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자료

3강-두개의 노선

아빠와 함께 2021. 1. 16. 16:59

2021 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 제3강-사무엘상 강해 : 두 개의 노선
(강의:이근호 목사)


사무엘상 15장에 사울이 자기 국가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이게 우리들 삶의 영토에선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국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 나름대로 소유를 따로 가지는 그것이 우리 존재의 목적이 되고 이유가 된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사울 왕이 명분을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사울의 근거는 뭐냐? 아말렉이 블레셋이 자꾸 공격해오니까 하나님의 적이 하나님이 계시는 이스라엘을 공격하니까 싸울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 왕으로서의 왕권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뭐가 문제냐고 하는 거예요. 그럴 때 사무엘상 15장 17절에,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왕이 작다는 것, 어느 정도 작아야 되느냐 하면 왕의 자리가 빈자리가 될 때 가장 작게 되겠지요. 그 왕이 누구냐? 바로 다윗 왕이에요. 첫째 시간에 다윗을 매개입자라 했지요. 매개입자의 특징은 질량이 없어요. 질량이 있긴 있는데 거의 없어요. 만약이 진짜로 질량이 없다고 한다면 이건 어떤 존재냐 하면 천사와 같습니다. 천사의 특징은 뭐냐 하면 질량이 없어요.

그래서 물리학계에서 매개입자에게 질량이 아주 없진 않으니까 질량을 부여해주려고 하는 겁니다. 보손이란 물리학자가 질량을 구하기 위해서 질량을 제공하는 입자가 힉스입자라 하는 거예요. 이 입자가 질량을 주고 매개입자는 움직이게 되고 그 움직이는 속도 30만 킬로미터 한도를 넘을 수 없다고 돼있어요. 더 이상 넘어버리면 질량이 커지게 되면 그만큼 압력도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무리 속도를 내도 질량이 같이 커져버리면 가속도 받기 때문에 30만 킬로미터를 넘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거든요.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있음에서 있음으로 나가는 이 모든 것은 빛의 속도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만약에 있음에서 없음으로 나간다면 없음의 세계는 무슨 세계입니까? 유령의 세계지요. 유령의 세계는 반드시 뭘 공격하게 돼있습니까? 유령의 세계는 인간의 언어로 포착을 못하니까 이것은 항상 위협적인 존재지요. 위협적인 존재는 있음의 세계에서 어떻게 됩니까? 제거대상이 됩니다. 죽여 버리는 거예요.

누가복음 23장 28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와요.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니까 백성들이 여자들이 울었던 겁니다. 따라오면서 울었어요. 사람이 우는 이유는 나보다 불쌍한 인간, 그것 때문에 우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우는 것은, 나는 저 사람처럼 되지 않아야 될 텐데, 하고 자기가 자기 보고 우는 거예요. 맞는지 안 맞는지 그건 알아서 하세요. 집안에 누구 죽고 누구 죽으면 나는 어떻게 살지, 자기 걱정한다고 우는 거예요. 좋아서 우는 것 말고 슬퍼서 울 경우에 그렇단 말입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지금 너희들이 내 걱정할 쨉이냐 이 말이에요. 너희들이 나를 걱정할 군번이냐 이 말입니다.

예수님은 언약궤잖아요. 언약궤의 완성이죠. 언약궤가 등장한다는 말은 예언이 등장한다는 말은 어떤 경우에 그렇다? 죄인 것을 죄인 줄 모르는 그것을 죄로 들춰내는 거예요. 죄의 결과는 멸망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의 멸망할 줄도 모르고 남 걱정하고 있단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가신 언약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울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고 자신들의 울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이 울 때가 언제냐 하면 자기 소유가 자기가 지켜내지 못할 때 소유가 있어야 내 이름이 거기 있는데 내 모든 지켜내지 못할 때는 폭발하듯이 한풀이하듯이 울 수밖에 없는 그런 입장이지요.

그걸 있음의 세계는 유령의 세계가 굉장히 위협적인 거예요. 예수님 십자가 지는 게 안타깝거든 요새 여자들 잘하는 것 있잖아요. 맘카페 올려서 청와대 청원하는 것 있잖아요. 25만 이런 것 해서 죽이지 마세요, 이러지 입 다물고 있는 거예요. 그것 하면 자기한테 뭔가 불똥 튈까 겁이 나서.

