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은 갈수록 바닥 밑의 바닥. 갈수록, 갈수록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바닥 밑의 바닥을 들춰내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바닥이 뭐냐?
어떤 피가 있는데 어린양의 피도 아니고, 염소의 피도 아니고, 그동안 많이 죽어 나갔던 소의 피도 아니고, 사람의 피인데
그 사람의 피가 무수한 사람의 피가 아니고 오직 한 분, 하나님 품속에 있던 독생자의 피,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생명이 없다." 생명은 바로 거기에 숨어있었던 거예요.
그 숨어있던 생명을 누가 찾아내겠습니까?
결국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사
그들로 하여금 죄 짓도록 하셔서 죄 짓고 화내시면서 양파 껍질 하나 벗겨내시고,
또 죄 짓고 또 화내고 벗겨내시면서 마지막 십자가의 죽음까지 인도해내시는 방식을 하나님이 사용하신 거예요.
사람이 스스로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벌어져야 되지요.
감당못해서 죽지요. 죽었는데 나중에 눈 떠보니까 성공적인 일에 와 있잖아요.
이게 거듭남의 팩트죠.
자기는 실패했는데 다른 데서 와서 성공,그 결과에 대해서 본인은 실패자로 등장될 때 이게 바로 거듭남입니다.
여러분이 성도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성도라면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실은 내가 감당 못할 일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얘를 가르친다든지, 설거지를 한다든지, 내가 길을 건넌다든지.
이건 내가 튼튼한 두 다리로 걷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다리를 튼튼하게 하셔서 걷게 하시기 때문에
만약에 통풍이 있다면 마음은 굴뚝같지만 도저히 걸을 수 없는 신분에 놓여있다고 믿을 때 이 사람이 거듭남입니다.
그리고 이쪽(거듭남) 노선에는 혼자 있는 게 아니에요.
보이지는 않지만 목자 되시는 주님이 항상 우리와 동행하고 있음을 압니다.
동행하고 있기 때문에 공로를 자기한테 안 돌리고 주님 덕분이라고 돌릴 때 이게 거듭남의 노선입니다.
세상에서 대부분은 이렇잖아요. 일종의 작은 영웅들 아닙니까.
그들이 맨날 하는 소리가 꿈은 이뤄진다. 하지만 이쪽은 이미 꿈은 깨졌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동행하시는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제 뜻은 무시하셔도 저는 수용하겠습니다. 제 뜻을 짓밟아도 저는 감수하겠습니다.” 이게 거듭남이에요.
신약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거듭남의 그러한 성질이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요.
그 대표적인 것이 요나에요.
“날 죽이세요. 날 물에 빠뜨리세요. 나 하나 죽고 당신은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내가 일 저질렀으니까 내가 죽어야지요.”
이게 뭐냐? 요나는 죽을 때도 장렬하게 영웅적으로 죽어요. 그게 요나 1장이거든요.
그런데 요나 2장에 보니까 안 죽었네. 요나가 죽은 줄 알고 영화 끝났구나 하고 나가려고 했는데 요나가 등장해서 영화가 계속 되는 거예요.
‘그런데’ 하면서. 세상에 물에 빠지고 물고기가 삼키는 장면을 슬로비디오를 찍어서 2장을 장식합니다.
여기서 아는 것은 뭐냐 하면, 요나는 내 인생은 내가 함부로 굴릴 수 있는 자격이 나한테는 없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내 인생이란 자체가 없어요. 내 생의 봄날은 간다고 하지만 내 생이란 자체가 없어요. 이게 거듭난 노선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도망치는 것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할 수 있는 것의 끝은 자살이에요.
거듭났습니까? 자살하지 마세요. 자살한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했을 때 자살해요.
그러나 주님과 동행한다면, 살아있는 자체가 이미 죽음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자살하지 마세요.
주께서는 매일 우리를 죽이고 늘 살리기 때문에 내가 시도한 자살이 아니라 주께서 죽여주시는 그 죽음을 우리는 늘 겪는 겁니다.
주에 의해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것이 요나에 나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요나가 엎드려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고기 안의 요나지요. 고기 밖은 바닷물이지요.
음부의 세계, 곧 죽음의 세계입니다. 요나가 경험한 것이 죽음을 산 채로 경험한 거예요.
우리는 이것에 버무려야 비로소 거듭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주님 밖에 나가면 죽음이에요. 이걸 거듭난 사람만 알아요.
주님을 안 받은 사람은, 세상에 자기 혼자 살다가 죽으면 주님 만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 세상은 죽음의 세계고, 죽음의 세계에서 내가 살아있는 것은 그 죽음을 이기는 예수님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그냥 사는 것이 아니고 주 안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주 안에서 살아야 우리가 의인되고 영생 얻는 겁니다.
그냥 살면 안 돼요. 성도는 죽음 안에서 살아있어요.
살아있기 때문에 세상을 향하고 이 세상은 죽은 세상이라고 목청껏 외칠 수 있는 안목이 우리한테 있습니다.
이게 거듭났기 때문에..... 이것은 남을 욕하는 게 아니고 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바로 홍해 바닷가에 너희들과 똑같이 널브러져야 될 애굽의 군인들 중 하나이었기에...
이 세상 자체가 죽음이라면 우리는 우리 힘으로 이 세상을 출애굽, 탈출할 수 없습니다. 없는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 되시는 하나님이, “내가 해줄게.”하고 나서서 생긴 사건이 출애굽 사건입니다.
주님안에서, 날마다 출애굽하시는 주님과 더불어 살면서 진정한 출애굽의 취지와 의미를 새롭게 알아가는 것.성도의 삶입니다.
-울산강의 "출애굽과 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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