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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2-수원강의140320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4. 5. 7. 09:10

수원140320b-(언약)1강 - 이 근호 목사

정리를 다시 한 번 해드리겠습니다. 정리를 해드리는데 다른 거 없어요. 이쪽에는 언약이 있다. 저쪽에는 언약이 없다. 간단하지요. 어렵지 않지요. 언약이 없으면 그냥 없지만, 언약이 있으면 나중에 뭐냐 하면, 어린양이 되고 출애굽이 되고 갈라지고 어린양이 나중에 뭐냐 하면, 누군가 오셔서 십자가 지셔가지고 요 십자가 안에는 피가 있는데, 요 피를 무슨 피라고 하느냐 하면, 이걸 ‘언약의 피’라고 합니다. 언약의 피.

언약의 피는 공연한 게 아니거든요. 쓸데없이 예수님이 피 흘린 게 아닙니다. 다 피 흘린 이유가 있어요.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씻어내게 돼요. 이걸 우리가 피 발라서 씻어내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씻어주시는 거예요. 우리의 모든 죄를 하나님이 씻어주시는 겁니다.

예수님의 피로 씻어줄 때, 우리에게 뭘 발생시키는가 하면, 죄라는 것을 일부러 만들어요. 죄를 일부러 만들어서 죄와 십자가 피와 만나도록 하는 겁니다. 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뭘 주느냐 하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셔요. 말씀을 주시게 되면 ‘아! 이런 것도 죄가 되었었구나!’ 화내지 말라. 화 내지 말라? 아! 화내지 말라는 것도 죄가 되는구나! 특히 성경에 보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지요. 원수를 사랑 안하면 뭐가 돼요? 이게 죄가 돼요. 그런데 원수 보면 화가 나게 되어있어요. 인간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우리가 원수를 사랑 못하는 육신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또다시 또 십자가의 피로서 우리의 죄를 씻어줬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 일을 언약을 통해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전체적으로 아시겠지요.

이방인들은 지 잘난 맛에 살아가지만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 앞에서 죄인이고 그 죄는 예수님 안에서 의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두 번째 시간에는 뭘 하는가 하면, 요 과정을 펼쳐보겠습니다. 성경을 찾아볼 수 있지만, 여러분들이 성경을 안다고 치고 그냥 성경에 있는 내용만 그냥 툭툭 던지겠습니다.

창세기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와요. 아브라함은 아직도 누가 못 왔느냐 모세가 아직 이르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 다음에 이삭, 이삭 다음에 야곱, 야곱 다음에 이스라엘, 이스라엘 다음에 모세 되거든요. 전체가 2000년이니까 600년 차이가 나는 겁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준 거예요.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줬습니다. 그걸 아브라함의 언약이라고 하는 거예요. 자,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줬다는 말은 언약을 받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지금 어디가 있느냐 하면, 지금 천국 가있습니다.

요한복음8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아브라함이 예수님보기를 원했다가 예수님을 보고 기뻐했다는 대목이 나와요. 참 신기한 대목이죠. 아브라함은 여기 있고 예수님은 한참 뒤인데, 아브라함이 예수님 보기를 원했다가 보고 기뻐했다고 되어 있어요. 성경에. 그 말은 뭐냐 하면, 아브라함이 지금 천국 가있는데 지금 누굴 만났느냐 하면 예수님을 만났다 이 말이죠. 만났거든요.

그러면 지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신 거예요. 이걸 제가 어제 수요설교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요게 만두피에요. 요 안에 돼지고기하고 잡채, 김치 좀 넣고 두부도 다져서 넣고 후추 뿌려서 이게 뭐냐 하면, 만두 속이 되지요. 만두피는 만두가 아닙니다. 제 말 맞지요? 만두 속을 가지고 만두피에 담아서 요렇게 하게 되면 만두가 됩니다. 찝니다. 갑자기 만두가 먹고 싶네. 요게 뭐냐 하면, 아브라함 언약이에요. 요 만두피가 뭐냐 하면, 이게 아브라함이고 만두 속이 뭐냐 하면, 바로 예수님의 언약입니다. 언약. 예수님의 언약이 되거든요.

