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다른 이름들을 부르는 소리로 세상이 시끄럽다. 사실 나도 내게 이런 이름이 있는지 젼혀 몰랐다. 그런데 그 이름이 세상속으로 튀어올라오게 된 사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 이름들 역시 내게 아주 익숙한 이름의 산물인 뿐, 전혀 새로운 이름은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아담이다.
조승희. 그는 33명을 총으로 쏴서 죽였다. 살해동기가 찾는데 많은 사람들이 열중했다. 여자친구와의 불화, 우울증, 외톨이적 성격 등이 원인이라고 한다. 그렇게 원인을 분석한 후, 그 원인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혹은 받아들이고 내재화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은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원인분석을 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조승희라는 인물과 지금 조승희를 평가하는 사람들을 차별화하기 위함이다. 조승희와 내가 다른 사람임이 분명해진다. 조승희와 다른 나는 살인마도 외톨이도 우울증 환자도 아니다. 이 사회를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건강하고 상식적인 인물로 확인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형제를 미워하는 것 조차 '살인'에 해당된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는 모든 인간의 이름이 조승희가 된다. 33명이 아니라, 330명도 넘는 사람들을 쉽게 미워하고 이용했던 나 아닌가! 십자가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참 진리의 목소리에는 귀 막은 체, 인간들은 살인자의 대명사인 조승희를 설정하고 자신을 그와 구별하는데만 열중하고 있다. 사실 그 구별작업 자체가 살인행위인 것도 모르는 체 말이다.
송모씨. 그는 제주도의 한 여자 초등학생을 납치해서 성폭행 한 후 살해했다. 그는 20여 차례의 전과가 있고 지금은 고물을 수집하면서 근근히 살았다. 이번에도 인간들의 해결방법은 송모씨와 나를 구별하고 분리해서 나를 안전하게 구성한 후 그는 잔인하게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것 뿐이다. 송모씨라는 자가 내 안에도 버젓이 살아있다는 것을 도저히 인정하지 않는다. 송모씨는 그저 돌연변이일 뿐이다. 그래서 잘라내면 된다.
그러나 마음으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기만 하여도 간음죄라고 하신 십자가 지신 주님의 눈으로 볼 때, 모든 인간의 이름은 바로 그 송모씨일 뿐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아무리 아니라고 목이 터져라 외쳐도 그와 나는 분리되지 않는다. 아담으로 아주 꽁꽁 묶여있다. 송모씨와 나를 분리할려고 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인간의 목을 조여드는 수갑이다.
김승연. 그는 한화그룹이라는 재벌의 총수이다. 자신의 아들이 술집 종업원들에게 폭행당한 것에 격분하여 직접 자신이 나서서 보복 폭행을 했다고 한다. 납치, 특수폭행, 권총, 회칼 등이 등장하는 영화와 같은 사건이다. 자본이 곧 권력이라는 것을 아주 잘 증명한 사건이다.
원수된 자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참 하나님과는 정반대이다. 내 아들이 눈을 맞았으면, 때린 놈 눈을 통째로 빼버리고 싶은 것이 인간 맞지 않은가? 물론 나도 '아닙니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그런데 맞다. 김승연. 그 이름이 내 이름 맞다. 나의 DNA 속에도 돈있고 힘있다면 그러고도 남을 본성이 아주 똑같이 입력되어 있다.
죽을 것이 너무도 뻔한 곳으로 아들을 보낸다? 나에게는 그런 사랑이 없다. 오히려 그런 사랑을 무시하고 외면함으로써 내 안에 사랑이 없음을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들은 윤리라는 방패를 절대 놓지 않는다. 그 속에 숨어서 마음껏 살인하고 보복하며 강간하고 버려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세상의 실체가 평화, 사랑, 박애, 자유가 아니라, 살인, 전쟁, 보복, 강박관념 그 자체인 것을 인간들에게 알려준다. 그러나 인간들은 실상 너무도 익숙하지만 표면적으로는 낯설고 모른 척 연극을 해야 한다. 그래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조승희, 송모씨, 김승연, 박윤진....모두 아담으로 묶어 놓고 보시는 십자가지신 예수의 눈으로 세상을 파악한다면, 그렇게 호들갑 떨 사건도 아닌데, 이미 우리 안에서 날마다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일상일 뿐인데, 모르는 척 쉬쉬하고 있는 죄인.... 나, 죄인 맞다. 그래서 우울증이 찾아오고 치매가 찾아오고 성적 강박증이 찾아오고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찾아오면 도리없이 윤리라는 가면을 벗고 죽이고 강간하고 복수하는 죄의 종 맞다. 죄가 끌면 끌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책임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책임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도 되지 않는 죄에 묶인 존재라는 말이다. 우리는 철저하게 죄로 문신새겨진 자들이다. 조승희, 송모씨, 김승연이라는 때를 벗기고 싶어도 그들과 우리는 한 패거리일 뿐이다. 아담이라는 거대한 몸덩어리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이다.
그런데, 예수의 피가 뿌려졌다. 이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다. 어찌된 영문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내 안에 여전히 조승희, 송모씨, 김승연 보다 더한 죄성이 꿈틀꿈틀 기회가 닿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정죄함이 결코 없단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내 안을 아무리 살펴봐도 죄 밖에 없는데......죄인의 괴수라는 사도바울의 고백이 바로 나를 두고 한 말씀 정확하게 맞는데.....
이제 성령이 광야로 광야로 몰아 세우신다. 십자가 피만 증거하는 증인으로 아직도 가면 뒤에 숨어있는 세상을 향해 피할 수 없는 증거인 십자가의 불화살을 마구 쏟고 계신다. 감사하게도 그 불화살이 나의 주검까지 파고들었다. 이것이 현실이다. 악명 높은 어떤 누군가와 분리되어야만 한다는 의무감 속에서 그가 바로 나라는 현실과 직면할 때 마다, 그 불화살의 감사한 뜨거움이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