예수님은 참 훌륭해, 좋으신 분이야. 뭔 뜻입니까? “난 당신 일에 관여하기 싫습니다.” 내 것 다치면 안 되니까. 그런 뜻이거든요. 위협적인 존재를 인간들이 있음으로 유령의 세계를 표현하는 방법은 이겁니다. i입니다. 수학에서 i라 하는 것은 제곱하니까 마이너스가 나오는 것, 이게 말도 안 되는 소리거든요. 이게 허수에요. 허수를 통해서 경계 짓는 겁니다. 이쪽 세계는 유령의 세계고 이쪽은 있음의 세계다.

그래서 옛날에는 3차원 공간을 xyz라 했는데 여기다 공간 하나를 더하지요. xyz 3차원 공간을 거리라 한다면 시간을 집어넣어요. 어떤 우주가 있을 때 우주선을 타고 간다면 방향을 가진 벡터로 가게 되면 P지점은 여기에 x지점 있고, 광속도x시간(ct)해서 P(ct, x)점으로 해서 피타고라스 빗변공식 있잖아요. c²=a²+b², 여기에 허수를 집어넣으면 이게 마이너스가 돼요(c²=a²-b²). 그래서 시간에다 마이너스, ict를 집어넣어서 시간을 d, 거리로 생각하는 겁니다.

이렇게 돼서 공식을 내면 우주는 시간, 광속으로 움직이고 있는 거예요. 이 세상에 멈추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NPC가 아무것도 없어요. 모든 것은 움직이면서 상호작용하는 것, 힘으로 상호작용하는 그것뿐이에요. 이게 불교에서 말하는 직관과 비슷한 거예요. 모든 것은 서로서로 조화롭게 움직인다. 끝나는 겁니다.

그러니 이게 지금 원인이 어디 있느냐 하면 여기 사울이 아말렉을 전부 다 젖먹이 애부터 해서 좋고 나쁘고 다 죽이라 할 때 왜 그 말씀을 사울은 못 지키느냐? 어떤 행동에 나설 때 인간은 그냥 순수하게 행동에 나서는 위인들이 못 됩니다. 행동에 나설 때 나중에 그 예상한 결과가 나라는 존재 유리하게 작용할까, 불리하게 작용할까 미리 계산해서 나서게 돼있어요.

이게 유리하냐, 불리하냐? 유리하다, 불리하다를 어디서 누구한테 배웠어요? 어린애가 있는데 어린애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이나 세계관입니다. 여기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꽥하고 잔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이러면 옳고 이러면 그르다는 잔소리를 듣게 되면 인간이 여기에 맞춰주려고 해요. 맞춰주다 보니 나의 욕망은 날아가 버리고 누구의 욕망 밖에 없느냐? 나한테 잔소리했던 타인의 욕망이 나의 욕망이 되는 겁니다.

아버지의 기대감에 의해서 내가 살아간다 이 말입니다. 너는 머리가 좋으니까 나중에 사법고시에 합격해라, 하고 아버지가 했는데 사법고시 합격될 즈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 합격증 들고 오징어 한 마리 굽고 소주 한 병 들고 북한강 보이는 강기슭 묘지에서 엉엉 울면서 이 좋은 때를 보지 못하여 아버지여 가셨습니까. 불효자는 웁니다, 하고 실컷 울고 노래 부르고 다 때우잖아요.

왜 아버지한테 그렇게 하느냐 하면 아버지의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내가 아들답게 되고 그럴 때 아버지와 나의 상호작용은, 우리 가족의 힘은 내가 효자가 될 때 가정의 영광은 빛난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뭉쳐져서 씨족이 되고 사회가 되고 국가가 돼버리면 그것은 국가의 명예를 위해서 내 삶의 명분이 범위가 확장되는 겁니다.

마지막에 이토 히로부미 죽이러 가면서 손바닥에 시커멓게 해서 대한국인, 팍 찍고, “여보, 미안하오. 나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가정을 버리는 것을 당신이 이해해주오.” 안중근은 죽었지요. 아들은 미국 가서 마약하다 걸리고. 그 아들은 아버지의 정신이고 뭐고 없어요. 아버지는 아버지고 나는 내 인생이지 내가 아버지처럼 나라 위해서 할 필요 뭐 있느냐. 아들은 미국이 아버지 됐어요. 미국의 좋은 생활이 아버지 되었어요.

