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이란 무슨 뚯이냐 하면 모든 원인을 제거하는거 거든요. 어떤 폭파에 의해서 오래된 건물이 무너집니다. 벌써 단추는 눌러졌고 다이나마이트는 터졌고 15층 옛날 아파트가 무너집니다. 무너지면서 한 2초내지 3초내에 완전히 바닥에 큰 먼지를 일으키면서 바닥에 흙만 남죠. 그 사이, 이미 무너졌고 무너지는 그 과정 속에서 나중에 2초 뒤에 보면 건물이 완전히 형체도 없이 사라지겠죠. 처음에 단추를 눌러서 파괴시킨 그 시점이 벌써 종말입니다. 그 과정이 오늘날 눈에 보이는 우리고. 좀 지나면 이 세상 흔적도 없이 사라져요. 그걸, 이미 단추를 눌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세상은 이미 무너지는 정도가 아니고 이미 무너졌어요. 짧은 순간에 이미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걸 이야기 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믿을 놈 아무도 없다. 왜 다같이 무너지면 되니까. 그 무너지고 있는 과정 속에서 그것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의 특징이 뭐냐하면 무너지고 있더라도 그 사람 속에는 이미 무너졌음. “이미 무너졌음.” 이렇게 확정지을 수 있습니다. 사울은 사울의 길을 가고. 다윗은 다윗의 길을 가고. 성도는 성도의 길을 가고. 성도 아닌 사람은 지옥으로 가고. 그것을 아주 대범하게, 담대하게 대통령 앞에서도, 그 누구 앞에서도 담대하게 언급을 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이미 종말에 속한 사람이예요.
우리는 구약 성도와 마찬가지로 괜찮은, 건전한 내 마음에 맞는 진짜 희생적이고 괜찮은 목자를 찾아 다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께서 심어 놓은 가짜 목자인 것을 스가랴에 근거해서 우리는 인정을 하고 진짜 목자는 죽음, 바로 너같은 인간을 위해 죽었다는 십자가 지신 예수님 이외는 어떤 목자도 없음을 알아야합니다. 이거는 사도 바울에게도 베드로에게도 요한에게도 똑같이 마찬가지로 적용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갈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예요. 지금 천국에 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우리도 인생, 그저 내 성질대로, 성깔대로 그냥 헤맵니다.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뭘 해도 자꾸 원인을 만들기 때문에 옳은 길이 아니예요. 그래도 괜찮아요. ”옳지 않은 길이지만 주께서 쓰시고. 주께서 이미 다 이루었고. 지금 세상은, 너가 기대하는 세상은 이미 폭파되어서 무너져 내려가는 종말”인 것을 아신다면 여러분 조금 믿다가 보증서다가 후딱 발 뺄 거예요. 보증서가지고 집 날렸다 하지 마시고. 세상은 이렇게 항상 그리스도만 증거하라고 우리로 하여금 어떤 실패와 실수의 연속으로 이끌고 계시는 겁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실패, 실수 속에서 성령님이 함께 있음을 크게 직감하게 되고 고마워 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만나고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이 어느새 나의 별자리가 되고 말았고 이래서 나는 위대하고 이래서 나는 대단하고 이런 나는 훌륭하다는 자기 변명조로 남한테 자랑질을 하는 근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주여, 이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그것이 다 부질없는 나의 별자리인 것을, 버려야 될 것임을 아무것도 우리 구원에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날마다 깨우쳐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스가랴 ”우매한 목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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