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하지 말라(신5;17)
기차 제일 뒤 칸에 서세요. 뒤 칸에 서게 되면 기차가 앞으로 가는데 우리는 뒤를 바라다보고 있어요. 전봇대 세 개 지나갔구나. 아이고, 터널 지나왔네.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전부 다 이미 미래에서 잡아당기기 때문에 우리의 하루하루는 과거를 경험하면서 사는 거예요. 과거의 삶을 사는 거예요. 이걸 미래에 개방된 것을 과거에 재도입한다는 말을 합니다. 아이고, 어렵죠. 개방된 열린 미래가 과거에 재 진입을 하는 겁니다. 과거로부터 미래가, 우리는 미래를 보는 게 아니라 과거를 보면서, 과거를 고백하면서 지금 미래에서 내 뒤통수를 땡기고 있다는 사실을 그런 식으로 고백해가는 거예요. 본디오 빌라도가 세력 잡고 있는그 세력을 실제 현실로 간주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부인하고 난 뒤에 곁에 누가 있었느냐 하면, 꼬끼오~ 하고 울었어요. 아! 닭이 있었지. 닭이! 인간이 아는 현실 속에 닭이 있어요. 닭이 있는 거 알잖아요? 하지만 그 닭이 주께서 배치한 닭이라는 사실을 알 때, 베드로는 새로운 현실관을 접합니다. 예수님이 구상한 하늘나라를 위해서, 마치 인간의 노동으로 얻은 것처럼 보이는 것들 속에 내가 하나의 일부로의, 가구로서, 가구로서 여기 놓여있는 것입니다. 항상 느껴지지는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뭔가 이 땅에서 내 일이 꼬이고 실망스러울 때, 아니, 세상이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고 내 자신에게 실망스러울 때, ”주여, 나 같은 인간 살려두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할 때, ”이제 니가 의미가 바뀌는구나. 니가 비로소 의미가 바뀌는구나.” ”너 같은 인간의 손모가지를 내가 놓지 않았기에, 예수님만이 아는 시간과 공간을 너에게 잠시 맛보게 했느니라.” 모든 율법이 예수님에게 쏠려서 일괄 성취된다는 사실을 아지 못하기에 사람들은 말씀을 자신이 지켜 생명을 보존하고자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생존을 보장하는 원리원칙이 아닙니다. 생존의 구조질서 자체가 이미 살인을 기초로 하여 건립되었음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하는 것은 너는 바로 살인자라는 말입니다. 살인할 수밖에 없었지만, 살인했지만, 이제 오히려 살인한 자를 주께서는 구원하십니다. 우리 곁에 항상 남아 있어야 돼요. 늘 그게 있어야 돼요. 십자가 지나서 딴 데 가면 안 돼요. 그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은 겁니다.
주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늘 확인하는 즐거움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우리교회 주일오후설교 ”살인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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