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신명기(37강) 신명기16:9(절기의 연결) 20260330a (강의: 이근호 목사)
신명기 16장 9절부터 하겠습니다. AI 시대에 AI가 죽어도 못 따라오는 게 성경입니다. 죽어도 못 따라오는 게 성경인데, AI가 따라붙으려고 지금 정보를 모으고 있어요. 왜 못 따라오느냐 하면, 십자가 지식은 따라와요. ‘십자가 피 믿으면 구원받는다.’ 이런 건 다 따라와요. 그런데 십자가의 능력은 따라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단절이거든요.
십자가의 능력은 단절입니다. 어제 오후 설교에서 했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죽으리라.” 이건 출애굽기 33장에 근거합니다. “나를 본 자는 죽으리라.”
출33:20-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그래서 살아 있는 자는 주를 만나지 못한다는 뜻이에요. 정말 주님께 받아들여지는 자는 ‘일단 죽자.’입니다. ‘좀 맞자’ 하듯이 ‘일단 죽자. 이 말은 주님이 새삼스럽게 죽이는 것이 아니고, 이미 관계가 끊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방식입니다. “너는 나와 상관없어. 너는 끊어졌어.” 그 끊어짐을 확인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장에 보면, 말씀 안에 칼이 있다고 합니다.
히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칼의 용도가 뭡니까? 등짝 긁어주는 게 아니잖아요. 칼은 죽이는 용도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죽입니다. 죽일 때, ‘하나님이 참 우리 인간을 죽이다니..’ 뭐 이런 낭만적인 생각을 하시는데, 말씀이 우리를 죽일 때 우리를 뭐로 보느냐, 무엇을 겨냥해서 보느냐 하면, 괴물을 찔러 죽이죠. 괴물의 특징은 어둠에 속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란이든, 아프리카든 새롭게 복음을 받아들이는 그러한 분위기가 점점 커지는 동네의 특징이 뭐냐, 종교 제도가 없어요. 기독교 제도라는 게 거기엔 없어요, 성립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다 보자기 쓰고 다녀야 되고, 히잡 쓰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그거 벗고 기독교 사회운동 해서 예수 하나 믿고 그런 거 없어요.
특징이 뭐냐 하면, ‘내가 곧 어두움이었습니다.’라고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임하면 신자가 돼요. “내 안에 괴물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사회를 비난하고, 우리 가족을 원망하고 국가가 어떻고...이런식으로 논리적으로 따져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게 아니라, 인간은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잖아요.
그렇게 예수님을 영접하는 게 아니라, 그냥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 자체가, 십자가가 말씀의 완성이니까, 십자가로 우리를 찔러버리면, 본인 안에 누가 있었는지 몰랐다가 그제야 간파가 돼요. ‘아, 나는 껍데기고, 내 안에 괴물’ 귀신이죠, 마귀죠. ‘내 안에 귀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각당할 때, 나로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경로, 새로운 발전의 모색, 이 자체를 완전히 포기해버리는 겁니다.
그걸 ‘자기로부터 자기를 분리시킨다.’고 하는데, 여기 신명기 16장 9절을 봅시다.
신16:9-10 칠 주를 계수할찌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9)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이렇게 되어 있죠. 9절에 곡식에 낫을 대는 이 날을 초실절이라고 합니다. “절기를 지키라.” 율법은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절기라는 것은 시간 장판을 뜯어내는 것입니다. 보통 인테리어할 때 장판을 드드득 뜯어내잖아요. 장판을 뜯어낼 때, 그 때 붙어있고, 묻혀있는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인간이 이해하는 시공간이 같이 묻혀있는 거예요. 시간 속에서 나는 이런 식으로 했다. 아까 한 이야기 다시 해봅시다. 인생이란 뭐라고요? 인생이란, 지나온 길, 이게 전부예요. 인생이란 지나온 길이에요. 미래는 인생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인생이라 하는 것은 그냥 과거의 집대성일 뿐이에요.
인생이란 지나온 길이 전부니까, 100살을 살아도 결국 인생은? 미완성이죠. 그리고 지나오고 지나온 길의 마지막은 뭡니까? 죽음이죠. 그래서 이것을 공식으로 압축시키면, 인생은 뭐다? 인생은 죽음이죠. 탄생은 뭐다? 죽음의 탄생이에요. 생일 축하합니다~ 당신의 죽음을 축하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죽어있는 채로 결국은 마지막으로 죽음으로 가는 거예요.
