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4/27-왜 기쁜 소식?

아빠와 함께 2025. 4. 28. 17:32

구약이란 그 이스라엘의 국가 중심으로 계시가 짜여지게 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예언대로 망했습니다. 우리 인간들 생각에는, ‘망하기 전에 정신차리고 미리 알아서 잘하지 …’라는 조언을 하고 싶지만 이스라엘이 안 망하는 것이 계시의 취지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파멸과 멸망은 이미 이스라엘의 경우를 근거로 다 정해져 있습니다.

알아서 잘 할 위인이 이 세상에 없다는 말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계시 전달을 통해서 인간의 속의 심정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반발적이냐를 오늘날 우리도 같이 체험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 잘 해보자고 해도 하나님의 뜻에 의하면 우리 안에서 강력한 반발이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이 멸망의 예언을 자기 몸으로 받습니다. 따라서 신약에 들어와서 말씀을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것은 곧 이미 나 자신이 망해있고 망할 만큼 충분히 하나님에게 반발하는 심정으로 무장되어 있음을 성경을 대한다는 점을 인정부터 해야 합니다. 우리가 여호야김왕의 재탕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심정을 잘 이해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모든 말씀은 신약에 나타나신 예수님에 의해서 이미 다 지켰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새삼 지킬 성경 말씀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약은 이것을 ‘기쁜 소식’이라고 말합니다. 왜 이게 기쁜 소식이 되느냐 하며는 우리 개인이나 인간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가볍고 기쁜 소식입니다. ‘나 자신의 망했음’의 입장에서 예수님 안으로 이미 들어가게 되면 어느 것 하나 기쁘지 않는 말씀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구절입니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