모든 인간은 자체적으로 자기의 자아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기존의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이 없으면 절대로 자아는 구성되지 않습니다. 이게 굳어지니까. 정신병이라 하는 것은 아버지의 소원을 못 들어줘서 내부적으로 억압을 당하는 그것이 정신병이고 신경증세의 원인이 됐지요. 보는 눈이 많은데 이렇게 살아야 되겠는가. 그 정신병이 교회 와서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기대하는데 내가 이렇게 하나님 말씀 순종 안 하고 살아야 되겠는가. 이것 정신병자입니다. 언제 하나님이 나한테 기대했어요? 안 했어요.

지금 사울이 악신 걸렸지요. 아까 첫째 시간에 했잖아요. 인간은 ▭다. 인간은 영물이에요. 성신, 악신 이게 매개입자거든요. 사울은 악신 걸렸단 말이죠. 영물이란 말은 자기가 자기 마음대로 안 돼요. 그래서 기념비 세우고 왕 삼아서 한 겁니다. 이렇게 했을 때에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지만 사무엘상 15장에서 당신이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했습니까?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22절)

좋은 것을 왜 뽑았느냐 하면 좋은 제물 바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줄 알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제사는 순종보다 못하다. 이 말이 중요한 것은 제사라 하는 것은 일종에 명분인데 그 제사가 순수하지 않은 이유가, 자신이 왕이라는 걸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사무엘 당신은 어떻게 하느냐? 15장에 보면 나옵니다. 사무엘상 15장 32절에, “사무엘이 가로되 너희는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내게로 이끌어오라 하였더니 아각이 즐거이 오며 가로되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하니라” 그러니까 아각이 착각한 거예요. 난 이제 살았구나. 죽을 일은 없다 하니까,

“사무엘이 가로되 네 칼이 여인들로 무자케 한 것 같이 여인 중 네 어미가 무자하리라 하고 그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 보란 듯이 도끼로 이마 까라 한 거예요. 완전히 작살내버린 겁니다. 어떻게 사람이 인권이 있는데 인간의 존엄성이 있는데 이렇게 깡패도 아니고 무슨 원한 유발할 일이라고 좋게 죽일 수도 있는 어떻게 도끼로 이마 까라 해서 아각을 찍어서 쪼개버리느냐?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이것은 바로 약속이 없으면 예언과 접속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인간도 아니다, 사람도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나라와 다른 나라와의 차이점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은 사슬의 죄와 같고 완고한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똑같은 죄다.

그래서 사무엘이 아각을 쪼갰다면 오늘날 주님은 우리를 쪼개버리는 거예요. 주님한테 쪼개질 때 우리는 주님께 찬미해야 됩니다. 이건 횡재한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나를 못 쪼개잖아요. 주께서 쪼개주니 얼마나 감사해요. 그래서 우린 쪼개진 날 부분을 주워야 돼요. 그 쪼개짐을 보고 주워봤자 다음에 또 내가 나오는데 또 쪼개지고. 그렇게 사는 겁니다, 성도라면.

그러면 도대체 국가라는 게 뭔데 이렇게 되느냐? 그것 보기 전에 사무엘하 2장으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브닌나는 자식을 소유하기를 원했지만 한나는 예언의 말씀을 드디어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게 바로 예언이에요. 2장 1절에.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라고 한나의 찬양이 나오는데 이것이 예수님 잉태하고 난 뒤에 마리아가 찬양한 내용과 누가 누굴 베꼈는지 모르겠지만 똑같아요. 그대로 복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답은 한나가 마리아의 것을 베꼈다고 봅니다. 왜? 역사는 유령의 시대에서 마이너스 시간이에요. 허수거든요. 유령의 영역에서는 입자가 아니고 파동도 아니고 사건이기 때문에 사건에선 속도나 속력이란 게 있을 수 없습니다. 속도, 속력이 없으면 시간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지요. 질량도 허수 질량이 나와요. 질량이 없다 정도가 아니라 허수 질량이 나오는 겁니다. 시간도 허수 시간이 나오고.

