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너로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16;63)
막달라 마리아가 눈물로서 자기를 미워하면서 눈물로서 예수님 발을 씻길 때 주위 사람들이 여자를 보고
“저 소문 나쁜 여자, 행실 나쁜 여자, 남자를 밝히는 여자, 창녀”라고 얼마나 욕을 해댔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전혀 그 여자에게 심적 상처가 되지를 않아요.
왜, 남들이 자기를 미워하는 것보다 자기가 주님 십자가 앞에 설 때 주님 피 앞에 자기를 온통 다 벌거벗은 채로 내 보일 때
남이 나를 미워하는 것보다 그 이상으로 내가 나 자신의 평소 정신 상태와 사고방식이 미워도 너무 미워요. 너무 밉다는 말이지요.
그것을 간단한 말로 회개라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심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지. 회개를 하게 되면 올바른 사람 되는 것이 아니에요.
회개를 한 만큼 교만이 플러스가 돼요. 회개를 한 만큼 교만의 정당성이 보장이 되는 거예요. 왜, 난 십자가 앞에서 회개를 했으니까.
그 병은 누가 고칩니까? 그 병은 고칠 재간이 없지요. 두 번째로 다시 한 번 인간은 절망에 빠지지요.
그 회개한 자체가 자랑스러워서 절대로 자기 근원적 자기 미움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절망으로 다가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존을 포기해도 안 돼. 회개해도 안 돼. 어떻게 할까요?
바로 에스겔 16장 63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설명해 보면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라고 한 거예요.
성도란 자기 구원을 위해서 매진하는 사람이 아니고 이미 하나님의 특별조치에 의해서 용서가 된 상태에서
이젠 하나님의 손 안에서 주님이 우리 자신에게 행했던 것을 반복해서 되새기는 기간이 남은여생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걸 반복해서 행하면 구원받느냐, 가 아니고
처음의 용서가 그 용서해준 인간을 통해서 용서가 반복해서 계속 발산되도록 조치가 일어나요.
용서를 본인이 유지하는 것이 아니고 용서가 펄쩍펄쩍 뛸 때마다 회개가 같이 나오는 겁니다.
이미 용서하심을 다시 한 번 성령을 통해서 깨닫게 하는 그 순간마다 계속해서 죄가 나오게 되는 겁니다.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계속 죄가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죄가 나올 때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가 죄인인 것을 자백하고 고백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려면 용서가 먼저 있어야 되거든요.
용서가 먼저 있으려면 그 용서를 내가 장악해서 내 소유화시키려는 그 주체가 없어져야 되기에
주께서 그 용서를 살아 있는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용서가 오게 되면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죽은 자가 되게 하는 거예요.
논리가 어렵습니다만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의 행동과 고백은 사후의 고백,
여기서 ‘사(死)’는 죽을 死, 그래서 죽고 난 뒤에야 오는 고백을 우리는 하고 있습니다.
-수요설교 ”죄를 기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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