 참다 1개월을 참다가 도저히 못 참겠다. 내려가자. ③금방 내려갔다. 몇 번입니까? 그때는 ②이죠. 이게 28장 6절에 보면 나옵니다. 핑계거리를 만들어서 내려간 거예요. 금방 내려간 게 아니고.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사울은 이미 내려가기로 결심이 났어요. 그래놓고 하나님이 뭐라 하면 뭔가 변명거리가 있어야 될 게 아닙니까. 변명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나한테 지시를 안 했잖아요, 이게 변명이에요. 제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설교합니다. 여러분 성령의 지시를 따르세요. 하나님이 지시한 대로 해야 성령의 열매를 맺고 성도입니다, 라고 설교하고 손 털고 나는 집에 갔다 이 말이죠. 남아있는 교인들이 고민이 된 거예요. 주의 지시대로 따라야 되는 것은 옳다고 전부 다 아멘 했고, 오케이 맞는 말인데 어떻게, How, 뭐 어쩌라고? 어떻게 하면 지시대로 하는 건데요? 그러면 여기서 일주일 동안 기도해봅시다. 지시에 따를지. 일주일 동안 기도하고 드디어 행동에 나섰습니다. 주의 지시입니까, 주의 지시 아닙니까? 주의 지시 아니지요. 자, 일주일 동안 기도했습니다. 주의 뜻입니까, 주의 뜻 아닙니까? 주의 뜻이지요. 왜? 일주일 동안 변명거리를 만드는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피 흘리게 되는 재료가 되는 죄가 되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 기도했다는 그 의로움과 그것이 사실은 결정은 지가 다 해놓고 주님 앞에 궁시렁궁시렁 거릴 수 있는 거리를 나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내가 막 살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신앙적으로 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주께선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저런 변명거리를 만들어내는 이것 모든 인간의 주특기에요. 이것 없는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냥 막 가는 인간은 없어요. 교회 안 나와도 양심은 있거든요.

내가 어릴 때부터 사회에서 올바른 가정 같으면 엇나가지 않았습니다. 맨날 소년원, 교도소 간 인간들 이건 나의 범죄가 아니라 사회의 법이다. 이건 맨날 주장하잖아요. 변호사들 그런 주장하고. 그 사람 생각하면 차라리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 어려울 때 누가 돌봤습니까? 아무도 돌보지 않고 이제 와서 그 사람 범죄자 된 것 누가 그 사람을 욕하겠습니까. 또 요한복음 8장 동원해서 죄 없는 자가 돌을 쳐라. “판사님, 참착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청년인데 그래도 한 번 실수했다고 이렇게 교도소 가면 되겠습니까. 반성하고 있으면 한 번 봐줍시다.” 그럼 판사도 알아서, 알았습니다. 네가 음란비디오 만들어서 그렇게 유포한 것 이제 네가 반성문, 반성문을 이백 장을 쓴 게 아니고 이백 번을 썼어요. 썼으니까 내가 징역 42년 형에 처한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징역이든 무기징역이든 사형이든 진짜 회개하고 반성하는 청년 같으면 그걸 어떻게 받겠습니까? 분노로 받겠어요, 감사로 받겠습니까? 감사로 받겠지요. 이게 바로 뭐냐? 피가 내 앞에 있다는 증거에요. 주님께서 오죽 우리가 숨겨놓은 내가 모르고 있는 그 지독한 나의 이기성과 악마성이 얼마나 독했으면 주님께서 잔소리해서 될 문제가 아니고 예수님의 고귀한 자기 생명을 버려야 이게 해결 날 문제거든요.

