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강의

언약의 다라이 190408 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9. 4. 14. 09:59
2019-04-08 16:02:38조회 : 57         
[19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54 - 언약의 다라이이름 : 구득영 (IP:183.102.224.81)

[19 대구강의] '전도서'속의 그리스도 54 - 언약의 다라이

19,04,0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126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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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은 언약궤 앞에서 진행됩니다.
그리고 성도는 그 언약궤에서 미리 심판을 접하게 됩니다.
언약궤 앞에서는 시간도 공간도 끝나버리고 마는 종점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 보면,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라고 하는데,
그러니 이 세상은 그동안 언약궤 중심으로 돌아갔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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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 구원은 심판 속에서, 심판은 언약궤 앞에서 !!

여기에 보면 "심판은 언약궤 앞에서 진행됩니다"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함을 보고 심판을 하겠다는 것이 아닌데, 즉 인간의 자질을 문제삼겠다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죠.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야말로 엉망인데,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망가졌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을 새삼스럽게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심판 속에 들어가야만 구원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그래서 심판을 하겠다는 것은 곧 구원을 해주겠다는 것인데, 즉 심판이란 보쌈으로 싸서 구원을 해주겠다는 겁니다.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라는 것을 통해서 말이죠. 

그러니 살아남아서 천국에 가겠다는 것은 엉뚱한 천국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데, 천국은 "나는 마땅히 죽어야 한다" 라고, 그렇게 자기 죽음을 인지하고 받아드릴 때 천국이 보인다는 겁니다. "나는 천국에 갈 자격도 없고, 천국에 가면 안 돼. 내가 가면 천국은 완전히 조진다" 라는 생각을 가질 때, 비로소 거저 주시는, 불쌍히 여겨서 주시는, 그때 등장하는 것이 제대로 된 천국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살아보려고 애를 쓰고, 또한 천국에 가려고 애를 쓸 때마다, 그러면 악마가 어떻게 합니까? 계속해서 가짜 천국을 만들어서 거기에 사로잡히게 한다는 겁니다. 마치 꿀만 생각하고 벌이 있는 것도 모르고 손을 넣다가 벌에 쏘여서 온 몸이 벌집이 되는 것처럼, 그런 천국은 지옥으로 이끄는 유혹이고 미끼라는 말이죠. 

그러니 오늘날 교회에서 말하는 천국은 무엇인고 하니, 천국이 아닌 그야말로 지옥인데, 즉 지옥으로 가는데 더욱 더 가속도를 붙인다는 겁니다. "우리교회에 오시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천국이 아닌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라는 말이죠. 

* 거저 주시는 천국, 불쌍히 여겨서 주시는 천국 !!

그런데 그게 아니고, "저는 천국에 갈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구제불능입니다" 라고 하는 자가 있다고 하면, 그런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이 곧 진짜 천국이란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자기가 천국에 갈 자격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그런 자에게 천국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공짜로 주어지는 천국이라는 겁니다. 어느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한 천국인데, 그러니 천국은 자기가 망가진 자에게 주어진다는 말이죠. 반면에 자기가 망가지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의롭다고 여긴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천국은 결코 해당사항이 없다는 겁니다. 

물론 이렇게 말은 하기가 쉬운데, 하지만 우리 인간의 본성이 어떻습니까? 인간의 행동에는 언제나 "나는 의롭다" 라고 하는 것이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말이죠. 즉 자기 의로움을 과시하기 위해서 한다는 겁니다. 그게 우리 인간의 모든 행동이고, 또한 그게 본능이라는 것이죠. 

* 인간의 마음이 몸을 망쳐 !!

아까 우리 장로님이 참 좋은 질문을 하셨는데, 즉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이 분명히 흙으로 만드시고 생령을 집어넣으셨는데, 그런데 그 생령이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라는 겁니다.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쉽게 이야기하면, 그 생령을 마음으로 보시면 된다는 말이죠.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인간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분명히 몸은 보이지만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잠언서 16장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성을 빼앗는 것보다 어렵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잠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 이 고추 끝이 우리 구원의 증거다 !!

또한 이 마음이 인간의 몸을 망치는데, 인간의 몸을 천국에도 보내고 또한 지옥에도 보낸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음을 할례를 받으라고 하셨는데, 그 이전에는 유대인들이 육의 할례를 받았다는 말이죠. 즉 종교적인 폼만 잡으면 된다고 여겼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을 칼을 들고 생식기 끝을 잘랐는데,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이방인들에게 자랑질을 했다는 겁니다. 즉 "너희들은 이런 것이 없지? 우리는 할례를 행했어.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겠다고, 그렇게 창세 전부터 택했다고 하는 증거야" 라고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얼마나 자부심을 가졌는지 모른다는 말이죠. 

* 내가 존재한다 !!

인간의 모든 자긍심은 "내가 존재한다" 라는 것인데, 그것을 끝까지 붙들고 있다는 겁니다. 그게 이방민족들이란 말이죠.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게 아니고 "하나님이 알아주신다" 라는 것인데, 즉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우리의 조상인 모세를 통해서, 그리고 그 이전에 아브라함을 통해서 할례언약을 행하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너희와의 영원한 언약이다"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그들을 그것을 철썩 같이 믿었는데, 왜냐하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셨기에 말이죠.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하셨기에, "그래, 이것이다. 붙들자. 믿자" 라고 나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그렇게 붙들 때 자기들의 그 마음에 하자가 있다는 것인데, 그것을 그들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는 말이죠. 

* 너무나 다른 세례요한 !!

백 날을 붙들어도 자기들의 마음은 그대로인데,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결코 천국에 갈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칠 때, 그는 그 당시 유대사회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는 말이죠. 세례요한의 빽은 예수님인데, 그 예수님은 자기를 먼저 드러내지 않고 선발대로 세례요한을 보냈고, 이 세례요한은 그 당시 유대사회가 가진 생각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그 당시 유대사회는 무엇인고 하니까, "우리 이스라엘만큼은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선택이 되었으니, 할례를 행했으니, 아브라함의 혈통이니, 그래서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들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죠. 물론 이방민족들은 심판을 받고 말이죠. 

그러니 그들은 이방 민족들이 심판을 받는 날, 그 날이 곧 자기들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 날이라고 여겼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게 자기들이 임의대로 만들어낸 주장이나 이야기가 전혀 아니고, 구약의 선지서에 보면 그런 내용들이 나온다는 말이죠. 

그런데 세례요한은 뭐라고 합니까? "심판은 너희들이 받는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즉 "너희가 구원을 받으면 여기에 있는 돌들도 구원을 받는다" 라는 식이라는 겁니다. 그래도 돌멩이는 그냥 가만히 있기라도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계속해서 악이 솟아오른다는 말이죠.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

세례요한이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고 했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바로 "심판의 날이 왔다" 라는 이야기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천국이 아니라, 그게 심판의 날이라는 말이죠. 천국이 곧 심판의 날이라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자부했던 그 현장에 하나님이 심판자로 오셔서 완전히 박살을 낸다. 그리고 너희들이 생각하는 구약의 모든 약속은 심판 속에서 비로소 남겨진 자들이 있을 것인데, 그런 자들만이 구원을 받는데, 그러니 심판을 해봐야 그렇게 구별이 된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마 3: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마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
(마 3:3)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마 3:4)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마 3: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마 3: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마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험을 왜 칩니까? 괴롭히게 위해서 칩니까? 그것이 아니고, 학생들을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학생들을 열심히 공부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 친다는 말이죠. 그리고 또한 시험을 쳐주어야 누가 백점이고 빵점인지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즉 구별이 된다는 것이죠. 

