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이런 것 저런 것 필요한 것 주시옵소서.” 그럴 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런 기도는 하지 마라. 내가 니한테 있어야 할 것은 내가 아니까
니가 닦달 낸다고 내가 주는 게 아니고 니가 기도 안한다고 안 주는 게 아니에요.” 또 갑자기 복음이 들려왔지요. 한 번 적어볼까요.
‘기도 안한다고 안 주는 것이 아니다.’ 참,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복음이죠.
그러면 이 기도를 안 해도 주시는 것은 누구 이름으로 주시는 겁니까?
이것은 내 이름이 아니고 주의 이름으로 주시는 거예요.
우리의 신앙생활은 다른 게 아니고 만나처럼 날마다 주워담는 거에요.
아침에 가보니까 내가 심지도 경작하지도 않은 그 어떤 똘망 똘망한 그런 작은 그런 것들을 감사함으로 바구니에 담지요.
마치 12광주리에 차고 넘치는 것처럼. 12광주리에 차고 넘치는 것이 그게 낭비의 철학이라 했잖아요.
뭔가 강물이 범람하는 것. 뭔가 태양 열에너지가 낭비되는 것. 왜 하나님은 낭비가 그렇게 심하지요?
그 넘쳐흐름이 우리의 죄도 거뜬하게 우리 죄를 무죄상태로 바꾸는 것이 아니고 우리 죄를 의인으로 바꾸는 그것이
주님의 낭비처럼 보이는 주님의 무한한 은혜의 왕 노릇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는 겁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더라도 주신 것을 보면서 우리는 내 기도덕분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주의 이름으로 주님이 하시는 기도 덕분에 우리가 매일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주워 모아야 돼요.
택배라 했습니다. 뜯지도 않은 보따리를 뜯어보면
전부 다 내 이름으로 원하지도 않았는데 주께서 일방적으로 주신 은혜들이 사방에 널려있어요.
그거 뜯으면서 감사하기도 바쁜 생활이 우리의 생활이에요.
우리는 애굽같은 세상에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 그런 걸 탑재하고 그런 것을 저축하고
그걸 내 것으로 소유하기 위해서 기도하잖아요.
내 이름으로 해놓고 뒤에 변명하기를 비겁하게 주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렇게 끝내고 하는데 그런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겁니다.
참새도 친히 기르시고 들풀도 기르시나니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들풀은 아궁이에 불쏘시개 넣을 때까지 주님께서 친히 기르십니다.
내일 아궁이에 불쏘시개로 들어간다 할지라도 들어갈 때까지 주께서 친히 기르십니다.
우리의 운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안개거든요.
주께서 우리를 다 쓰실 때까지 곧 죽기 직전까지 우리를 친히 주께서 쓰십니다.
숨을 헉! 헉! 하는 것도 주께서 그렇게 헉! 헉! 하셔서 하는 거고
이혼할 때도,유언하는 그 순간도 주께서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발걸음도 세시고 머리카락도 세시는 주님인데
세상만사 내 것은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고 주께서 다 힘주셔서 움직이고 있는 그런 처지에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은 내 것이 없다는 것부터 출발해야 돼요.
내 것도 아닌데 주님 거 주님이 구겨본다는데 내가 왜 화를 냅니까? 내가 성질부릴 이유가 없지요.
성질부린다는 말은 뭐냐 하면, 전부 다 내거라고 여기는 거예요.
하나님의 언약이 본래성입니다. 본래성. 오리지널이에요. 인간은 비본래성이거든요
-안양강의 ”피의 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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