이걸 간단하게,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무기물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주님께서는 이 절기를 통해서 시간 장판을 뜯어내는 거예요. 그러면 시간 장판에 붙어 있던 우리 인생도, 인생이라 하는 것이 시간을 배경으로 해서 인생이 있잖아요. 그런데 시간 장판 자체를 뜯어내버리면, 시간 바닥에 있는 그 원판과 분리가 되겠죠.
그 분리되는 행사, 그게 바로 절기입니다. 뜯어내는 행사. 인테리어 작업하는 거죠. 뜯어내는 행사, 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공사판. 이판사판 공사판. 공사하는 거예요. 왜 공사하는가? 하나님과의 대화 상대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 안에 있는 절기를 통해서 대화 상대자를 주께서 새로 생산해요. 이야기의 상대가 되는 대상을 새로 만든다고요. 그게 절기예요.
그렇다면, 그 말이 맞다면, 절기 안의 내용은 어떤 내용이겠습니까?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여러분들이 감안해서 생각해보세요. 그 절기 안에 어떤 행사를 벌이는데, 그 행사의 스케쥴, 프로그램이 뭐로 채워지겠어요? 나로부터 나를 분리시키는 행사죠. 하나님은 나를 받지 않고 다른 것을 받는다는 것, 나를 제치고, 나를 배제하고, 나대신 다른 것을 받는 행사가 절기입니다.
뭘 받느냐? 오늘 신명기 16장 9절에는 ‘곡물’을 받지요. 초실절이 언제인가 하면, 1월 15일부터 21일까지, 7일 동안을 무교절이라고 하고, 하루 전인 1월 14일이 유월절이에요. 초실절은 딱 하루인데, 무교절 기간 안에 들어있는 안식일을 일컬어 초실절이라고 합니다. 무교절의 특징은 역시 분리예요.
무엇을 분리하는가? 이 날은 빵에서 누룩, 이스트(yeast)는 다 떼어내라, 섞지 말라는 거예요. 빵을 말랑하고 먹기 좋게 만들 때 누룩을 집어넣잖아요. 너희들이 먹기 좋은 빵은 하나님이 안 받는다. 이유는? 너희들이 그것을 양식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나는 받지 않는다.
하여튼 하나님께서는 인간과는 대치됩니다. 인간이 옳다하는 것은 하나님은 다 싫어하시는 거예요.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사람을 좋게 하면 뭐는 아니에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갈1:10-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래서 어떤 사람이 목회를 한다, 설교를 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의 설교, 삶의 자세에서 행여나 교인들을 좋게 하거나, 사람을 좋게 하는 게 있느냐 없느냐를 살펴봐야 되죠. 사도바울이 그렇게 했으니까요. 사도 바울이 목회 몇 명 했습니까? 사도바울이 그런 데에 신경 쓰겠어요, 안 쓰겠어요? 사도바울은 전혀 신경 안 썼어요. 똥배짱이에요.
왜냐 하면, 자기는 창세 전에 이미 결정됐기 때문에, 자기에게 손해될 게 하나도 없어요. 그 말은 내가 하는 일 중에서 내가 해야 될 일은 하나도 없는 일에 종사하고 있어요, 사도바울은. 자기 것이 안 된다는 즐거움, 어떤 것도 내 소유가 안 된다는 즐거움이 있어요.
왜냐 하면, 어느 것이라도 내 소유가 된다면, 그 다음부터 내 소유의 무게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되어 버려요. ‘저 인간을 내가 책임져야 되는데..’ 갑자기 책임지는 게 중요한 것보다도 자신이 무거워 지는 거예요. “딸이 시집가는 거 보고 눈 감아야지.” 이거는 뭡니까?
