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은 확정된 현실이죠, 이 현실을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현실과 맞추려고 시도를 하는 순간 이 성경은 환상이 되고 마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현실 됨을 양보할 생각이 없어요. 하나님께 양보할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내 고집대로 세상이 되어졌으면 좋겠어요. 인간의 생각이에요. 그러나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되어지기로 이미 확정이 났고 결정이 난 거예요. 인간이 양보해야 돼요. 주님보고 양보하라 소리하면 안 됩니다. 인간이 양보해야 돼요.
그런데 인간은 말씀을 대하는 순간 양보할 생각이 없어요. 왜냐하면 내 현실과 내 꿈이 양보해버리면 나는 살 이유가 없어지니까. 내가 살 이유가 없어져버리면 내가 꿈꿨던 환상이 다치게 됩니다. 내 꿈이 다치게 돼요. 다치면 아파요. 그래서 내가 안 다치고 내 뜻대로 환상이 실재 현실화되는 데에 모든 성경말씀을 여기에 억지로 합치, 일치시키려고 애를 쓰는 거예요. 환상은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이 현실에 충성한 나에 충실함에서 환상이 나오는데 이 꿈이 깨져버리면 내 자신이 아파요. 내가 많이 아파요. 내가 많이 아프면 내가 아픈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뜻도 다 부질없는 것이 돼요. 다 쓸데없는 것. 내가 아픈데 주의 뜻만 이루어버리면 하나님은 좋지만 나는 안 좋다는 겁니다.
이것을 이렇게 정리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것은 훼손시키면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것 중에서 훼손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것을 훼손시키면 안돼요. 인간이 훼손시키면 훼손되기 때문에 훼손시키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훼손시키면 안 되는 이유가 인간이 훼손하면 훼손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아무리 훼손해도 하나님의 것 중에서 훼손될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도행전 26장에 보면 나오죠. 사울이라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을 체포하러 다메섹으로 갔죠.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서 예수님이 직접 사울이라는 사람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만 고생이다. 너만 지금 부질없는 짓을 한다.”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행26;14) And when we were all fallen to the earth, I heard a voice speaking unto me, and saying in the Hebrew tongue, Saul, Saul, why persecutest thou me? it is hard for thee to kick against the pricks.그 말은 인간이 이 땅에 삶 자체가 다 부질없다는 것을, 확정된 말씀에 의해서 통보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은 아주 고집에 고집을 부립니다. 환상은 바로 나로부터 나왔죠. 나에게서 환상이 나오죠. 그럼 나는 어디서 왔는가. 바로 외부 또는 외부 환경에서 주어졌습니다. 이 외부 환경은 나를 위함입니까, 아니면 확정되고 결정된 주님을 위한 겁니까? 외부 환경은 주님을 위한 거죠. 그래서 여기서 날마다 해석 오류현상이 벌어지는 거예요. 세상을 잘못 읽고 있는 겁니다. 그것도 고집스럽게 잘못 읽고 있어요, 고집스럽게.
-십자가마을 광주강의 "표적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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