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답(이근호)

내적치유(태아기의 상처)

아빠와 함께 2015. 7. 8. 07:48

2015-07-04 00:13:15 조회 : 166         
   내적치유(태아기의 상처)와 십자가와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이름 : 박종은 (IP:118.220.228.126)   
목사님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알고 싶어 검색하다가 나 아니요 예수님만 옳았습니다의 블로그를 만났습니다. 블로그에 기록된 말씀을 읽으면서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며 감탄과 감동의 물결에 젖었습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목사님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으며 제가 얼마나 큰 사기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기꾼 생활한지는 1977년 1월부터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전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으면서도 목회는 접지 못하고..생존과 생명을 위해 붙들고는 있습니다(사실 이것도 제가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님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저의 일주일 삶은 6일동안은 사진 담는 일을(아르바이트)하고, 7일에는 지하카타콤(교회당)에 3가정(5명)이 모여 예배하고 있습니다. 이런 엉터리 목회(실패한목회)하고 있는 저에게 한가지 숙제가 주어졌습니다. 다음세대를 위한 선교회에서 8월 5일부터 8일까지 영성훈련시간에 내적치유(태아기의 상처) 특강 6시간을 맡았는데,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가 앞섭니다. 1.태아기에 받은 상처에 따라 나타난 상황들을 설명하는 것이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부정적일 될 것인지~~ 2.내적치유(태아기의 상처)와 십자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할지..... 3.다음세대들에게 상담적인 것으로 태아기의 상처를 치유하기 보다는 완료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어떻게 풀어가야할지~~ 4.내적치유상담과 십자가의 복음의 차이점은~~~ 5.내적치유상담이 우리 영혼에 미치는 영향과 한국교회에 미치는 영향은~~~ 목사님을 통해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기를 원합니다. *************************태아기에 받은 상처에 따라 나타난 상황들을 설명할 내용 : (다른 사이트에서 가져왔음) 3.태중에서 받은 상처의 치유 이해하기가 힘든 이야기 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태중의 상처를 치유하라고 한다. 엄마태중에서 또는 어려서부터 따라다니던 어둠의 영적 세력들로 인함이다. 또 조상에게 역사 했던 세력이 대물림 된 것이다. 1)태아기의 중요성 (1)상처는 모태에서 받습니다: 본인이 기억하는 상처보다 기억하지 못하는 상처가 더 많으며 이 부분이 삶에 더 많은 영향을 준다. (2)모태의 환경이 중요하다: 피츠버그 대학의 텔빈 박사는 아기의 지능에 대한 연구논문150여 편을 검토한 끝에 자궁 내 영향상태, 산소의 공급정도, 임신 중 정서와 환경, 산모가 받은 스트레스와 같은 외적환경이 지능결정에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밝혔다. (3)태아의 시기에 인간은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다: 태아는 듣고, 보는 것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태아에게 전달된다. (4)태아는 최소한 10주가 되면 경험된 것을 기억 한다: 태아는 자기와 연결된 어머니를 통해 어머니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태도를 감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5)모태의 정서가 태아의 정서가 된 다: 산모가 평안을 느껴야 한다. 