아브라함이 지금 천국 가있습니다. 천국 가있을 때에 아브라함이 누구 공로로 가있다고 하겠습니까? 누굴 믿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하겠어요? 나는 내 잘나서 구원받았다고 하겠습니까? 누굴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 보기를 원했지요. 그럼 예수님 덕분에 아브라함은 지금 만두로서 지금 천국가면 만두가 한 두 개가 아니에요. 43300개 만두가 많이 있어요. 천국 가면. 만두가 된 거예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뭐냐 하면, 아브라함 속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요걸 ‘의’라고 합니다. 이걸 ‘하나님의 의’라고 한 거예요. 아브라함이 약속을 믿으매, 언약을 믿으매 뭐가 되느냐 하나님의 의가 돼요. 의가 되어서 이게 뭐가 되느냐 하면 의인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다 아는 이야기인데 물어보겠습니다. 아담이 선악과 따먹고 난 뒤에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죄인이지요. 그러면 따먹기 전에는 죄인입니까? 무죄한 사람입니까? 죄인은 없지만, 의인은 아니에요. 의인이냐, 죄인이냐 되기 이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아이고, 당신은 의롭습니다.”라고 할 게 아무것도 없어요. 죄가 없는 상태지만 의인은 아니에요.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무죄한 상태가 돼버리면 또 따먹을 수 있어요. 또. 또 따 막고 또 죄지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뭐 만드는가 하면 무죄한 자로 만드는 게 아니고 아예 의인으로 만들었어요. 의인으로.

만약에 우리가 그냥 죄 안 짓는 사람 돼버리면 또 실수해서 죄 지으면 아무리 평생 동안 죄 안 짓더라도 80되어서 죄 짓게 되면 졸지에 죄인 돼버리거든요. 아예 죄인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뭐냐 하면, 아예 의인이 되는 거예요. 이 의인은 율법을 지켜서 의인 될 수가 없어요. 왜냐 하면 법은 지키면 지킬수록 모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이대로 지켜도 제대로 지킨 것인가, 자꾸 뭔가 모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십계명 중에서 제일 마지막 계명이 뭐냐 하면, 탐내지 말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지는 탐을 안내더라도 새로운 물건, 백화점에 새로운 물건이 나온다던지 어떤 남이 잘되는 것이라든지 새로운 것이 들어오게 되면 자동적으로 우리마음속에 뭐가 생깁니까? ‘아! 갖고 싶다.’ 탐욕이 생기지요.

이것은 내가 죄를 지으려고 한 것이 아니고 견물생심이라, 불교에서. 보기만 하면 탐이 나는 거예요. 보기만 보면 탐이 나는 거예요. 내가 이 예배당보니 탐이 나요. 없었으면 탐심이 없었을 텐데 보니까 탐이 나는 거예요. 나는 착하다, 법 지켰다 했는데 만약에 이런 게 생겨버리면 갑자기 졸지에 뭡니까? 탐심이 생기면서 탐내지 마라에 위반이 돼버리고 나는 졸지에 아무리 착하고 의롭고 의로워도 졸지에 뭐 됩니까? 죄인 되지요. 이리가지고서는 해결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예 의인되기 위해서 의가 될 수 있는 방법에서 아브라함의 행함을 끊어버렸어요. 아브라함 너는 행하지 말고 이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행함으로 아니라 믿으면 아브라함이 장차 오실 예수님을 믿으니까 아브라함은 의인이 된 거예요.

이걸 제가 설명하면서 만두피는 가만히 있으면 돼요. 만두 속을 넣고 오므리면 만두가 되듯이 만두피가 자기가 김치 다듬고 잡채 썰고 자기가 만들 필요가 없고 자기는 가만히 있기만 하고 만두 속이 들어오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싸면 되는 거예요. 이 만두 속이 뭐냐,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우리는 예수님을 감싸는 사람이 되고 그럼 이건 내 이름이 아니고 나는 주의 이름으로 사는 거예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 되는 거예요. 이 만두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만두지 내 만두가 아니다 말이죠. 아까 첫 째 시간에 뭐라고 했습니까? 첫째 시간에는 설렁탕, 두 번째 시간에는 만두입니다. 사나 죽으나 주님이 만드신 주님의 만두가 되는 거예요. 그 안에서 의가 나와요. 의는 어떤 것도 죄를 이기는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겁니다.

