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첫째, 둘째 시간에 이야기한 이 모든 잘못이 어디서 나왔는가?
참된 현실 말고 따로 우리가 독자적인 현실을 만들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돈은 왜 내지요? 식당에서 돈 내는 이유가 뭐죠?
식당에서 음식 만드는 것은 먹으라고 한 거잖아요. 그럼 먹어줬잖아요.
그런데 돈은 왜 내요? 이상하잖아요. 먹으라고 빵 만든 것을 그 취지를 살려서 먹었는데 돈을 왜 냅니까?
돈을 내야, 값을 치뤄야 인간사회라는 독자적인 현실 세계에서 사람값을 해요.
만약 돈을 안 내면 그 사람은 인간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현실 속의 존재로 인정하지 않아요.
그런데 주님은 뭐냐?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는 세계거든요.
값을 치러야 사람 노릇한다는 그러한 현실에서 다른 현실이 해안선을 만든 겁니다.
여기에서 이리로 넘어가지 아니하면 구원을 못 받아요. 영생을 못 받아요.
예수? 우리가 아는 예수? 아닙니다!
사람 노릇을 하고 사람값을 해야 돼, 라는 여기에 선을 그어버립니다.
분열을 일으켜요. 찢어버리는 거예요.
소유로부터 존재로부터 출발하는 우리를 찢어버려요.분열을 일으켜요.
구원을 누가 방해해요? 구원받고자 하는 내가 방해하는 거예요.
우리가 구원받고자 시도하는 율법 지켜서 구원받고자 시도하는 순간 우리는 벌써 죄가 생산되는 겁니다.
내가 천국 못 가는 이유가 내 안에 정립이 돼요. 만들어져요. 내가 나를 천국 못 가게 만드는 주범입니다.
주범은 아니고 이게 양아치에요. 그리고 뒤에 주범인 마귀가 악마가 따로 있어요.
우리는 악마라는 것을 얼굴 돌아가는 꼬마인형, 괴물 같은 척키 같은 그런 것만 악마라고 하는데
그걸 누가 만들었겠어요? 인간에게서 나왔지요. 일그러진 모습, 아무도 흠모할 게 없는,
인간이 악마로 여기는 그 모습을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으로 가져온 거예요.
그게 가면효과인데, 자기의 가면으로 써버렸어요. 인간의 힘으로 벗겨낼 수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싫어버린 바 된 거죠. 왜 주님은 버림받는가?
인간은 자기 존재의 건전함과 의로움을 따로 구축하려는 존재이기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추방당함으로 말미암은 그 의로운 죽음을
추방한 인간 속에, 그 중심에 새로운 주체로 집어넣어요.
예수 안에 있는 성도다운 새로운 주체를 모세언약의 구조로 우리 속에 집어넣으면
성도의 특징은 매일같이 분열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돌아서면 소유, 돌아서면 내가 잘 돼야지, 하다가 다시 보게 되면
그 경계선에서 뭔가 선이 찌그러지면서 그 속에서
너 때문에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하시는 그러한 기능으로 작동할 때
우리가 움직이는 하나님의 성소입니다.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제3강중에서
'내 생각 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년 2월 2일 오전 07:37 (복음으로 낳은 자식) (0) | 2015.02.02 |
---|---|
2015년 2월 1일 오전 09:50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나이다) (0) | 2015.02.01 |
2015년 1월 30일 오전 07:58 (하나님의 얼굴) (0) | 2015.01.30 |
2015년 1월 29일 오전 09:43 (주님의 표현형임을 고백하는 것이 성도) (0) | 2015.01.29 |
2015년 1월 28일 오전 07:20 (기록한 말씀) (0) | 2015.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