딸에 대한 책임감, 그 동안 키운 보람을 내가 영광으로 얻겠다는, 그 동안 딸 잘 키웠다는 것이 들어 있으려면 그릇이 필요하잖아요. 그러면 그릇의 무게는 진공에 가깝습니까, 아니면 갑자기 무거워집니까? 무겁지요. 본인이 본인을 무겁게 만드는 거예요. 딸이 시집을 가든, 노처녀로 늙든, 갔다가 헤어지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아까 강집사님께서 아주 복음적인 이야기를 하셔서 제가 적어놨어요. 지난달에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어머님이 돌아가셨고, 동생분도 돌아가셨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옆에 계시던 분이 동생이 왜 죽었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집사님이 모르겠다고 답변했어요. ‘동생이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복음적인지요! 내 알 바 아니라는 겁니다. 주께서 죽였는데 내가 굳이 그 이유를 안다고 해서 죽은 동생을 살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사람을 부활시키는 것은 죽은 이유가 삽입된 이유를 부활시키는 거거든요, 우리를 부활시키는 게 아니고. ‘너는 죽을 수밖에 없어.’라는 이유가 담길 때, 비로소 우리는 부활의 대상 목록에 올라가는 거예요. 우리가 죽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는 증거 때문에 죽기 때문에, 그 증거를 살리기 위해서 죽은 우리를 살리신다, 이게 성령께서 일관되게 하시는 일입니다.
초실절부터 숫자를 카운트해서 49+1=50일째에 지키는 절기가 오늘 본문 10절에 나오는 ‘칠칠절’입니다. 보통 현대 달력에서는 6월에서 7월 사이에 칠칠절이 있는데, 인간의 역법으로는 정확한 날짜를 고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무튼 49+1 해서 칠칠절이 되는 거예요. 49일 다음부터 1주일 동안 지키는데, 칠칠절을 카운트하기 시작하는 날이 뭐냐? 무교절도 아니고, 유월절도 아니고, 초실절부터 카운트를 합니다.
초실절에 하는 행사는 레위기 23장 9절에서 14절에 나와요.
레23:9~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이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를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힌 사분 일을 쓸 것이며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 오는 그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찌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행사를 요약하면, 번제 플러스(+)소제 플러스(+), 그 다음에 중요한 게 나와요. ‘전제’ 이 순서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은 요제, 초실절은 보리가 처음 익을 때예요. 맥추절은 밀을 추수하는 때고, 초실절은 보리를 추수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름을 맥추라고 해서 보리 맥(麥)자를 쓰니까 보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은 밀입니다.
요제라 하는 것은 이삭을 흔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가 주인공이냐 하면, 첫 보리가 주인공이고, 흔들어야 한다는 말씀에 의해서 첫 이삭이 흔들어지는 거기에 매달려서 보조적으로 흔드는 자가 누구냐 하면,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에요. 인간이 주체에서 배제되고, 분리되는 거예요.
‘내가 드리겠습니다.’에서 배제되면서 말씀이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은 시키는 대로 따르는 수동적 존재, 그 관계가 율법과 이스라엘의 관계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이미 이스라엘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래요. 이스라엘 자체가 애굽에서 나올 때 대신 흘리는 피가 없으면 애굽에서 나올 수 없는 대상들이에요.
그러니까 그들이 애굽에서 나오면서 장판 밑에 그들이 생각하는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뜯어내면 그 아래 뭐가 깔려있어야 돼요? 유월절의 피가 깔려있어야 돼요. 그 피는 인간의 피가 아닙니다. 인간의 피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이러한 초실절의 제사에서는 인간 대신 번제, 짐승의 피가 들어가고요.
그 다음에, 소제는 고운 가루에요. 그냥 완전히 갈아버려요. 갈게 되면 주체가, 실체가 없어져요, 가루가 되니까. 따로 입자가 되지 못하도록, 입자 행세를 하지 못하도록, 입자의 의미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모든 의미 있는 것을 갈아서 뭐로 만듭니까? 무의미로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을 대신하는 제물과 이런 식물성 가루 같은 것은 오실 메시아의 요소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고, 현재 그 율법의 지시를 받는 인간을 대표하는 이스라엘, 인간이라는 것도, 그 요소도 제물 안에 들어 있어서, 제물을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서 어떻게 그 제물이 하나님 앞에 다루어져서 살아있는 제물이 피를 흘리고 죽고, 연기가 되고 하나님은 그것을 기쁘게 받으신다는 그 절차가 뭐냐 하면, 괴물 들어있는 인간을 하나님의 천국에서 주님의 대화 상대로, 백성으로 만드는, 전환되는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전제가 있어요. 전제에 대해서 신약성경에 보면, 사도바울이 잘 표현한 게 있어요. 디모데후서 4장 6절 누가 읽어보세요.
