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답(이근호)

구제(060829)

아빠와 함께 2013. 4. 16. 20:25

구제에 대하여 
정수태   2006-08-29 15:43:41, 조회 : 94, 추천 : 0


이근호목사님께  몇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1)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구제를 하는 것이 정당한지요?
성경중심사상의 전개-누가복음-에서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베품은 교회로부터 실제로 일어나야 하는 사회운동입니다.  그 운동이 말씀 전파로서만 아니라 실천생활로 예루살렘으로부터 출발됩니다"

이 말씀은 희년의 회복이 세상 가운데서 실천적인 베품을 통해 일어나냐 한다는 말씀으로 비추어지는데 그렇다면 교회가 세상 가운데 언약정신으로 베품이나 구제같은 사회운동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인지요?

이광호목사에 의하면 그는 글을 통하여 교회는 세상의 구제나 봉사하는 것은 성경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합니다.
이유로는 사도행전이나 성경 어느 곳에서도 교회 공동체가(개별 성도가 아님) 세상을 향한 구제를 한 증언이 없다고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언약공동체로 말씀선포와 증인의 역활을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 동의하시는지요? 동의하신다면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신 진의는 무엇인지요?

(2)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일어났던 구원의 사회성과 새언약에서의 구원의 사회성은 어떤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3) 누가복음 16장 14-18절에  온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며...
여기서 귀신 쫒고 독을 마셔도 해를 당치않고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는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문자 그대로 이러한 일들이 오늘 날에고 일어난다는 약속입니까?
아니면 사도행전에서의 새언약의 확산 가운데 일어나는 사도들에게 국한된 약속입니까?


세가지 질문인데 크게 두가지 정도될 것 같습니다.
자세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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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구제에 대하여 
이근호   2006-08-29 17:29:19, 조회 : 118, 추천 : 0

>주님의 약속 성취를 점검하는 일은 우리 인간의 능력 밖의 문제입니다. 

'주님의 약속'이 성취 되었음을 파악하는데 있어   그 뒤의 결과들을 모두 '주님의 약속'으로 믿는 '믿음으로만' 증명됩니다.

즉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음에 대한 유일한 증거란

바로 세상 만사를 '주님의 약속 성취'임을 믿게 되는 '믿는 자'가 생겨나 버렸다는 바로 그 점에 있습니다.

따라서 새삼스럽게 주변을 살피면서 아무리 '주님의 약속 성취'에 관한 증거를 찾고자 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진화론에 대항해서 일어난 창조론자들의 문제점이 바로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일어나는 겁니다.

믿을 만한 증거를 출발점으로해서 믿음을 발생시킬 방도는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구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가 하는 일은 모두가 '구제'가 되도록 주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성도가 구제에 나서게 되면 '구제'와 '구제 아님'을 본인이 일방적으로 경계 지어버리는 식이 되어 버립니다.

성경적으로 봐서 구제자는 오직 예수님 밖에 없고 구제 대상은 오직 성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도가 '구제 대상자'임이 어떤 것으로 표현되느냐 하면 바로 '남들을 구제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는 겁니다.

그 대상이 신자이냐 불신자이냐를 구분 짓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왜냐하면 그럴 권리와 판단력이 성도에게는 나올 수 없고, 오로지 주님에게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종말 때는 반드시 교회는 구제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교회에 대한 약속은 주님께서 알아서 성취 차원에 돌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확인하려고 해서는 아니된다는 겁니다.

확인하려는 그 순간 그 사람은 성경 말씀을 근거로 믿는 자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사건, 사건들을 줏어모아 주님이 하신 '계시'로 구축하려는 불신앙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이라는 학문의 한계가 이런데 있습니다. 고백이 되지를 못하고 중명으로 나가는 것이 신학의 불신앙성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말씀도 실제로 주님께서 그런 일을 하심을 믿는 믿음으로서 주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 증거들을 역사속에서 파악해내고 그 정보들을 정리, 정돈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런 태도가 곧 불신앙일 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