아무튼 심판이 우선인데, 이 심판을 거부하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심판을 받겠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남은 것은 심판의 기준인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 알면 된다는 겁니다. 벌벌 떨 필요가 없는데, 천벌의 날이 와도 기준만 명확히 알고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럴 때 남은 자가 누구인고 하니, 세례요한은 "나에게 회개하고 물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받은 자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물세례인데, 세례요한은 여기까지라는 말이죠. 왜냐하면 세례요한은 구약에 속한 선지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약의 사람들 중에서 세례요한보다도 더 큰 자는 없지만, 그러나 천국에 새로 태어난 자는 더 크다" 라고 하셨다는 말이죠.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는, 그 앞에 무슨 일이 있었는고 하니,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고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심판을 보려고 광야에 나가야했다" 라는 겁니다. 즉 마지막 때라는 것인데, 세례요한이 등장했다는 것은 이미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말이죠.

(눅 7:24) 요한의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눅 7:25)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눅 7:26)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눅 7:27)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눅 7: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하시니

* 두 종류의 천국 !!

그러니 두 종류의 천국이 등장했는데, 하나의 천국이 다른 천국, 즉 이 세상의 천국을 침노한다는 겁니다. 침노, 즉 공격한다는 것인데, 왜 공격합니까? 그것은 가짜이기 때문이란 말이죠. 여기서 성도는 둘 다를 알고 있어야 하는데, 가짜 천국과 진짜 천국을 다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강의 처음에 가짜 천국의 특징이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하자가 없다" 라는 것인데, 즉 자기 의로움, 그런 몸을 유지하면서 들어갈 수 있는 나라, 그게 곧 천국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 대표적인 집단이 '여호와 증인' 인데, 물론 여러분은 그들이 와도 문도 열어주지 않겠지만 말이죠. 

* 모두가 '개인구원' !!

저는 그들과도 대화를 많이 해보았는데, 물론 신학교에서 배운 것도 있지만 그런 것은 이론적이라는 겁니다. 안식교, 몰몬교, "한 뚝배기 하실래요?" 라는 경상도 사투리로 유명한 로버트 할리는 몰몬교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와서 결혼을 하고는 계속해서 눌러 산다는 말이죠(ㅋㅋ).

그리고 문선명의 통일교, 박태선의 전도관도 있고, 또 대성교회(현 평강제일교회) 박윤식목사과 같은 부류도 있는데, 그런 것을 공부해보면 참 재미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칼빈의 개혁주의도 있고 말이죠. 그렇게 공부해보면,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고 하니, 딱 한가지라는 겁니다. 구원파, 안상홍, 신천지는 한참 뒤에 등장하는데, 참 소수지만 이호식 집단도 있고 말이죠. 

그들의 공통점을 모아보면 딱 하나, 즉 '개인구원' 이라는 겁니다. 즉 "여러분, 천국에 가고 싶습니까? 보내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란 말이죠. 하지만 개인구원은 없는데, 우리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개인구원이 어디서 나왔는고 하니, 한국교회사를 보면 일제시대 때의 기독교에서 나왔다는 말이죠. 

* 우리는 모두가 친일파 !!

세계2차대전 이전에는 일제통치에 대해서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이 다들 반겼는데, 왜냐하면 일본이 선진국이니, 그들이 다스리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고 여겼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때는 그들이 통치를 좋게 좋게 했다는 말이죠. 그러니 그때는 친일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다 친일파라는 겁니다. 그래서 다들 일본식 이름을 가지고 살았다는 말이죠. 

역사책에서는 윤봉길이나 김구와 같은 몇 몇 튀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서 기록하니까 그런 것이지, 일반 백성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고 충성하는 것이 곧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이죠. 다들 그렇게 살았다는 것이죠. 

인간의 몸은 감각의 다발이기 때문에, 사상이나 철학 따위는 생각하지를 않는데, 그냥 자기 몸 하나 편한 것이 최고라는 겁니다. 공산당이고 뭐고 간에 자기에게 잘해주면 그게 최고라는 말이죠. 인간의 몸은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그렇게 예민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데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어떻게 됩니까? 집에 있는 밥그릇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가니까, 당연히 저항이 시작된다는 말이죠.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에서도 각 가정에서 쓸만한 물건들을 다 빼앗아갔다는 겁니다. 일본도 난리가 아니었다는 말이죠. 

전쟁이 바로 그러한데, 마치 도박과도 같다는 겁니다. 잘되면 흥하지만 그게 아니면 쪽박이란 말이죠. 즉 "앞으로 잘 살게 될 것이니, 지금은 좀 참자" 라는 겁니다. 지금은 힘이 들어도 참으로 좋아진다는 것인데, 이게 바로 인간들이 이야기하는 천국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인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전혀 감도 잡지 못한다는 겁니다. 

* 인간은 자기를 부정할 수 없어 !!

다시 말해서, "지금은 힘들어도 좋은 날을 볼 것이다" 라고 나오는데, 그러니 여기에 대해서 "나는 앞으로 좋은 날을 볼 자격도 없다" 라고 나올 인간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해서, 그런 생각을 가질 이유도 없고, 물론 가진 사람도 전혀 없다는 말이죠. 즉 "지금 고생을 하지만 앞으로 낙을 볼 것이다. 그 고생을 보상받을 것이다" 라는, 그런 희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란 겁니다. 

인간이 어떻게 자기 스스로 자기를 부정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말이죠. 세상은 꺼져도 자기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똑바로 봐야만 하는데, 인간은 남은 욕해도 자기는 욕할 수 없다는 말이죠. 

만약에 자기를 욕하면 그 자존감마저 날아가 버리고 마는데, 그러면 그것은 인간도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 하나 잘되기 위해서 모든 수모와 역경도 감내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데, 그것이 아니라, "나는 수에 칠 가치도 없다" 라고 여기는, 그런 인간은 없다는 것이죠.

* 전통은 조작된 것 !!

그래서 그 일제시대를 어떻게 해석하는고 하니, 그것을 요즘은 일제강점기라고 하는데 말이죠. 그런 용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아무튼 그 시대에 대해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잘 된 것은, 그때를 잘 견뎠기 때문이다" 라고 조작을 해댄다는 겁니다. 그러니 전통은 만들어지는, 즉 조작한다는 말이죠. 왜 그렇게 합니까? 지금의 '나'를 의롭게 하기 위해서라는 그렇게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이만한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과거의 전통마저 얼마든지 조작하는 게 인간이란 말이죠. 이 시대의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시대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한데, 자기에게 '하자'가 있다는 것, 그것을 우리 인간은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다는 겁니다. 

* 믿을 놈은 너밖에 없어 !!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보면 나오는데, 마귀가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아서 어떻게 했는고 하니, "이 세상에서 믿을 놈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라고, 그것을 계속해서 세뇌시켰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게 우리 인간의 한계라는 겁니다.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전통이란 없는데, 그런데 만들서 조작하면 그게 전통이라는 말이죠. 그렇게 전통을 만들어내는 동기가 무엇인고 하니, "역시 나는 잘난 존재다" 라는 겁니다. 이게 국가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개인이나 가정사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그래서 "너희 삼대 할아버지가 고생해서 우리 집안이 이렇게 잘 되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전통을 의롭게 한다는 말이죠. 