태아와 상모는 한 육체이므로 임신 중에 먹는 음식에 따라, 어떤 마음의 상태를 지니느냐에 따라 태아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다. (6)태아는 느낌으로 인생을 배운 다: 산모가 태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산모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대우를 받는가, 또는 어떻게 대하는가가 아이의 인생관에 많은 영향을 준다. 2)태아기의 상처가 발생하는 상황 (1)부모가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경우: 지나치게 남의 관심을 받으려고 한다. (2)혼외 관계나 임신에 대한 지시이나 준비가 전혀 없는 경우: 부모에게 짐이되 며, 내성적, 부정적인 아이가 된다. (3)인공 중절 수술 하려는 계획과 생각을 가진 경우: 잘 놀라고, 부모에 대한 미움과 적대감을 가지게 되고, 심장 계통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4)유산 후에 태어난 아기: 타인을 잘 흉내 내고, 자신감이 없고, 공포와 두려움에 잘 빠진다. (5)임신 중에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경우: 작은 일에도 두려움과 불안감 느낀다. (6)임신 중에 부모와 친척의 죽음을 경험한 경우: 깊은 슬픔, 낙심, 외로움, 우울증에 잘 걸린다. (7)남편이나 고부간의 갈등 등 가정불화를 겪는 경우: 불안, 긴장, 산만, 집중력 저하, 두려움, 분노 등 어머니를 괴롭힌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태에서부터 가지고 태어난다. 임신시기3~7개월 사이가 가장 많이 문제가 발생하는 기간이다. (8)출산의 고통이 심했거나 오래 지속되었을 경우: 태아는 함께 고통을 느끼며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9)임신 후 태아에게 관심을 갖지 못할 정도로 바쁜 생활을 한 경우: 외로움, 고독감, 잘 놀람, 불안, 정신질환, 우울증을 잘 경험 한다. (10)탯줄이 목에 감긴 경우: 언어장애, 비사교적인 행동. (11)출산 시 아기를 죽이려는 마음이나 딸이라고 섭섭해 하였을 경우: 심장병을 유발 하거나, 출산 시에도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12)부모가 원하지 않는 성으로 태어난 경우: 패배감 속에서 산다. 다른 성이 되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3)태중의 상처를 치유하는 원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태아, 유아 시절로 돌아가서 그때 받았던 크고 작은 상처의 기억을 떠 올리며 상처와 함께 겪었던 불안, 우울, 공포, 수치감, 두려움을 회상한 후 떠오르는 상처를 하나씩 주님께 드려야 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임신 10주 만 되면 두뇌는 거의 어른두뇌 모양으로 모든 외부자극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음성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를 이해한다. 자궁에서의 경험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것이었다면 그 아이는 바깥세상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고, 자궁에서의 삶이 어려웠다면 바깥세상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닫아 버린다. 아이는 또한 부모 사이의 관계가, 어떤지를 잘 알게 되며 가족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부모가 화를 내거나 큰 소리로 다투면 아기는 자신에게 화를 낸 것이라 받아들이고 슬픔과 두려움과 죄책감을 갖게 된다. 또 아버지가 어떤 이유로든 엄마를 떠나면 아기는 자신 때문에 아빠가 엄마를 떠났다고 믿어 버린다.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 이다”(시22;9-11)
 이근호 15-07-04 09:45 
잘못되었으면 처음 자리를 다시 찾아가야 합니다. 처음은 하나님 담당입니다. 그 처음 자리를 후에 등장한 피조물인 인간 주제에 감히 나서서 자기 행복과 자기 치유를 위해 주님이 실시한 그 원리에 수정을 시도한다는 것은 오직 사단의 지시가 강력하게 작용하는 경우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것은 피조물의 위신이나 권한이나 행복을 위함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5-17)