딤후 4: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6) 내가 선한 싸움을 사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7)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8)
소제 다음에 전제거든요. 번제, 소제 안 드리면 전제를 못해요. 순서를 맞춰서 해야 됩니다. 소제는 완전히 가루가 되죠, 실체가 없고. 사도바울은 갈릴대로 다 갈렸다, 이 말입니다. 갈리고 마지막 남은 것은 액체를 부어요. 주로 포도주를 부어요.
내가 하나님이 설정해 놓은 괴물의 존재에서 하나님의 대화 상대자,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양자가 돼요. 성령을 입어서 하나님의 양자가 됩니다. 천국의 백성이 되는 그 순서에 본인이 끌려들어갔다, 말려들어갔다는 것을 ‘나는 이렇게 했다.’가 아니라, 옛날 이스라엘 율법의 틀에 맞추어서 나는 여기에 해당된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내가 해야 될 것은 전제에 해당된다, 왜냐 하면, 예수님 오심으로 마지막 제사는 마감이 되었기 때문에. 마감이 되거든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제사 쪽으로 이야기한다면, 초실절 내부에서 시작해서 내부로 끝나버려요. 누가 고린도전서 15장 20절 읽어보세요.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첫 열매죠? 초실, 첫 열매. 사도 바울은 제사로써 예수님의 전체를 다 설명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다른 분이 빌립보서 2장 17절 읽어주세요.
빌2:17-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관제는 전제와 같은 뜻이에요. 지금 자기가 어디에 끼어들었다는 겁니까? 하나님의 메커니즘에, 천국 백성 만드는 메커니즘에 자기가 끼어들었으니까 여러분들도 성령 받았으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나는 이렇게 했다.’고 설명하지 말고, 말씀이 이렇게 되어 있다고 표현해줘야 이 율법의 말씀을 누가 이루었다? 이미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예수의 증인 노릇하는 것이 성령이 임한 이유가 되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구약을 다시 바라보게 되면, 그 동안 풀리지 않던 구약이 다 풀리는 겁니다. 그러면 이 초실절 안에 번제 소제 전제와 같은 이러한 행사가,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작업을 연이은 절기, 아까 이야기한 칠칠절이죠. 초실절은 첫 번째 실과, 열매잖아요. 첫 번째, 열매, 이삭을 할 때, 이삭의 토대는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피에서 나왔어요.
이 피를 유월절, 어린 양이 죽는 유월절, 그 다음부터 무교절이 되면서 무교절이라는 것은 인간을 배제하고, 인간이 원했던 기존에 알고 있던 인간의 의미는 무의미로 바꾸고, 무교절, 누룩을 빼니까, 누룩이라는 것은 인간이 그 동안 알았던 모든 죄에 대해서 누룩이라고 표현해요. 누룩, 죄를, 인간 자체를 배제하고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나가는데, 피에서 이삭이 돋았다는 거예요.
유월절 어린 양의 의미로 그냥 땅을 덮어버리면, 이게 무슨 땅이냐 하면, 약속의 땅이 돼요. 약속의 땅에서 나오는 어떤 이삭이든지 그것은 유월절의 의미를 품은 열매로서 이삭이 나온다는 거예요. 이것이 초실절이라면, 그 다음 절기들은 뭡니까? 초실절의 취지가 확대되겠죠. 어디까지 확대되는가? 이스라엘 역사를 만들고, 인류의 역사를 결정지어 버려요. 제사가.
그러면, 처음에 무교절까지 합쳐서 1월이니까 큰 뭉치로 뭉쳐서 유월절이라고 하고,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은 맥추절이에요. 이게 칠칠절인데, 이게 또 오순절이에요.