* 그러면 '언약' 이란 무엇인가?

지금 제가 강의하는 주제가 무엇인고 하니,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라는 것인데, 인간은 자기를 의롭게 여긴다는 겁니다. 이것은 고질병인데, 어떻게 고칠 수가 없다는 말이죠. 이게 바로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데, 그런데 할례언약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마음의 할례인데, 즉 이것을 끊어버리라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말이죠.

제가 처음에 심판은 어디서 행해진다고 했습니까? 그게 여기 교재에 나오는데, 언약궤 앞에서 행해진다는 겁니다. 그러면 언약이 무엇인지,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말이죠. 언약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성경구절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신명기 9장 5절인데, 이게 대단히 중요한 구절이란 겁니다. 

* 여호와 증인, 안식교, 감리교, 침례교, 그리고 개혁주의 !!

제가 신학교에 가기 이전에 여호와 증인이나 안식교 등을 공부했는데, 전통적 개혁주의에서는 이들을 이단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나중에 신학교에 가서 보니, '알미니안주의'를 이단하고 하는데, 그게 감리교 쪽인데 말이죠. 즉 예수도 자기가 알아서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공부를 해보니까 침례교를 이단이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개인의 회개를 주장하기 때문에, 그래서 세례를 두 번 받아야 한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렇게 주장하는 개혁주의가 또 문제가 있다는 말이죠. 

* 십자가 마을 외에 다른 마을은 다 이단이다 !!

그러니 어떤 주장을 할 때는 그것이 그냥 튀어나온 것이 아니고, "그러니까 나는 의롭잖아. 그렇지?" 라는 것이 내포되어있다는 겁니다. 만약에 "십자가 마을 외에 다른 마을은 다 이단이다" 라고 한다면, 그런 말을 함으로서 십자가 마을은 자동적으로 의인의 마을이라고 우기는 셈이 되고 만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교회를 빼고 다른 교회는 교회도 아니다" 라고 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다면 우리교회는 이미 그 자체로서 이단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자기 의로움, 자기 정당성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항상 '언약'이 먼저인데, 그리고 그 언약을 위해서 '나' 라는 것이 나중에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언약이 무엇인고 하니, 신명기 9장 5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신 9:5)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

여기에 보면,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라고 하는데, 뭐라고 합니까?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라고 한다는 말이죠. 즉 언약을 이야기하면서 제일 먼저 '의로움'을 끄집어낸다는 겁니다. 그러니 언약이 남을 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받음으로서 구원이 되는 우리 자신을 치고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라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한국교회 목사의 설교는 모두 거짓말이 되고 만다는 겁니다. 하나같이 목사들이 뭐라고 합니까? "예수를 믿고 착하게 삽시다. 그래서 천국에 갑시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성경은 그게 아니라고 한다는 말이죠. 

성경은 오히려 지적을 해주는 천국, 즉 "너희는 의롭지도 정직하지도 않다" 라는 겁니다. 달리 말해서, "너희가 예수를 원하고 천국을 원해도, 그 마음이 결코 순수하지 않다" 라는 것을 지적해주는, 그분이 언약의 하나님이란 것이죠. 천식이 사라지니 마음껏 고함을 칠 수 있어서 좋은데 말이죠(ㅋㅋ). 

* 스스로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 !!

그리고 여기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뜻입니까? 매우 중요한데,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 언약을 내시고 이루신다는 겁니다. 우리의 의로움과 착함은 언약을 이룸에는 전혀 소용이 없다는 말이죠. 

이것이 중요한데,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자기 구원이나 하나님의 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기 기도, 자기 헌금, 자기 봉사, 이런 것은 전혀 소용이 없다는 말이죠. 물론 성경공부도 마찬가지인데,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것들은, 오히려 우리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발견토록 하나님이 기회를 주신 것이란 말이죠. 성경공부를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죄를, 즉 자기가 평소에 발견하지 못한 질병을 끄집어내는 겁니다. 왜 그런고 하니,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마음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 건강한 몸, 건강한 마음 !!

마귀는 인간의 마음에 죄를 집어넣었는데, 그러면 여기서 몸과 마음을 분리해보겠는데 말이죠. 몸은 보이는데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떻게 합니까? 운동을 한다든지 해서 자기 몸에 투자를 하는데, 그러면 마음도 같이 괜찮아지는 줄로 착각을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지금 자기가 출세를 하게 되면 자기를 키워주고 보살펴준 집안도 덩달아서 출세를 하는 줄로 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집안에서 뛰어난 인물이 하나 나타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을 온 집안과 가문의 영광으로 여긴다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세례요한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냥 요단강에 집어버린다는 말이죠. 요단강, 즉 물 속에 넣는다는 것은 "너는 죽어도 마땅하다" 라는 것인데, 그러니 심판 날에는 그 누구라도 "나는 구원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심판이란 것은 몽땅 다 하자가 있기 때문에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우리는 그 하자를 찾아낼 재주가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반성을 하고 해도, 마치 절의 중들처럼 제 아무리 도를 닦고 닦아도 안 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그렇게 도를 닦는 자기 자신이 '괜찮은 나'로 인식이 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 죄인과 의인의 만남 !!

전통은 조작한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도 각자가 나름대로의 전통이 있다는 말이죠. 즉 "어릴 때 내가 이렇게 살았다" 라는 것, 그런 것들은 바로 지금의 자기 잘남을 위해서 조작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도가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여기서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과 주님의 만남을 죄인과 의인으로 만남으로 결합을 시키는데,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합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 잘났기 때문에, 내가 이만한 인물이기 때문에, 주님이 이런 괜찮은 일을 시킨다" 라고, 그렇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괜찮은 주님과 괜찮은 자기 자신, 그렇게 연결이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무심코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즉 목사가 되어서 "교회가 이렇게 부흥하게 된 것은 여러분의 기도덕분입니다" 라고, 그렇게 무심코 연결을 시킨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것은 교회가 아닌데, 집단적으로 지옥으로 가는 모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거기서는 자기의 하자, 즉 자기 잘못이 나오지 않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뽑아져 나옵니까? 그래서 심판은 언약궤 앞에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언약궤인데, 그 완성이 바로 십자가라는 말이죠. 십자가 복음을 전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라고 하는 현장이 계속해서 드러나야 한다는 겁니다. 

(롬 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 3: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 여러분, 이 청년을 본받으세요 !!

어떤 분이 저에게 메일을 한 통 보냈는데, 속이 상해서 말이죠.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가 뭐라고 설교를 했는고 하니, 어떤 청년이 취직을 해서 첫 월급을 몽땅 다 헌금을 하면서 "하나님, 제 인생을 책임져주세요" 라고 했다는 겁니다. 십분의 일도 아니고, 내복도 아니고, 전부를 다 바쳤다는 말이죠. 그래서 목사가 "여러분도 이 청년을 본받으세요"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화가 나서 "이것은 잘못된 것이죠?" 라고 하면서 메일을 보냈는데, 그래서 제가 "그것은 뇌물입니다" 라고 했다는 말이죠(ㅋㅋ). 그러면서 뇌물과 헌금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는데, "괜찮은 나를 계속해서 괜찮게 유지하면서 천국에 넣어주세요" 라고 하는 것은 뇌물이란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는 헌금을 할 정도로 괜찮은 마음을 가졌다는 것인데, 그러니 그런 인간을 지옥에 보낸다고 하면, 그것을 하나님이 실수한 것이 된다는 말이죠. 즉 "잘난 내가 잘난 세상에 들어가는 것은 합당하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여기에 자기 부인이 있습니까? 자기의 하자를 끄집어내었습니까? 아니라는 말이죠.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도 없는데, 헌금을 심판을 대신하려고 하는데, 그러니 그것은 뇌물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자기가 헌금하는 것도 죄라는 것을 끄집어낼 때, 그게 진정한 헌금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돈이 아니라 자기 몸 자체를 언약궤 앞에 내밀어야 한다는 말이죠. 즉 자기는 의로움도 없고 정직함도 없다는 것을 신명기 9장 5절 말씀에 근거해서 제시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성경말씀이 그냥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 주여, 지옥에 보내주옵소서 !!