그렇게 되면 여기는 그냥 사건인 거예요. 사건을 저는 불꽃놀이. 세상의 불꽃놀이는 밑에서 올라가지만 아무도 올라간 걸 본 적이 없는데 펑, 펑, 펑 터지는 거예요. cj엔터테인먼트 영화 첫 장면에 뭡니까? 애들 섬에서 놀다가 빨간색, 파란색 펑펑 터뜨리잖아요. 사건인 거예요. 사건은 소유대상이 되질 않습니다. 사건은 우리가 유발하지 않았어요. 사건의 특징은 예측이 안 돼요. 예측이 안 되니까 관측, 측량이 소용없습니다. 관찰행위가 소용이 없어요. 예언이니까.

그래서 한나의 예언에 대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이유가 여기 10절에 보게 되면,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이렇게 돼있어요.

그러니까 한나의 예언 정신이 사무엘에게 고대로 이전이 되고 사무엘에게 이전된 말씀이 인격화된 것이 다윗이에요. 다윗이 기름 부음 받은 왕이 되고 다윗의 뿔은 높아지는 겁니다. 복음은 어디서 나오는가? 다윗의 자손이 바로 복음이 말한 당사자, 그 인물이에요. 다윗이 왕 되기 위해서는 한나의 예언이 집약된 왕이 등장해야 되고 한나의 예언에 보게 되면 의도적으로 이런 자, 소유에요.

여기 보면 힘 있는 자를 치시고 가난한 자를 부하게 하신다는 말은 뭐냐 하면 소유로 자랑하는 자를 치는 작업의 결과로서 또는 작업 중에 등장하는 왕이 진짜 왕이라는 거죠. 그러면 다윗이 왕 되기 위해서는 필히 여기 이 빈자리에 뭐가 나와야 돼요? 가짜 왕, 왕이 되지 말아야 될 왕이 여기 등장해야 되겠지요.

사무엘상 8장에 보면 사무엘이 늙으니까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3절) 사무엘은 그렇게 훌륭한데 왜 아들은 훌륭하지 못하느냐? 사무엘은 말이고 아들은 소유기 때문에 이게 안 맞는 거예요. 사무엘이 아들을 소유한 게 아니에요. 사무엘은 그냥 선지자이고 아들은 자기 소유로 가버리고.

사무엘 책임 아니지요. 엘리 제사장처럼 내 자식이라고 싸고 돈 게 아니잖아요. 나는 내 아들을 귀히 여긴다. 이런 게 아니거든요. 너는 너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자. 요즘 이런 아버지 같으면 자식들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정말 행복할 겁니다. “아빠, 나한테 기대하지 마세요. 아빠는 아빠 인생 살고 나는 내 인생 살게.” 아빠와 엄마가 싸우든 말든 나와 무슨 상관있는데. 이런 식이죠.

그래서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이 모여서 우리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하니까 10절에, “사무엘이 왕을 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일러 가로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가 이러 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소유입니다) 그 병거와 말을 어거케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 아들들로 천부장과 오십 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소유의 강화지요)”

왕을 달라 할 때 너희들의 마음상태가 그대로 구현된 게 왕이라는 거죠. 왕을 달라 할 때 내 소유가 여기에 다 집약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 왕 제도라는 겁니다. 왕 제도가 있다는 말은 왜 백성은 원하느냐? 왕이 있음으로서 합쳐서 이게 하나의 국가로 존립하고 싶다는 그런 의도를 나타내는 겁니다. 그래서 너희들의 제일 좋은 것과 자기의 십일조 어떻고 십분의 일 취하고, 17절에 나오지요.

그렇게 해서 좋으냐 하니까 19절에서, 우리도 왕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라고 한 거예요. 그 왕의 정신 상태나 그 백성이나 둘 다 똑같아요. 목사가 복음을 전하는 게 중요하지 목사가 있어야 교회가 됩니다, 하는 사고방식이나 목사나 교인들 사고방식이 똑같은 겁니다.

그러면 국가라 하는 것은 이념적인가, 다시 말해서 상상의 제도인가, 아니면 실제로 국가가 있는가, 실제적인가? 이념적이라면 이건 정치적인 것이고, 실제적이라면 경제적이고. 경제적인 바탕이 될 때 이념도 사니까요. 그리고 경제가 있어버리면 혼란을 야기 시키니까 정신적으로 어떤 이념을 구현할 때는 정치적, 상징적 인물이 등장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왕입니다. 그래서 왕은 상징적 인물 유지하기 위해서 경제적으로 많이 도와주지요.