다시 합니다. 8번째 이야기합니다. 내가 여기 있다. 신이 있을 것이다. 믿자. 이건 뭐가 빠졌다 했습니까? 언약이 빠졌지요. 그런데 성경을 통해서 보니까 여기 아브라함 언약이 나오면서 이걸 믿으면 뭐된다? 믿으면 의인이 돼버려요. 믿으면 의인되는데 의인되는 근거가 뭐냐 하면, 바로 제사입니다. 제사.

어떤 제사? ‘피 있는 제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해서 그 제사인데 피가 있는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피있는 제사를 드리게 했는데 물론 거기 어린양을 잡아요. 어린양을 잡아 놓고 어린양이 나중에 어떤 인물과 관련되어 있어요. 어린양 잡아라 해놓고 나중에 인물을 보니까 누구냐 하면, 세상에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이삭을 아버지 손으로 죽이게 하는 거예요. 평소에 아브라함이 제사를 드릴 때, 기껏 잡는 것은 염소, 소, 양 그런 거 잡았거든요. ‘아이고, 뭐 이것만 잡으면 잡았다는 행함으로 구원받겠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하나님께서 이것도 제사 드리라고 해놓고 거기다가 또 나중에는 이삭을 잡으라고 하니까 참아 아버지로서 자식을 잡기가 곤란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이니까 자기는 만두피니까 할 수밖에 없지요. 할 때, 스톱! 하고 수풀을 봐라! 수풀을 보니까 거기에서 뭐가 튀어나왔어요? 수양이 튀어나온 거예요. ‘아하! 수양과 사랑하는 아들을 주께서 바꿔치기해서 살리는구나! 그렇다면 하나님아버지께서 장차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죽이심으로 말미암아 죄인을 의인 만들기 위해서 수양 같은 자기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그 때가 온다는 것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알려준 거예요.

아브라함이 아버지가 이삭이 아들이잖아요.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요 방법이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죽이는 예수님의 방법을 이미 당겨서 보여준 게 돼요. 그런데 아들을 죽이라고 했는데 수양이 튀어나왔으니까 아하! 수양이 내 아들이에요. 그러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어떤 사람이 된다면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죽였던 예수님이고 진짜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방식이 되는 거예요. 이게 언약입니다. 이게 언약인데 그동안 사람들이 이 언약을 모르면 뭐만 남아요? 그냥 착한 것만 있지요.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 언약이 나와요. 언약이 나온다고요. 그렇게 해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겁니다.

그 다음에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쳤다. 그걸 믿음으로 의인된 거예요. 그런데 이 아들이름이 뭐라고 했습니까? 이삭이죠. 이제 어렵더라도 참으세요. 지금까지는 아브라함 언약이에요. 이제부터는 ‘이삭언약’이에요. 자, 언약이 뭐냐, 언약은 만두피인데 만두피 속에 담긴 이것이 바로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이걸 뭉쳐보면 아브라함의 언약, 이삭의 언약, 야곱의 언약, 새 언약 이리 되는 겁니다. 오늘날 성도가 나타나면 성도 속에 누가 있다? 성도 속에 예수님이 들어있으면 성도도 마찬가지로 언약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약속의 사람이 되는 거예요.

이삭언약이 있는데 이삭 언약은 자식이 두 명이에요. 하나는 야곱이고, 하나는 에서입니다. 자, ①아브라함의 언약의 자식이 몇 명입니까? 아브라함 언약의 자식은 이삭 하나밖에 없어요. 이삭이 죽어서 아브라함이 살고 죽었던 이삭을 하나님이 살려줌으로서 아브라함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 이삭에 와서는 자식이 하나같으면 하나를 잡던지 하겠는데 자식이 둘되었어요. 둘되었으니까 야, 이건 어떻게 하지? 아버지 이삭이 에서를 좋아했습니까? 야곱을 좋아했습니까? 에서는 먼저 나와서 형이고 야곱은 나중에 나와서 동생인데. 아버지가 형을 좋아했습니까? 동생을 좋아했습니까? 성경에 보면. 형을 좋아합니다. 에서를 좋아했습니다. 좋아했는데 아버지 이삭이 에서를 좋아하는 줄 알고는 에서를 없애버립니다. 이걸 저주받게 해버려요.