그러니 언약이 무엇인고 하니, 언약에 의하면 우리는 의로움도 없고, 우리는 정직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지옥에 가야 마땅하다는 겁니다. 천국에 보내달라고 기도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죠. 오히려 "주여, 저 같은 인간은 지옥에 보내주옵소서" 라고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혀 의롭지도 않으면서 의롭다고 우기는데, 즉 자식을 잘 키우지도 못해놓고 바깥에 나가서 우기면서 자식 자랑을 한다는 말이죠. 그리고 정직하지도 않으면서 정직한 척을 하는데, 그렇게 포장을 하면서 대인관계에 나선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이중인격자라는 말이죠. 그래서 "나 같은 인간이 천국에 가면 천국을 왕창 버려놓습니다. 그러니 지옥에 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라고 해야하는데, 그게 바로 천국에 간 세리와 창기와 강도들입니다.
이게 천국에 간 자들의 믿음이라는 말이죠.
 


만약에 어떤 사람에게 "당신이 하나님을 만들고, 예수를 만들고, 교회를 만들어라" 라고 하면, 그러면 자기 정당함과 자기 잘남을 부추겨주는 하나님과 예수, 그것을 인정해주는 교회를 만든다는 겁니다. 또한 그것이 지금의 교회라는 말이죠. 교회를 만들기가 참 쉬운데, 그렇지요? 

* 솔직함을 용납하지 않는 세상 !!

TV에서 노래자랑을 하든지 경연대회를 하면 평가를 어떻게 해야하는고 하니, "그 따위로 하려면 노래를 부르지 마세요" 라고 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는데, 음색이 좋고 발음이 좋고 하면서, 실컷 좋은 말을 다 해놓고는 탈락을 시킨다는 것이죠(ㅋㅋ).

왜 그렇습니까? 세상 자체가 솔직할 수가 없는 세상이에요. 솔직함을 용납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말이죠. 그런 가운데 솔직한 사람은 세례요한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이 놈들아, 죽어라. 너희들이 천국에 가?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인 것이 눈에 보이 않아? 차라리 돌들이 천국에 간다. 감히 어디를 넘봐? 주제파악도 못하는게!" 라고 한다는 겁니다. 


* 명의냐? 돌팔이냐?

아무튼 우리는 주제파악이 전혀 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런 요소를 하나님 쪽에서는 제시를 했지만, 이 세상에서는 제시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우리는 매우 심각한데,

우리의 죄가 무엇이고 죄가 무엇인지, 그것을 지적해주는 명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의사는 무시하고, 위로를 해주면서 괜찮다고 하는 돌팔이만 찾아다닌다는 말이죠. 복음을 들으라고 하면 바쁘다는 핑계를 대는데, 여기서 '바쁘다' 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나는 그 정도로 괜찮은 인간이다" 라는 겁니다. 즉 자기 자신을 괜찮게 보는거에요. 

제가 지금 언약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언약에 관한 구절이 성경에 여러 군데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신명기 9장 5절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언약이 등장하면 무엇이 발각되는고 하니, 우리는 정직하지도 않고 의롭지도 않다는 말이죠. 우리는 그런 심각한 하자를 지니고 있다는 겁니다. 

(신 9:5)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 그것은 곧 긍휼히 여기심 !!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언약을 주셨습니까? 그것이 바로 긍휼인데,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그렇게 해주신다는 말이죠. 이스라엘이든 이방민족이든 다 악한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쪽은 그 악함을 인해서 쫓아내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악함을 용납하지 않는 세계, 즉 천국에 악한 자들을 집어넣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의 공로만 높이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데, 따라서 심판이 없이는 천국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심판을 통해서 "야, 주님은 봐줘도 끝까지 봐주시는구나"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모든 일에 대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봐주신다는 겁니다. 

* 내부충돌, 충돌, 충돌 !!

그야말로 이순재표 천국인데(ㅋㅋ),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말이죠. 창세 전에 예정되었다는 이유 때문에, 그냥 넣어주신다는 겁니다. 바로 그 창세 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게 되면,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악마가 집어넣어 놓은 마음과 대충돌이 일어나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매일같이 배틀이 벌어지게 되는데, 경쟁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 도를 닦는다고 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접하게 되는 환경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복음을 안다고 하다가 '욱' 하면서 삐치고 하는 일들이 생기게 되는데, 왜 그렇습니까? 분명히 이론적으로는 이 언약이 맞는데, 실제로 우리의 몸은 누가 관리했는고 하니, 악마가 준 마음 때문에, 자기가 의롭다고 하는 것을 추켜세워서, 그것이 그만 전통이 되었고 습관이 되었고 버릇이 되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장사를 하는데 잘 되지 않으면 화가 나는데, 왜 그렇습니까? 그리고 몸이 피곤하면 짜증이 난다는 말이죠. 말로는 "천하의 죄인입니다" 라고 해놓고, 실상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주님은 왜 저를 이렇게 괴롭힙니까?" 라고 나온다는 것이죠. 

그래서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 라고 하는데, 그러면 주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네 몸 하나 죽어서, 네가 편하게 되려고 하지? 그러니 안 돼!" 라고 나오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언약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아픈 몸으로 계속해서 버텨야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언약이 먼저이고 피조물은 나중이라는 겁니다. 언약을 위해서 생긴 것이 피조물인데, 자기 몸 하나 편해지려고 하면 안 된다는 말이죠. 강도의 경우에도, "나 같은 인간도 오늘밤에 천국에 간다" 라고 하는 것, 그게 바로 복음이라는 겁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일종의 도박이라는 말이죠.

*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할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우리 마음 속에 성령, 즉 언약의 영이 오게 되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느냐는 겁니다. 칠판에 크게 적어보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라는 것인데, 이제는 자기가 도를 닦는 것에 신경을 쓰지 말고 남들을 보자는 말이죠. 

농부라면 밭을 갈고, 어부는 고기를 잡고, 그리고 엄마라면 아기에게 젖을 주는데, 그렇다면 그것을 밭가는 일, 고기잡는 일, 젖주는 일, 그렇게 나누게 되는데, 그런데 여기서 하자, 즉 인간의 근원적인 잘못을 끄집어내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노동자는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목사는 열심히 설교하고, 군인은 나라를 지키고, 그러면 당연히 "정말 수고가 많습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 드디어 뽑혀져 나오는 죄 !!