이게 지금 우리의 실제 사명 문제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무슨 이야기냐 하면 불의한 청지기 이야기에요. 횡령한 사람이에요. 아주 노골적으로 횡령한 사람이에요. 사장이 나를 밉게 봐서 쫓아낸다 하니까 그전에 다른 고객들, 회사 거래처와 이야기해서 내가 장부조작해줄 테니까, “당신 우리 사장한테 얼마 있어요?” “이천만 원.” “그럼 천만 원 까줄게. 이렇게 해줄 테니까 내가 퇴직하고 난 뒤에 나한테 잘해줘.” 이렇게 횡령한 사람, 주님도 이야기했어요. 주님도 이 사람에게 앞에 이걸 붙여요. ‘불의한’ 청지기. 불의한테 이 사람이 뭐냐 하면 불의한 건 맞는데 주님께선 뭐냐? 옳게 행동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불의’하고 ‘옳다’ 의와 동급이에요(불의=의). 이퀄이에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요?

 

이렇게 설명해야 돼요.불의한 건 불의한데 불의한 당사자가 옳다고 본인이 그렇게 해석하면 안 돼요. 해석은 주님이 하는 거예요나쁜 일은 누가 한다고요? 불의한 청지기가 하고, 옳다고 한 것은 누가 해석한다고, 누가 평가했다고요? 주님이 평가합니다. 이 방식 외에는 주님 가신 그 나라에 갈 수가 없어요. 이 방식 외에는 천국에 못 갑니다. 이게 복음이에요. “주님이 나보고 옳다고 했어. 난 옳은 일 한 거야.” 어디서 주둥이를…, 어디서 건방진 말을 합니까? 아니에요. 해석은 주님 몫이에요. 우리가 주님 몫을 한다고 내가 그걸 그대로 나 잘한 짓했다고 으스대고 까불면 안 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죄밖에 없어요. 그러나 우리가 해내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해요. 불가능한 일은 못합니다.

