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 이 사람이 지은 것 중에 [유목주의]란 책이 있어요. 이름이 뭐지요?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나는데 하여튼 유목주의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이 두꺼운 책인데 그것이 합해서 1200페이지 되는 두꺼운 책인데 그 책에 보면 언어를 분석하는데 모든 언어는 다 명령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면 1+1=2다. 수학공식이 있으면, 이것이 명령입니까? 명령이라는 겁니다. 왜 명령이냐면 1+1=2인 줄 알아라. 이놈들아. 명령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3이라 풀면 우리 세계에 넣어주지 않겠다는 겁니다. 강한 지시가 들어 있어요. 모든 이야기들은 서술어를 하든 명령을 하든 전부다 명령으로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 명령은 말을 하는 사람들의 세계 속에 말 듣는 사람들에게 강제로 자기 사람으로 당기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는 명령으로 사용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명령을 하는 이유가 뭐냐? 결핍 때문에 주어진다는 거예요. 결핍 때문에 주어지는데 그 결핍에서 뭘 보느냐 하면 잉여, 넉넉함을 노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요. 이렇게 명령으로, 명령으로 하는 이유는 언어의 의미라 하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활용에 있다, 활용에 있다. 라는 비트켄쉬타인의 이론을 이 사람이 그대로 동의합니다. 그 단어가 왜 거기에서 그렇게 활발하게 쓰이느냐, 쓰이는 쓰임새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축구를 할 때 축구 룰이 있잖아요. 그 룰을 보여주기 위해서 축구공의 공이 있습니다. 축구공이 그냥 있을 때는 아무렇게나 차면 되지만 일단 축구공이 게임에 들어가면 이 축구공은 밖에 나갔을 때는 그냥 차면 안돼요. 드로잉을 해야 돼요. 같은 축구공인데 드로잉을 함으로써 거기서 새로운 의미가 발생되면서 드로잉을 하는 사람은 우리 축구동우회에 넣어주고 밖에 나갔을 때 드로잉을 마음대로 밖으로 차 넣으면 축구동우회에 아예 넣어주지도 않는 거예요. 너는 나가 놀아라. 너는 규칙도 모르고 가! 하고 내쫓아버립니다. 이 세상의 모든 언어는 자기들만의 게임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바로 언어인데 의사소통이란 말은 누구나 되는 언어소통이 아니라 자기들 룰을 동의하는 사람끼리만 통하는 의사소통입니다.
이러한 들뢰즈의 모든 이야기는 이것이 어디에 정확하게 해당되느냐 하면 바로 언약공동체 이스라엘 내부에는 이것이 정확하게 꽂히게 되어 있어요.
하나의 예를 들면 이스라엘 모세가 하나님 산에서 뭐라 하느냐 하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 저런 인간은 내 생명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내용이 나오거든요.
그렇다면 불교 스님한테 스님, 출애굽기에 보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는 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답니다. 그렇다면 스님이 뭐라 하겠습니까? 저는요, 생명책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생명책으로 전도하려고 하다가 그만 어떻게 돼버려요? 스님, 생명책에 기록돼야 되고, 생명책에 기록되려면 예수 믿어야 되고, 이렇게 준비된 이야기가 쭉 펼치려고 하는데 저는 생명책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돼버리면 말문이 탁 막히면서 그 다음에 말할 게 없잖아요. 그런 경우 뭐냐 하면 이런 현상들이 이스라엘 가는 곳마다 다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성경말씀에 나오는 그 용어나 게임의 휩쓸리지 않는 사람을 골라내는 작업으로서 성경이 있다는 거예요.
어떤 내용인가 듣기 싫어요. 나는 그 자체를 인정 못합니다. 진짭니까? 반가워서, 진짭니다. 지옥 갈 사람 또 만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언약공동체의 할 일이에요.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이유가 그렇게 되는 거예요. 신난다는 거예요.
★유목주의
노마디즘이라고도 한다.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삶의 영토, 다른 삶의 방식, 다른 가치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이들을 유목민(노마드, nomad)이라고 하는데 유목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일체의 방식을 유목주의라고 한다. 본래 '유목민'(노마드) 개념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저서 『천 개의 고원』에서 부각시킨 개념이다. 그들은 이 책에서 "노마드의 삶은 막간의 간주곡이다.(…중략 …) 노마드는 단지 하나의 결과로서 그리고 실제적인 필요에 의해서 한 지점에서 다음 지점으로 이동한다. 원칙적으로 그에게 각 지점은 궤도에 따른 연결점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유목'에 대해 설명하면서 동원한 용어인 "전쟁기계"란 바로 이러한 유목적 삶의 방식에 의해, 즉 창조하는 방식에 의해 '전쟁'을 수행하는 모든 '기계'를 뜻한다. 결국, 유목주의란 기존의 것을 파괴하는 부정적인 방식에 의해서가 아니고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나가는 방식 일체와 관련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유목주의는 정치·경제적 영역, 철학, 예술의 영역 등에서 적극적으로 하위자들을 대변하고 소수적 가치를 옹호하는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가치관으로 주목받고 있다.(조강석)
-2006 함평수련회 베드로전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