언약은 오게 되면, 우리는 의롭지 않고 정직하지 않다고 하는 하자, 즉 죄가 뽑혀져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언약이 없는 이 세상에서는 어떻습니까? 전부가 다 서로 서로 훌륭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입장이라는 말이죠. 우리가 그것을 그동안 용납했는데, 왜냐하면 그게 맞는 줄로 알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자기가 지옥에 가도 마땅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러면 그게 개인적으로 자기만 잘못이냐는 겁니다. 그게 아닌데, 우리는 그동안 "너는 이렇게 살아야한다. 저렇게 살아야한다. 우리는 같은 인간이야" 라고 하면서 살았는데, 그렇게 하는 그들도 자기와 동일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이죠.

물론 자기는 그 문제점을 알았지만, 그런데 그들은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의롭지도 않고 정직하지도 않다는 것을 말이죠. 그런 가운데서 밭을 갈고, 고기를 잡고, 아기에게 젖을 준다는 겁니다. 가족을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군인은 국가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여긴다는 겁니다. 

오페라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죄입니까? 그런데 언약적으로는 죄가 된다는 말이죠. 노래를 끝내주게 부른다고 해서 천국에 보내주는 것이 아니란 겁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할 때, 주님이 갑자기 오셔서 한 쪽은 천국에 가고 다른 쪽은 지옥에 간다는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나쁘다고 하는 것을 도저히 뽑아낼 재주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뽑아내시는데, 그러면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른데, 그것은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죠. 이 땅에 오신 주님의 마음과, 그리고 우리가 평소에 이 세상에서 교육을 받은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서로 어긋나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마음이 다른 정도가 아니고, 주님은 의로운 마음이고, 반면에 우리는 악한 마음이라는 것이죠. 

* '나는 괜찮은 존재야' 라는 것이 곧 '악(惡)' !!

여기서 '악하다' 라는 것은 나쁜 짓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나는 괜찮은 존재야" 라고 하는 것이 악한 마음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죄를 확대하게 되면 이 세상에 죄가 아닌 것을 있을까요?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신명기 9장 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신 9:5)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여기에 분명히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라고 하는데, 즉 민족들이 악하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그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이 인정하겠습니까? "우리가 언제 악했지?" 라고 나올 것이 분명한데, 즉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한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서, 북한에서 경찰관이 강도를 검거했다고 한다면, 그러면 그것은 착한 일입니까? 악한 일입니까? 북한의 입장에서는 잘한 것인데, 그런데 우리 남한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하면 할수록 북한의 공산주의가 더 공고하게 되는 것이 때문에, 잘했다고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아닌가요?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일제시대에 열심히 독립운동을 해서 광복에 공을 세웠는데, 그런데 그 사람이 북한에 가서 고위관료가 되었다고 하면, 그러면 그 사람은 독립유공자입니까? 아닙니까? 그 당시에 그런 경우가 제법 있었는데,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어느 공간이었느냐는 겁니다. 

* 공간구원, '예수 안' !!

우리가 생각을 그렇게 해주어야 하는데, 개인구원은 없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어떤 공간에 사로잡히면 자동구원이라는 말이죠. 그것을 신약에서는 '예수 안'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죠. 그것을 다른 말로, 여기 교재에 나오는 대로 하면, '언약궤 앞' 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언약이 들어오게 되면 개인적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나라'를 만드는데, 공간을 만든다는 말이죠. 즉 어떤 단체를 만드는데, 하지만 사람들은 언약을 그렇게 여기지를 않는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서, "내일 2시에 여기 카페에서 만납시다" 라고 약속을 했다고 하면, 그러면 그 약속을 서로 서로가 지키면 그 약속은 성사가 된 것으로 본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그런 것이 없다는 말이죠. 개인과 개인, 즉 인간들이 나서고 협조해서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고, 언약이 자체적으로 어떤 나라를, 즉 공간을, 영역을 만든다는 겁니다. 언약이 스스로 만드는데, 이것은 고무풍선을 생각하면 되지 싶은데 말이죠. 

* 언약의 다라이 !!

옛날 우리가 과거에 가난할 때의 일인데, 아이들을 여름에는 어떻게 목욕을 시키면 됩니까? 비누를 주면서 목욕을 하라고 하면, 장난만 치지 정작 몸은 씻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엄마가 무엇을 주는고 하니, 다라이를 준다는 겁니다. 오랜만에 전문용어가 나오는데 말이죠(ㅋㅋ). 

그렇게 큰 고무대야에 아이들을 집어넣고 놀게 하는데, 그러면 아이들이 놀다가보면 어떻게 됩니까? 그만 몸이 다 씻긴다는 겁니다. 그렇게 주님께서는 우리를 다라이에 집어넣는데, 그게 언약의 다라이에 말이죠. 그것은 우리가 놀던 동네가 아닌데, 하나님은 다른 동네에 집어넣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동네가 바로 이스라엘 역사라는 것이죠. 

다른 동네는 자기들끼리 노는 동네이지만, 그런데 이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언약이 투입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 언약의 원리가 무엇인고 하니, "너희들은 의로움과 정직함이 없다. 그런데 너희들이 다른 민족의 땅을 차지하는데, 그것은 너희들이 그들처럼 악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스스로 이루시는 약속 때문이다" 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는 말이죠. 일방적인 하나님의 공로, 그것을 드러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공로는 어떻게 됩니까? 챙길 수가 없는데, 다른 말로 하면, 예수를 믿는 사람은 자기 자랑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죄인이기 때문인데, 죄인이 무엇을 자랑하고 말고 하느냐는 겁니다. 

이게 바로 언약인데, 그래서 강도도 구원을 받고, 세리도 구원을 받고, 또한 창기도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죠. 그러니 "나는 강도가 아니다. 세리가 아니다. 창기가 아니다" 라고 한다면, 그러한 인간들이 지옥에 간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굉장히 특이한 사고방식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교회에 가도 소용이 없는데,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교회에 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즉 개인적으로 교회에 가서, 개인적으로 예수를 믿고, 개인적으로 헌금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전부가 다 '개인' 이라는 것인데, 그 '개인' 이란 것 뒤에 무엇이 따라옵니까? "우리 집안 잘 되기, 우리 가문 잘 되기, 우리 회사 잘 되기" 라고, 그렇게 자기의 개인적인 영역이 따라붙는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런 것은 전혀 언약이 아닌데, 만약 언약이 오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가 열심히 회사에 다니고 사업을 하는 것도 죄라는 겁니다. 즉 자기와 관련된 모든 것이 자기로 인해서 죄가 된다는 말이죠. 우리는 의로움도 없고 정직함도 없다는 겁니다. 

* 민족, 민족주의 !!

다시 한 번 질문을 하겠는데, 북한에서 강도짓을 하던 강도가 경찰에 붙잡혔다고 하면 그것은 의로운 것입니까? 악한 것입니까? 결코 의로운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러면 남한에서 강도가 붙잡혔다고 하면 그것은 의로운 것입니까? 악한 것입니까? 그것도 역시 의로운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둘 다 이방민족이기 때문인데, 즉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러니 남한과 북한은 다 자체적으로 전통을 조작하는데, 즉 "우리는 여기 한반도에 살 자격이 있어서 산다" 라고 우긴다는 겁니다. 그것을 두 글자로는 '민족'이고, 네 글자로는 '민족주의' 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19세기에 서양에서 처음으로 나온 용어라는 말이죠. 

