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3:5에 보면,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를 검토하고, 자신을 증명하세요. 너희가 너희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라, 너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계시며, 오직 너희가 책망받는 자들뿐이니?(papago번역)-너희가 배덕자가 아니라면?
5. Examine yourselves, whether ye be in the faith; prove your own selves. Know ye not your own selves, how that Jesus Christ is in you, except ye be reprobates?(KJV)
5. Examine yourselves to see whether you are in the faith; test yourselves. Do you not realize that Christ Jesus is in you -- unless, of course, you fail the test?(NIV)
5. Test yourselves [to see] if you are in the faith; examine yourselves! Or do you not recognize this about yourselves, that Jesus Christ is in you-- unless indeed you fail the test?(NASB)
악마의 사주를 받아 인간은 ‘자기 이전’으로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최종적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런 악마가 통치하는 공간 안에서 예수님은 성령에 의해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 시험의 취지는 이러합니다. “내가 나를 의식하기 이전에 선택되었기에 그 선택에 준해서 나를 새롭게 의식하고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사험에서 서로 다른 두 개념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십니다. 하나는 ‘유혹’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점검’을 뜻합니다. 과연 주님으로부터 시작한 일이 어떻게 중도로 내 문제로 돌아오는지 여부‘를 점검하는 겁니다.
점검은 이미 구원된 상태에서만 성립하는 겁니다. 마치 도저히 제 실력으로 대기업에 들어올 수 없는 신입사원에 대해서 주위 사람들의 말이 많아서 그는 단호하게 알려줍니다. “사실은 우리 회사 회장님께서 일방적으로 나를 뽑아주셨다”고 말입니다. 이게 이미 입사된 사원이 해야될 일입니다.
㉮구원받은 자가 해야 될 일은, ‘나는 저주받아 마땅한 자’라는 점을 실습, 실습을 통해서 계속 받아들이는 겁니다.
㉯예수님처럼 말씀과 성령께서 이 일을 하게 하십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의 불신앙성을 드러내면서 주님께 감사하는 자가 이미 천국에 합격한 성도가 평생 해야 될 일입니다.
㉱말씀 회사 직원들이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회장님께서 지금도 열성적으로 분류작업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전의 예정하심과 부르심이 지속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자신을 시험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았기에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이 일에 대해서 예수님의 능력과 어떤 연관성을 지니는지를 보여주어야 하는 겁니다. 예를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리실 때,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마 27:52-53)
성경에 보면, 성도는 이마에 주님의 이름이 박혀있는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계 22:4) 성도는 자기가 자기를 호출하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호출하면서 ‘말씀 회사’가 운영되는 겁니다. 이들의 구원 권능은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몸을 장악했던 모든 윤리/도덕 체계 자체가 성령으로 인해 뜯겨지는 권능입니다.
“삼손이 밤중까지 누웠다가 그 밤중에 일어나 성문짝들과 두 설주와 빗장을 빼어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니라” 자신을 매복해서 체포하기 위한 성문 자체가 삼손이 다 뜯어버리는 겁니다. 이와같은 권능이 ‘말씀 회사’ 안을 덮칩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십자가 권능이 임하는 것은 우리는 남의 인생을 통해서 인간의 죄사함은 결코 인간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비난하는 자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셨습니다. “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마 9:4-5)
예수님의 말씀의 권능으로 인해 성도는 비로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긍휼이나 죄사함을 요구할 자격이 없는 자였습니다”고 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바늘구멍보다 좁디좁은 구원의 일을 늘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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