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여름수련회 교재에서

아빠와 함께 2022. 6. 25. 21:46

죽음은 자기 동일성 폭주를 저지하고 무효화시킨다

죽음이란 주관적 관점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나만의 죽음은 없고 나는 거저 보편적 죽음의 일부이다

공포는 외부에서부터 나에게로 나타나는 것이고 불안은 나에게서 나에게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무화현상이다

 

인간이 절대 자유자인 신이며 진리며 생명이 된다 그래서 인간 자체가 곧 우상이다 "사람은 헛것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시144:4)

이 우상의 여파로 정신활동이 벌어진다 나의 정신은 나에게서 나와서 나를 추상화하고 도로 나에게 귀환하는 나의 확대현상이다 이는 곧 무엇이 출현해도 절대적 객관화 될 수 없음을 뜻한다 무엇을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것은 우상적인 나의 정신활동의 촉수에 걸려든 대상이라는 말이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노선이 꽂혀야 과거의 연을 꾾을 수 있다 나를 충분히 잊을만한 사건이어야 한다 그래야 동일성을 꾾어낼 수가 있다 나의 죽음사건으로도 부족하다 나의 동일성과 무관하되 차라리 내가 살아있는 그 자체를 죽음이라고 선언할 수 있는 사건이아야 한다 그것은 나에 대한 심판사건의 도래이다 꾸준히 내가 살이있되 그 산 채로 심판하는 사건이 되어야 나의 죽음으로 나의 모든 죄가 사죄받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나는 교정되지 않아야 한다 개선되지 않아야 한다 산 채로 계속 심판받는 경우가 단번에 이루어지는 사건이 있어야 한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드리는 그것과 같이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7:27) 계속해서 심판의 효력이 살아 있어야 계속해서 사죄의 효력도 살아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꼬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8)"

 

기존 동일성을 유지하려는 반복이 우리를 속박하고 파괴했다면 우리를 해방하는 것 역시 새로운 노선의 반복이다 나의 죽음은 영원히 그분의 죽음에 종속적이다 그분의 죽음에 의해서 새롭게 종속적으로 이해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성도의 죽음은 곧 예수님만에 부활이고 생명임을 증거하기 위한 사건의 일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고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유사한 것들의 반복이 아니다 "한 번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것, 단 한 번만 등장한 채 되돌아 오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은 십자가 사건의 단회성의 반복이다 이 반복이 늘 새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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