그리고 '민족' 이라는 것 뒤에 따라나오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주성' 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자주성은 배타성으로 이어지고, 그 배타성은 폭력성으로 이어진다는 말이죠. 그리고 폭력은 폭력 그 자체를 정당화하게 되는데, 즉 의로움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 다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제가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조금 전에 문제를 하나 던졌는데, 즉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라는 겁니다. 그들이 도대체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지, 그것을 제대로 한 번 확대시켜서 살펴보자는 말이죠. 

만약에 언약을 모르게 되면, 어부가 고기를 잡는 것이 죄가 아닌 것처럼 보이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은 나쁜 짓이 아닌 것처럼 보이고,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고, 또한 남들은 다 가는 벚꽃놀이도 가지 않고 자식들을 위해서 시장에서 열심히 장사를 하는 것이 매우 훌륭한 일로 보이는 것은, 그것은 바로 천국의 다라이가 아니고, 여기 이 세상에서는 그게 의로움이고 정직함이라는 겁니다. 

언약적으로는 이방민족들은 악하다고 되어있는데, 그러면 이방민족들이 자체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면서 생존하는 것, 즉 자기 몸을 잘 간수해서 살리는 것이, 그게 그들이 보기에 악합니까? 정당합니까? 당연히 정당한데, 왜냐하면 자기들의 다라이니 말이죠. 오늘 강의제목은 '다라이'가 적합하지 싶은데 말이죠(ㅋㅋ).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에 의하면, 그게 악함이 된다는 겁니다.

* 나는 이 땅에 살 만한 가치가 있다 !!

그렇다면 이것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켜보면, 즉 "예수님을 믿는데 너무나 바빠서 믿기가 힘듭니다" 라고 하면, 그 말이 맞다는 말이죠. 바쁘다는 겁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바쁩니까? 자기의 의로움과, "나는 이 땅에 살 만한 가치가 있다" 라는 정당성을 보장받기 위해서, 그래서 "예수를 믿는 것까지 여유를 부릴 수 없다" 라고 우기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무엇이 된다는 겁니까? 

인자가 올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했다는 말이죠. 노아언약을 생각해보면, 그때 물에 빠진 자들 가운데 효자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있었다는 겁니다. 사회정의를 부르짖은 자들도 있었고, 민족주의자들도 있었다는 말이죠. 그러면 장차 불 심판이 올 것인데, 그때도 부모를 잘 섬기고 자식들을 잘 키우는 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옥에 간다는 말이죠. 

(마 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마 24: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러니 우리가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 언약에 대해서 너무나 쉽게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즉 "사는 대로 살아가면서, 거기에 십자가를 보태면 되지 않겠는가?" 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데, 주님은 새로운 다라이, 즉 새로운 영역을 만드신다는 겁니다. 

* 새로운 다라이, 새로운 영역 !!

그 안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은데, 얼마든지 발가벗고 물장구를 치고 놀아도 된다는 말이죠. 오히려 그러해야 하는데,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즉 새로운 영역을 주신다는 겁니다. 

(마 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마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래서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그 자유가 어디에서부터의 자유냐는 말이죠. 그것은 곧 자기 의로움, 자기 정직함으로부터의 자유인데, 즉 자기 의로움에 자기가 얽매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기 정직함을 자기가 고집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요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렇게 해서 주님에 의해서 빠져나온 자들이 누구인고 하니까, 사마리아 여인, 구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방여인, 그리고 세리와 창기가 여기에 속한다는 겁니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도 세리인데, 삭개오도 그러하고 말이죠. 또한 막달라 마리아는 창기라는 겁니다. 그리고 문둥병자,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자들이 여기에 속한다는 말이죠.

여기서 고린도전서 1장을 보겠는데, 26절에서 29절입니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 부르심을 보라 !!

여기 26절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라고 하는데, 즉 '부르심' 이라는 겁니다. 일방적으로 땡기는 것인데, 주님의 선택이지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죠. 그리고 27절에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라고 하는데, 우리를 몽땅 묶어서 미련하다고 한다는 겁니다. 얼마나 미련하면 십자가의 피로 자기 죄가 없어진다고 믿겠느냐는 것이죠.

아무 생각이 없는데, 사실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성령이 쑥 들어오니, 그냥 믿어진다는 말이죠. 자기가 이것저것을 따져서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가 얼마나 착한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착해질지, 그런 것을 예상한 것이 전혀 아니란 말이죠. 지금도 의롭지만 더 의로워질 것이고, 지금도 정직하지만 더 정직해질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전혀 계산할 줄을 모르는데, 그게 성도의 몸이라는 말이죠. 선과 악을 따질 줄 모르는 몸인데, 만약에 선악을 따지게 되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나겠습니까? 선을 행하게 되면 행운을 기대하게 되고, 악을 저지르게 되면 저주를 받을까봐 그야말로 안절부절이라 겁니다. 악마가 우리의 몸에 그런 소프트웨어를 넣었다는 말이죠. 

그러니 그런 것을 따지지 않는 몸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런 것에 관계없이 주님께서는 언약으로 우리를 한 다라이 속에 집단적으로 집어주셨다는 겁니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으시고 말이죠. 그런데 사람이 남들에게 자기의 착한 것을 이야기할 때는 어떻게 합니까? 조작을 하게 되는데, 즉 나쁜 것은 뒤로 빼돌린다는 겁니다. 

변호사가 나오는 드라마와 같은 것을 보게 되면, 나쁜 짓을 한 놈들이 증인을 회유할 때는 그 증인의 약점을 노려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죠. 여러분은 어떤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물론 묻는다고 해서 답할 문제는 아닌데, 갑자기 아내의 얼굴이 떠오릅니까? (ㅋㅋ) 그것은 바로 자기가 의롭게 되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다라이에서는 약점이 무엇인고 하니, "이것을 들키면 내 체면이 그야말로 작살난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지난 여름밤에 네가 한 짓을 나는 안다" 라는 말도 있는데(ㅋㅋ), 우리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 공포스럽다는 말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주님이 보시는 약점은 그런 게 아니고, "나는 정직하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왔다. 내가 완전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남들에게 폐를 끼친 것은 없다. 평생 파출소에도 가지 않고 살았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악마에게 발목을 잡힌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는 "당신은 복음도 모른다" 라는 것이 십자가 마을의 최대약점인데(ㅋㅋ),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되는데, 그런데 안다고 하니 그게 문제가 되고 만다는 겁니다. 즉 복음을 아는 것이 그만 자기 의로움의 조건이 되어버린다는 말이죠. 

* 당신은 어디서 분노하는가?

강의를 들으면 이게 무슨 말인지 우리는 다 아는데, 성령을 받았으면 다 안다는 겁니다. 그런데 실상에 접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남들과 대인관계에 들어가게 되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뭔가 울컥하면서 튀어나오는데, "너는 잘났나?" 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니 아직도 뭔가 은밀한 보조발전기가 달려있는데, 즉 "그래도 복음을 아니까, 잘난 것이 맞잖아?" 라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을 알려고 하면, "당신은 어느 대목에서 분노하십니까?" 라고 물어보면 된다는 말이죠. "나는 천심인데 분노가 어디에 있어? 그런 것은 없어" 라고 하시던 분을 제가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런 분도 결국은 욕하고 분노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그런 분노를 참을 수도 있는데, 그런데 그런 분일수록 자기 자식을 건드리면 어떻게 어떻게 됩니까? 더욱 겁 잡을 수가 없게 된다는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잘 아시고 아브라함의 그 약점을 건드렸다는 겁니다. 즉 "사랑하는 너의 독자를 나에게 바쳐라" 라고 하셨는데, 그게 바로 믿음이라는 말이죠. 