그리고 이삭은 야곱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아하지 않는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연결시킵니다. 이 말은 뭐냐 하면, ②장차 올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모습을 안 좋아하는데 우리가 싫어하는 그 모습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나타나서 우리에게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는 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겁니다. 어렵지요. 어려울 때는 다시 한 번 하면 되는 거예요.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하나밖에 없어요. 이름이 뭐라 했습니까? 이삭하나밖에 없어요.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잡으면 돼요. 잡으면 수양 튀어나와서 아들 살고 수양 대신 잡아서 하나님께 구원받는 방법이었습니다. 옛날 언약이. 아브라함 언약이. 그래서 아브라함은 의인이 된 거예요.

그런데 이삭이 와서는 아들이 한 명이 아니고 몇 명이 됐습니까? 두 명. 둘 중에 하나는 진짜고 하나는 가짜거든요. 두 사람이 아니고 한 사람이다 말이죠. 그런데 이삭은 어느 쪽을 좋아했는가 하면, 자기가 형 쪽인 에서를 좋아했어요. 쌍둥이인데. 이삭이 좋아하는 쪽을 하나님께서는 선택을 안 한 거예요. 이삭이 안 좋아하는 쪽을 하나님이 선택했어요. 그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장차 예수님이 올 때는 누구나 박수치면서 “야, 나 예수님이 좋아.” 이렇게 반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왜? 예수님은 우리가 싫어하는 모습으로 왔어요. 그게 어디에 나오느냐 이사야53장.

그 분이 왔으되 아무도 그 분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 분은 우리에게 싫어버린바 된 그 분. 심지어 12제자도 그 분을 포기하고 버렸습니다. 그 분이 채찍에 맞았잖아요. 그 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그러니까 이사야53장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결국은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없는 거예요.

여기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로 인함이요, 그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으로 인함이라, 되어있지요. 그러니 예수님께서 찔리고 상한 그 일이 뭐냐,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인가 하면, ‘우리가 애초부터 못 알아본 허물과 그리고 우리의 잘못이 있구나!’ 하는 것.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내가 원치 않았던 것 때문에 내가 저 분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받았던 그 채찍 맞음과 그 아픔을 십자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가 있는 겁니다.

내가 예수님을 좋아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우리를 좋아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거예요. 이삭이 에서를 좋아했지만, 하나님은 그 방향을 바꾸어서 이삭이 아니고 야곱을 좋아하게 만들음으로 말미암아 이삭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처럼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 앞에서 할 말을 잊어버리고 그저 구원 해 주심만 해도 저는 황공무지로소이다. 우리들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비켜서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건졌다는 사실을 말해줬습니다. 이게 이삭의 언약이에요.

세 번째, 오늘 세 번째까지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세 번째 야곱이 나오지요. 야곱이 또 만두피입니다. 야곱에게 언약 만들면 그걸 ‘야곱의 언약’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실 때, “하나님 누구십니까?” 할 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이렇게 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어렵지만, 요걸 아브라함 언약, 이삭 언약, 야곱 언약을 설명해 드리는 겁니다.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부러 애먹이려고 한 게 아니고 이게 언약이 없으면 갈아버리면 그냥 구원받아요. 이 세상에서는.

그러나 성경을 보게 되면, 아브라함의 언약, 이삭의 언약, 야곱의 언약이 나왔고 그 하나님이 바로 이스라엘에게 찾아왔기 때문에 지금 제가 귀찮지만, 그 설명을 지금 해드리고 있는 거예요. 왜 그리 복잡하냐고 욕하지 마시고, 복잡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니까 해드리는 겁니다.

이제 야곱의 언약을 생각합니다. 야곱의 언약하면 또 다 잊어버렸어요. 다시 한 번 봅시다. 아브라함 언약은 자식이 하나밖에 없어서 자식을 죽이고 살림으로서 아브라함은 구원받았어요. 이건 예수님이 장차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함으로 우리가 의인된다는 그걸 미리 알아차린 겁니다.