제가 이렇게 하면, 목사님 그게 뭐가 나쁩니까,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데 뭐가 나쁘냐고 이야기하겠지요. 이게 왜 나쁘냐 하면 바로 출애굽 정신을 놓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사무엘에서 계속해서 애굽에 처음 나올 때 바로 왕을 강퍅하게 해놓고 너희가 나올 때라고 계속 반복하는 이유는 이 출애굽 정신이 우리의 본성적인 것이 아니고 이건 누구 소망이냐 하면 이게 하나님 소망이에요. 하나님 뜻이라고요. 그러면 하나님 뜻 밑에서 우리의 소원은 사울 왕이 들어주는 겁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이라 하지요. 제퍼슨하고. 제퍼슨은 미국에 프랑스의 독립혁명의 정신을 부여하듯이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고 천부적인 인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남을 노예로 삼을 수 없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된다, 라고 하면서 자기 집에 노예 300명을 갖고 있었거든요. 왜? 노예는 재산이니까. 그러나 그건 이념적이에요.

실제적인 미국을 이룬 것은 뭐냐 하면 제퍼슨도 워싱턴도 아닙니다. 해밀턴입니다. 미국 뉴욕에 맨해튼, 금융가 누구 작품이냐? 알렉산더 해밀턴 작품이거든요. 독립전쟁해서 8000만 달러 빚을 영국에 지고 있는데 13주를 통합해서 연방나라로 만들었는데 그 연방나라에 핵심은 정치적이 아니고 경제적이었어요.

그 빚 우리가 대신 담당할 테니까 그 대신 여러분 부채를 연방은해에 다 넘기고 연방정부에 다 넘기고 그 대신 기업하는 사람들에게 싼 값으로 대출해줄게. 이래서 미국이 실제적으로 독립한 겁니다. 관세는 높게 하고 자기 나라에 많은 철과 석탄 같은 것은 수출하고 관세 벽은 높여서 국산품을 애용하게 만들고 외제는 차단시키고 그 대신 많이 팔아먹고. 그래서 모든 부채는 연방정부에서 통합된 금융제도에서 처리한 사람이 해밀턴이라는 겁니다. 세계 50층 이상 빌딩의 반을 갖고 있는 것이 뉴욕의 마천루 아닙니까. 그 나라가 그렇게 만들어진 거예요.

실제적으로 뉴욕을 보면서 이게 사람 사는 데가. 우에 사노? 이런 사람들 거의 없어요. 저 105층 센트럴파크 근처에 있는 고급아파트 제일 꼭대기 층, 돈 얼마 안 해요. 한 평당 1억씩. 최고급 아파트에 살아봤으면 하지, 어디 사는 사람들 힘들어 어떻게 살지, 이런 생각하는 사람 거의 없을 겁니다. 거의 없다는 말은 결국은 우리가 다윗 편이 아니고 우리가 사울 편인 거예요. 심지어 다윗도 사울 편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출애굽 정신에 입각해서 다윗으로 하여금 사울에게 내내 좇기면서 다윗은 하나님의 출애굽 정신을 몸으로 구현해내는 겁니다. 그 변화가 복음적 변화에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겁니다. 처음부터 세상의 돈이란 돈은 다 좋아하고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그 사고방식 다 하면서 이상하게 기름 부음 받았는데 다 같이 메시아처럼 기름 부음 인도함을 받는데 이게 중첩이 됐어요.

한 명 죽고 한 명 나와야 되는 게 정상인데 동시다발로 두 명이 등장한 거예요. 사울을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다. 사울을 따르던 백성들이 이제는 다윗을 따른다. 뭔가 수상하지요. 굉장히 수상한 겁니다. 왕을 달라는 그 심보가 여전한 거예요. 한결 같은 거예요. 출애굽 정신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 구현 아니에요.

내가 풍요하게 소유 넉넉하게 살고 싶은 심보가 보다 능력 있는 영웅적인 사람을 왕으로 삼아보자. 천천보다 만만이 낫지 않느냐. 골리앗도 못 이겨서 벌벌 떨던 그 사울보다 휙휙 돌아가는 것, 물맷돌 시속 100 나온답니다. 시속 100킬로로 이긴 게 아니에요. 이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저들은 할례 없는 자에요.