(창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우리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혈통적인 뿌리, 즉 "나는 죽어도 자식만은 살려주세요" 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데, 하나님은 그것을 건드렸다는 겁니다. 자기가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것이 지옥에 가야하는 죄라는 것을 감히 누가 생각을 할 수 있느냐는 말이죠. 

그러니 혈통이란 다라이, 그 혈통에 얽매여 있는 게 죄라는 겁니다. 우리는 미처 몰랐지만, 악마는 그 혈통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우리를 옥죄고 있었다는 말이죠. 그래서 사도바울은 뭐라고 합니까? 할 수만 있거든 결혼하지 말라고 하는데, 얼마나 냉정한지 모른다는 것이죠. 

* 다시, 언약이란?

지금까지 언약에 대해서 설명을 했는데, 여러분에게 누군가가 언약을 물으면 여러분도 이렇게 설명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들을 때는 알아도, 그런데 막상 설명을 하려고 하면 한 문장도 제대로 구사하기가 힘든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언약이란, 나의 의로움과 나의 정직함을 공격하고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좀 길다고 해서 "언약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라고 하면, 그러면 상대방이 또 오해를 한다는 것이죠. "현재 괜찮은 나에게 추가적으로 더 사랑을 주시는구나" 라고 말이죠. 

그래서 바늘처럼 쑤시고 들어가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너는 의롭지 않고, 너는 정직하지 않고, 그런데 하나님이 봐주어서 천국에 간다" 라고 해야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는 언약이 아니라면 지옥에 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 깨달아질 때, 그런 자에게 천국이 눈에 보인다는 말이죠. 

자기는 천국에 갈 자격도 없다는 것이 기도의 내용이 될 때, 비로소 자기가 상상한 천국이 아닌 전혀 다른 천국이 다가온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몸이 아니라 언약에 관심을 두게 되는데, 그래서 오직 언약만 증거된다고 하면, 더 이상의 자기 소원은 없다는 것이죠. 

* 내가 어때서?

주님은 이런 점을 우리의 머리를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타인을 우리의 옆에 붙이는데, 그렇게 해서 분노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즉 "내가 어때서?" 라고, 그런 말이 무심코 튀어나온다는 말이죠. 즉 "나는 훌륭하다" 라는 겁니다. 

요단강에 들어갔다가 나오니 다시 멀쩡해지고 말았다는데, 즉 십자가에 죽었다고 해놓고 다시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하십니까?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십자가의 은혜에 놓이게 하시는데, 그렇게 이끄시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언약을 이야기할 때는 먼저 자기에 대한 심판이 주어져야 하는데, 왜냐하면 자기는 구원받을 자격도 없으면서, 자기가 누구이고 자기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면서, 무조건 천국에 넣어달라고 때를 쓴다는 말이죠. 그것은 바로, 악마가 자기도 천국에 넣어달라고 하는 것과도 똑같은 의식이란 겁니다. 

악마는 천국에 가면 안 되는데, 그러면 그것은 지옥이라는 말이죠. 물론 악마와 같이 살고 싶다면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는 겁니다. 자기 잘남과 정당함을 계속해서 유지하면, 그런 마음을 심어준 악마와 같이 영원히 저주를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죠. 

* 마음을 고치세요 !!

그렇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 마음을 고치세요. 이것은 '명령어' 인데, 물론 우리에게는 전혀 불가능한 명령이지만, 그 마음을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고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전혀 없는데, 다만 언약이 오면 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언약 이야기가 이게 전부인가 하면,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방금 이야기한 것은 구약의 경우이고, 구약은 말 그대로 옛날 언약인데, 그러면 새로운 언약은 신약에 오면 어떠하냐는 것이죠. 그러면 언약이 완성된다는 겁니다. 

그게 교재에 나와있는데, 교재 126페이지를 다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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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은 언약궤 앞에서 진행됩니다. 그리고 성도는 그 언약궤에서 미리 심판을 접하게 됩니다. 언약궤 앞에서는 시간도 공간도 끝나버리고 마는 종점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 보면,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라고 하는데, 그러니 이 세상은 그동안 언약궤 중심으로 돌아갔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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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 하나님의 천벌 !!

여기에 보면 "언약궤 앞에서는 시간도 공간도 끝나버리고 마는 종점입니다" 라고 되어있는데, 시간과 공간이 끝나버리면 우리는 막차가 떠난 입장이 되기 때문에,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결국은 끝난 존재라는 말이죠.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끝난 지점에서, 요한계시록 11장 18절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언약궤가 보이는데, 그런데 그때 무슨 현상이 일어나는고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은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나오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이 강림하시는데, 그런 현상들이 일어났다는 말이죠. 그러니 언약이 근접한 장소에서는 항상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천벌이 계속해서 가동이 된다는 겁니다. 

(출 19:16) 제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출 19:17)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섰더니
(출 19: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그렇다면 제가 묻겠는데, 그 무서운 하나님의 천벌을 뚫고 그 언약궤에 합류할 수 있는 위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는 말이죠. "예수님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할지 몰라도, 예수님도 멀쩡하게는 가지 못했다는 겁니다. 예수님도 천벌을 받고, 나서, 즉 십자가의 저주를 받으신 이후에 가셨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저주를 받은 자에 한해서만 구원의 대상이 된다는 겁니다. 저주가 없이는 천국도 없고 영생도 없고 구원도 없다는 말이죠. 천벌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예수님이 가신 코스가 그 코스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오직 그 길 하나 뿐이라는 말이죠. 

* 오직 그 하나의 길 !!

오직 그 하나의 길뿐인데, 다른 길은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녀도 소용이 없는데, 다른 길은 없다는 말이죠. 교회에 나간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우리는 갈 수 없다는 이야기인데 말이죠. 

어제 낮에 설교한 것이 '담의 철폐' 라는 것인데, 담이란 무엇인고 하니, 차단성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담이라는 겁니다. 끊어진 이유가 다 있는데, 그것은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생명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차단시켜버렸다는 것이죠. 그 차단성을 극한으로 계속해서 밀어붙이는데, 끝까지 말이죠. 

(창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아예 우리의 공간이라는 것이 짜부라지도록, 그렇게 해서 그런 공간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그러니 천국은 다른 누구를 향해서가 아니라, '나'를 향해서 계속해서 침노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우리를 궁지로 몰아붙이신다는 겁니다.

* 트라이(TRY) !!

그게 교재 127페이지에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이덕화가 나왔던 '트라이' 라는 속옷광고인데 말이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그 안에는 여자가 있는데, 그런데 그만 문이 닫히고 만다는 겁니다. 그러자 남자가 엘리베이터 문이지, 그 옆의 벽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손바닥으로 '탁' 친다는 것이죠. 그것이 트라이가 아닌 다른 브랜드의 속옷을 입고 와서 문이 닫혔다는 의미인지는 모르겠는데 말이죠(ㅋㅋ). 

아무튼 차단이 되어있다는 것인데, 문이 닫혀있다는 말이죠. 50년을 교회에 다녔는데, 그만 문이 닫혔다는 겁니다. 그래서 트라이(TRY), 즉 시도를 해보라는 의미인지 모르겠는데, 그런데 그런 시도가 소용이 없다는 말이죠. 그런 시도의 소용없음, 그게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이고, 이스라엘의 멸망이라는 겁니다. 