정리하면,
크게 봐서 첫 번째 절기가 유월절,
두 번째가 맥추절 또는 칠칠절 또는 오순절,
세 번째가 바로 초막절, 다른 말로 하면 수장절, 최종적으로 다 추수가 되는 수장절.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빵 사러 갔을 때, 예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추수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님께 들은 말씀은 ‘나는 양식을 이미 먹었다.’는 것이었죠.(요4:32) 그러니 제자들은 누가 빵을 드렸는가 했는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되었다.”(요4:35)
요4:32~35-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 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바로 사마리아 여인을 건지는 것이 주님의 수장절의 의미예요. 초막절의 의미는 뭐냐 하면, 임마누엘이에요. 마태복음 1장에 나오죠.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있을 것이다. 영원한 영생의 나라로 데려갈 대화 상대를 생산해내는 일을 내가 기어이 마무리한다. 이것은 하나의 현상이거든요, 현상. 절기는 뭐냐, 절기란, 하나님의 지상적인 표현법입니다. 하나님의 내막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절기가 주어진 겁니다.
수장절=추수하는 것, 초막절=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있는 것,(수장절=초막절) 어디에서 함께 있다? 땅에서 분리되어 있는 거예요, 땅에 정착해 있는 게 아니고 분리되어 있는 거예요. 분리되어 있으려면 광야 생활이죠. 광야 생활에 필요한 것은 전원주택입니까, 아니면 텐트입니까? 텐트죠. 그 텐트가 초막 아닙니까?
초막의 특징은 이동용이라는 거죠.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 이동하는 거죠. 어디서? 땅에서부터 하늘로, 하나님께로 이동하는 것. 인간은 이동하지 못하죠. 인간은 기존의 시공간이 있기 때문에. 이동해 봐야 시공간에 갇혀있기 때문에 이동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런데 그 시공간이라는 장판을 뜯어내는 거예요.
어디까지 뜯어내느냐? 온전한 피가 나올 때까지. 뜯어낼 때 인간과 같이 붙어서 같이 뜯기는 대상이 뭐냐? 양, 염소, 그리고 고운 가루, 또는 비둘기, 수소 또는 암소. 이게 전부 다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고, 장차 올 인간 따라 오실 메시야, 하나님 자신의 요소가 같이 중첩되어서 있는 인간을 대신하는 그러한 짐승 플러스 곡물, 그러니까 식물, 동물은 되지만 뭐는 안 받는다? 여기서 인간은 안 받습니다.
인간 속에 뭐가 들어있기 때문에? 괴물이 있기 때문에. 괴물이 있기 때문에 인간하고 상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교회인지, 어머니교회인지에서 유월절을 지켜야 된다고 하잖아요. 하나님이 인간을 죽이는 것은 살아있는 것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벌써 죽어있다는 것을 대체물들을 통해서 언급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너 안 받는다. 나는 양 받고, 염소 받고, 소 받지..” 대제사장도 안 받아요. 안 받기 때문에 대제사장의 오른 귓부리, 오른 손가락, 오른 발가락에 뭘 발라요? 피를 발라버려요. 피와 기름을 발라버린다고요. 네 자격으로는 나와 대화 상대가 안 된다. 말씀을 줘도 말씀을 못 알아들어요. 이미 다른 신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십계명 제 1계명이 뭡니까?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인간들은 이미 다른 신을 유통하고 있다는 것을 주께서 이미 전제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신을 섬기고 있다는 것,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너희들이 알고 있는 그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을 섬기라는 거예요. 섬기는 방법은 인간을 대체해서 이런 짐승이나 곡물을 제공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계속 절기에 대해 해 봅시다. 유월절 피에 의해서 이삭이 있잖아요. 그러면 이 피를 머금은 이삭이 계속 49일 동안 자라고 나중에 초막절까지 계속 이어지겠죠. 그런데 49일 다음에 오순절이 있죠. 오순절은 드디어 시공간이라는 장판이 다 뜯어졌단 말이죠.
이 시공간이 왜 문제가 되는가? 시공간 자체가 인간들이 있기 때문에, 인간들은 하나님이 위에 있다고 보는 거예요. 시공간이라는 장판 자체가 위에 하나님이 있고, 우리는 땅에 있다고 보는 겁니다.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이 그래요. 땅 아래에 음부 있고, 그 위에 땅 있고, 땅 위에 하나님 계시다고 본 겁니다.