두 번째 이삭 언약은 뭐냐 하면, 그런 예수님을 우리가 반기고 싶지만, 사실은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이 아닌 싫어하는 방식으로 오셔가지고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다 떠나버렸는데 주께서는 떠나는 사람에게 또 찾아와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해서 건져주시는 거예요. 우리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고 우리가 싫어하는 타입으로 오셔가지고 아무도 자기 능력으로 “나 예수 알았다.” 고 주장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셔가지고 “이미 너의 죄는 내가 채찍에 맞음으로 이미 해결했다.” 하는 소식을 전하게 하는 것이 이게 ‘이삭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을 아시겠죠? 죽음으로 사는 것. 이삭 언약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그런 분인데 오셨다.

세 번째 야곱 언약이 뭐냐 하면, 야곱언약은 이렇습니다. 야곱언약은 자식이 12명이었어요. 12명인데, 12명이 다 좋아했습니까?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하는데 사실은 안 그렇거든요. 자식이 12명이 되면 특별히 좋아하는 애가 있었어요. 그게 누구냐 하면 바로 자기가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라헬이었어요. 사랑했던 여인의 첫 번째 자식 이름이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을 볼 때마다 자기가 일찍 죽었던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을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요셉을 사랑했습니다. 12명 가운데 특별히 요셉을 사랑했어요. 그래서 요셉에게는 특별히 옷을 최고급으로 캠브리지 옷으로 최고급으로 옷을 한 벌 말끔하게 차려 입혔어요. 다른 11명들이 화를 내겠습니까? 안 내겠습니까? 화가 주먹만큼 나왔어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야곱은 자기의 라헬을 잊지 못했어요. 잊지못해가지고 그의 자식 요셉을 그렇게 사랑했습니다. 지금 그 이야기가 드라마의 기왕후에 보면 나오는데.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특별히 사랑했거든요. 거기다가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거푸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연거푸 꿈을 꾸는데 달 12개가 절을 하고 그리고 벼 짚단이 자기 앞에 빙 둘러서 포위해서 절하고 요셉은 우쭐대지요. 형들은 더욱 더 화가 났지요. 그러니까 11:1로 밉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요셉보고 “형들이 양 치는데 니가 도시락 갔다 줘야지.” 하고 도시락 가져다주러 갔었어요. 형들이 가만히 보니까 아는 애가 오거든요. 동생이라. 평소에 감정이 차별대우해서 감정이 심했던 형들은 이참에 요셉을 없애버리려 했습니다. 왜? 요셉이 없어져야 모든 아버지의 사랑이 자기한테 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가인이 누구를 죽었습니까? 아벨을 죽인거와 똑같은 거예요. 인간은 똑같아요. 그냥 사랑 못 받으면 남을 죽여서라도 사랑이 자기한테 독점하기를 바라는 이 인간의 마음은 이 육신의 마음은 너나 할 것 없이 똑같습니다. 형들을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니까.

어쨌든 요셉을 죽이려 하고 요셉을 죽이려 했을 때, 맏이가 죽일 것까지 있겠나, 그냥 없애버리자. 죽이지 말고 없애버리는 방법이 있다. 그게 뭐냐, 애굽으로 내려가는 장사꾼에게 요셉을 30냥으로 팔아먹었어요. 팔아먹고 요셉을 죽은 걸로 위장해서 짐승을 잡아서 짐승의 피를 요셉의 옷에다가 이쁜 옷에다가 피범벅을 해가지고 아버지 편에 보내버립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사랑하는 요셉이 죽었습니다.” 라고 했을 때 아버지는 못 믿으니까 그 때 죽었던 짐승의 피를 묻힌 요셉의 옷을 보여줬을 때 야곱은 내가 사랑했던 아들, 특별히 사랑했던 아들, 하나님의 계시가 임했던 아들, 꿈을 꿨던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때부터는 어떤 위로도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자, 야곱의 언약이 뭐냐 하면, 아무리 세상의 부귀영화가 많더라도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심정으로서는 달랠 수가 없지요. 야곱의 언약은 바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심정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의 심정, 아들을 죽여 버린 심정, 야곱에게는 아무리 좋은 위로나 아무리 큰돈이라도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이 없다는 이 사실 때문에 자기는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야곱의 언약이 뭐냐 하면, 야곱의 언약이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 세상에 살면서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애들 출세도 하고, 공부도 잘하고, 가정도 화목하고, 천하 교회도 부흥되고, 넓은 아파트에 좋은 차도 타고, 천하를 다 가져도 ③진짜 구원받는 사람은 진짜 중요한 것은 따로 있는 거예요.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진짜 중요한 것은 이 땅에 아무리 가져도 헛되고 헛된 것이 세상인데 진짜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는 겁니다. 그 중요한 것이 누구냐, 그것은 빈 공란, 공 칸, 비어있는 칸이에요.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도리어 야곱과 형제들을 오히려 용서하고 살려냅니다.