그런데 여기에 반발해서 하늘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그 주모자는 사단입니다. (계 12장) 사단이 노리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피조세계 전체가 예수님만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을 거부하고 피조물 본인들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을 시도합니다. “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3-4)

모든 피조세계를 이러한 사단의 일관된 마음으로 한데 뭉쳐서, 결코 피조 세계가 무너지거나 저주받거나 심판받는 것에 대해서 한목소리로 저항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유(有)에서 유(有)’로 기어이 버티면서 이어가겠다는 시도입니다. 즉 이미 ‘있음’의 가치의 무(無)로 전환되는 주님의 시도에 대해서 강력하게 저지하겠다는 겁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막 5:7-8)

여기 귀신이 말하는 바가 이것입니다.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예수님이 누군지를 귀신은 알면서도 기어이 버티고 싶은 것은 바로 이점입니다.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즉 나를 괴롭게 하면 누구라도 그냥 두지 않고 공격하겠다는 바로 이 정신이 사단의 정신입니다.

바로 이 사단의 정신에 의해서 이 종말 시기에 온 천하를 뒤덮는 것이 바로 과학이요 철학이요 예술이요 종교입니다. 이러한 취지를 유지하기 위해 등장된 단체가 바로 국가요 학교요 교회요 기업체입니다. 곧 이 세상 자체입니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그 모든 의도에는 “지금 존재하는 나를 괴롭게 말라”는 악마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주님이 하시는 일에 대드는 일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2-3)

사단은 인간으로 하여금 죽기를 무서워하는 마음을 주었고, 그래서 계속 사단의 종으로 붙들어두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히 2:14-15)

그래서 인간들은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잠자리 들때까지, 호흡할 때마다 내뱉은 상투적인 자기 설득이요 다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단어들입니다.

“죽으면 안돼, 망하면 안돼, 아프면 안돼, 지옥가면 안돼, 저주받으면 안돼. 누구에게도 미움받으면 안돼. 인기 떨어지면 안돼. 나는 불행하면 안돼, 징계 받으면 안돼. 왜냐하면 나는 없어져서 안되는 영원한 불멸체, 불사체가 되어야 하니까. 이유는 나도 모르겠어. 무조건 나는 사랑받아야 돼. 그냥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나 다운 삶이야”

해결책을 간단합니다.

주님 십자가 사건으로 이미 중심잡혀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나는 망해야 돼, 나는 아파야 돼. 나는 미움받아도 마땅해. 내가 지옥가도 당연해. 나에게는 비극, 실패, 저주 마저도 당연한 운명이야. 모든 이를 나를 저버리고 나는 이용해도 나는 당해도 당연해. 그리고 나는 진작에 죽어야 해. 왜냐하면 나는 근원적으로 주님에게 대든 내 중심으로 살아온 하나님의 원수이니까”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10)

귀하께서 하시려는 일은 ‘유사 과학’ 혹은 ‘사이비 과학’ 혹은 ‘과학을 옷을 입고 진리의 한분야인양 흉내내는 종교류’입니다. 인간들이 평소에 자기 행복에만 최종 의미와 관심을 두고 산다는 점을 알고 기존 기계적 원리에 따르는 과학이 미처 손 못대고 자신 없어 하는 분야, 모호한 틈새 분야에서 인간들의 심리적 취약점을 노리는 수법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적으로 말해서 십자가 사건은 인간의 실체를 드러내는 사건이지 인간을 치유하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성경에서 말하는 ‘다시 태어남=중생’은 기존의 이미 존재하는 내가 은근히 고대하고 기대하는 바로 그런 자아의 다시 태어남이 아닙니다.

자아의 영속성이나 자아의 불멸성적인 욕구를 만족하기 위한 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이란 로마서 6장의 말씀처럼, 은근히 노리는 자아의 불멸성과 불사성이 곧 예수님을 집단적으로 살해하게 된 사단이 사주한 동기임을 고백하고 마땅히 포기하고 미리 주님으로부터 심판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살이 아니라 예수님 손에 의해서 언약대로 죽는 자만이 주님의 ‘주되심’만을 위해 새로운 피조물이 영생을 얻는 겁니다. 따라서 그 작업은 사람은 못하고 우리 개인들이 하지를 못하는 그런 영역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마 19:26)

내가 나에게 뭔가 시도하지 않더라도 지금도 분주하게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맡겨신 자기 백성을 실패없이 구원해내고 있음이 믿어져야 합니다. “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9)

일반 과학마저도 사단의 사주 하에서 기존의 ‘있는 것들을’ 더욱 망하지 않고 계속 있게 만드는 작업에 전념하는 판에 소위 기독교라고 이름으로, 교회라는 이름으로, 이런 유사 진리를 흉내를 내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4-5)

왜 십자가 달린 강도가 강도짓 하고서도 천국에 갔고, 왜 세리나 창기나 불의한 청지기나 탕자가 구원되는 겁니까?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자기네들 자기네들에게 가한 ‘집요한 자기 관리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이 땅에 사는 모든 일생이 죄인이 받는 죄를 주님께서 마땅히 내려주심에 대해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즉 ‘나는 아파도 당연하고 죽어도 지옥가도 당연하고 저주받아야 당연하고, 에덴동산에 추방되는 것’이 너무나도 하나님 보기에 합당한 조치를 행사했음을 인정하고 그런 조치에 찬양하고 있는 것이고 그 모든 조치가 마땅히 일어나야만 한 것이 바로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그 주인공이 ‘자아’가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 계신 ‘예수님’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이 말이 곧 이미 구원된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아예 그리스도 사람도 아닙니다. (갈 1:10)