그런데 이 자체가 뜯겨져 나가는 거예요, 자체가 뜯겨져 나가면 뭐도 같이 뜯겨져 나가요? ‘밑에 음부 있고, 위에 하나님 계시고, 나는 땅에 있다.’는 자체가 폐기처분 당하죠. 그걸 폐기처분하는 기능이 뭐냐 하면, 오순절날 왔던 성령입니다. 사도행전 2장의.
성령이 오게 되면 기존에 인간들이 이해했던 시공간 자체가 의미가 없어져요. 왜냐, 인간 자체가 의미가 없으니까. 헌금 반 하고 죽은 부부 있죠?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이상한 일이 벌어져요. 자기 재산을 사도의 발 앞에 두면서 내 것을 내 것이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주 특이한 현상이에요. 내 것을 내 것이라 하지 않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과 다 같이 나누었다는 거예요.
여기서 질문 나갑니다. 거기 가난한 사람들이 착한 사람들입니까? 아니죠. 거기 공짜 생겼다고 오픈런 한 사람들이에요. 교회에서 공짜로 뭐 준다하니까 아침 9시 오픈 전에 미리 줄 서 있던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은 내는 사람이 중요하지, 얻어먹는 사람은 구원과 아무 상관없어요.
왜냐 하면, 다시 한 번 자기를 주체화시키고, 내 소유가 있어야 내가 산다는 기존의 시공간의 원리를 여전히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령 받은 거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예요. 그냥 세상적으로 성령의 혜택을 입을 뿐이지, 구원받는 사람은 아니에요.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그걸 내놓으나 안내놓으나 관계없이 이것은 누가 하셨다? 성령이 그렇게 하셨다.
왜냐 하면, 장판이 뜯겨져나갈 때 누구도 뜯겨져나간다? 자기가 뜯겨져 나가요. 그러면 본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슨 효과? 십자가의 피가 만들어낸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사실, 그 효과가 내 것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게 만든 거예요. 그러면 그 오순절이 마지막인가? 마지막은 초막절이 마지막이죠. 초막절이 어떻게 마지막이 되는지를 요한복음 7장을 봅시다. 요한복음 7장 37절, 명절 끝 날, 곧 큰 날은 초막절이죠. 그 전의 명절은 큰 날 아니죠.
요7:37~39 -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이 절기가 뭐냐 하면, 7장 2절에 보면,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라고 되어 있죠. 유월절의 피, 낯선 피입니다. 피는 시공간을 뜯어내니까 거기에 생명이 있어요. 그게 어디에 나오는가? 레위기 17장 11절에 나옵니다.
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피가 죄를 속한다.’ 용서한다는 뜻이거든요. 피에 뭐가 있다? 생명이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영생이라는 것은, 율법대로 찾아온 낯선 인물의 피가 생명을 주거든요. 그럼 여기에서 누가 방해가 되겠습니까? 인간은 안에 괴물이 있으니까, 인간이 다루는 피가 자기 속의 피, 짐승의 피가 낯선 인물, 예수님의 피를 방해하겠죠.
그래서 17장에 보면, 짐승을 잡을 때, 성전에 와서 잡고, 피는 먹지 말라고 했단 말이죠.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지금 인간 속에는 생명이 있단 말입니까, 없단 말입니까? 없다는 말이죠. 인간 속에는 생명이 없어요. 인간 쪽에서 드리는 제사가 인간을 구원하지를 못해요. 피 자체에서 나오는 능력이 파급되어야 생명이 주어지는 것이지, 인간이 제사 드리고 절기 지킨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고 생명을 얻는 게 아니란 말이죠.
그래서 절기라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바로 인간이 아는 이 시공간을 뜯어내게 되면 그 바닥에 그동안 인간 세계에서 감추어져있고, 덮여있던 그것이 뜯겨져 나가면, 거기에 생명이 있는 거예요. 제가 질문을 하나 할테니까 여러분들이 답변을 해보세요. 다니엘 6장에 나오는 질문인데요. 6장 16절에서 왕이 명해서 다니엘을 사자 굴에 넣었거든요. 다니엘 6장 17절
단6:17-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인을 쳐서 봉해서 법 실행에 변경이 없도록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새벽에 가보니까 다니엘이 살아 있잖아요. 질문합니다. 다리오 왕이 잔인합니까, 다니엘이 잔인합니까? 누가 잔인해요? 지금 다니엘이 어느 정도로 잔인하냐 하면, 다리오 왕이 자기를 사자 굴에 넣을 때 그냥 집어넣은 게 아니고 봉인을 하게 했어요. 이것은 절대로 누구든지 구하지 못하도록 청저하게 막아놨잖아요.
