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강의

천기

아빠와 함께 2023. 7. 5. 19:07

438강-YouTube강의(천기 마태복음 16:4)20230704-이 근호 목사


제438강, ‘천기(天氣)’. 천기, 다른 말로 하면 날씨. 마태복음 16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마태복음 16장 1절에 나오는 말씀이죠.

2절, 3절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절에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天氣)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4절,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세상을 판단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을 판단할 때에 2절, 3절에 나오는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그들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저녁에 노을이 붉으면 다음날 날씨가 좋다.’ 이것은 오랫동안 인간의 경험 속에서 사람들은 날씨, 천기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관찰이 가능하니까요. 3절에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이것도 천기를 통해서 자기 시대의 미래에 대해 예상을 하고 싶어하는 인간들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의 한계를 이렇게 언급하는 이유는 너희들이 날씨를 보든지 천기를 보든지 하늘의 구름을 보든지 여러 가지 보면서도 너희들이 곱게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뭔가 기대를 하고 의도를 가지고 본다는 겁니다. 그것은 ‘내일 날씨나 오늘 저녁 날씨나 앞으로 우리가 속해있는 이 세상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어느 누구도 거기에 대한 궁금증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교회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만약에 주식을 하나 사게 되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주식할 때 뭐 큰소리치죠. 난 주식 얼마밖에 안했어. 난 그냥 던져둔다. 주식을 그냥 샀을 뿐이지, 주식값이 오르는지 내리는지 난 관심 없다. 화끈한 자기의 성격을 자랑질 하기 위해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미 인간이 주식을 산 이상 주변에서 TV나 라디오에서 주식 이야기 나오면 과연 무관심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오? 주식값 내려가네. 계속 쥐고 있을까, 팔까? 그런 생각 들겠죠.

이 말은 인간은 자신이 관찰하고 해석하는 그 상황, 그 환경과 같이 묻어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속해있는 것을 관찰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예속되어 있는 겁니다. 관찰하기 전에 자기가 관찰해서 이해하는 그 안에 노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이 상황을 내가 잘 판단해서 보다 나은 인생을 꾸려야지, 라고 기대는 하지만 이미 그 사람은 자기가 손 쓸 수 없는 자기 세대에 놀아나고 있는 겁니다. 휘말리고 있는 겁니다. 조선시대 같으면 주식한다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아무 상관없잖아요. 조선시대 때 무슨 주식시장이 있습니까? 이 시대니까 주식시장이 있는 것이고 거기에 대해서 영향을 입고 있는 거예요.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그 시대의 사람이 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천기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딱 하나에요. “너희들은 이 시대 자체에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시대가 휘두르는 대로 살 뿐이다. 시대 자체를 분석하거나 평가할 그런 안목은 너희에게 없다.” 그렇게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대자연에 대해서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내일 날이 좋고, 아침에 하늘이 붉으면 저녁에 날이 궂겠다.’라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물리적으로 자연의 일부인 하늘을 아무리 인간이 분석하고 판단해도 대자연 바깥으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렇게 되면 세상의 사람이 되어서 놀아날 뿐이지, 그 세상에 대해서 평가한다든지 판단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냥 휘둘리는 거예요.

만약에 저 강가에 어떤 집이 있는데 큰 장맛비가 와서 갑자기 강물이 불었다. 그래서 강이 충만해서 흐르고 넘치듯이 위에서부터 싹쓸이하면서 오는데 강변에 지은 본인의 집이 튼튼하게 지었다고 해서 그 집이 무사할 것 같습니까? 무사 못하죠. 휩쓸려 내려갑니다, 강물에. 흙탕물에 휩쓸려가죠.

그러면 큰물이 일어나기 전에 사람들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아, 장마가 오네. 어이구, 비가 많이 오네.’ 이런 이야기한다고요. 장마가 온다, 비가 많이 온다. 그다음 결과에 대해서는? 그런 이야기했다고 해서 그 사람 집이 안 떠내려갑니까? 본인이 비오라고 요청한 적 있어요? 없죠.

그런 이야기, ‘어? 비가 오네. 날씨가 흐리네. 비가 오네. 어? 강물이 불어나네. 여보게, 내가 하는 말은 맞는 말이지? 그렇지?’ 맞는 말, 틀린 말 그걸 지금 따져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냔 말이죠. 집이 떠내려갈 판인대요. ‘거봐, 내 말 맞잖아. 비 온다 했잖아.’ 자기 집이 떠내려가서 탁류에 휘말려가는데 그 말했다고 해서 ‘응. 네 말 맞네.’ 같이 떠내려가면서 ‘어, 네 말 맞네.’ 그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집 다 떠내려가는데. 지금 자기가 죽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뭐냐 하면 근본적으로 이들은 죽어요. 날씨가 어떠니 천기가 어떠니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는 말을 하든 다른 의견을 내놓든 상관없이 그들은 그 시대에 의해서 다 몰살되게 되어 있고 저주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4절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너희들이 날씨와 천기는 관심 있으면서 어떻게 이 시대가 어떻게 망하고 어떻게 무너지는지 왜 거기에 대해서는 알지를 못하느냐?’하시면서 4절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단정했습니다. 요나의 표적. 요나의 표적의 특징은 요나만 알고 있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은 요나에게 일어난 일은 자연현상으로 이해한 거예요. 그러나 요나는 선지자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관련되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여겼던 겁니다. 그 일을 여기 마태복음 16장에서는 ‘표적
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 표적 정리 들어갑시다. 표적이란 하나님과 관계있는 사람이 세상을 평가하는 게 표적이죠. 하나님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만 볼수 있는 것, 그것이 표적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 성도가 출현한다. 성도가 출현한다는 그 자체가 예수님이 지금 살아서 일한다는 표적입니다.

성도 빼놓고는 다 죽습니다. 왜? 성도라는 독특한 존재의 등장은 바로 이 시대에 대한 심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은 표적을 읽어보지 못하고 성도는 비로소 내 존재가 나 한평생 밥 먹고 살라고 산 게 아니고 주님의 표적으로 이 땅에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등장시켰다는 사실을 성도만이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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