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인 사랑으로 보는 거예요. 같은 교인들끼리.
그러니까 이것을 실습해 하면 이렇게 됩니다. 아이고, 키가 작으시군요, 주님의 사랑인 줄 믿습니다. 아이고, 얼굴이 이렇게 못생겼을 수가, 당신에게 주신 주님의 크신 사랑인 줄 압니다. 못사시는군요. 밥도 못 먹는군요. 사랑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자아가 날아갈 때 비로소 사랑이에요. 자아가 없어질 때 땅의 원리가 아니라 하늘의 원리에요. 몇 초? 2초에요. 하루 2초에요. 하루 2초 동안 만큼은 자아가 사라져요. 자아가 있게 되면 자아가 타인과 비교하니까 타인의 욕망이 나한테 담기는 거예요.
사랑이 뭐라고요? 사랑은 그냥 덮는 것. 뭐로 덮는 것, 허다한 죄를 덮는 것. 어떤 경우가 그렇다? 비교가 없이 자아가 없어 버리면 있는 그대로가 다 사랑으로 보이지요. 이럴 경우에는 바로 인간적으로는 안 되고 주님의 용서받은 자아에 한해서 이미 용서가 다 된 한해서는 넉넉하게 다 되는데 그것을 가지고 뭐라 하면 베드로전서는 자유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자유가 우선 확보될 때 그 다음부터는 왕에게도 지배하고 못난 사람에게도 복종당해도 괜찮고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고 하는 것이 베드로전서 3장, 4장 이야기에 쭉 나오는 네가 죄지어 고난 받아도 무슨 자격이 되냐. 착해도 안 알아줘도 노동자들이여, 사업자에게 복종해. 노동자로 안 되어있고 노예로 되어 있는데 노예들이여 그냥 복종해, 복종해. 너는 이미 자유잖아. 허다한 사랑을 덮잖아. 왜 자꾸 자아가 자극을 주느냐 말이지요. 자꾸 비교하려고 하느냐. 너는 사용자고 나는 노동자, 누가 세냐? 그러지 말란 말이죠. 자유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택한 백성이니까 하늘의 원리를 담아라. 라는 것이 베드로전서 3장, 4장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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