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2014년 4월 27일 오전 10:07

아빠와 함께 2014. 4. 27. 10:23

하나님의 사랑이 은사로 성도에게 주어지면 지금까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해 미워하기 시작한다.

주님의 사랑은 아무런 변화 없이 조용히 성도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들이닥치면 그 때부터 성도에게 있어 사랑해야 될 대상까지 고정된 사실까지 알게 된다.

그 때까지 사랑했던 것을 도리어 미워하게 되면 주님의 사랑이 작동되었다는 증거이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라도 말이다.

 

성도에게는 이제 사랑하는 대상이 있으면 안 된다. 이 세상에서 사랑해야 될 것이 없어진 것이다. 도리어 미움의 대상들이다.

 "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5-16)

자신을 향한 애착과 집착을 사랑이라 오해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형제를 사랑하는 방법은 자신을 미워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먼저 미워해야지만 그 자기 미움이, 자기 사랑으로 인해 사랑의 대상이 되었던 그 이 이웃까지 파급되어 이웃을 미워하게 된다.

그래서 진정한 '이웃 사랑'이란 자기 파멸뿐만 아니라 이웃 파멸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파멸을 통해서 이웃 사랑은 인간 세계에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확연해진다.

이 파멸의 근원지는 따로 있다. 이 근원지를 통해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그 동안의 이웃 사랑이 곧 이웃 미움이었음을 그 근원지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가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있다는 그 가능성과 의로움까지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웃을 필히 미워할 수밖에 없다는 그 인식이 이웃 사랑의 시작이다.

그 근원지는 어디일까?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일 3:12)

하나님은 성도들로 하여금 가인의 행위를 같이 미워하도록 말씀으로 요청하고 계신다. .

직접 가인의 살인행위에 참예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그 최초의 살인사건에 모든 성도를 참여시키고자 하시는 것이다.

계속해서 아벨의 의로운 죽음을 가지고 압박을 가하시는 것이다.

세상을 살인 현장화 시키는 것이다. 모든 인류를 살인자와 살해당한 자의 구조로서 엮어 놓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취지이다.

그 때 가인 시대에 있어 의로운 자는 아벨뿐이었다면 오늘날 시대의 의로운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다.

그런데 그 의로우신 예수님은 아벨과 같이 역시 죽음으로서 세상이 마감하셨다.

그렇다면 누가 가인족인가? 그것은 의롭지 않는 모든 인간들이다.

그들이 의로우냐 의롭지 않느냐 하는 판단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최종 증거물이 되어 밝혀진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동시에 십자가 죽으심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결국 사랑이란,

범죄한 우리를 향한 사랑이기에 과연 사랑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우리 범죄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와 관련된다.

달리 말해서 우리가 아벨이 아니라 가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가 관권이라는 사실이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10)

하나님은 사랑은 여기서 표가 난다.

의로운 아벨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의로운 아벨같은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도리어 희생시켜 화목제물로 삼으므로 죄 있는 가인을 의인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게 되면 필히 그 형제도 가인처럼 간주해야만 한다.

인간으로서는 그 누구도 아벨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자기 죄를 자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로 해서 나타난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자가 나타나면

그 형제는 곧 대단히 잘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고귀한 사랑 안에 거하고 휩싸여져 있는 자라는 것이다.

그러니 같은 사랑 안에서 어찌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리요!

"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14)

-수런회자료 "이웃사랑과 윤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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