아직 중요한 것이 남아있는데, 옛 언약은 새 언약과 끊어져있다는 말이죠. 옛 언약은 행함으로 율법의 의를 이루어야하는 모든 지시인데, 그게 옛 언약 속에 있다는 겁니다. 율법인데, 하지만 율법으로 행해서 새 언약에 들어갈 수가 없는데, 모든 인간은 다 실패인데, 그런 실패자들 속에 우리도 포함되어있다는 말이죠. 

* 온리 유 !!

그 원인이 무엇인고 하니, 율법을 행할 때 우리의 마음 자체가 정직하고 의롭다고 우기면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선악적인 요소를 가지고 말이죠. 그렇게 실패를 했다고 하면, 그러면 성공은 무엇인고 하니, 새 언약을 지킬 수 있는 분은 "온리 유!" 라는 겁니다. 

오직 그분뿐인데,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아니라면 안 된다는 말이죠. 즉 "당신만이 통과하셨습니다. 당신만이 다 지켰습니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분의 다라이, 즉 예수님 안에 있으면 된다는 말이죠. 우리가 그렇게 의롭다고 우기는 그 의로움이, 물론 의로움은 엉터리라서 하나님이 받아주지 않지만, 예수님 안에 있음으로 말미암아서, 즉 예수님이 의로우니까 우리도 덩달아서 같이 의롭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에서는 어린양의 피인데, 그 어린양의 피를 바름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에서 면제가 되었다는 말이죠. 그것이 바로 유월절 언약인데, 즉 모세 언약이란 겁니다. 그리고 그 언약이 신약의 사항을 미리 보여준다는 말이죠. 그러니 옛 언약은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는데, 오직 들어갈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겁니다. 

(출 12:21)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출 12:22)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여기서 시편 40편을 보겠는데, 6절에서 8절입니다. 

(시 40:6)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시 40: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시 40: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 내가 했잖아 !!

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제사를 요구하십니까? 요구하지 않습니까? 요구하지 않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법은 어떻게 됩니까? 그런데 7절에 보면 "내가 왔나이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 메시야가 오셔서 심판을 하시는데, 그 근거가 무엇인고 하니, "내가 했잖아" 라는 것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다 하셨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이죠. 그러니 천국도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셔서 일방적으로 넣어주면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천국의 다라이라는 말이죠.

이왕 성경을 살펴본 김에 히브리서도 보겠는데, 10장 8절에서 10절입니다. 

(히 10:8)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히 10: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히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

여기 10절에 보면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라고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 라는 것도 되고, "우리는 할 수 없다" 라는 것도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무리 해도 조작밖에 할 수가 없는데, 즉 "내가 얼마나 잘났고, 의롭고, 성실하고, 괜찮은 존재다" 라고 말이죠. 우리는 이미 그런 병들고 망가진 마음을 악마로부터 받았다는 것이죠. 

그렇게 우리는 악마의 마음을 장착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은 이 전체를 모두 다 내치고 부정해버리신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누구를 집어넣습니까? 모든 말씀을 우리보고 행하라고 해놓고, 그렇게 해서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시는데, 그리고 나서 예수님이 홀로 다 하신다는 말이죠. 그러니 기준은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이 홀로 다 하셨습니다" 라는 것이 고백되지 않는 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교회의 목사는 뭐라고 외쳐야 합니까? "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나오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봉사해도, 그런 것과 상관없이 당신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공로입니다" 라고 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누구의 잘남입니까? 오직 예수님의 잘남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결코 우리의 잘남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직 예수님이 홀로 다 하셨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는 말이죠. 그런 예수를 믿는 자기가 잘난 것이 아니고, 그것마저도 결코 용납되지 않는데, 오직 주님의 홀로 다 이루심, 다 하셨음, 그것이란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기 눈치를 자기가 보면 안 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관리라는 말이죠. 그것은 아주 교묘한 마귀의 술책인데, 신앙을 위장한 말이죠. 우리 인간은 자기 눈치를 볼 자격도 없고, 또한 자기 관리를 할 자격도 없다는 겁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너무 성실하게 되면 언제나 분노할 준비가 된 것이라고 볼 수가 있는데, 즉 "내가 이렇게 착실한데, 누가 나를 보고 욕을 하는가?"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그러면 분노가 일어나고, 그러면 그게 어느 다라이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게 "나는 지옥에 갈 죄인이다" 라고 하면서도, 그런데 행동할 때는 "잘난 나를 왜 건드리는가?" 라고 하면서 분노를 일으킨다고 하면, 그러면 전혀 앞뒤가 맞지 않은 모순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셈이라는 말이죠. 여기 히브리서 10장 10절 끝에 보면 "거룩함을 얻었노라" 라고 하는데, 즉 얻었다는 겁니다. 

* 다시 군에 가겠습니다 !!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즉 자기가 만든 의로움과 주님이 공짜로 주신 의로움이 있다는 말이죠. 이것이 우리 내부에서 평생을 두고 싸우고 있다는 겁니다. 주님이 주신 의로움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졸지에 죄인이 되기 때문에, 그 어떤 수모를 당해도 마땅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아무리 험한 일을 시켜도 한다는 겁니다. 

지금 이 나이에도 군에 가라고 하면 가고, 유격훈련을 받으라고 하면 받는다는 말이죠. 말은 하기가 참 쉬운데, 아무튼 죄인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하면 "나는 군에 갔다왔습니다" 라고 하면서 오리발을 내밀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말이죠(ㅋㅋ). 대한민국의 법에 의해서 갔다왔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유대인들이 "율법에 의하면 간음하지 않았습니다. 살인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는 것과도 똑같은데, 자기는 아직도 그렇게 망가지지는 않았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마음 속으로 간음한 것도 간음이고, 마음 속으로 남을 미워한 것도 살인이라는 말이죠. 

* 이미 시작된 천국생활 !!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안 되는데, 그게 진짜라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누가 훼손합니까? 잘난 자기가 가장 가까이서 예수님을 가치를 모독하고 있지 않은지, 항상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말이죠. 하루에 밥을 세 끼가 아니라 단 한 끼만 먹더라도, 그것도 역시 주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모든 것이 은혜이고 감사인데, 군지렁거릴 이유가 전혀 없다는 말이죠. 

아무리 똥배가 나와도 괜찮다는 겁니다. 그래도 천국에 간다는 말이죠. 중요한 것은 언약만 들어내면 되는데, 물론 그것은 옛 언약이 아닌 언약의 완성인 새 언약, 즉 십자가만 드러내면 된다는 겁니다. 물론 이러한 삶이 지옥으로 가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고 어리석게 보이겠지만, 하지만 우리는 그 미련함과 어리석음을 자랑하고 사랑하면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주여, 계속해서 미련하게 해주시고 어리석게 해주시옵소서" 라고 하면 된다는 겁니다. 십자가 앞에서, 언약 앞에서, 그리고 심판 앞에서 주님의 피의 공로만 드러내기를 소원하면서 살아가면 된다는 말이죠. 그것이 바로 이미 시작된 천국생활이라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철없음을 용서해주옵소서.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도 남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악바리와 같은 근성을 발휘하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주님의 십자가 공로마저도 모독하고 짓밟고 있음을 날마다 깨닫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19,4,8 오후 4시에 마침.

주님, 똥배는 별로 없는데, 어깨가 너무 아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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