하나님의 율법의 정신을 다시 말씀드릴게요. 시내 산 위에 있는 율법이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면 시내 산 위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지 않으면 시내 산 위의 하나님과 합류가 안 돼요. 다른 민족은 하나님 없이 우상으로 살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끊어지면 이거는 그 자체가 저주받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계약으로 율법을 줬거든요. 율법을 줄 때 두 종류지요. 하나는 지켜라. 두 번째는 못 지켰을 경우에 죄 씻어줄게. 이 두 가지 제도란 말이죠.

십계명 주고 난 뒤에 그 주어진 계명들을 책에다 쓰고 그 책에 뭘 붓느냐? 바로 제사의 피를 한 바가지 부어버리는 거예요. 이 모든 율법의 구현은 바로 피 뿌림, 죄 사함으로 인하여 이뤄진다는 것을 분명히 그들에게 줬어요. 줬는데 그 사람들은 그 정신을 모르고, 정신을 모를 수밖에 없지요. 왜냐하면 인생을 계속 그 다음부터 동행해서 안 살아봤으니까 자기가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이제는 번제와 화목제를 잘 드리면 복 받을 줄 알았지요. 피가 생산하는 양을 잡고 소 잡고 염소 잡으면 되는 줄 알았지요. 본인을 잡아야지, 본인을. 본인을 잡아야지, 본인을. 본인을 잡을 생각 안 하고 자꾸 자기 유리한 쪽으로 개는 안 잡았지만 소나 염소나 양이나 잡으면서 이러면 받겠지 하는 거예요.

본인을 드릴 생각 안 하고 십일조 드릴 생각하고, 우린 해당하는 사람 없습니다만, 본인을 리본해서 드려야지 본인은 안 드리고 돈 드리고. 주님께서 용돈 궁해 용돈 줍니까? 뒷방 어르신네처럼. 이것으로 한 주 쓰세요. 장기 두실 때 내기 돈 하시라고, 용돈 드립니까?

사무엘이 사울에게 부탁한 것은 왜 너는 모든 걸 진멸하라는 이 약속에 네 자신을 안 드리고 너를 남겨놓느냐 이 말입니다. 힘을 강화시키면서 왜 남겨놓느냐 말이죠. 그냥 자유 낙하하듯이 그 약속 속에 뛰어 들어가란 말이죠. 구약에서는 그 약속에 뛰어 들어갈 위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뛰어 들어가면 나만 손해 아닐까 하는 생각이기 때문에 그냥 뛰어 들어가 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가만 생각해보고 조심스럽게 뛰어 들어가는 이런 건 안 되거든요.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 자체를 어린양으로 삼습니다. 제물로 삼아요. 제물로 삼을 때 현재 구약의 있음으로서 어린양이 되지 못하고 이 있음을 없음으로 만들어놓고 없는 상태에서 생겨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어린양이 되게 하시는 거예요. 이스라엘의 어린양 되신 그분이 어린양 되라고 우리를 초청하는 겁니다.

이미 너는 제물이다. 제물이 되었어. 그러니까 네가 드린 것이 왜 제물이 아닌 것을 이제부터 네가 몸을 드리면서 알아야 돼요. 주님께선 우리의 몸을 받지 않고 예수의 몸을 받는 이유를 우리의 몸을 드리면서 우리는 그걸 증명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주께서 성령께서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네 몸을 왜 그렇게 안 되느냐 하면 네 몸은 어떤 경우라도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어떤 말씀도 지킬 수 없는 그런 몸으로 타고났다는 겁니다.

이게 창세기 8장 끝에 보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게 태어났다. 어린아이들 태어날 때부터 악하게 태어났어요. 사자머리 교수님 백날 가르쳐봐야 안 돼요. 개는 훌륭하다 백날 해봐야 개는 개에요. 개 대통령한다고 사람 되는 것 아니고요. 우리는 인간 되면 안 되고 인간을 포기하라고 인간으로 만들어진 거예요. 오랜만에 좋은 소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 포기하라고 인간으로 태어난 겁니다. 얼마나 즐겁고 가벼운 마음입니까.

사울은 그걸 자율적으로 하지 못하고 신약은 자율적으로 하는데 사울은 고집이 세서 그걸 버티는 거예요. 내가 왕인데 니가 왜 왕이냐고 다윗 보고 맨 날 하는 거예요. 다윗 만났다 하면 창 들고 다윗을 창으로 자꾸 찌르려고 하는 거예요. 두 개의 상반된 매개입자가 하나의 매개입자를 없애려고 한단 말이죠. 악신 들린 자의 특징은 성신 들린 자를 창으로 찌르는 거예요. 나만 있고 너는 없어져줘.

