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이 있어 또 질문합니다.
정수태 2006-08-11 17:42:34, 조회 : 172, 추천 : 1
요한복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나 파송하시면서 후 부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보면 오순절 날 성령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과 사도행전의 제자들이 성령받은 시기가 40일 정도 차이 나는데 왜 이런 차이가 납니까?
그럼 제자들은 언제 성령을 받은 것입니까? 요한복음과 사도행전이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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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모르는 것이 있어 또 질문합니다.
이근호 2006-08-13 15:59:15, 조회 : 162, 추천 : 1
제자들을 위하여 성령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깨서 계속 하실 일 때문에 성령께서 제자들을 이용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성령께서 일하심은 제자들의 존재를 감안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의 지속성에 초점이 모아져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의 '성령받으라'라는 말씀의 취지는
제자들을 비롯해서 하나님의 성도들은 예수님과 '하나됨'의 관계에 놓여 있음을 알려주기 위하여 '성령 받으라'라고 하신 겁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그런데 사도행전에서의 성령주어짐은, 예수님께서 (성령님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종말) 새로운 방식으로 ( 종말에나 등장될 말씀 완성태로서) 일하심이 개시되었음을 알리는 징표입니다.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요엘 2:28-31)
이라는 이 선지자의 말씀은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부어주심으로 인하여 이제는 성취상태에 돌입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곧 종말이다는 선언입니다.
따라서 구원될 자는 반드시 예수님의 새로운 방식의 구원방식으로 인하여 (인간의 성령 활용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반드시 구원되고야 만다는 것을 선언하는 징조로서 성령이 제자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렇게해서 종말에는 제자들은 성령에 의해 철저하게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종말적 활약상을 증거하는 증인으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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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질문드립니다.
정수태 2006-08-18 16:41:08, 조회 : 107, 추천 : 0
다른 각도로 저의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제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1) 종말은 예수님이 오셨을때 부터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언약성취 이후인 성령 부어주심이었을 때 부터인지요?
2) 보통 복음주의자들이 예수님 공생애를 옛언약과 새언약의 중첩의 기간이라고 하는데 타당한 말인지요?
옛언약과 새언약의 중첩의 기간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설명되는지요?
3) 그렇다면 성령의 사역이 예수님 공생애때와 승천하신 이후 어떤 부분에 동일성이 있는 것이고 어떤 부분에
대하여 동일 선상이 없는 것인지요?
4) 공생애 기간 중에도 부활하신 이후와 부활하시기 전의 성령의 사역은 다른가요?
5) 왜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 곧장 승천하시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 지상에서 시간을 오랫동안 보내셔야 했나요?
일부 성경학자들은 가르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예를 들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성경을 풀어주는 점을 들면서-이것은 타당한 주장입니까?
6) 예수의 공생애 기간중의 제자들과 성령의 관계와 승천 이후의 제자들과 성령의 관계는 다른 것인지요?
* 질문이 많아 죄송합니다. 어쩌면 동일한 질문을 제가 다른 말로 한 것 같군요. 귀찮으시겠지만 상세히 답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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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다시 질문드립니다.
이근호 2006-08-18 20:13:26, 조회 : 111, 추천 : 0
예수님의 하신 일의 취지는 인간 세계의 시간 인식 순서에 의해서 정립되지 않습니다.
즉 "이것 다음에 이것 하시고 이것 다음에 저것 하시고..."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우리 인간들은은 시간적인 순서를 따라 인식 하고 싶어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이 하신 일들이 인간들의 이해틀로서 해석이 가능한 일이 되고 맙니다.
여기에는 십자가 사건의 특창성이 빠져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들의 이러한 인식의 틀까지 용인해주지 않고 파괴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즉 인간들은 주님의 일을 이해가능한 지식으로 정립하여 소지하고 싶어합니다. (물론 자기 만의 지식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여기에 인간부정의 취지가 사라지고 인간긍정으로 마당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이 벌리신 모든 일은(십자가-부활-승천-성령오심 뿐만아니라 출애굽, 여리고성 함락 등등)
아직 인간들이 깨닫지 못한 죄를 인간 대신 끄집어내기 위한 작업입니다.
십자가의 대속(=대리 죽음)이란 인간의 자기 파악을 전적으로 인정해주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서려있습니다.
인간들이 회개한답시고 떠벌리는 종교판도 실은 자기 죄를 아는 마당이 아니라 자기 죄를 가리는 마당입니다.
이러한 자기 죄를 가리는 마당에 예외없이 등장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자기 이해'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기 이해'를 분석해보면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들을 자기 이해력에 대한 부정없이 정리정돈된 내용들입니다.
쉽게 말해서 야구에서 피처가 던지는 공을 캣처가 공만 받으면 되고 꼭 공을 받을 때마다
"나는 결코 당신의 공을 받을 능력자가 못됩니다"라는 고백을 되풀이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투수로 보고 자신을 포수로 본다면 투수는 포기가 이해가 가능하고 납득이 가능하는 식으로 공을 던질 것이라고 포수가 일방적으로 생각할게 뻔합니다.
이 상황은 십자가 사건의 의의가 빠져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미처 인간들이 본인도 모르고 있는 죄의 일반성과 보편성(개별적인 입장에서 숨겨진 어릴 적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인 죄의 권세를 의미함) 을 파내기 위한 개입입니다.
제자들이 시범적으로 예수님에게 당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나 오순절의 12제자들의 집단들이나 모두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여전히 자기 긍정을 기본 바탕으로하고 그 위에 예수님의 업적이 자기에게 덧입혀지기를 원했던 자들입니다.
지난 번 답변에서 제가 말하는 '하나됨'은 이런 배경을 해서 언급한 겁니다.
즉 제자들이나 인간들이 예수님과 자기 과의 '하나됨'을 인간들 자기쪽으로 예수님을 끌어당기는 식의 '하나됨'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일방적 죄성의 발로입니다.
예수님이 생각해놓으신 '하나됨'이란 예수님 쪽으로 자기 사람들을 끌어당기되 그들은 늘 죽이는 식으로 자기 안에 두려는 시도입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14장에서는 '성령님'이 오셔야 가능한 상황입니다.
종말이란 예수님께서 구상한 상황이 실제로 적용되는 와중에서 더이상 '시간적 지연'이 불 필요해져 버린 상황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서 1:2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활동을 개시한 그 상황입니다.
이 '상황'을 자꾸만 '시점'으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는 여전히
인간들의 본성적인 순서적 인식틀을 망가트리고 싶지 않겠다는 본능적 반발에 해당됩니다.
예수님과 하나됨 영적 공간성, 그 외부가 다 종말입니다.
이 종말상태에서는 소위 교회에서 가르치는 직분에 있다고 자인하는 자들이
남들에게(교인들에게) 예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을 수립해서 그 가능성 자체를 상품으로 확보해 주려는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일하심을 증거하고 고백하는 식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인간에게 나오는 가능성이란 예수님께서 인정해 준 적도 없고,
또한 십자가를 거쳐서 나오게 된 성령의 사역 앞에서 십자가 의의과 결별된 새로운 가능성을 정립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성도들이 성령님 자체의 능력을 증거하라고 임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십자가 공로만 드높이라고 일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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