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보세요. 자주 보시되 지킬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다른 분이 다 가져가셨습니다. 다른 분이 다 가져가서 다 지키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 어떤 하나의 율법이라도 지킬 여지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것만 아시면 됩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말씀을 지켜서 거룩하게 될 수 없음을.
그리고 평생에 걸쳐서 삶을 통해서 보여주어야 하는 자임을....
내가 행해서 절대로 거룩한 적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을 네 자로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벌, 곧 저주를 받아야 마땅한데
아직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살려주시는 것은
바로 저주받아 마땅한 그 사람을 카펫으로 깔아놓고
그 위에 예수님이 그 카펫 위에 지나가시겠다는 겁니다
내가 어린양이다, 내가 속죄할 수 있으며, 나의 일방적 권한으로 너희를 용서했다...
이것을 고백하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나름대로 내가 지키셔 거룩하겠다는 모든 것을 지근지근 밟아 버리시고
내가 이미 다 이루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거룩이 없습니다. 언약이 주어질 때 거룩이 찾아왔고,
그 거룩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접촉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이 스스로 날개를 펼칩니다. 우주선이 달에 착륙할 때 다리 같은 것들이 나옵니다.
언약 덩어리가 오는 것이 아니라 언약이 정착되기 위해서, 언약자체 안에서 펼쳐지는 언약 구조가 나옵니다.
착륙구조는 언약이 스스로 거룩을 펼치면서 안착되는 식입니다.
그 펼치면서 나온 것이 무엇이냐? 어린양을 희생하여 속죄가 되어 용서를 베풀겠다는 식입니다.
이 용서는 어디에서 나온 용서입니까? 거룩 자체에서 나온 용서입니다. 그 거룩은 하나님의 언약에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언약은 있음이 되고, 언약에서 나온 착륙구조도 있음이 되고,
이것이 있음이 된다면 우리는 이 있음 때문에 우리는 없다, 없다가 쏟아져 나와야 합니다.
없는 바탕위에 거룩이 있을 때 이것을 두고 거룩한 사람, 성도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말씀 보세요. 지키지 마세요.
말씀보시고 내가 왜 거룩하지 않고, 내가 왜 의인될 수 없는가를 아시고,
그 알게 하시는 작업이 나의 있음을 없는 존재로 바꿉니다.
만약 이렇게 되지 않으면 나는 있음이 되고,
있음이 되면 여기에서 주체가 발생되고,주체가 발생되면 동질성이 유지되고,
이 동질성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행함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더 높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를 증거하는 자기 우상화하는 식이 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입니다.
-중국강의 "레위기1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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