그런데 다니엘이 살아났잖아요. 그러면 다리오 왕이 우습게 되었죠. 다짐에 다짐을 했는데, 그 철조망을 타고 넘어왔단 말이죠. 이게 오한계시록에 보면 나와요. 일곱 가지 봉인을 해놨잖아요. 봉인을 했다는 말은 예수님 빼고 누구도 이 봉인을 철회하고 무효로 돌릴 수 있는 위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정된 사태에서 주께서 부활해버렸다는 거예요.
누가 잔인합니까? 예수님을 죽인 자가 잔인해요? 아니면, 주님이 그 잔인을 제대로 영원까지 지옥까지 영원까지 그걸 지적해주기 위해서 지옥을 만든 하나님이 잔인합니까? 주님이 더 잔인하죠. 이거는 잔인 정도가 아니고, ‘좐인’, 성도는 아주 독하게 잔인한 사람들이에요.
어떻게 구원됐는지 설명은 안 되는데, 이미 세상의 모든 혈육과 모든 종교와 제도의 봉인을 타 넘어버렸으니까. 누구냐 너? 너 뭐야? 설명을 해봐! 하지만, 설명이 안 되죠.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설명이나 설득이 아니고 성령의 나타남이라고 고린도전서 2장 4절에서 이야기했죠.
고전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성도와 하여튼 하나님 쪽에 속한 사람, 주님 쪽에 속한 사람은 다 잔인해요.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고 사람의 가치를 철저하게 짓밟는데 아주 능통한 자들이에요. 누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요. 어제도 어떤 목사님의 예를 들었잖아요. “나, 가짜 목사입니다. 그리고 진짜 복음 안다 하는 사람들 다 가짜입니다.”
거기서 제가 궁금했던 것은, 그 설교를 듣고 있는 교인들은 뭐 어쩌란 말이죠? 목사 본인은 가짜라는데, 그러면 진짜는 어디 있는데요? “구원은 주님이 하십니다.” 그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기 위해서 나올 이유가 없어요.
여기서 절기는 1년마다 반복되잖아요. 왜 반복되는가 하면, 제가 어릴 때 문방구에서 이런 걸 본 적이 있어요. ‘매직 메모지’ 다른 말로 ‘무한 메모지’라는 게 있었어요. 뭔가 하면, 밑에 보드에 왁스를 발라놓고 위에는 얇은 종이를 덮고 글씨를 쓴 다음에 지울 때는 장판 들 듯이 들면 지워지는 거예요.
‘내 인생은 이렇게 했습니다.’ 했는데 장판 들어버리면, 장판 들리면서 그 안에 십자가의 피의 능력이 고스란히 그냥 드러나는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떻게 돼요? ‘매직’이라는 게 뭡니까? 말할 수 없는 기적이죠. 이미 기적에 종속된 자가 누구다? 이게 성도고, 진짜 이스라엘이고, 주께서는 이 이스라엘을 반복해서 절기를 통해서 계속해서 시공간이 뜯겨져 나가면서 새롭게 새롭게 주의 피의 능력을 보게 하는 거예요.
여기 여성용 파우치가 하나 있죠. 제가 강의 전에 강의 시간에 예로 좀 쓰겠다고 했더니 주인 되신 집사님께서 저의 취지를 모르고 파우치에 연결되어 있는 인형을 분리시키려고 했어요.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주님 안에 종속되어 있다는, 아무리 손으로 쳐도 매달려 있어서 도망갈 수가 없어요.
