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순환체제-성경해석

아빠와 함께 2023. 5. 6. 23:24

주님께서 주시고, 주신 것을 가지고 다시 끄집어내는 이것을 교환체제, 또는 순환체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이것은 문화인류학에서 많이 이야기들 해요. 예를 들어 19세기말에 백인들이 호주 땅에 처음 들어왔을 때 호주원주민들이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있어요.‘저 사람이 우리 같은 사람이냐, 아니면 외계인, 신령한 영의 세계에서 왔느냐? 또는 짐승에 불과하냐?’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냐 아니냐를 측정하는 방법이 뭐냐? 선물을 주고받는 순환체제에요.
돼지를 낯선 이방인들인 백인들에게 선물로 줘보는 거예요. 돼지를 선물해 주니까 백인들이 조개껍질로 선물을 해줬거든요. 그러니까 원주민들이 “야호!” 하고 환호성을 지르면서 저 사람들은 우리의 순환체제 속에 포함이 된, 우리와 ‘주고받고’ 가 성립되는 같은 인간이라고 결정 내려고 대환영을 한 겁니다.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고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거예요.
같은 인간이란 모양새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준 것을 받고 그 받은 것에 대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되돌려줄 수 있을 때 더 이상 우리는 적이 아니고 같은 동질의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 주님께서 우리에게 준 선물이 뭐냐는 거지요. 독생자를 보내셨거든요. 독생자를 보내셨을 때에, 그 독생자의 의미를 알 때, 그렇게 되면 우리는 주님과 한패가 되는 겁니다. 순환체제가 돼요. 주께서 주신 것을 주께로 그대로 돌려드리는 것, 이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게 성경해석이에요. 주로부터 말미암아 주를 통해서 주께로 돌아가는 것이 성경해석입니다. 주께서 주신 그것을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율법의 방식으로 표현했는데 그 율법의 방식의 대표가 뭐냐? 할례. 네 몸을 그대로 받지 않고 잘라내서 받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냥 잘라내서 나머지를 받는 것이 아니고, 잘라냄 그 부위가 주님과 인간이 접속이 가능한 유일한 부위에요.율법에 의해서 나는 있어도 없는 존재로 간주되는 거예요. 그게 할례언약의 취지입니다. 그것이 나중에 오게 되면, 이 땅에 보였던 분인데 보이지 않는 분의 희생, 그게 바로 세자로 십자가입니다. 사도바울은, 나는 십자가만 자랑한다, 그 말이에요. 십자가만 자랑한다는 그 말은, 그동안 악마가 나를 물고, 뜯고, 달래고, 유혹하고, 주의 얼굴 못 보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토록 애썼던 그 악마가 나로 하여금 집중 치중하고 관심 두게 하고 똑바로 보도록 만들었던 그것이 밝혀졌습니다.
그건 뭐냐? 내가 착하게 살았느냐, 나쁘게 살았느냐? 어떻게 하면 나를 천국에 보내느냐, 하는 나의 나머지 있음에다 집중해서 신경 쓰게, 인생을 다 소모하도록, 거기에 다 투자하도록 만들었던 그거, 그 덩어리, 그 덩어리를 이제는 자투리로 툭툭 쳐서 날려 보내버려야 되지요. 그래야 예수의 흔적만 남으니까. 이게 성경해석의 끝판, 끝장이에요. 이게 갈라디아서의 마지막에 나옵니다. 여러분, 그렇게 해서 그 다음에 누굴 만나야 되느냐 하면, 여러분이 사도바울처럼 만나야 돼요. 이제는 누구든지 만나야 돼요. 누구든지 만나야 돼요. 누구든지 만나야 될 이유가, 그 everybody, ‘누구든지’ 하고, 예수의 흔적이 된 나하고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이제는 넉넉한 마음에서, 쫓기지 않는 마음에서 한 번 비교해 보세요. 그 상대방의 말투나 내용이나 행동 속에서 주님이 찾아오기 전에, 내가 살았던 그것이 그대로 리바이벌 하듯이 다 들어올 거예요.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흔적이 나의 흔적이 아니고, 내가 열심히 충성한 흔적이 아니고, 예수님의 오신 흔적이에요. 그러면 예수님의 흔적이 뭐냐?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했잖아요. 율법을 완성했다는 것은 뭐냐? 세상, 온 우주의 감추어진 비밀, 그 원리가 예수님의 흔적, 십자가를 통해서 해석이 이미 완료가 되었다는 뜻이에요.그러면 예수님의 흔적이 우리의 속에 있다는 말은, 창세전에 우리가 있어야 될 자의 자리를 주께서 이미 지정해 줬다는 것이 됩니다. 본래 내가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에요. 예수의 흔적이 내 안에 있다는 말은, ■율법의 완성이 내 안에 있다는 말이고, 율법 안에는 내가 구원되어야 될, 이미 창세전에 주께서 선택될 ■내 자리를 주께서 친히 마련하시고, 그 자리로 나를 지금 데려가고 있다는 증거로서 나에게 예수의 흔적을 주신 거예요.다시 한 번 정리해 드리면, 나에게 예수의 흔적이 있다는 말은, 뭘 가졌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버려야 될 것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고 생각하시면 여러분은 이 해석에 동참하시는 분입니다.

너는 너를 아느냐고 묻는 것이 복음이에요. 남 걱정하지 말고, 남 교회 걱정하지 말고 나 자신이 누구냐?  사도바울은 우리를 놀래 킵니다. “너는 이 해석 모르지? 나 예수 흔적 가졌다. 까불지 마! 나한테 덤비지 마. 나 예수 흔적 가졌다.” 다시 말해서 “내가 노력해서 가진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나를 구멍 냈다. 구멍 없는 사람 나와 봐! 이 불쌍한 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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