결론적으로 태아에게 동정하지 마시고, 인간 자체에게 동정하지 마세요. 성도는 사람 편에 서서 살아가서는 아니됩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다, 돌이 떡이 되고 기적을 많이 행해서 대단한 목회자로 인가가 높고 그래서 세상 영광까지 확보를 제안하고 우리의 전부를 지배하는 사단이 만든 노예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이 계약 말고 다른 계약 곧, 새 계약을 전파증거하세요. 주어진 강의와 발표시간마저 주님께서 십자가 복음 전하라고 마련해주신 귀한 여건이라고 여기시고 예수님이 십자가 죽었던 의미를 전하세요.

“여러분들이 태아의 건강과 장래와 운명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사를 주님의 복음의 광채에서 눈 돌리려 영원히 공포와 공포의 연속되는 지경으로 밀어 넣는 사단의 짓입니다”고 말입니다.

성도에게는 실패나 심판이 없습니다. 심지어 태아가 병들어 장애인이 된다할지라도 그것마저 성도의 인생이 아니라 주님의 자기 인생입니다. 곧 예수님의 우주의 중심이 됨을 그런 장애를 통해서도 증거시키려고 하시는 겁니다.

“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7-19)

비록 태아의 건강을 사전에 조정해서 건강한 태아를 출산하더라도 그런 시도 자체가 영원한 저주의 빌미가 됩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사단에 빠져 오직 자기만이 자기에게 전부라는 사시이 발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 16:22)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십자가 사건 앞에서 고백하는 그런 세미나 현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
 이근호 15-07-04 10:02 
셩경은 태아의 건강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모든 것이 주가 되심을 증거하는 영원한 계약서입니다.(태아가 죽든 말든 그것마저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걱정하고 염려한다는 것 자체가 관심사가 비복음적임을 고발하는 책이 곧 성경입니다.)
 박종은 15-07-04 18:13 
성령님 감사합니다.
이근호 목사님을 통해 사단의 종으로 살아가는 죄인괴수를 사랑받게 해주시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은혜를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목사님께서 '비록 태아의 건강을 사전에 조정해서 건강한 태아를 출산하더라도 그런 시도 자체가 영원한 저주의 빌미가 됩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사단에 빠져 오직 자기만이 자기에게 전부라는 사실이 발각되었기  때문입니다'라는 하신 말씀을 읽는데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습니다. 제가 사단의 똘마니가 되어 그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니~~~ 사단의 똘마니요, 악한자요, 거짓말하는자요, 사기치는 자요, 멸망의 자식이었다니~~~사단의 똘마니가 되어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산 예수님의 소중한 생명들을 사단의 밥이 되도록 준비하고 있었다니...아~~ 무섭고 소름이 끼칩니다. 오호라 곤고한 죄인괴수로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요, 세상은 죽어서 깨어나도 못하는 것인데....
10대청소년들에게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무엇인지...제 자신도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데~~~
참 답답하고 미칠 지경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십자가 사건 앞에서 고백하는 생명이 있는 세미나 현장이 될 수 있도록 성령님의 가르침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목사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Simon 15-07-05 02:10 
이목사님 답변 정말 복음적삶이 어떤것인지를 알게 해주네요, 놀랐습니다, 많은분들 도움 될것 같습니다,,,

'짧은답(이근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련회를 마치고 보내온 질문 140115 이근호  (0) 2016.12.30
가족구원 131219  (0) 2014.02.28
추모예배 131030  (0) 2014.02.28
유영모의 참나 120306  (0) 2014.02.18
몸과 정신의 관계 120717  (0) 2014.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