그러면서도 정신 들면 또 이런 소리해요. 매개입자는 사건이기에 그래요. 정신 들면 다윗에게 하는 말이, “너는 참으로 옳도다. 네가 왕이 돼야 돼. 나는 왕이 되면 안 돼.” 이런 소리한다고. 이건 트럼프도 아니고. 바이든 당신 이겼습니다, 하고 데모하고. 앞뒤가 영 안 맞는 자기도 자기 마음대로 못해요.

참 여러분들이 제가 이야기하면 사울 참 나쁘다고 하지요. 여러분들이 사울인 것을, 만약에 여러분이 목사라면 부목사가 들어왔는데 설교 나보다 더 잘해. 이 인간 죽었습니다. 조용히 보내지 않고 종용히 보내버리죠. 그러면 부교역자는 그걸 미리 눈치 채고 종용히 제반작업을 해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이게 누구냐? 압살롬이에요. 교인들을 자기 사람으로 다 만들어놔서 완전히 다윗을 빈껍데기로 만들었잖아요.

이게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에 나오는 이유가 뭡니까?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질투심으로 반항기로 감히 나를 건드려. 이런 식으로. 조금 전까지 살아남은 자체를 찬미했잖아요. 됐어. 성공했어. 취직했어. “엄마, 나 취직했어.” “이놈아. 됐다. 넌 살은 거야. 이젠 결혼하는 것만 남았다.” 뭐예요, 이게? 사울이에요, 뭐에요? 되기는 뭐가 됐는데?

그러다가 회사 다닌 지 한 달도 안 돼서, “상사가 나를 괴롭혀. 사표 낼까봐.” “애야 붙어있어라.” “엄마, 전쟁 같아.” “밖에 나오면 지옥이야. 지옥보다 전쟁이 낫지 아니하냐.” 이런 식으로 붙들고 말리고. “엄마, 돈 없나?” “왜?” “사업할래.” “애야 사표내지 말고 사업할 생각하지 말고 나오지 마. 뭐라도 붙어있어야 돼. 공부한다고 돌아다니지 말고.” 누구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게 왜 그러냐 하면 나라는 것이 타인이 있을 때 내가 남을 죽이는 겁니다. 죽일 때 그 사람이 내게 없는 걸 갖고 있을 때는 그걸 빼앗고 죽이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사울이 다윗을 죽일 때는 그냥 다윗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는 생각을 안 하고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이스라엘을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를, 어떻게 곱게 물려두는 것이 나한테 이익이냐, 아니면 죽이는 것이 이익이냐를 계산하면서 생각하는 거예요. 나의 소유를 근거로 해서 타인을 생각하게 돼있단 말이죠.

그래서 타인이 순수한 타인이 아니고 내 말을 아무리 해봤자 내 말은 타인에게 건너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나 좋은 쪽으로 유리한 쪽으로 되돌아오게 돼있어요.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게 돼있단 말이죠.

그런데 사무엘상에 다윗은 계속 좇깁니다. 좇기면서 나오는 게 시편 22편에 나오지요. 22편에선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23편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지금 하나님의 언약궤를 보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언약궤에서 나온 말씀이 구체화 된 것이 본인이고 그 구체화 된 것은 언약궤로 들어가야 된다.

그럼 이 관계가 이 상호작용에서 등장한 게 뭐냐? 왕입니다. 왕은 말씀의 완성태. 유령이 실제로 말씀이 실제로 왕으로 등장하는 그 세계가 다윗을 통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면 사울이 유일하게 말을 건넨 적이 있어요. 유일하게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고 말을 건넨 적은 바로 엔돌에 신접한 여자를 통해서 사무엘에게 말을 건넸을 때 사울을 처음으로 내가 누구냐를 알게 되는 겁니다. 내가 바로 무당이라는 거예요. 신접한 여인과 동급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율법에 보면 신접한 자를 죽이라 했잖아요. 그래서 사울을 신접한 자를 죽이고 쫓아내놓고 자기가 쫓아낸 그것을 내가 죽여 버린 타인을 내가 가게 됩니다. 그러면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는 거예요. 사울의 진짜 모습은 본인이 저주받을 무당인 거예요. 율법에 의해서 저주받은 무당이 자기의 본모습인 겁니다. 이게 사울의 정체에요.

