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3강-YouTube강의(여행 사도행전 16:6)20230905-이 근호 목사
제443강, ‘여행’. 사람들에게 있어 여행이란 자기의 견문을 넓히기 위한 어떤 희망사항 같은 겁니다. 사람이 한 자리에서 또는 한 집에서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게 되면 답답함을 느끼게 돼요. 왜냐하면 만나는 사람, 보는 풍경, 오가는 길의 모든 모습들이 식상하게 됩니다. 지루해져요. 참신함이 없고. 안일에 빠질 것 같은 느낌이 들죠.
그래서 인간들은 근본적으로 변화를 원하는데 나쁘게 되는 변화 말고 좋게 되고 새롭게 되는 변화를 인간은 찾게 됩니다. 인간의 기본 욕망이 그래요.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해서 매료되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인간은 그렇지만 이 세상 전체가 매혹덩어리에요. 나의 욕망, 나의 욕구를 자극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속마음은 이래요. 소원이 뭐냐? 옛날에는 대통령, 국회의원, 의사, 판사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좀 세련된 애들은 ‘소원이 뭐냐?’ 하면 ‘원 없이 세계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뭐 마음먹으면 달까지 여행하고 화성까지라도 여행하고 싶다.’ 라고 자기 포부를 이야기해요.
그러면 자기 인생의 목적이 얼추 성립됐죠. 목표가 설정되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자기 하는 일에 의미가 주어집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내가 이 일을 힘들어도 하는 이유는 돈 많이 벌어서 세계 여행을 하고 싶어서라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왜 하느냐 하면 어릴 때 책들을 많이 보잖아요. 그런 책들 보면 신기한 나라, 온갖 나라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갑자기 신밧드 모험가가 되고 싶은 겁니다. 그게 어린아이한테는 새로운 매료덩어리, 매혹덩어리에요. 매혹.
연세가 많은 사람들에게 ‘어머니, 이번에 구순이니까, 넉넉하게 잡읍시다, 구순이니까 비행기 타고 제주도 여행 한번 시켜드릴게요.’ 하면 좋아합니까, 아니면 말립니까? 말리죠. 안 가려하죠. 왜냐하면 여행의 필수조건이 자기 몸 하나는 자기가 건사해야 된다는 조건인데 연세 많은 사람은 자기 몸이 건사가 안돼요.
그러니까 어린아이들이 이다음에 돈을 많이 벌어서 해외여행 간다는 것은 무엇을 감안하지 않았어요? 자기 몸이 튼튼하다는 바탕을 당연한 걸로 깔고 여행 간다 하죠. 자, 그러면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다 합시다. 다니게 되게 되면 영화로 보든지 동영상 보는 것 말고 실감나겠죠. 그 현지에서 생활하니까.
그렇게 되면 새로움이 있어요. 그 새로움의 좋은 점이 뭐냐 하면 시간가는 줄 몰라요. ‘어? 시간이 벌써 이만큼 됐어?’ 후딱 가버리죠. 그걸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여행 말고 늘 왔다갔다 하는 출퇴근 시간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거예요, 지겨운 거예요? 지겹죠. 왜 지겹냐 하면 예상이 되기 때문에. 가게 되면 또 버스 타면 누구 만나야 될 거고 직장 가면 누구 만날 거고… 아 지겹네. 지겨우면 탈출하고 싶어요, 우리 몸이.
한번 정리해봅시다. 인간은 어릴 때부터 새로움이 있어야 기쁘다. 그 새로움은 어디서 얻는다? 전에 봐놨던 세계 여행, 세계 곳곳을 여행 다니면서 자기 활기, 자기 활력소를 얻으려 하는 겁니다. 사는데 신나게 살고 싶은 거예요. 그러려면 뭐가 필요합니까? 돈이 필요하겠죠. 돈도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안 아파야 되겠죠. 그럼 돈 없는 사람은 해외여행 접어야 되겠죠.
