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는 주님으로 충분해요. 다른 사람은 목자하면 안 돼요.
나는 목사다. 나의 목적은 뭐냐, 주님 같은 목자가 나의 희망이다. 이게 자기 나름대로의 알파와 오메가잖아요. 그리고 뭘 요구하느냐, 내가 이렇게 하면 양들이 따라 와 줘야 된다. 자기가 만든 자기 이상화에 이상자아라고 하는데 자기가 홀려버렸어요. 본인이 본인을 홀리는 괴물이 되어버렸어요. 아주 이상적이고 겸손하기 짝이 없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 목자상을 본인의 이상향으로 설치한 순간 그 사람은 괴물입니다.
목사가 교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양이라고 하면서 양값을 할 수 없는, 양이라 할 수 없는, 그런 죄악된 양임을 그걸 시범조로 보여주는 게 목사의 할 일이에요. “나도 양이 아닐뿐더러 여러분들도 양이 아닙니다.” 라고 죄인 됨을 알려주는 거예요.
왜냐하면 양은 진짜 목자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손수 만들어내기 때문에 거기에 인간이 거들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목자 시스템의 특징은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이 요청됩니다. 우선 ⓐ양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양이라는 게 없어요. ⓑ목자도 역시 없습니다. ⓒ목자가 나타나야 그 때 양이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이건 목자 우선입니까, 양이 우선입니까, 가 아니라 시스템 우선이에요. 시스템. 목자, 양 시스템이 우선이지요. 닭이 먼저 나왔습니까, 달걀이 먼저 나왔습니까, 정답은 말씀이 먼저지요. 말씀이 먼저에요. 닭이나 달걀은 말씀에 종속되는 거예요. 말씀의 시스템에 종속되는 거예요. 그 말씀이 요한복음 1장에서는 누구냐 하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닭이 있어야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계란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나는 더 살 이유 없음을 진짜 목자 되신 주님께서 목사한테 매일같이 이걸 주지시키는 관계를 가질 때 그 사람이 주님과 함께 있는, 주님을 드러내는, 조건하에 한시적으로 목자가 되는 겁니다. 그럼 이렇게 될 때 양은 없어요. 원래 주님을 목자로 알아보는 양은 단 한 마리도 없었어요. 따라서 이런 목사가 있다면 이 목사의 교인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목자시스템을 가동시키게 되면 주와 함께 있는 양이 이 목사를 진짜 목사로 알아볼 때에 그 때 목자 시스템이 살아나는 거예요. 목자 시스템이. 그러니까 양은 껍데기고 목사도 껍데기고 안에 누가 들어있다? 주님이 들어있는 그 시스템. 그게 목자, 양 시스템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