사울 왕은 이미 신접한 여인을 만나기로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다른 가능성이 없으니까 자기가 왕의 자리를 차지한 게 아닌데 자기가 왕의 자리를 차지해버렸어요. 첫 번째 강의 때 분명히 했지요. 왕의 자리는 빈자리에요. 주의 자립니다. 빈자리입니다. 그건 예수님의 자리에요. 예수님의 자리는 우리 성도의 자리가 아니에요. 우리는 그에 죄인으로 다가서는 거예요. 왜? 예수님이 흘린 피에 언약의 다 이루심을 이루심답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죄인으로서 다가가는 거예요. 우리의 그릇에 죄가 넘쳐서 넘쳐나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5장에 보면 죄가 넘쳐나매 무엇이 넘친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침이 이 넘침입니다. 옛날 첫 아담이 망했던 것, 우리는 못 빠져나가요. 문제는 뭐냐? 새로운 아담이 옛날 아담에 속한 사람에게 뭔가 주는 겁니다. 아까 그림을 다시 그려볼게요. 이 그림, 강남강의 때 한 건데 다시 해보면, 주님 오셨다가 떠났지요. 떠나신 주님께서 여기에 성령을 통해서 주님이 여기 계셔버렸어요. 성령 안에서. 성령 안인데 바깥의 모습은 뭐냐? 십자가로 보이고 안에는 성령 안, 이게 천국 안이에요. 그렇다면 여기는 뭐냐 하면 현실이 있고 현실1, 이거는 현실2 이걸 중첩이라 해요. 누가복음 17장 22절 말씀, 하늘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가 아니라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럼 천국을 어떻게 끄집어냅니까? 천국은 나의 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죄를 통해서 비로소 천국이 우리에게 발산되게 돼 있어요. 천국은 상당히 인간을 건드려야 천국이 나와요. 이게 포도원비유입니다.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 먼저 품삯을 주지요. 아침 열 시에 온 사람, 열두 시에 온 사람, 오후 세 시에 온 사람,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들에게 품삯을 줄 때 오후에 제일 나중에 온 사람에게 품삯을 줬지요. 제가 설교할 때 이렇게 했잖아요. 품삯을 받은 자가 자기 품삯을 받았어요, 아니면 주인님의 은혜를 받은 겁니까? 주님의 은혜를 받았지요. 그 사람은 알아요. 그게 은혜인줄. 내가 하루 품삯을 받을 쨉이 못 되는 걸 본인이 알아요. 예수님의 피는 예수님이 장난 친 게 아니고 정말 내가 그만큼 못 됐고, 그만큼 불가능하고 구원이 안 되기 때문에 흘린 피라는 것을 본인은 알고 있는 거예요. 그 피가 피되기 위해서 우리는 뭘 합니까? 살아가면서 주의 말씀을 통해서 사울 왕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을 대리한다는 사실을 발견해야지요. 왜? 우리는 하고 싶은 것만 하니까 이런 버릇을 못 고치니까. 우리는 아쉬우면 기도하고 안 아쉬우면 기도 안 하는 사람이고, 우린 배부르면 자기 자랑하고 어려우면 주께 엎드려 철야하고. 우리는 상당히 이기주의에요. 내 가족중심, 내 교회중심, 우리 국가중심 뭐든지 내가 박혀있는 내 중심 동심원으로 욕심이 퍼져나가는 거예요. 이거는 못 고칩니다. 아니 고치겠다는 발상 자체가 나빠요. 고치지 말라고 이 육신을 주신 거예요. 그리고 아직까지 고쳐서 더 지을 죄가 남아있다고 오늘도 주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연장시켜주었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 피가 있으라고. 얼마나 감사할 일이에요. 왜냐하면 죄 지으라고 살게 해줬으니까 평소에 우리 주특기가 그것밖에, 내 위주로 살아가는 그 외에는 다른 재주가 없어요, 우리는. 남을 구제해도 지 자랑하게 돼 있고, 오른손이 하면 왼손 다 들통 나게 돼 있어요. 오른손이 하는 걸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그 말씀을 통해서 또 다시 우리는 이게 불가능한 내가 죄에서 벗어나는 게 내 힘으로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또 다시 감사거리가 생겨 버린 겁니다. 그리고 그게 피로써 이미 완료가 됐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죄를 더욱더 죄인 되게 하신 거예요. 또 마귀한테 속아서 이제부터는 우리가 의인이기 때문에 의만 위해 삽시다. 이런 마귀한테 이제는 여러분 안 속을 거죠? 이때는 서울말 써야 돼. 두 번 다시 안 속을 거죠? 성령의 열매 맺는다고 또 되도 않은 일 안 할 거죠, 이제. 성령의 열매는 회개하는 그자체가 성령의 온유와 자비와 화평과 양선이에요.

항상 십자가를 경유해야 나는 죄인으로 드러나고 주님의 십자가 은혜만 드러날 때 나는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게 없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에 같이 튀어나오게 돼 있어요. 사도 바울이 내가 율법으로 흠이 없으나 나는 죄인 중의 뭐라 했습니까? 죄인 중의 괴수로다. 뭐 자신만만하게. 주께서 잘라내시려면 잘라내 주세요. 주가 원하신다면 저 자르세요. 그렇지 않아도 우리 육신은 서서히 연세가 많은 분들은 지금 무너져내려가고 있습니다. 기억력도 안 좋고 머리도 빠지고요. 나중에 늙어서 운전도 못하고요. 모든 것이 자꾸 짜증도 나고 화가 나고 그래요. 전에는 말을 해도 공손하게 말했는데 나이가 들면 한 마디, 한 마디 전부다 가시가 돋은 것 같아. 갱년긴가? 오늘 제목을 갱년기라 할까요? 육신이 본인 마음대로 절대로 안 됩니다. 그냥 내비두세요. 원래 그러다가 쓰레기통 들어가면 되니까요. 다 이루었기 때문에 비워있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역할은 이제 말씀에 입각해서 무엇이 죄인가, 내가 왜 사울인가를 아는 그것만 남아있는, 아주 즐거운 일만 남아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복음이 증거 돼야 되는데 우리가 나 잘난 것, 내 의가 증거 되지 않게 하옵소서. 의가 증거 되더라도 그것이 바로 숨겨진 나의 죄인 것을 또한 증거 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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