사람 손에 죽었던 예수님이 부활해서 오히려 사람들을 살려냅니다. 그러면서도 이 빈 칸이 공란이 채워집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주 예수 말고는 없다는 사실을 야곱은 드디어 알게 되지요. 내 아들이 돌아왔으니까 더 이상 내 여한이 없다. 그럼 나는 뭐냐, 나는 빈껍데기 만두피고 그 안에 내용을 채우는 것은 바로 요셉이 채우듯이 이 세상의 우리 같은 것은, 내 인생은 껍데기인데 무엇을 모시는 껍데기이냐, 예수님이 제일 귀하다는 것을 모시는 하나의 만두로서 살라고 아브라함의 언약, 이삭의 언약, 야곱의 언약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그대로 인생에다가 적용시키는 겁니다.

이제 모든 것을 제가 정리하면서 강의를 끝내겠습니다. 오늘 강의한 것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이 여기 있다. 신이 여기 있다. 그냥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으면 되잖아요. 이것은 뭐가 없다고 했어요? 언약이 없어요. 그런데 방금 첫 째 시간에 이 이야기한 것은 위에다가 뭘 집어넣었습니까?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야기했거든요. 그 다음에 이삭의 언약을 언급했고, 야곱의 언약을 설명했어요. 왜 언약, 언약, 언약을 자꾸 하는가 하면, 요 언약대로 된 것이 뭐냐 하면, 바로 십자가고 십자가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게 돼있어요.

요것은 하나의 교리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고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 진짜로 예수님은 죽었다가 진짜로 사흘 만에 살아났어요. 이것은 과학을 따지고 할 것도 없어요. 이것은 진짜입니다. 이것은 공부하자가 아니고 실제상황이에요. 공부를 하나 안하나 실제로 예수님 부활해서, 우리가 공부한다고 해서 부활하고, 공부 안한다고 해서 부활 안하는 게 아니고 지금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이 능력에 의해서 우리가 잘난 체 했는데 말씀 딱 보니까 말씀 안에 들어오니까 우리가 사실은 세상 돈을 원했고 세상 출세를 원했고 성공을 원했고 예수 좋아한다고 해놓고 말로만 좋아했고 딴 게 더 좋았으면 하는 그런 나의 빈 공란에다가 세상 세속적인 것으로 가득 채워가지고 이만하면 내가 남한테 끌리지 않겠지, 라는 그런 욕심으로 가득 차 있는 그런 육신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가거든요.

그런데 고맙게도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면서 그것을 우리의 만두피를 더러운 세상 것에서부터 예수님 십자가로 바꾸어주는, 교체해주는 이 작용을 성령을 통해서 언약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속 실시를 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강의를 끝내면서 부탁하고 싶은 것은 말씀을 보세요. 말씀을 보시면서 말씀 없이 그냥 믿는 것하고 말씀 속에서 언약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하고 ‘아하! 요런 차이가 있구나!’ 그 차이만 깨달으신다면 그것이 바로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 성령이 오기 전까지는 성경 없이도 그냥 착하게 살면 천국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천국 갈 자격도 안 되는 인간이고 다만 십자가에 피로서 용서 받아서 이제는 내가 아니라 예수님의 것으로 살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남한테 끌리지 말게 하시고 사는 것이 목적이 되지 말고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 자랑하는 것이 사는 이유가 되고 목적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