그러면 성령 받은 사도들은 여행을 그런 식으로 했습니까? 자기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 어릴 때 신비로움과 신선함, 인생을 즐겁게 사는 그것 때문에 여행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이렇게 되어 있죠.
사도 바울은 어디로 여행하는가? 천국으로 여행합니다. 천국으로. 천국은 죽어서 가는 데가 아니냐? 아닙니다. 천국은 죽어서도 못가요. 이걸 분명히 아셔야 됩니다. 예수 믿었다. 죽으면 믿었으니까 하나님께서 천국 넣어주겠지? 아닙니다. 천국은 내가 예수 믿는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천국은 살아있을 동안에 죽기 전에 성령께서 인도를 해줘야 돼요. 성령께서. 성령은 나 말고 다른 분이에요.
아까 제가 길게 이야기한 여행의 즐거움, 뭡니까? 누가 결정한 거예요? 누가 계획한 거예요? 누가 준비한 겁니까? 누구 포부에요? 나죠. 그래서 돈 없으면 여행 접죠. 몸 약하면, 몸 약한 노인네들 제주도 여행가도 접죠. 왜? 뭐를 고려하기 때문에? 젊어서는 다니겠지만 늙어서는 여행 못가겠죠. 어쨌든 여행을 가나 못 가나 모든 조건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한테 조건이 있어야 되죠.
그러나 천국은 그렇게 가는 게 아니에요. 성령께서 인도합니다. 사도 바울로 하여금 지금 죽어서 천국가기 전에 성령께서 먼저 들를 곳이 있는데 그게 바로 마게도냐라는 거예요. 그 전까지는 지금의 터키, 아시아라 했거든요, 지금 같으면 터키, 튀르키예라 하죠, 그 동네를 다니다가 이제는 마게도냐 다니고 로마 가서 그다음은 드디어 영원한 예수님의 품, 천국에 가는 거예요.
사전에 사도 바울이 천국 가기위해 준비할 필요가 없어요. 천국 가는 준비를 내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준비해도 안 넣어줍니다. 갈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천국을 만드신 분이 예수님이에요. 그러면 천국 가려면 그 예수님의 영이 임해야 천국에 갑니다. 성령이 임한 결과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에요. 그걸 은사, 영원한 은사라 하는 겁니다.
그럼 정말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 계획, 자기 포부를 내놓겠습니까, 아니면 성령의 계획을 내놓겠습니까? 성령의 계획이겠죠. 그럼 성령의 계획은 우리하고 사전에 의논한 적이 있다, 없다? 없죠.
그렇다면 지금껏 주께서 주의 뜻대로 인도했던 것처럼 오늘도 내일도 주의 뜻대로 인도하게 되면, 그것이 내 뜻대로 안된다고 짜증을 낼 일이 아니고 ‘아, 이 골목 가서 이 코스로 가서 이렇게 해서 주께서는 천국으로 데려가려고 성령께서 매일같이 인도하시는구나.’ 그게 매일 삶의 고백으로서 나오면 그게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그냥 천국 가려고 했는데 한 달 전에 우리 어머니 돌아가셔서 장례 치르고. 그럼 내가 장례 치르고 하는 것도 천국 가는 코스에요. 하늘에서 주께서 성령께서 그렇게 그 사태를 사건을 유발했으니까요.
그냥 다 놔두고 천국가고 싶은데 둘째 또 아프네. 애들이 또 백두산 수학여행 간다하네. 그럼 또 돈 벌어야죠. 돈 버는 코스는 누가 정한 거예요? 성령께서 하신 거예요. 그게 고백이에요. 나 뭐했어? 성령께서 돈 벌라 했어. 왜? 뭐 지금껏 성령께서 인도했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인도해.
가기 전에 이것저것 구경하고. 그게 바로 주님의 계획 안에 있는 오늘날 성도의 여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