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에서 내려오니 내가 무엇을 떠들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속에서 곡하는 소리만 들렸다. 처음에는 내가 우는 소리만 들리더니 조금 후에는 주님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비참했다.
주님을 증거한것이 아니라 주님을 가리운 것같아서.
성경 귀절 행간 행간에 발려진 피의 말씀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죽 죽 펼친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꾸기 꾸기 꾸겨서 말씀을
혼잡케한것이 덕지 덕지 나온것 같어서.
그래서 속으로 계속 울기만 했다.
내 울음에는 일종의 항변도 잔뜩 묻어 있다.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왜 좀 밀어주지 않느냐 하는.
그 항번속에는 이미 복음마저 내것으로 만들어서 장악하겠다는 일종의 마귀의 심보가 들어 있다.
주님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성도라면 누구나)의 복이 무엇이며 저주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부득불 복음을 전하는 그 일이 그 자체로 즐거움이 되고 그것자체로 복이 되며
그것이 아니면 그자체로 비참임을.
그러니까 꼼짝없이 복음에 붙들리고 붙들린 그 복음에 의해서 복과 저주가 갈리우는 사람 된 그것이 바로 축복인것을.
그러고 보니 복받은 기쁨이 물밀듯 밀려온다.
지리산 휴게소에서 김을수 집사님이 오뎅사줘서 먹었다.
자기는 기도하면서 무지 떨었다고 한다. 기도순서를 내가 넣은줄 알고 나를 약간 미워했다고 하길래
내가 아니라 누구였을 것이라고 했다.
상관없다.
참 좋은 경험을 했다.
목사가 말씀만 생각하면 된다는 것을, 그밖의 다른 것이 사소한 것임을 깨닫는 것보다 더 좋을수는 없다.
장로님은 길을 잃어서 북대구로 갔다가 다시 오시느라 뒤에 처졌다.
광주에서 만나 저녁먹고 헤어지기로 해 놓았다.
우리교회 오늘 점심메뉴는 소고기넣고 끓인 국이 나왔는데 설교걱정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한것이 아쉽다.
그래도 괜찮다. 더 맛있는 오전 설교를 들을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