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아

나는 그 누구보다도... 090916 이미아

아빠와 함께 2018. 1. 16. 10:41
2009-09-16 12:10:41조회 : 1996         
나는 그 누구 보다도...이름 : 이미아 (IP:115.41.203.64)
 

목사는 받은 상처를 빨리 잊지를 못한다


성도는 받은 상처를 빨리 잊어버리는데...


목사는 자기가 전한 복음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위험스런 위치에 포착되어져 있고


성도는 받은 복음 전하는 것으로 족한 위치에 포착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성도는 복음의 너무 귀하고 고마워 받아 누리는 것 조차도 벅차고 감격스러운데


목사는 복음을 이용할려고 하고 빼먹을려고 하고 먹이감을 낚아 채듯이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다.


복음을 누구보다도 월등하게 탁월하게 자기 것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용광로처럼 끓어 넘친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다 녹여 버릴 작정으로 기세가 당당하다.




정녕 복음의 당당함인지 묻고 싶을 뿐이다.




마치 몇 십 년간 연구한 제품을 발표해서 세상에 이슈가 되어 인기를 얻고 명예를 얻고 권력과 부를 얻어서 유명해지려는 본심을 감추지 있지는 않는지... 그래서 단지 "이근호 복음이다" "이근호 추종자다" 라는 말을 독단에 빠질까하는 염려로 색칠해서 자신들의 본질적인 시기를 감추고 있지는 않는지... 이런 말이 성립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성립시킬려고 한다면 복음을 모르는 수치스러움에 지나지 않는다.




가난하게 사는 것 수치스럽다.


번번한 직장 없는 것 수치스럽다.


못먹고 구질구질하게 사는 것 수치스럽다.


안락한 집이 없는 것 수치스럽다.


자식이 공부 못하는 것 수치스럽다.


남편이 지지리도 못나서 궁상이나 떨고 있는 것 수치스럽다.


가족 중에 이름하나 내세울만한 사람 없는 것 수치스럽다.


어디하나 자랑할만 한 것이 한군데도 없는 것 수치스럽다...




그러나 복음을 모르는 수치스러움에 비한다면 그 수치는 아무것도 아니다. 수치스러움도 아니다. 반대로 저런 것들이 다 수치스럽지 않아도 복음을 모른다면 수치스러워야 된다.


그런데 이상스러운 것은 그렇게 수치스럽게 살면서도 복음을 모르는 수치스러움은 꿈에도 생각할 줄을 모른다. 이 세상에 보여지는 수치는 가리기 위해서 무슨 짓을 다 하면서도


복음으로 말미암아 정죄함을 당치 않고 허물을 가리움 받고 그 죄의 사함을 얻는 그 용서와 사랑엔....할 말을 잃을 수 밖에 없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수치인지 자기 정욕으로 채우려다 당하는 수치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수치라면 은혜다.


정욕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수치라면 저주다.


 


성도는 이근호 목사님에게서 빼먹을려고 하지도 않는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빼먹는다는 말(십자가마을에서 종종들려지는, 정낙원 목사님 오해하지 마세요. 전에 들었을 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으니까요)이 굉장히 부자연스럽고 거부하고 싶고 싫어진다.


왜 빼먹는다는 말을 써야만 할까???


복음은 소유가 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 분의 복음이라고 자꾸 내몰려고 하는 악마의 장난이다. 사도 바울이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진 것이 없고 갚을 것이 없다고 했던 고백처럼 그 분도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빚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빚을 진 것이 없고 갚을 것이 없다.


또 이근호 목사님을 부려먹을 것 없다. 부려먹는다고 생각지 않는다. 어떤 힘에 붙잡혀서 떠밀려졌고 내몰려졌을 뿐이니까. 이근호 목사님.."왜 하필 나에게.." 라고 욕 하실려면 십자가 피에 대고 하시기를...


일을 시키는 주체는 우리가 아니다...그 분이 우리가 주체가 되어서 일을 시킨다면 순수하게 받아 들이시겠는가? 그 분이 미쳤나 하시게...사람 말을 듣는단 말인가? 자기 밖에 없는데, 자기 외에 누구 말 듣는 것 봤나? 자기라는 주체는 사라졌고 성령의 나타나심과 말씀의 능력에 사로잡혀 몸 밖에 있었는지 몸 안에 있었는지 모를 어떤 한 사람이었기에 단지 붙잡힘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냥 감사하게 고맙게 늘 받아 누리면 된다.




성도는 이걸로 끝나는데 목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찔리는 구석을 스스로 만든다.


복음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이근호 목사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이 다른 복음이 아니라면 마음껏 그 복음을 공유해서 서로 전파하고 나누어야 한다. 왜 자기가 받은 바 은혜에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고 눈치를 보는가?


이근호 목사님께서 윗층 구조 아래층 구조를 이야기 하셨다면 나도 윗층 구조 아래층 구조를 알게 하셨으니 그대로 말하면 된다.


이근호 목사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이 좋은 이유는 내가 받은 바 복음이기 때문이다.


또 김명현 목사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이 좋은 이유는 내가 받은 바 복음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목사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이 좋은 이유는 내가 받은 바 복음이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오직 십자가 복음만 전하시지 다른 복음을 전해주지 않으셨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누리는 기쁨이 있다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이다.


천국은 모든 권세를 아들에게 주신 아들의 나라이기에 주인 되시는 그 아들 때문에 누리게 된 공로를 자랑하는 것으로 끝난 곳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말은 내가 하지만 능력은 주님이 하신다.




지금의 때에 어떤 가까운 친구가 기독교에 대해서 알고 싶은 책이 없냐? 라고 물어 온다면 단호하게 이근호 목사님 저서를 소개할 것이고 복음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주저하지 않고 이근호 목사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을 소개할 것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복음이 확연하게 보이면 그 확연하게 보이게 하신 그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것을 누리는데도 시간이 부족하다. 지금의 때...이삭줍기이다.




목사들의 자존심 내세우지 말라!!!


자기 백성 챙기기에 나서신 주님의 칼이 사정없이 회를 치고 계신다.


속지 않게 하신다. 다만 주님의 예정된 코스대로 끌어 잡아당기고 계시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내가 천국 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살아나신 십자가 사건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만 전하고 있고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전하면 저주요,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만 전하고 있음이 은혜였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큰일날뻔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 누구보다도 이근호 목사님께서 받은 바 그 복음의 추종자이니까...



 이상규 (IP:121.♡.211.133)09-09-16 17:52 
주님과 함께 죽은자는, 
 내세울것도 자랑할것도 지킬 것도 없습니다. 
이런모습으로, 복음전하시는 목사님들이 너무너무 귀합니다. 
그래서,어떤 때에는 
광주하면,무등산이 아니라,5목사님 생각이 나고 
인천하면, 월미도,국제공항이 아니라,9목사님 생각이 나고, 
울산하면, 현대 자동차가 아니라,j목사님,s목사님 생각이 납니다. 
마산에도,이런 귀한목사님이 계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