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서는 아무 것도 확정된 것이 없는데, 그러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됩니까? 유보적이다. 하나님께서 시험을 하시는데, 즉 이스라엘은 시험의 대상이죠. 마치 실험실의 청개구리와도 같다. 그들이 과연 장차 오실 메시야처럼 말씀을 제대로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바로 그것을 보게 하신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예수님처럼 율법을 지키지 못했는데, 그 원인은 신약성경인 로마서 7장에 나온다. 자기들은 지키고 싶었지만 자기 안에 '죄' 라는 괴물이 주인공이 되어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죄로 인해서, 율법이 들어오면 지키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어기고 싶어하는 욕망이 먼저 발작해서, 죄 아래에 그만 사로잡히게 된다.
(롬 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롬 7:15)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롬 7:16)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롬 7:17)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우리 인간의 진면목을 로마서 7장에서 제대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 인간들의 과학과 철학으로는 이런 것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우리 인간 속에는 괴물이 들어있어서, 이 괴물로 하여금 항상 우리를 죄에 사로잡히게 한다. 우리는 선을 추구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게 죄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우리 안에 있는 괴물이 우리의 선을 악으로 바꾸어버리는데, 그런데 여기서 인간은 그 악을 선으로 여기고 행세하게 된다. 그게 바로 서기관들과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인데,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교인들이 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었다. 그것은 선한 것이다" 라고 한다. 그렇다면 복음은 무엇인고 하니까, 주님은 "너희가 선을 악으로 바꾸든 말든 내가 보지 않겠다"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들은 부활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죠. 하나님은 그들을 철저하게 시험의 대상으로 봐서, 그 이스라엘 주변에 이방 나라들을 배치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방 민족들이 하나같이 이스라엘보다 잘 산다. 이스라엘은 약소국가인데, 숫자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당연히 주변에 잘 사는 강대국들을 보게 되는데,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이 있다. 그래서 "아하, 다른 신을 믿으면 내 인생이 풀리게 되고, 행복하게 되겠네" 라고 하게 되는데, 그러니 그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60대가 되신 분과 이야기를 하는데, 이 분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주위의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60대 중반인데 왜 놀고 있는가?" 라고 한다는 것이죠. 일을 하면 돈이 생기는데, 청소를 하든 무엇을 하든 간에 말이죠. 그러니 이 세상은 찌지리들의 블루스라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고 언약이고 간에 모두 다 뒷전인데, 그런 것은 일종의 오락과 같은 느낌이라는 말이죠. 실제는 돈밖에 없는데, 그것이 바로 이방 나라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 본성과 합치가 되어있는데, 구분이 전혀 불가능하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진짜 실제이고 현실이라는 것을 알아챈다고 하면, 그러한 마음이 든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아니고 주님의 선물이다. 물론 지식으로 얻으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인데, "요것 괜찮네"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이스라엘이 망했는데, 그들이 "하나님도 좋지만, 일단은 우리가 먼저 잘먹고 잘살아야지" 라고 나왔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 주변을 완전히 이방 나라들로 뺑 둘러치셨는데, 그리고 그 나라들이 군사력이 강했다. 물론 잘사니 당연히 그러한데, 군사력이 이스라엘과는 비교가 안 된다. 웬만한 것은 조공을 바치면서 다 해결을 했다. 하지만 너무 심하게 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과연 누가 압박을 가하도록 했을까요?" .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 이것은 "너희 이스라엘은 망해봐라" 라고, 즉 "너희가 좋아하는 이방나라에 한번 당해봐라" 라는 겁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돈을 쫓아서 그렇게 미국과 중국이 좋다면, 한번 당해봐라"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은 뒷전인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방 민족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치게 하신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부르짖는데, 즉 자기들의 가능성이 완전히 바닥이 되었을 때, 그들은 불가능성을 찾게 된다. 그 이전에 알아서 찾으면 참 좋겠지만, 인간은 그게 안 된다. 그러면 언제 찾습니까? 자기의 모든 가능성이 바닥을 드러내게 되면, "오직 주님의 의밖에 없군요" 라고 하면서 다시 주님을 찾게 되는데, 그때 주님이 집어넣어 주신 불가능성의 고마움을 깨닫게 되는데, 성도는 이것이 반복이 된다. 따라서 완전한 인간은 없는데, 다만 완전한 것이 우리 안에 있을 뿐이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완전함을 주장하지 않게 하시고, 다만 우리의 죄인됨을 깨닫게 해주셔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 안에서 십자가를, 하나님의 의를 반복시켜주시는 주님의 살아있음과 현실을 연계해서, 이 세상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