그래서 사무엘 이야기 전체는 유령에서 시작해서 유령으로 끝나는 거예요. 이 말은 유령이 진짜다. 찐, 찐. 유령의 세계가 진짜에요. 유령의 영토가 진짜에요. 말씀의 세계, 약속의 세계가 진짜고 나머지는 전부 다 저주받을 대상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공간이냐 하면 이방나라 공간이 아니고 이스라엘이라는 특수 공간, 언약 안에서의 특수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래서 대한민국이나 이런 나라에서는 이거는 진짜 웃기는 소리에요. 가진 자가 최고지 하나님의 복음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 안에서는 특수한 예수 안, 특수한 성령 안에서는 구약의 이스라엘의 이 상황이 그대로 거기다 다 완성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울을 보면서 다윗을 보면서 나 다윗 할래, 이러지 마시고 사울 쪽으로 먼저 들어가셔야 돼요. 그래야 왜 내가 미국을 좋아하고 맨해튼의 고급아파트가 왜 좋은지 비로소 납득이 됩니다. 내가 나한테 설득이 되는 거예요. 어떻게? 나는 태어난 자체가 죄로부터 태어났다는 것이 설득이 될 때 우리는 진리를 획득한 겁니다. 진리 속에 들어온 거예요.

이제 남아있는 것은 맨해튼 아파트 사는 것만 남아있지요. 돈이 약간 모자라. 고건 대출받으면. 그리고 고급 포르쉐라든지 차사는 것. 이게 뭐냐 하면 전부 다 사울이에요, 사울. 우리는 그것을 희망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복음 잘 믿을 테니까 고급 차 사달라는 우회하는 사고방식이 바로 사울의 사고방식 아닙니까. 다윗에게 잘해줌으로써 나한테 이익이 떨어질까를 생각하는 그 사울.

그러나 본심은 뭐냐? 악신 들릴 때 본심 나와요. 나 살고 너 죽자 하고 창으로 박아버리잖아요. 그래서 다윗은 수금, 그러니까 비파 치면서 늘 긴장하면서 치는 거예요. 조증 오면 빨리 피해야 돼요. 언제 제게 정신 헷가닥 악신 걸릴지 모르니까. 악신 걸렸다는 말은 악신이 지배하기 때문에 본인이 통제가 안 돼요. 악신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악신도 마귀도 꼭 필수요건이 되는 겁니다. 내 중심이 아니었다, 이런 것. 심신미약인가. 하여튼 꼭 필요한 거예요. 악신 들린 게. “주여, 찬미합니다. 난 복음으로 기뻐합니다.” 그게 몇 초 갈지, 몇 분 갈지. 돌아서면 공부 못한다고 쥐어박는 우리의 모습.

이것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다윗의 특징은 예측이 안 되는 인생. 미래가 예측이 안 됩니다. 어디서 창이 날아올지 어디서 또 사울이 마음 돌변할지 알 수 없는 세계, 계속 쫓겨 다니는 세계, 그러면서도 내가 사울과는 다른 노선이라는 것을ㄹ 아는 것, 이게 바로 상반된 두 개의 구원의 길이에요.

상반되는 두 개의 노선. 한쪽은 사울 쪽, 한쪽 다윗 쪽. 다윗은 하나님의 복음과 관련돼있지만 사울을 신접한 여인, 저주받은 무당과 관련돼있어요. 그래서 나중에 사울이 사무엘 만나고 완전히 탈진상태에 있을 때 누가 도와주느냐? 신접한 여인이 도와줍니다. “그래도 밥 잡숫고 가야지 이래선 안 됩니다.”

누가 도와주느냐? 여러분? 무당이 도와준다는 것은 바로 무당에게 진실 된 말을 처음으로 무당에게 이야기할 때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 말을 무당에게 했을 때 그 무당이 바로 사울의 본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접한 여인은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다윗을 원하는 게 아니고 사울 같은 다윗, 잘 나갈 때 사울 같은 다윗을 원한 그 이스라엘, 이스라엘도 무당과 더불어 같이 망하죠.

그래서 이스라엘은 블레셋 나라에 망합니다. 망하는데 그게 하나님의 언약궤 안에서 망하기 때문에 다음에 또 예언이 다시 죽은 이스라엘을 살려내기 위해서 새로운 선지자를 또 거기에 제공되고 있지요.


오늘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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