인형 이쁘죠? 이쁘고 안 이쁘고가 중요한 게 아니고, 끈이 중요한 거예요.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나이다. 시집을 가든, 노처녀로 늙든 관계없어요. 중요한 것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런 관계는 신약에 와서 이 절기의 취지를 오롯이 다 완성하신 분이 자신의 영을 우리에게, 초막절에 성령을 부어주듯이 한없이 부어주는 거예요.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 여인 자체를 하나의 우물로 사용하듯이요. 사마리아 여인 자체가 갑자기 동네 사람들 보기에는 하나의 매직 메모지가 되는 거죠. 물 길러 왔다가 아주 돌아버렸어요. 물 길러 왔으면 물을 길러야지 왜 양동이를 버리고 갑니까? 나중에 양동이 찾아갔지 싶어요. 지금 정신이 없어요. 예수를 믿는 것도 좋지만, 물 길러 갔으면 물을 길러야지, 얼마나 놀랐으면 양동이를 버려두고 메시아 만났다고 외쳐버렸단 말이죠.
다시 정리하면, 절기라는 것은, 시공간에 묻혀있던 모든 것은 무효가 되죠. 절기에 있었던 율법의 취지가 마치 연못, 연못이 있다고 치고요, 아주 큰 연못에 돌 던지면 어떻게 됩니까? 퐁당 하고 잠시 흔적 있다가 사라지죠. 흔적이 아예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같은 데에서 뭐라고 하냐 하면, 우리 자체를 죄로 간주해서 죄를 바다에 빠뜨려버리면 남는 것은 우리 죄가 빠졌다는 그 연못, 그 바다만 부각이 되겠죠.
시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미 7:19-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어제 낮 설교 끝에 그런 이야기 했죠? ‘내가 누구입니까, 나는 어떤 존재입니까? 당신은 나를 어떻게 봐요? 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이렇게 묻지 말고 내가 어느 공간에, 어디에 소속이 되어 있는가? 그것을 남에게 전하라는 거예요. ‘네가 단독적으로 잘했느냐, 못했느냐’가 아니고요. 자꾸만 소총을 소총으로 상대하지 말고, 대포로 상대해야 돼요.
다시 정리하면, 절기라는 것은 하나님의 표현법인데, 그 표현법이 상당히 살벌하다는 것, 피가 튀기고, 기름 나오고, 제물 죽고, 곡식은 아주 가루가 되고, 아주 살벌한 표현법, 그 이유가 뭐냐? 바로 시공간에 붙어서 자기 인생을 내 인생으로 ‘나’라는 신체에 담으려고, 소유하려고 하는 그 자체를 뜯어내는 그 작업이 굉장히 살벌하죠.
첫째 시간에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피에서 나온 것이 뭐였다? 이삭이었다. 하나의 곡식, 첫 열매다. 첫 열매의 특징은 7 곱하기 7이니까 플러스 1까지 하니까, 완성된 수를 묶어야 거기에서 비로소 천국에서 필요한 새로운 피조물이 탄생된다.
그러니까 이러한 절기의 모판, 바탕은 유월절의 피로서 이미 갖추어져 있는 거예요. 유월절 취지의 반복이 절기로 확대되고, 그것이 인류의 모든 역사에 하나의 원칙, 또는 청사진이 되고, 설계도가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10분 쉽시다.
절기 이름
시기 (유대력 기준)
핵심 내용
의미
1.유월절
1월 14일
어린 양의 피
🔴 모든 것의 출발점→ 인간 대신 “피”가 기준→ 인간은 배제되고 대체물로 시작
2.무교절
1월 15~21일 (7일)
누룩 없는 빵
⚔ 인간의 기존 의미 제거→ 누룩 = 죄, 인간 중심성 제거→ 하나님 기준만 남김
3.초실절
무교절 기간 중 안식일 다음 날
첫 이삭(보리) 드림
🌾 “피에서 나온 첫 열매”→ 인간이 아니라 열매가 중심→ 인간은 수동적 존재
4.칠칠절 (맥추절,오순절)
초실절부터 50일째
수확 감사, 제사
🔥 시공간 ‘장판’ 제거→ 성령 임재 (사도행전 2장)→ “내 것” 개념 붕괴
5.초막절 (수장절)
7월 15일 ~ 22일 (7일+1일)
초막 생활, 최종 추수
🌊 최종 완성→ 하나님과 함께 거함 (임마누엘)→ 땅(시공간)에서 분리된 존재
---정리된 표로 보시려면 첨부파일을 확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